- [대담] 배기찬의 카리스마 -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 2편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를 서울 창성동 정부종합청사 별관 통일외교안보특보실에서 만났다. ‘코리아 패싱’이 나오고 북미 대결이 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가진 인터뷰인 만큼 문 특보도 발언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대 답변했다. (유코리아뉴스) |
전문가들에게 한반도 문제에 가장 정통한 국내 학자를 꼽으라면 여지없이 이 사람이 꼽힐 것 같다. 학자로써 뿐만 아니라 정책전문가로써, 무엇보다 사심 없는 성품에서 나오는 진단과 비판, 대안이기에 정책집행자 입장에서는 그를 무시할 수가 없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를 서울 창성동 정부종합청사 별관 통일외교안보특보실에서 만났다. ‘코리아 패싱’이 나오고 북미 대결이 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가진 인터뷰인 만큼 문 특보도 발언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해 답변했다.
그만큼 한반도 상황이 일촉즉발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문 특보로부터 현 한반도 상황에 대한 진단과 해법을 들어봤다. (편집자 주)
(1편에 이어서) “블랙홀에 빠진 문재인…박근혜 정부가 남긴 유산 때문”(기사클릭)
남북관계 풀어야 한미·한중·미중 관계 풀 수 있다는 문 대통령 정책 방향 옳아
배기찬 통일코리아협동조합 부문대표 (이하 배) : 지금 미중 관계가 안 좋다. 표면적으로는 북한 문제인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문정인 특보 (이하 문) : 그렇다. 그게 가장 큰 명분이 되고 있는데, 결국 이런 게 사라지게 되면 평화와 번영의 선순한, 신뢰 구축과 다자안보체제 구축의 선순환이라는 게 동북아지역에서 이뤄지게 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걸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과 대화하겠다고 주장하는 거고, 북한과 경제교류·협력을 강화시켜서 한반도 경제공동체 만들고 그걸 통해서 결국 대륙으로 진출하고, 그 결과로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사이의 교량국가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만 하면 문제가 없다. 그렇지 못하니까 지금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정책방향은 옳다고 본다. 남북관계를 풀어야 결국 한미, 한중, 미중 관계 등 여러 가지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걸 대통령께서 분명히 제시해 놓은 것이다.
배) 대통령도 그걸 분명히 인식한 것 같다. 남북관계를 푸는 게 매우 중요한 키라고 생각한 것 같은데, 북한이 문재인 정부의 몇 가지 대화 제의에 응하지 않고 있다. 문 특보께서는 1차, 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특별수행원을 하셨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특단의 조언을 해주신다면.
문) 문 대통령께서도 트럼프와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그렇게 공을 들여서 얻어냈던 게 ‘우리가 남북 대화와 관계개선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것 아닌가.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주도적으로 남북대화 하려 하니까 미국과 일본이 아직 올바른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다며 부정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우리의 주도적 대화 노력을 지지하고 있다.
문제는 북한 측의 냉담한 반응이다. 우리 정부가 적십자회담과 군사회담을 제안했는데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다보니 문 대통령이 지금 어려워진 것이다. 이건 미국과의 대화를 먼저하고 난 후 남측과 대화하겠다는 북의 경직된 자세와 우리에게 북한과의 대화 채널이 존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배) 그 채널을 어떻게 열 수 있을까.
문) 북한과의 대화 채널엔 기본적으로 3가지가 있다. 하나는 당국 간 접촉이 있고, 또 하나는 당국자 간 막후 접촉이 있고, 그리고 NGO들을 활용하는 물밑 접촉이 있다. 그런데 현재는 이 3가지가 다 끊어진 상태다. 아마 때를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우선 을지연습(UFG) 끝나고 한반도 긴장이 완화되어야 북측이 우리 측 NGO들을 상대로 한 민간접촉을 허용할 것 같다. 무엇보다 북미 간 대화가 작동되어야 북이 우리 측 대화 제안에 임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여건이 성숙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어 보인다.
과거 같으면 국정원이 핵심 역할을 할 수 있을 터인데 현재는 북이 국정원을 적대시하기 때문에 당장 큰 돌파구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문정인 특보는 남북관계를 풀어야 한미, 한중, 미중 관계 등 여러 가지 문제가 풀린다고 본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방향은 기본적으로 옳다고 진단했다. (유코리아뉴스) |
대북특사, 4대 강국 파견할 때 보냈어야
배) 이런 상황에서 타개책은 없을까, 대북 특사를 파견한다든지 등.
문) 특사 파견은 초기에 했어야 한다고 본다. 4대 강국에 특사 파견할 때 같이 보냈어야 했다. 국내 정치적으로 대북 특사가 어려우면 비공식 특사라도 보냈어야 했다. 북한이 의전에 아주 민감하지 않나. 4강에 다 보내고 북한엔 안 보냈으니 섭섭했을 것이다.
게다가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 말 들어본 다음에 미국의 동의를 받고 북한과 대화하려고 하는 것처럼 비쳐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설령 문재인 정부가 특사파견 제안을 했어도 북측에서 받아준다는 보장도 없었다. 참 어려운 국면이다.
배) 사실 ‘신 베를린 선언’도 북한의 특성이나 그런 전례를 봤을 때 독일에서 대북정책을 언급하는 게 뭔가 안 맞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문) ‘신 베를린 선언’은 내용이 좋으니까 받을 순 있는데, 사전 교감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본다. 2000년 3월 9일 김대중 대통령이 베를린 선언을 발표했을 때는 이미 북측과 사전 교감이 있었다.
그러니까 ‘왜 남의 나라 땅에 가서 그런 제안을 하느냐’고 북한이 비판하긴 했지만 그 내용은 이미 사전 조율이 다 된 상태였고, 그 연장선상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도 북측과 사전 교감이 있는 상태에서 했으면 좋았을 것 같아 보인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배) 지난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평화 번영의 동북아시대’가 정책 목표였다.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문 특보께서도 동북아시대위원장을 하셨다. 저도 위원회 기조실장으로 일을 했지만 당시 동북아가 평화의 공동체, EU 같은 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추진했었다.
지금 보면 전체적인 구도가 이전에 비해서는 군비경쟁을 하는 분위기가 됐고, 그때도 한일 관계가 안 좋았지만 지금 한일 관계가 더 나빠져 있다. 과거 우리가 얘기했던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라는 10년 전의 구상이 이젠 구현하기 힘들어지지 않았나 생각하는데, 동북아 평화를 위한 방법이 있을까.
문) 물론 사정이 매우 다르다. 그때만 하더라도 탈냉전의 기류가 남아 있었고 중국의 부상이 기정사실화 하지 않았을 때이다. 게다가 북한 핵 문제가 지금처럼 불거져 나오지 않았고 남북관계도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는 그때가 여건이 좋았다.
제가 동북아시대 위원장을 할 때 주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동북아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였다. 그게 노무현 대통령이 꿈꾸었던 동북아 지역주의의 꿈이었기 때문이다. 자연히 동북아 경제공동체가 관심사였다. 한중일 3국 FTA 구상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동맹을 넘어선 다른 길이 없는가’를 고민했다. 노 대통령은 항상 장기 비전을 생각했다. 향후 40~50년 내 미국이 동북아에서 떠날 것을 예상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라고 우리 위원회에 주문했다.
거기서 나온 게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체제였다. 그것은 2005년 9월 6자 회담에서 채택했던 9·19 공동성명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 성명의 마지막 부분에 동북아 다자안보협력 체제 구축 조항을 집어넣은 것은 한국 정부였다. 거기에 더해 한중일 공동 역사교과서 제작, 사회문화 교류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지역 공동체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만들어보자는 거였다. 그때도 제약이 많았지만 지금은 더 어렵다.
배) 어떤 제약들이 있나.
문) 크게 4가지 제약이 있다고 본다. 그 첫째는 핵을 가진 북한의 대두다. 북한 비핵화가 실패하면 한국, 일본 다 핵무기를 갖게 되는 ‘핵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면 지역 협력과 통합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진다.
두 번째 제약은 중국의 부상과 그에 따른 지정학적 망령의 부활이다. 옛날엔 이 지역에서 해양세력, 대륙세력 얘기 안했다. 히틀러가 지정학을 명분으로 동유럽을 먹고 유라시아를 먹고 그걸 통해 세계를 제패한다는 팽창정책을 쓰면서 2차 세계대전이 발생했기 때문에 국제정치학계에서는 ‘지정학’을 터부시 해 왔다. 그런데 요즘 지정학이 되살아날 뿐만 아니라 그게 지배적인 사유의 흐름이 되고 있다. 미국, 중국이 얘기하는 게 전부 지정학에 대한 것이다. 대륙세력 중국과 해양세력 미국의 대결, 이런 구도 하에서 동북아 공동체 구축은 어려워진다.
세 번째 문제는 밑도 끝도 없는 민족주의다. 우리가 근대화가 되고 세계화가 되면 민족주의는 사라진다고 믿었는데 다시 민족주의가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민족주의가 살아나면서 영토문제가 되살아나고, 역사문제가 되살아나고, 한일의 경우 위안부 문제가 되살아나고 있다. 그러다보니 한중일 3국 관계가 어려워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국내정치다. 권위주의 국가나 민주주의 국가나 똑같다. 외교정책을 가지고 국내 정치적 마일리지를 올리려는 것 아니냐. 대외 문제를 국내정치에 오용, 남용하면서 국가 간의 관계가 나빠지고 있는 것이다. 국내 정치적 인기는 올라갈지 모르지만 국가의 대외적인 환경은 상당히 어려워진다.
다른 요인도 있겠지만 저는 이 네 가지예측 불가능한 변수들 때문에 동북아 지역 공동체 구축이 어려워진다고 본다.
배) 그러면 동북아 공동체를 포기해야 할까.
문) 그건 아니다. 경제적 상호의존이 심화되고, 사회문화 교류도 증대되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한중일 3국이 3국 교류협력사무국을 만들어서 역내 협력을 제도화하려 하고 있다. 분명히 희망이 있다. 물론 ‘상황이 이런데 무슨 동북아 공동체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저는 반대로 생각한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한국이 총대를 메고 한중일 3국 협력을 견인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우리가 새로운 동북아 지역질서를 만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여기서 핵심은 남북관계 개선이다. 대통령의 상상력과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문정인 특보는 북한 문제를 군사적으로 해결하거나 강대국들의 빅딜로 해결하는 방식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대화와 협상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고 했다. (유코리아뉴스) |
키신저의 미·중 빅딜을 통한 한반도 문제 해결이 틀린 이유
배) 동북아의 여러 행위자들 중엔 남북, 중국, 일본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여전히 미국인 것 같다. 그런데 미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 나아가 한반도 문제를 푸는 데 있어서 그 방식을 크게 보면 3가지 이론이 있을 것 같다.
하나는 군사적으로 푸는 방법, 두 번째는 대화를 통한 평화적인 방법, 세 번째는 강대국 정치라고 해서 이 지역 내 대표적인 강대국 두 나라가 합의해서 문제를 푸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보면 19세기 말, 20세기 초 당시 미국이 한반도 문제를 영국이나 일본, 미국-일본이 한반도 문제를 그렇게 풀었다고 볼 수 있다. 또 1945년에도 그렇게 풀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키신저가 북한 문제를 미국과 중국이 합의해서, 즉 중국이 원하는 것을 미국이 들어주고 미국이 원하는 것을 중국이 들어주면서 풀어 보자는 이야기를 했다.
또 한편으로는 군사적으로 1990년대 클린턴 정부 시절 ‘영변 폭격론’이 있었다. 그런 식으로 미국 강경파 안에는 끊임없이 폭격이나 전쟁에 의한 한반도 문제 해결 방법이 나온다. 상원의원 린지 그래함도 그런 얘기를 하지만 평화적인 해결 방법보다는 전쟁 또는 폭격에 의한 방법이라든가 강대국 정치를 통한 방법이 거론되는데 이런 것들을 어떻게 평가하시고 있고, 또 우린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문) 1994년 5월 1차 핵위기 때 미국은 영변에 대한 외과적 타격, 즉 선제공격이라는 군사적 수단을 통해 북핵 문제를 풀려고 했었다. 그 당시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의 논리는 간단했다. 영변에 있는 5㎿ 짜리 연구용 원자로, 원료 공장, 그리고 방사화학 재처리 시설만 선제타격으로 없애면 북한 핵 문제는 끝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페리 장관의 회고록을 보면 미국의 선제공격으로 한반도에 확전이 될 경우, 2개월 이내에 100만~150만의 사상자가 난다는 예측이 나왔다는 것이다. 페리 장관으로서는 이건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한다. 이런 고뇌의 과정에서 지미 카터가 6월 초 평양에 가면서 북핵 문제가 잠정적으로나마 타결됐던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해서 일부 강경세력이 군사 행동을 강조하는데 현실적 대안이 되기 어렵다. 군사행동으로는 북의 핵·미사일 무기 체제를 완전히 제거한다는 군사적 목표도, 그리고 북의 지도부를 괴멸하겠다는 정치적 목표도 달성하기 어렵다.
게다가 문재인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분명히 밝히지 않았는가. 우리와 상의하지 않는 군사행동은 용납지 않겠다고. 결국은 군사행동과 전쟁은 수용할 수 없다는 우리 대통령의 의지를 밝힌 것이다. 우리의 군사적 지원 없이 미국의 군사 행동은 더더욱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미국의 군사적 옵션에는 엄청난 제약이 있는 것이다.
그 다음 나왔던 게 대화와 협상을 통한 타결이다. 1994년 10월에 제네바 합의가 만들어지고 미국은 2003년까지 북한에 경수로 2기를 지어주는 조건으로 북한은 핵활동을 동결하고, 경수로가 지어지면 자기들은 완전히 검증 가능하게 핵을 폐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2001년 부시 행정부가 본격 출범하면서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을 이유로 제네바 합의를 무력화시키고, 북한에 대해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6자회담 출범으로 위기는 극복했지만 미국과 북한 모두 대화와 협상의 진정성을 문제 삼으면서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북한은 대화의 진정성을 의심하며 하나의 헤징(보험) 전략으로 은밀히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진행해 나갔고, 미국은 그런 행위를 기만적 행위(cheating)로 보고 대화와 협상에 소홀히 했다. 서로를 믿지 못하니 그런 결과가 나왔던 것이다. 미국과 북한이 전략적 불신을 계속하는 한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은 쉽지 않을 것이다.
군사적 행동과 대화, 협상이 어려워지니까 나온 것이 키신저가 말하는 강대국 결정론이다. 키신저 구상은 미국과 중국이 빅딜을 하자는 것이다. 중국이 북한에 대한 원유 공급을 중단해서 북한 체제의 붕괴를 꾀하고 그 반대급부로써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해서 중국이 원하는 한반도 완충지대를 만들어 주자는 것이다.
키신저는 뛰어난 지략가이지만 유럽 중심적 환원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후 비에나 회의(Vienna Congress)에서 다섯 개의 강대국이 유럽 질서를 재구성했던 것처럼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는 생각은 지극히 잘못된 것이다.
배) 키신저의 오류를 보다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나.
문) 키신저가 틀린 첫째 이유는 북한 체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중국이 그런 식으로 압박을 가한다고 해서 북한이 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북한 김정은 위원장 체제가 망하더라도 그 다음 들어오는 체제, 즉 군부든지 아니면 당-군부 집단지도체제이든, 심지어 민중봉기가 일어난다고 해도 그들은 절대 주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키신저는 중국도 제대로 모르는 것 같다. 중국은 주변국이 일본 포함 20여개에 달한다. 시진핑 주석은 이들 국가를 관리하기 위해 친성혜용(親誠惠容) 정책을 펴 왔다. 주변국가와 친선관계를 유지한다는 ‘친,’ 주변국가들에 정성을 다한다는 ‘성’,’ 주변국가들에 혜택을 베푼다는 ‘혜’, 그리고 주변국가들에 관용을 베푼다는 게 ‘용’이 그것이다. 중국이 한 국가에 대해 공격적 태도를 보이면 다른 변방국가들도 똑같이 생각하기에 ‘대중(對中) 연합’을 결성할 수 있다. 사실 1955년 반둥회의가 끝난 다음에 주은래가 ‘평화 5원칙’을 천명했는데 그 첫 번째가 내정불간섭이다. 중국은 그 원칙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북한 문제에 대해서도 내정간섭을 절대 안할 거라고 본다. 우리는 그것을 계속 의심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키신저의 가장 큰 잘못은 북한도 중국도 잘 모르면서 ‘세력균형 결정론’, ‘강대국 결정론’이라는 틀에서 한반도를 보고 있다는 점이다. 동북아는 세력균형 결정론이 먹히지 않는다. 한국도 그렇고 북한도 그렇고 강대국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는 것은 대화와 협상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문정인 특보는 문재인 대통령이 전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만큼 용기를 가지고 올바른 외교정책을 펼치길 주문했다. (나무위키 자료사진) |
촛불혁명의 뜻은 전 국민이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겠다는 거니까 대통령은 용기를 갖고 하면 된다
배) 마지막으로 저만 하더라도 지난해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하고 그에 대응해 박근혜 정부가 사드 배치를 결정하고, 그리고 나니까 중국에서 엄청나게 대응하면서 ‘한국은 바둑돌이 될 것이다’고 하고, 그때 한일 관계가 위안부 문제로 어려워지고 남북관계는 파탄되고 하는 걸 보면서 큰 절망에 빠졌었다.
하지만 희망이 생긴 게 촛불혁명이 보여준 5,000만 국민의 힘, 이 힘이 단순하게 현 정부를 바꾸는 데 끝나는 게 아니라 5,000만 국민의 힘이 외교안보통일 여기에도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전체적인 상황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지만 결국엔 국민의 힘을 통한, 국민의 힘에 의한 외교안보 정책, 대북 정책이 결국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문) 100퍼센트 동의한다. 중요한 포인트다. 지금 외교정책이라고 하는 것은 국내정치의 연장이다. 결국에 중요한 건 국내 구조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가서 대접받고, G20 정상회의 가서 대접받고 한 게 다 그런 이유다. 특히 이번 촛불혁명을 통해 정통성 있는 대통령이 들어섰다는 것, 이게 뭘 의미하는 걸까. 대통령이 결단 내리면 전 국민이 이를 지지한다는 것이다. 물론 일부 보수 진영에서 반대를 할 수는 있지만 전 국민이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겠다는 거니까 대통령은 용기를 갖고 하면 된다.
미국에 고개 숙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제가 지난 6월 ‘북한이 핵·미사일 동결하면 우리는 중단까지는 아니지만 한미 군사훈련 축소 방안을 미국과 협의할 수 있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저를 얼마나 비판했나.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문재인 특보의 말이 뭐가 잘못됐나? 저쪽이 동결하면 우린 축소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 그리고 ‘미국의 전략무기가 한반도에 올 필요가 뭐가 있나?’ 이런 얘기도 나오고, ‘우리가 남북 대화하는 걸 왜 미국 허가받고 해야 하느냐?’는 등 여러 이야기들이 SNS에서 널리 퍼져나갔다.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본다.
(끝)
*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는 누구?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는 1951년 제주 출신이다.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메릴랜드대학교에서 정치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켄터키대학, 캘리포니아대학 샌디에이고 분교 교수를 거쳐 1994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부임해 지난해 정년퇴임했다.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로 현재 연세대 송도캠퍼스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장·통일연구원장, 김대중 도서관장을 역임했다. 국제적인 시각으로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동아시아재단에서 발간하는 영문 계간지 <Global Asia> 편집인이다. 2000년, 2007년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에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참석했다. 참여정부 동북아시대위원장을 역임했고,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로 임명됐다.
진행 : 배기찬 통일코리아협동조합 부문대표 / 정리 : 김성원 유코리아뉴스 편집장
유코리아뉴스 ukoreanew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