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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풀이되는 역사의 교훈

기사승인 2024.08.19  21:3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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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국주의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독일의 경우 동・서독 분단과 과거 역사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 있었지만 일본의 경우 분단도, 역사적 반성도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이 아닌 한반도가 분단되었고, 분단 이후 남한에서는 식민지 근대화론이나 건국절 논란과 같은 역사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본이 제국주의 침탈을 정당화하는 이상으로 남한 내 친일파는 자성을 거부하고 있다. 이는 해방정국에서부터 이념 논쟁이 정치투쟁과 결부됐기 때문이다. 더구나 북한의 남침은 모든 이슈를 집어삼켰는데, 한국전쟁은 우리 정치사에서 이념의 편파성이 굳어지게 하는 계기였다. 정적 제거에 쉽게 동원되는 이념 공격, 이른바 ‘빨갱이론’은 사상적 자유를 억압하는 기제로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1980년 광주 민주항쟁을 딛고 마련된 1987년 헌법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으로서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다. 주권재민의 민주주의 가치를 반영하고 있는데, 촛불 정국 때마다 노래로 불린다. 이는 남북관계에 있어서 체제의 우월성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한데, 광장 민주주의의 일면이라고 할 수 있다. 무질서하고 통제되지 않는 모습이 연출되는가 하면 국가 폭력에 따른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만, 이는 오히려 역동적이며 절차가 중시되는 민주주의 속성을 드러낸다. “당이 결정하면 우리는 한다”고 외치는 북한의 정치문화와 대비되기도 한다.

민주적 정치과정이 담보된 우리의 선거 제도에 비해 북한은 일당 독재가 당연시되는 당-국가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3대 세습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이념 경직성은 다음 세대를 옥죄고 있다. 정치범 수용소는 존재만으로도 인권에 위배되는데, 북한은 지속해서 국제 인권 기구들의 비판을 받아왔다. 김정은 시대의 자랑인 ‘핵 무력 완성’ 국가로서의 이미지가 우호적이기보다 경계심을 높이는 방향으로 굳어진다면 북한에 대한 국제 평판은 더욱 나빠질 것이다. 북한이 남한과의 국력 격차를 핵무장으로만 해결하려고 할 때, 안보는 보장될지 몰라도,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국격의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질 것이다.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핵이 우리에게 위협이 됨은 남북의 적대적 관계가 불거질 때이다. 체제 경쟁에서 확실하게 승리를 다졌던 지난 30여 년간 우리는 한반도 냉전 구조를 개혁하지 못했고, 북한을 상대로 제대로 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 북한이 옷을 갈아입도록 충분히 기다리지 못했다. 정상적이지 않은 체제를 비판하면서, 정상적인 행동을 촉구할 뿐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며 접근하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탈냉전시대의 문은 닫히고 미국과 중국이 패권을 다투는 새로운 국제 질서가 구축되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북한이 고립의 장막을 거두게 하고 있지만, 한반도 평화는 국제사회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북한의 체제 변화 역시 물 건너간 상황이다. 혹자는 여전히 북한 정권 붕괴 후 흡수통일을 논하며 과거를 답습하고 있다. 남북관계의 국제적 속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처사이다. 불행히도 이제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핵보유국 북한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이다. 미국을 향한 기대를 접은 북한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며 ‘새로운 길’로 접어든 지 오래다. 미국과 국제사회 제재를 피해 러시아와 협력하는 북한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정치력이 필요하다. 한・러 관계와 한・중 관계, 그리고 한・일 관계를 발전시키며 남북관계를 복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제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정치적 공감대가 두터워야 가능한 일이다.

일제강점기를 겪었던 우리 앞에, 치욕적인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넘어야 할 산이 첩첩이 놓여 있다. 국내 친일파와 연결된 일본 상대에는 새로운 차원의 역량이 필요하다. 일본의 제국주의 침탈은 우리 민족만의 불행이 아니었다.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피해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일본의 역사적 변명은 동일하기만 하다. 동독을 변화시킨 서독의 전략은 ‘접근’이었다. 아래로부터 풀뿌리 민주주의를 키워온 우리가 일본을 향해 리더십을 발휘함은 어떨까. 일본이 군국주의를 넘어서 인류 보편의 가치를 담지하도록, 피해받고 상처 입은 우리가 변화를 추동한다면 그보다 더 온전한 승일(勝日)은 없을 것이다.

윤은주/ 북한학 박사, (사)뉴코리아 대표

*위 원고는 <기독공보>에도 실립니다.

윤은주 ejwarrior@hanmail.net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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