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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여성에 대한 ‘편견’의 벽을 깰 수 있는 방법?

기사승인 2020.10.16  14:4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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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북여성에 대한 편견에 답하다’ 기고문

‘남녀평등’이 함의하고 있는 여성의 위치

나는 23년을 북한, 4년을 중국, 18년을 한국에서 살고 있는 북향민(탈북민)이다. 거슬러 올라가 북한에서 살 때 ‘여성의 위치’를 생각해보면 해방 이후 김일성 주석이 1946년 7월 [북조선의 남녀평등권에 대한 법령]을 발표한 것에서 시작된다. 봉건사회, 신분사회였던 일제치하 이전의 조선역사를 배우고 해방 이후 김일성 주석이 제시한 정책들을 조명하다 보니 ‘토지문제, 남녀평등’과 같은 것은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었었다.

하지만 북한에서의 ‘남녀평등’은 사회적 가치에 부응하는 존재일 때만 가능한 등식이었고, 가정 내에서는 철저히 배제된 가부장적인 삶의 양태로 존재했음을 후에 깨달았다. 이렇게 양분화된 구조는 북한 정부의 교육과 상관없이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면서 분기점을 맞이하게 된다. 세대주(남편) 중심으로 돌아가던 북한체제의 시스템에서 여성(아내)들이 생업의 앞장에 서게 되면서 그 역할이 자연스럽게 바뀌게 된다. 한마디로 ‘여성의 파워’가 대단해진 것이다.

이후 중국에서 3~4년을 살면서 나는 참 기이한 현상들을 자주 목격했다. 물론 이 또한 중국 여성들에 대한 ‘편견’이 될 수 있어 조심스럽지만 북한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풍경들이었다. 공공장소에서 아내가 남편의 따귀를 때리고 야단치는 모습, 가정 내에서 주방일을 도맡아 하는 중국인 남편들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여자가 남자 위에 있다’는 말도 심심찮게 들었다. 북한의 가부장적인 생활에 익숙해 있던 내게는 큰 문화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18년 살면서 체험한 한국 내의 ‘남녀평등’은 북한과 중국에 비하면 꽤 균형 있어 보였다. 특히 가정 안에서 어느 한편에 편중되지 않는 부부의 역할은 아주 인상 깊게 다가왔다. 나는 북향민의 일원으로 한국에 살면서 지금까지 특별히 ‘여성으로서의 나’에 대해 생각하며 산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이 말은 다른 말로 ‘북한 여성’으로서의 나는 직접적으로 한국사회에서 불편할 정도의 편견적인 시선을 받은 적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아마도 한국사회에 정착한 이후 대학을 다니면서 단체를 설립하고 대표로서 종교적인 활동을 해온 것이 컸던 것 같다. 또한 주변에 정말 좋으신 분들을 많이 만난 것도 한몫 한 것 같다.

그런데 북향민 여성으로서가 아닌 그냥 ‘북향민’이라는 이유로 받았던 편견의 시선은 요소요소에 있었다. 이를테면 나를 가리켜 ‘북향민 중 적응을 잘하는 상위1%다, 박 대표는 그냥 일반 북향민들과 다르다, 북한사람 같지 않다, 그냥 남한 사람 같다’ 등의 평가들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류의 이야기는 칭찬이기 때문에 좋게 받아들여야 하는데 항상 뒤끝이 개운하지 않았다. 이미 북향민 같은 사람이라는 어떤 틀이 나를 칭찬하는 분들 속에 편견의 조각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북향민 여성들을 대변하다

북향민 여성으로서 개인적으로 받은 편견의 시선은 없지만 한국사회에 북향민 전체, 그리고 북향민 여성들을 향한 편견의 시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유코리아뉴스 [무엇이 탈북여성에 대한 편견을 낳는가?]에 잘 나와 있다. 특히 북한 여성들은 “예쁘다, 성적으로 문란하다, 순종적이다”라는 부분이 북한 여성들에 대한 가장 부각되는 편견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왜 이런 편견이 생기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여러 번 언론매체를 통해 여과 없이 방송된 탈북여성들의 성매매에 대한 문제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녀들이 걸어온 삶의 경로와 배경이 배제된 채 결과로만 비치는 부정적인 모습은 바로 한국인들에게 ‘탈북여성들은 문란하다’라는 등식으로 각인되어 버린다. 그렇다면 정말 탈북여성들은 문란한가?

탈북여성들이 남한 정착 과정에서 티켓다방, 성매매 등을 전전하고 있다는 JTBC 뉴스 보도화면(2012년 4월).

내가 기억하는 북한사회의 ‘성문화’는 굉장히 보수적이었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기 이전 일반적으로 북한사회는 성적으로 문란한 것에 대해 정부가 통제하고 규제하는 구조였다. 고위층 간부들과 고위직 인사들의 베일에 가려진 성적 문란함에 대해서는 이곳에 와서야 들은 이야기이고 일반인들에게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성적으로 문란한 것은 비판대상이 되고,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포르노 비디오 테이프를 몰래 밀수해서 팔던 사람들이 도망나온 것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보수적인 ‘성문화’의 경계는 경제난과 함께 무참히 무너져 내렸다. 어디에서 유입된 문화인지 알 수 없는 성을 팔고 사는 일이 북한 땅 여기저기, 특히 국경지역을 중심으로 북한사회에 퍼져갔다. 후에 중국에 와서 들은 이 이야기는, 객관성은 떨어지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중국의 혹자는 이렇게 얘기했다. 남한과 중국의 수교 이전 중국도 사회주의 체제로서 성문화에 대해 보수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빠른 속도로 중국에 정착한 한국문화 중 세 가지가 바로 유흥업과 사우나, 식당업이라고 했다. 이후 특히 농촌에 있는 중국 여성들이 도시 유흥업계로 빠지면서 쉽게 돈을 벌려는 현상이 생겼고, 이것을 배운 중국 남성들이 북한 국경지역에 가서 그대로 북한 여성들의 성을 주고 사는 일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팩트체크가 어려운 어떤 중국인 개인의 의견이었지만 국경지역으로 장사를 여러 번 다녀봤던 나는 머리가 끄덕여지는 지점이었다. 그런 소문들과 현장들을 간접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 말은 결코 중국인들이 한국유흥문화를 배워 북한 여성들의 성을 상품화했다고 단정짓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렇게 북한의 성문화는 보수적이긴 했으나 가장 큰 맹점은 ‘성교육이 전무’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북한 여성들의 성에 대한 전반적인 인지능력은 낮을 수밖에 없고 대응력 또한 약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약점들은 중국에서, 한국에서 악용당하기 좋은 요인이기도 했다.

중국에 대부분 팔려갔던 탈북여성들은 한 가정의 어머니였고 누이들이었다. 가족을 살려야 한다는 간절함으로 중국으로 건너가기는 했으나 단언컨대 그들의 대부분이 자신들이 술집이나, 성매매로 팔려가는 것을 알면서 수긍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브로커들은 대개 그럴듯한 이유로 수많은 북한 여성들을 속여서 데려갔고 중국에 간 북한 여성들의 처지는 당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놓이게 된다. 경제난이 아니었다면, 가족이 아니었다면 중국으로 갈 이유가 없었던 평범한 우리의 누이들이었다.

 

중국에서 본 탈북여성들의 위치

그렇게 중국에서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게 되는데 이 경우는 그나마 양호할 수도 있다. ‘탈북민이라는 족쇄’는 언제 잡힐지 모르는 공포와 불안에 떨고 있는 우리의 누이들을 원하지 않는 유흥업계로 피신하라고 유혹하기도 했다. 또한 최악의 경우 악덕 브로커들을 만나게 되면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무참히 짓밟혀야 했던, 아무 힘도 없는 약자였던 우리의 누이, 엄마들의 뼈아픈 과거,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 그런 어려움 가운데서도 가족을 살리기 위해 발버둥치고, 살아남기 위해 애쓴 우리의 엄마, 누이들이 바로 우리의 탈북여성들이다. 그런데 ‘인권’이라는 명목으로 우리 탈북여성들의 실상이 필요 이상으로 적나라하게 부각되면서 또 다른 ‘인권침해’를 야기하게 되고 탈북여성에 대한 잘못된 편견의 줄기가 파생되게 된다.

한국에 들어온 북향민들 중 70% 이상이 여성이라는 것은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냥 성비의 문제가 아니다. 먼 훗날 기억되어야 할 위대한 역사의 한 줄기이다. 남북통일의 여정에 놓인 하나하나의 디딤돌들을 앞장서서 죽음으로, 투혼으로 놓아온 사람들이 탈북여성들이다. ‘가족을 책임지려는 무게’를 짊어지고 고난의 길을 걸어온 탈북여성들로 인해 지금도 북녘땅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가족들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북한여성들이 예쁘다’는 표현의 어원은 ‘남남북녀’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나는 이 역시 ‘외모지상주의’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또한 ‘순종적이다’라는 말 역시 오래전 북쪽 여성들을 규정해놓은 관점에서 나온 ‘편견’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탈북여성들은 ‘순종적이다’라는 표현을 들으면 ‘지금이 어느 때인데 그런 말을 하오? 조선시대요? 고구려시대요?’라고 웃어넘기곤 한다. 북한 여성들이 아니고 사람에 따라 ‘순종적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본인은 단언컨대 한국까지 온 탈북여성들은 잡초와 같은 삶의 굴곡을 걸어오며 ’순종적이기보다는 오히려 강한 리더십과 강인함’을 길러낸 여전사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글을 마치며 한국사회에서 ‘탈북여성들에 대해 갖는 편견’이 무엇이든 한번 쯤 멈춰서서 ‘북한, 중국, 한국’에 가족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탈북여성들의 고충을 그리고 찐한 사랑을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그러면 보일 것이고 느껴질 것이다!

박예영/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이사장

*본 기고문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박예영 ote2022@hanmail.net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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