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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탈북민을 품다

기사승인 2020.09.05  08:5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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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K비전센터 박우철 대표

통일을 생각하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북한핵과 대북제재 문제는 파고들다 보면 남한이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도 마찬가지다. 남북 정상이 만나 ‘OK’ 한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다. 서로 다른 체제의 통합,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차이의 문제는 머리가 지끈거리고, 역사 해석과 세금 부담 문제로 들어가면 ‘이럴 바엔 통일하지 말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너무 어렵고 골치 아픈 일은 잠깐 제쳐두자. 통일은 그저 ‘서로 만나는 것, 만나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것’ 정도로만 생각하자. 그런데 너무나도 쉬울 것 같은 이 일을 막상 실천하려면 결코 쉽지 않다. 엄청난 인내의 시간과 수고, 거기다 사람들의 차별과 편견까지 견디며 나아가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광주 광산구 NK비전센터가 바로 그런 곳이다. 기자가 센터를 찾았을 때는 긴 막바지 장맛비가 한창인 날이었다. 센터 1층 카페 ‘Art Bean’에서 박우철 대표와 탈북여성 한유진 씨를 만났다. 센터 봉사자인 한 씨는 남한 남성과 결혼해 광주에서 살고 있다. 한 씨처럼 광주에 둥지를 튼 탈북민은 600여 명.

“많이 싸워요.”

아는 남남북녀 커플이 자주 싸운다는 말에 자신도 역시 많이 싸운다며 한 씨가 맞장구를 쳤다. 한 씨는 올해가 결혼 11년 차다. 북한에 대해, 더군다나 탈북여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남편은 ‘무섭다’ ‘몰골이 이상하다’는 편견, 두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결혼하고 나서는 어떻게 됐을까?

“저를 북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는데 안 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세무 같은 일도 제가 다 맡게 되어서 일이 무척 많아요.” 남편도 개인사업을, 자신도 키즈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회계 업무까지 자신한테 다 떠넘긴다는 것이다. 그만큼 한 씨가 남한생활에 잘 적응했다는 말이다.

한 씨의 말을 듣고 있던 박 대표가 입을 열었다. “유진 씨가 그만큼 신뢰 있게 잘 하니깐 그렇게 되는 겁니다. 제가 오랫동안 지켜봐 왔는데 너무 흐뭇하고 보기가 좋더라구요.”

박 대표는 “있는 듯 없는 듯 하면서 안정감 있는 유진 씨 같은 분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고 했다. 그만큼 탈북민이 어느 순간 부각되었다가 또 갑자기 사라지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탈북민과 세상을 연결해주는 일이 저에겐 가장 행복합니다.” 박우철 NK비전센터 대표. ⓒ유코리아뉴스
직원들이 바쁠 때는 박우철 대표가 직접 카페 바리스타 일을 본다. NK비전센터 1층에 있는 카페 ‘Art Bean’. ⓒ유코리아뉴스

 

한 씨는 처음엔 남편과 시댁으로부터, 과거엔 직장에서도 ‘탈북 여성’이라는 이유로 편견과 차별에 시달려야 했다. 심지어 좀 괜찮은 옷을 차려 입을 때면 ‘북한에서 왔는데 어디서 돈이 나서 옷을 잘 입느냐?’는 말도 들어야 했다. 이런 한 씨가 어떻게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고 남한 사회에 잘 정착할 수 있었을까?

물론 박 대표의 언급처럼 한 씨 스스로 잘 해온 것이 첫 번째 이유일 것이다. 한 씨 한 사람의 삶이 남편은 물론 시댁 식구의 관점을 바꿔놓고 박 대표 같은 남한 사람들에가 감동을 준 것이다. 거기다 ‘남남북녀’인 점도 한몫 했을 것이다. 체제도 문화도 다른 양쪽의 사람이 만나 결혼해 살아가는 과정 자체가 편견 벗기, 하나 되기의 과정일 테니까.

 

이해와 수용을 향하여, NK비전센터 그리고 북한학교

하나의 역할이 더 있다. 바로 NK비전센터다. 센터는 설립 초기인 2013년부터 1년에 두 차례 ‘북한 학교’를 열고 있다. 남한 사람, 탈북민이 함께 모이는, 서로에 대한 편견 벗기라고 할 수 있다.

박 대표는 “서로 알고 이해해야 받아들일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이라며 “그런 인식 위에 북한 학교를 열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학교 모토가 ‘알고 이해하고 수용하고 사랑하자’다. 지금까지 700명 가까운 사람들이 북한학교를 수료했다. 북한학교를 통해 편견과 오해가 바뀌는 걸 직접 확인하고 있다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

씨앗과 토양을 비유로 들기도 했다. “우리는 흔히들 탈북민을 ‘먼저 온 통일’이라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씨앗이라도 심겨지는 토양이 좋지 않으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지 않습니까?”

탈북민을 거부하고 배척하고 편견을 가진 사람, 그런 사회를 ‘좋지 않은 토양’에 비유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탈북민이 무조건 ‘좋은 씨앗’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된 대북 전단 관련 탈북자 단체도 그런 예일 것이다. 박 대표는 “주변에 있는 교회나 광주 시민들, 나아가 지역 사회를 살아가는 분들의 마음을 바꾸는, 편견을 제거하는 그런 마음으로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탈북민에 대한 편견이 가장 두터운 남한 사람은 어떤 부류일까? 박 대표는 탈북민을 한번도 만난본 적이 없는 사람보다는 어느 정도 겪어본 사람을 꼽았다. 탈북민을 만나본 적 있다는 사람, 같이 일을 해봤다는 사람 말이다. “책도 한 권 읽은 사람이 굉장히 무서운 것처럼 탈북민을 조금 접해보고 탈북민이 어떤 사람인지 정의내리고, 그 선입견으로 판단하고 퍼뜨리고 하는 사람이 굉장히 무서운 것 같아요.”

그가 북한학교를 비롯해 오프라인 모임을 자주 가지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못하고 있지만 매주 토요일 갖는 ‘밥상 공동체’라는 식사 모임도 같은 취지다. 밥을 같이 먹으면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편견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는 것이다. “적어도 밥상에서는 편견이 없잖아요. 같이 밥을 먹는데 무슨 편견이 있겠어요? 밥상 위에서는 탈북민의 이야기가 곧 나의 이야기가 되고, 그게 곧 통일인 거죠.”

북한학교는 북한을, 탈북민을 알고 이해하고 수용하고 사랑하자는 취지로 1년에 두 차례 열린다. 지난 6월 열린 북한학교 모습. NK비전센터 제공

박 대표는 원래 선교단체 소속으로 해외선교 활동을 했었다. 북한에 대한 관심이라면 1997년 오대원 목사(한국예수전도단 설립자)가 광주에 왔을 때 “광주가 북한을 여는 열쇠”란 말을 듣고 기도했던 게 전부였다. 그러다 해외사역을 마치고 쫓기듯 한국으로 들어오게 됐고, 예기치 않게 북한사역을 시작하게 됐다. 중국엘 갔는데 거기서 북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신이 몰랐던 그들의 처절한 현실을 알게 됐고 ‘이 일이다’고 결심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해온 NK비전센터 일에 대한 소감을 박 대표는 이렇게 소개했다.

“너무 행복하더라구요. 탈북민과 세상을 연결해주는 일이니까요. 제가 이제까지 많은 사역들을 해왔지만, 이들을 만나고 함께 있고 같이 밥 먹고, 상황은 좋지 않아도 이분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저한테는 행복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이 일을 평생 해야 하는, 제가 마지막까지 해야 하는 일로 여기고 있습니다.”

너무 긍정적인 얘기만 하는 것 같아 일부러 짓궂은 질문을 던져봤다. “그래도 실망이나 상처 준 탈북민이 있었을텐데요?” 약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가 답했다. “실망과 상처라는 건 사실 없었습니다. 다만 아쉬움은 있죠. 대한민국 사회에 정착해 살면서 충분히 지도력도 발휘할 수 있고 영향력도 미칠 수 있는데, 자신만의 한계에 갇혀 있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고요. 그런 안타까움이죠. 그 한계를 넘어서면 어떤 분야에서 탈북민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자기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제약을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는 게 가장 안타깝죠.”

탈북민을 품고 함께 살아가는 이 사역이 혹시 광주이기 때문에 더 활발할 수 있는 건 아닐까? 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한 도시이기에 민족 분단의 희생양인 탈북민들을 남다른 마음으로 품을 수 있는 것 말이다. 박 대표는 “꼭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어느 곳보다 탈북민 사역이 활발한 것은 맞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하나원을 나와 광주로 배치받는 탈북민들은 하나같이 무서워하거나 싫어 한다는 것이다.

한 씨가 말했다. “하나원에서 배치 지역을 발표할 때 광주라고 하면 울고불고 난리가 나요. 가기 싫다고. 그만큼 광주를 무섭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이유는 5.18을 ‘광주 봉기’라고 해서 무섭게 싸우고 투쟁하는 장면을 북한에서부터 봐왔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들을 하나원 동기생들끼리 나누다 보니 광주는 탈북민에겐 금기의 도시가 되고 만 것이다. 하지만 한 씨에게 광주는 이제 고향 같은 포근한 도시로 남았다. 탈북민을 만나서 편견이 벗겨지듯이 광주 사람을 만나 광주에 살면서 광주에 대한 편견을 벗을 수 있었던 것이다.

NK비전센터에서는 매주 주말 밥상공동체를 비롯해 남북이 함께 어우러지는 행사들을 많이 연다. 지난해 12월 센터 앞에서 연 남북 김장 나눔 한마당 모습. NK비전센터 제공
NK비전센터 행사에서 청소년들이 통일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했다. '통일은 군대면제'란 문구도 보인다. NK비전센터 제공

 

탈북민의 사각지대 없애기, 그 롤모델을 향하여

탈북민에 대한 편견 극복과 안정적인 정착은 중앙이나 지방 정부의 역할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각지대가 많다는 게 박 대표의 지적이다. “대한민국에서의 정착 성패는 초기 3년 안에 결정 난다고 봐요. 이 기간 내 최대한 지원해주고 돌보고 울타리가 되어줘야 하죠. 관공서에서 그런 내용을 좀더 신경써서 들여다봐 줬으면 하는 것이죠.”

NK비전센터는 아직 사단법인이 아니다. 통일부에 신청서를 냈지만 탈북민만이 아닌 고려인들까지 돌본다는 이유로 보류됐다. 광주시에는 민간단체 등록신청을 했지만 종교적 색채가 있다는 이유로 난항을 겪고 있다.

박 대표는 법인 지정 여부와 상관없이 이 사역을 계속 확산해 간다는 계획이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가 그렇듯 탈북민이 대체로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어요. 하지만 광주에도 600여 명의 탈북민이 있어요. 이분들이 사각지대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저희 센터가 충분한 역할을 하는 롤모델이 되고 싶습니다. 앞으로요? 그 뒤로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워낙에 남북 관계가 변하니까요.”

반면 한 씨는 ‘사랑의 불시착’ 같은 드라마가 탈북민에 대한 편견을 줄이는 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자신이 통일강사이기도 하지만 통일교육은 대상이 적고 제한적이지만 드라마의 영향력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탈북민’, ‘탈북 여성’이라는 꼬리표가 없어질 날을 꿈꾼다며 이렇게 반문했다. “대구나 부산에서 시집왔다고 하듯이 그냥 김책이나 청진에서 시집 왔다고 얘기하고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요? 남한에서는 더 이상 고향이 어딘지를 가지고 차별하지 않잖아요?”

*본 취재는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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