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탈북민 편견? 북한 혐오? 해법은 정치죠”

기사승인 2020.09.15  18:50:30

공유
default_news_ad2
ad43

지금까지 만나본 탈북민 중 가장 탈북민 같지 않은 탈북민. 조경일 씨를 만날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기자만 아닐 것이다. 조 씨를 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슷한 인식을 할 것이다. 꽃미남 같은 얼굴에, 단정한 옷차림, 온화한 말투. 그런데 조 씨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기자 역시 탈북민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조 씨의 고향은 함경북도 경흥군 아오지다. 맞다. 무시무시한 ‘아오지 탄광’이 있는 그곳. 누구나 그렇듯 조 씨도 자신을 소개할 때 고향부터 얘기한다. 그러면 사람들의 하나같이 의아해한다. “전혀 북에서 온 거 같지 않아 보이는데?”

조 씨의 반응은 뭘까.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칭찬이에요. 근데 사실은 그게 편견이거든요. 탈북민에 대한 어떤 정형화된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이죠.”

그 정형화된 이미지가 다름 아닌 편견이다. 왠지 모르게 촌스럽고, 사회적 지위도 낮을 것 같다는 생각 말이다. 그렇다 보니 탈북민은 북에서 왔다는 걸 숨기는 경우가 다반사다. 강원도에서 왔다, 조선족이다 이렇게 에둘러버리는 것이다. 조 씨는 “이 정형화된 이미지를 깨는 데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며 “거기엔 당연히 탈북민 스스로의 역할이 큰 몫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조경일 씨가 직장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조 씨는 국회 사무총장 비서로 일하고 있다. ⓒ유코리아뉴스

“남한 생활? 진짜 즐겁게 지내고 있죠”

조 씨는 2004년 9월에 남한으로 왔다. 16년 남한 살이 동안 힘든 일은 없었는지 물었다. “북한에 계속 있었다면 아마 굶어 죽든 맞아 죽든 했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한국에 와서 하고 싶은 것 하면서 꿈을 향해 도전을 하고 있으니까 정말 감사하죠. 진짜 즐겁게 지내고 있어요.”

공부에 목말랐던 조 씨는 대학에 들어갔고, 대학원에서 정치학도 전공했다. 처음부터 가졌던 정치의 꿈을 그는 지금도 꾸고 있다. “한국 생활이 편했다”는 그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힘들었던 걸 묻는 질문에 딱 한 번 돈을 떼인 것 외에는 큰 어려움 없이 지냈다고 했다. 주변에 늘 좋은 분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사람 좋기로는 조 씨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웬만하면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조 씨는 지금 국회 사무총장실에서 비서로 근무하고 있다. 그 전엔 김두관 의원실과 김영춘 의원실에서 근무했었다. 조 씨를 인터뷰한 장소도 국회 본관 회의실이었다. 국회의원 될 꿈은 없냐고 물었다. 조 씨가 속내를 내비쳤다. 언젠가 가능하다면 선출직으로도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비례가 아닌 지역구 국회의원에 나가고 싶다는 것이다. 그걸 위해 앞으로 상당 기간은 열심히 갈고 닦는 시간일 것이라고 했다.

자연스레 이번에 지역구를 통해 국회에 입성한, 같은 탈북민 출신인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조 씨는 조심스러워했다. 원래는 민주당 당적을 가졌지만 이번에 김영춘 전 의원을 따라 국회 사무총장실로 오면서 당적을 가질 수 없는 공직임용으로 탈당을 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 씨는 회피하지 않았다.

“의아하면서도 감사했어요.” 의아하다는 것에 대해 조 씨는 굳이 설명하지 않았지만 유추하건데 많은 탈북민이 가졌던 생각, 즉 한국에 온 지도 얼마 안 된 엘리트 출신이 얼마나 한국을 안다고 지역구에 출마하냐는 것이다. 반면 감사한 것은 상징성 때문이다. “탈북민들이 겪고 있는 공통 문제는 한국사회에서 주류가 되기 무척 힘들다는 것인데, 태 의원의 출마와 당선은 탈북민 입장에서는 지위가 신장되는 걸 의미하거든요. 앞으로 좋은 정치를 해 줬으면 좋겠어요.”

성적으로 문란하다, 정직하지 않다, 쉽게 돈 벌려고 한다 등 남한 사회가 가진 탈북여성에 대한 편견들을 탈북남성으로서는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묻자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솔직히 탈북여성에 대해 (남한사회에) 이런 편견들이 있는지 몰랐어요. 몇 년 전부터 방송에서 탈북여성들이 티켓다방에 많이 간다, 그런 기사들은 봤는데 이게 비단 탈북여성들만의 문제는 아니지 않나요?”

여성이라는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어느 사회에나 있는 사회 구조적 문제라는 것이다. 많은 여성들이 중국에 팔려가는 걸 보면서, 그리고 그들이 고통당하는 걸 보면서 조 씨가 깨달은 것은 이들이 사회적 약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피해자인 탈북여성들을 향해 남한 사회는 ‘편견’을 덧씌우고 있는 셈이다.

 

“탈북민·북한에 대한 편견·혐오의 해결은 정치에”

얼마 전 대북전단 문제를 계기로 탈북단체와 일부 탈북민이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탈북민 스스로의 책임이 크다”고 했다. 조 씨의 설명이다. “탈북민이 남한사회에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전 2000년대 전이죠. 그때까지 남한에는 문헌 외에는 북한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었어요. 탈북민들이 들어오면서 경험, 증언들이 생겨났고, 북한 사회를 보는 눈이 조금씩 열리게 되었지요. 그런데 탈북민들의 간증이나 주장들이 점점 왜곡되고, 과장되기 시작하면서 ‘일반화의 오류’가 굉장히 많았어요. 한국 사회에서 탈북민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아진 것도 그때부터라고 봐요.”

팁(tip)을 줬다. 탈북민의 증언을 들을 때는, 북한이 100개의 퍼즐로 만들어졌다면, 그 중 한 개의 퍼즐이라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탈북민 한 사람의 증언은 곧바로 북한으로 인식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흔히 북한에 대한 쇼킹한 소식의 출처로 종편이 지목된다. 종편 언론의 특성상 북한의 어두운 면을 부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조 씨가 우려하는 것은 ‘탈북민이 종편에 이용당하기도 하고 이용하기도 하는’ 이런 과정을 통해 북한에 대한 혐오, 불신, 편견을 심어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북한은 통일이나 대화의 대상으로서보다는 적대의 대상으로 되고 만다는 것이다.

조 씨가 내린 결론은 정치다. 책 제목에도 있듯이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라는 것이다. “이것은 탈북민들한테 ‘솔직하게 얘기해’라고 하거나 탈북민들의 얘기를 듣는 일반 국민들에게 ‘사실은 그게 아니에요’라고 얘기할 수도 없는 문제입니다. 아직도 분단 이데올로기가 한국 사회를 움직이고, 여기에 탈북민들이 도구가 되는 것이죠. 탈북민들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는 면도 있고요. 아직도 분단 냉전 이데올로기 때문에 싸우고 있는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를 풀어야 되는데 그게 바로 정치라는 것이죠.”

조 씨는 나아가 남북관계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당장 취업이 급한 청년들에게 ‘통일’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이들에게 통일은 그냥 저 공중에 떠 있는 구름 같은 담론일 뿐이다. 이들에게 통일이 실제가 되려면 북한과의 새로운 관계 설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른바 ‘공존체제를 인정’(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은 이것을 ‘이웃국가론’이라고 했다)하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탈북민에 대한 편견도, 북한에 대한 혐오도 줄어들고, 남북관계가 새로운 방향으로 진전할 거라는 얘기다.

“북한 하고 공존하자고 하면 종북이다, 빨갱이다 그러는데 사실 남북은 지난 70년간 공존을 해왔잖아요. 다만 그 사실을 서로 부정하고 있을 뿐이죠. 우리 안의 모순인 겁니다. 이제 그 모순을 툭 까놓고 이야기할 때가 됐다고 봐요.”

 

“왜 꼭 탈북민만 해야 하죠?”

그렇다면 남한 사회의 통합이나 한반도 평화를 위한 탈북민의 역할은 뭘까? 이 질문을 던지자 되레 반문이 돌아왔다. “탈북민들이 꼭 그 역할을 해야 하나요?” 약간 당황스러워하는 순간, 조 씨가 말을 이었다. “이게 참 무거운 짐이에요. 좋은 의미인 건 알지만 또 한편에서는 탈북민들에겐 짐인 거죠. 한국사회는 탈북민에게 짐을 지어 주면서 정작 그에 맞는 역할과 지위는 주지 않죠.”

생각해 보니 그랬다. 탈북민에게 엄청난 기대는 갖는데 그에 걸맞는 대접은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그 엄청났던 기대는 곧 엄청난 실망으로 귀결되고 만다. 특히 교회에서 더 그런 일이 다반사라는 게 조 씨의 설명이다.

“먼저 온 통일이다, 통일을 위해 보냄받은 사람이다, 이런 얘기들을 하는데 탈북민이라고 해서 그 역할을 다 해야 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냥 한국사회에서 열심히 살고, 단란한 가정 꾸리는 것, 그 존재만으로 역할을 다하는 것이죠. 그런데 한국사회는 탈북민을 그렇게 안보고 있는 겁니다.”

정작 조 씨가 두려워하는 건 10년 후든 50년 후든 통일이 되어서 고향에 갔을 때다. 고향 사람들로부터 “우리가 배고플 때 너는 도망가서 잘 살았냐?”는 비아냥을 듣는 것이다. 조 씨는 “만약 그런 얘기를 듣는다면 다시는 고향을 못갈 것 같다. 갈 자격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 “너는 떠나서도 힘든 북한 땅, 우리 고향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구나. 고생 많았다” 이런 얘기를 듣는 것, 그게 남한에 온 탈북민의 역할이라고 했다. 그걸 위해 치열하게 살고, 난관들을 이겨내고, 잘 정착하는 것, 할 수 있으면 돈도 많이 벌고, 높은 지위에도 올라 고향에 갈 날을 앞당기는 것이 그 어떤 타이틀이나 사명보다도 중요한 탈북민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본 취재는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ad41
ad42
ad40
ad39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