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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이미제중(以美制中)’ 전략

기사승인 2018.03.09  16:5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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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열 보이는 북·중관계

2018년 2월 13일 일본의 NHK는 흥미로운 보도를 했다. 전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장성택이 김정남을 북한의 최고지도자에 앉히고 싶다는 발언을 했다는 것이었다. NHK는 중국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 장성택이 김정일 사망 후 8개월 뒤인 2012년 8월 후진타오 전 국가 주석과 회담한 자리에서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을 전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대화 내용이 저우융캉(周永康) 전 중국 정치국 상무위원을 통해 북한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저우 전 상무위원이 자신의 부하를 통해 회담 내용을 도청한 뒤 이듬해인 2013년 초 이를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된 김정은 위원장에게 밀고했다는 것이다. 밀고가 행해진 뒤 장성택 전 부위원장은 2013년 12월 북한에서 국가반역죄 등으로 처형을 당했고, 김정남은 2017년 2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암살당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김정은은 중국을 철저히 불신하게 되었고, 중국의 대북 정책에 대한 불만도 커져만 갔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017년 5월 3일 ‘북·중 관계의 기둥을 찍어버리는 무모한 언행을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제목의 논평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과 공조 모드인 중국을 향해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냈다. 북한이 ‘배신’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직접 중국을 맹비난한 것은 그동안 ‘주변국’, ‘이웃 나라’ 등으로 지칭하며 중국에 대한 불만을 간접적으로 표출했던 관례에 비춰볼 때 매우 이례적이다.

그후 북한은 “이미 최강의 핵보유국이 된 우리에게 있어서 선택의 길은 여러 갈래”라며 중국을 버리고 러시아를 의지할 수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어 북한은 2017년 5월 21일 500㎞를 날아 동해상에 떨어진 탄도미사일의 지상 발사용 미사일인 북극성-2형을 발사했다. 당시 북한은 북극성-2형에 달린 카메라에 찍힌 미사일의 상승 장면을 보여줬는데, 여기에는 중국 랴오닝 반도가 포함되기도 했다. 이는 북극성-2형을 포함한 북한의 탄도미사일이 중국 주요도시를 겨냥한 측면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동시에 북한이 중국에 대해 전에 없던 고강도 무력시위를 벌인 것이나 같다.

과거 혈맹으로 인식됐던 북·중 관계에 큰 균열이 생기고 있다. 이는 지난 2012년 중국의 제18차 당대회 때는 북·중 친선 내용을 담은 800자 분량의 축전을 보냈던 북한이 2017년 당 대회에는 ‘북·중 친선’이란 표현을 뺀 고작 세 문장의 축전을 보낸 데서도 드러나고 있다. 북한의 대중국 무시는 2017년 11월 17일부터 20일 사이에 절정을 이루었는데, 이 기간 김정은은 시진핑의 특사인 쑹타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 부장을 만나지 않았다. 작금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등 남한의 대북 특사를 극진히 대접한 것과는 사뭇 다른 장면이었다.

2018년 1월부터 북한은 중국을 비방하는 주민 교양을 강화하고 있다. 대북제재로 경제가 어려워지자 중국의 배신 때문이라는 식으로 주민교양을 실시하고 있다. 중국의 대북제재로 생활난이 가중되면서 중앙당에 대한 주민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모든 책임을 중국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중국을 북한이 어려운 처지에 빠진 것을 기회로 이윤만 추구하는 ‘속검은 돼지’라고 비하하고 있다. 이 같은 반중감정을 최근 중앙에서 진행하는 회의나 정세강연을 통해 전달하고 있고, 특히 여맹회의에서 반중감정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여성들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을 끌어들여 중국을 견제하려는 북한

이러한 상황에서 남한의 대북 특사단이 지난 3월 6일 가지고 온 합의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남북 정상회담 4월 말 개최, 미국과 한반도 비핵화 논의 의향, 대화 중 핵 및 미사일 발사 중지, 한미합동군사훈련 용인 등은 전문가들도 예상하지 못했던 성과다. 특히, 그동안 북한은 비핵화 문제는 미국과만 논의할 수 있는 사안이라면서 남한이 비핵화를 언급하는 것을 불쾌해 했다. 그러나 김정은은 모든 것을 시원시원하게 풀어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미국을 끌어들여 중국을 견제하려는 대전략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북한은 김일성 시기부터 ‘중·소 양다리 외교’를 펴서 국익을 극대화했다. 김일성은 중국이나 소련 모두 북한을 버릴 수 없다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이점을 활용하여 중국과 소련을 왔다갔다 하면서 경제 원조를 얻어 냈다. 하지만 김정은은 미국의 군사적 위협 못지않게 중국의 정치경제적 위협이 심각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군사적 공격은 쉽지 않은 데 반해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은 언제든 북한 국경을 침범할 것으로 보는 것 같다. 중국 견제를 위해서는 베트남처럼 미국을 끌어들이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남한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미국을 견인하려는 것은 미국의 대북 불신이 심한 상황에서 직접 나서는 것보다 미국의 신뢰를 받고 있는 남한을 활용하는 것이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북한이 노리는 부수효과는 중국이 북한의 대미 경도를 방지하기 위해 대북 제재를 적극적으로 이행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마저 미국편으로 돌아설 경우 중국은 완전히 고립무원에 빠지기 때문에 중국이 북한을 끌어안기 위한 당근을 제시할 것이라는 노림수가 숨어 있는 것이다.

둘째, 민족공조를 이루려는 전략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그동안 북한은 미국, 중국, 러시아 등과 다각적인 외교를 전개했으나 남한과의 관계 개선 없이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남한은 미국, 중국, 러시아 등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남한의 대미 외교력을 활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문재인 정부를 상당히 신뢰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은 남한의 설득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남한을 중개인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그 결과로 나타날 부수적인 효과는 남북경협 및 관광 재개일 것이다.

북한, 주한미군 주둔 용인할 가능성 높다

향후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상당한 양보를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북한의 체제 안전을 보장만 한다면 핵폐기 수순에 들어갈 것이다. 경제제재를 해제한다면 개방정책도 과감히 시행할 것이다. 대중국 견제가 필요할 경우에는 주한미군의 주둔도 용인할 것이다. 더욱이 베트남처럼 북한 군항도 개방할지 모른다. 남북경협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한편, 군사회담도 개최할 것이다. 김정은은 이미 ‘북한판 등소평’이 되기로 결심한 것 같다. 이제는 전문가들마저 과거의 논리만으로는 도저히 북한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물론, 중국이 적극적인 구애를 하면 ‘시계추 논리’에 입각하여 못이기는 척하고 중국으로 경도되겠지만, 미국과의 관계를 하루아침에 청산하지는 못할 것이다. 미국은 앞으로도 최소한 50년 이상 세계 패권국가로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현준/ 남북물류포럼 이사. 한반도평화포럼 부이사장

*본 칼럼의 저작권은 남북물류포럼에 있습니다.

전현준 kolofo.or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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