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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를 다시 생각한다

기사승인 2017.02.14  14: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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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물류포럼 칼럼 - 한일 관계를 다시 생각한다

일찍이 필자의 친구(전 KBS PD 박문영)는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2백리로”로 시작하는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를 지었다. 그래서 한‧일관계가 나빠질 때면 저작권료 수입이 눈에 띄게 불어난다고 한다.

최근 부산에 있는 일본 영사관 앞에 소녀상을 세운 것에 일본 측이 크게 반발해 주한 대사를 소환하고 한 달이 되도록 복귀시키지 않고 있다. 경기도 의회 의원들이 독도에 비를 세운다는 소식을 듣고 일본 정부당국자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일본의 초․중학생들이 공부하는 교과서(학습지도요령)에 독도(일본 이름 竹島)가 일본 영토라고 명기하기로 했다 한다.

지금 한․일 간에 문제가 된 부산의 소녀상이나 독도 영토 문제는 피해자인 우리 할머니들이나 국제법상으로 중대한 이슈임에 틀림없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는 만큼 한‧일 문제를 근본에서부터 새로운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극우파가 보는 한국

일본은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 임진왜란과 을사늑약 후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끼친 영향은 처참할 정도이다. 명나라 치러 가는 길(征明假道)을 내놓으라며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공한 임진왜란 당시 왜군은 전 국토를 짓밟고 궁궐을 비롯한 주요 건물은 불태웠으며 재물을 약탈해 갔다. 명나라가 원군을 보내지 않고 이순신 장군이 바다를 지키지 못했다면 한반도는 잿더미 속에서 일본의 지배하에 들어가고 말았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의 궁궐과 사찰, 왕릉을 주의 깊게 관찰한 외국인(호주의 원예전문가 질 매튜 변호사)의 표현에 의하면 어느 명승지든지 대부분의 개축 연대가 임진왜란 이후인 것을 보고 왜군의 침공에 따른 약탈과 방화가 얼마나 극심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경복궁만 해도 임진왜란 때 불태운 것을 조선왕조가 새로 축조하였는데 일제 강점기 때 궁궐의 대부분을 헐고 그 앞에 총독부 건물을 세운 것은 한국인의 기를 말살하려는 문화적인 대학살(cultural genocide)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창덕궁은 어떠했나? 조선 왕실의 상징이었던 적송을 베어내고 그 자리에 일본 벚나무를 심었는가 하면 꽃나무로 우거졌던 궁궐 마당은 놀이공원으로 만들어버렸다. 전국적으로 신작로와 철도를 부설한다는 명목으로 백두대간의 맥을 끊는 도로와 철도공사를 벌였고 명산마다 산정에는 쇠막대기를 박아 지기와 맥을 교란하고자 했다.

외교는 정부 몫이라고 하지만 민간 차원에서도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넘겨버릴 일은 아니다. 한-일 역사를 보면 일본의 정한파(征韓派)는 자기네가 우세하다고 여기면 한반도는 자기네 차지라 여겼고 그것을 빼앗지 못하면 철저히 부수거나 불태워버렸다. 더불어 먹고 마시며 즐기는 파트너가 아니었다.(과거 영국의 식민지들이 독립 후에도 영연방의 일원으로 영국과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과는 판이하다) 그들에게 위안부나 독도에 대한 인식은 그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다름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네들의 야욕을 저지한 것은 이순신과 안중근, 김구였다. 이 조상님들 덕분에 한국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한반도 주변의 강대국들(Big Four)과 줄다리기를 할 때에도 줄 것과 받을 것을 구분해야 한다. 지금도 여전히 일본의 극우파(마지막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와 현재의 아베 신조 총리는 성씨도 다르고 인척관계가 없음)는 “한국은 미국의 원자폭탄 때문에 손을 뗀 나라일 뿐”이라고 식민지배 시절을 그리워한다고 한다.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큰 오산인지 일깨워주어야 한다. 일제의 침략으로 일본인들이 무슨 만행을 저질렀는지 비슷한 피해를 입었던 중국과 공조(共助)를 취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고차원적인 대일(對日) 접근법

일제 위안부 문제도 진즉 국가적인 프로젝트로서 문화적 접근법으로 다뤄야 하지 않았을까 아쉽게 생각된다. 뮤지컬 “명성황후”는 감동적인 드라마를 통해 외국의 관객들에게 구한말 일본 낭인의 만행을 소름끼치게 보여주었다. 또 영화 “동주”는 아름다운 시를 통해 동족의 심금을 울리던 일본 유학생 윤동주가 사상범으로 붙잡혀 생체실험 당한 것을 만천하에 고발했다. 우리의 궁궐이나 왕릉이 속속 UNESCO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고 있는데 일본의 침략과 약탈을 당한 것을 어떻게 견뎌냈는지 상세히 밝혀야 한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목이 터져라 외치기보다는 독도가 울릉도에서도 육안으로 보이는 섬이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예술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양식 있는 외국인들에게 훨씬 설득력 있을 것이다. 권오철 사진작가는 세종실록 지리지에 나오는 한 줄(二島相去不遠 風日淸明 則可望見)에서 힌트를 얻어 몇 년을 준비하고 기다린 끝에 2014년 11월 어느 날 아침 동해 일출 때 독도가 보이는 장면을 사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 역사서에도 나오는 “육안으로 보이는 섬이 우리 땅”이라고 하는 것을 누가 부정하겠는가!

이와 같이 고차원적으로 일본에 대응한다면 경제력과 외교력을 앞세운 일본의 의도는 국제여론의 압력을 못 이기고 꺾이고 말 것이다.

박훤일 /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 칼럼은 남북물류포럼에서 제공하였습니다.(남북물류포럼 홈페이지 가기)

박훤일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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