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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미, 영화 <그루터기> 제작 중

기사승인 2017.01.07  13:3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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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통일비전캠프 ⑨신 - 폴란드로 보내진 북한 전쟁고아 이야기 다뤄

배우 겸 영화감독 추상미 씨가 통일비전캠프(5일, 불광동 팀비전센터)에서 자신의 신작영화 ‘그루터기’의 제작스토리를 소개했다.

‘그루터기’는 전쟁고아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고아가 생겼다. 나라가 분단된 것처럼 이 아이들도 분단됐다. 남한 고아들은 자유주의 국가로 입양됐고, 북한 고아들은 사회주의 국가로 보내졌다. 영화 ‘그루터기’는 당시 폴란드로 보내진 북한 전쟁고아 1,500명에 관한 이야기다.

배우 겸 영화감독 추상미 씨가 2017 통일비전캠프에서 자신의 신작영화 ‘그루터기’의 제작스토리를 소개하고 있다. ‘그루터기’는 북한의 전쟁고아들의 이야기를 담은 장편 극영화이다. ⓒ범영수

폴란드의 북한 전쟁고아 이야기 ‘그루터기’

소설 <천사의 날개>와 다큐멘터리 <김귀덕>에서 영감 받아

추상미 감독이 북한 전쟁고아 이야기를 영화화 하겠다고 결심한 건 2년 전이다. 그는 폴란드 소설 <천사의 날개>(2013, Skrzydla aniola)를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천사의 날개>는 북한의 고아들이 폴란드라는 새로운 삶의 터전에서 전쟁으로 상처받은 동심을 회복해 나가는 8년간의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북한 고아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진 건, 폴란드의 한 방송 기자를 통해서였다. 그 기자는 우연히 ‘김귀덕’이란 이름의 무덤을 발견했다. 기자는 독특한 이름에 흥미를 느꼈다. 그는 왜 ‘김귀덕’이란 사람이 폴란드의 외딴 마을(프와코비체)에 묻히게 됐는지 추적했다.

3년간 추적한 끝에 기자는 폴란드 사람은 물론 한국 사람들도 잊었던 사실을 밝혀냈다. 한국전쟁 후 1,500명의 북한 고아가 폴란드에서 위탁교육을 받은 사실이었다. ‘김귀덕’은 그 아이들 중 한 명이었다. 아이들 대부분은 8년 후 북한으로 돌려보내졌다. 13살 소녀 김귀덕은 돌아가지 못했다. 폴란드에 정착하지 2년 만에 희귀병을 앓았고 그곳에 묻혔다. 당시 소녀를 치료했던 폴란드인 의사는 그녀를 위한 시를 지었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생명을 살리는 의사라고 한다. 하지만 네가 날 살렸다. 너는 사랑, 그 자체이다.”

폴란드인 기자는 자신이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다큐멘터리 영상 <김귀덕>(2006, Jolanta Krysowata)을 만들었다. 이 영상을 통해 낯선 폴란드 땅에 북한의 전쟁고아들이 살았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추상미 감독은 <천사의 날개>와 <김귀덕>을 보고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폴란드 현지 시나리오 작업만 2년

두 번 버림받은 북한의 전쟁고아들

북한 아이들과 폴란드인 교사들은 8년간 함께 지내며 사제이상의 관계를 형성했다. 폴란드인 교사들도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들만큼 북한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폴란드인 교사들은 아이들의 두 번째 부모가 기꺼이 되어 주었다. 8년 뒤 폴란드인 교사들과 아이들은 이별했다. 영상 <김귀덕>에는 떠나는 기차역에서 이들이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온다. 추상미 감독은 이 장면을 이렇게 설명했다. 

“북한 고아들은 전쟁에서 첫 번째 부모를 잃었고, 이날 두 번째 부모를 잃었습니다.”

추상미 감독은 폴란드인 교사들과 북한 아이들이 짧은 시간 실제 가족과 같은 유대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나라와 폴란드의 비슷한 역사배경 때문이라고 했다. 폴란드 역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주변 강대국으로부터 숱한 침략을 당했다. 2차 세계대전은 결정적이었다. 수많은 폴란드인이 가족을 잃었다. 북한 전쟁고아들을 교육한 교사들도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전쟁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북한 아이들을 진심으로 이해했고, 자식으로 대했다. 북한 아이들도 폴란드인 교사들을 부모처럼 따랐다.

추 감독은 시나리오 작업을 위해 2년 간 폴란드 현지를 돌아다녔다. 그곳에서 지금은 90세가 넘은 교사 7명을 인터뷰 했다. 당시 위탁교육학교 원장과 추 감독이 나눈 대화 일부다.

“왜 이렇게 위험한 사랑을 하셨어요?”

“그것은 본능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우리 교사 중에는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프와코비체) 기차역에 도착한 아이들이 갖고 있는 전쟁의 상처를 보고는 우리는 그들을 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북한으로 돌아간 아이들도 폴란드인 교사들을 그리워했다. 이들 중 일부는 북한의 엄격한 교육체제에 적응하지 못했다. 탄광촌으로 보내져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기도 했다. 폴란드인 교사들은 한 아이가 북한에서 보내 온 편지 한 통을 보여주었다.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선생님 저를 빼내주세요. 선생님 댁 하인으로라도 삼아주세요.”

고통을 호소하는 편지는 2년 동안 계속됐다. 지금은 생사조차 모른다.

추상미 감독은 북한의 전쟁고아들 이야기를 접하기 전까지 통일에 관심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한 이후부터 우리에게 통일이 꼭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그는 통일을 위해서는 가장 먼저 북한 사람들의 상처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범영수

북한 주민들의 상처 이해해야

‘그루터기’ 분단이란 상처 위에 새 생명 자라나길

그루터기는 벌목으로 밑동만 남은 나무를 가리킨다. 죽은 나무 같지만 거기에서도 어린 줄기가 자란다. 추상미 감독은 “분단의 상처에도 통일을 이끄는 새 생명이 자란다. 그 새 생명이 북한의 전쟁고아들이라는 상징성을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사실 추 감독은 통일에 별 관심이 없었다고 했다. 북한 전쟁고아들의 이야기를 접하고, 그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한 이후부터 우리에게 통일이 꼭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는 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북한 사람들의 상처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북한의 국가건설의 핵심은 미국을 비롯한 자유진영 국가들을 향한 증오의 에너지입니다. 전쟁으로 엄청난 폭격을 맞은 북한 주민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동력은 이런 증오에 있습니다. 우리의 상처는 타인의 상처와 연결돼 있습니다. 북한의 모습은 우리의 과거 역사와 그대로 연결돼 있는 거지요. 통일은 치유의 관점에서 논의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전쟁은 북한 정권으로부터 시작됐지만 대다수 주민은 전쟁의 주범자가 아닌 우리와 같은 피해자들이다. 그들 역시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북한 사람이라고 무조건 미워할 게 아니라 우리와 같은 피해자라고 여기고 함께 상처를 극복해야 한다는 게 추 감독의 설명이다.

그러나 전쟁의 상처가 쉽게 치유되는 건 아니다. 가족이 죽어간 처참한 역사 현장을 체험한 사람에게 북한은 원수이고 타도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이성의 영역이 아닌 감정의 영역이다. 추상미 감독은 하나의 예를 더 들었다.

“우리에게 손양원 목사와 같은 롤모델이 있습니다. 손 목사는 여순반란 사건으로 공산당원들에게 두 아들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손 목사는 자신의 아들들을 죽인 공산당원을 증오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형을 면해주기 위해 공산당원을 양자로 삼았습니다. 북한과 통일하는 과정도 이러하지 않을까요. 손 목사가 원수를 양자 삼았듯이 우리도 그들을 형제자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영화 ‘그루터기’가 전달 하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이런 것일까.

“이 이야기는 한민족이 겪은 상처를 다른 민족이 감싸 안아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게도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 주민들을 끌어안는) 긍휼이 필요합니다.”

예술인 추상미

추상미. 배우란 수식어가 아직은 더 친숙하지만, 이미 서너 편의 영화를 만든 실력 있는 영화감독이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현장에서 만난 그는 ‘하나님’을 자주 언급했다. 그가 영화감독으로 변신한 이유도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하시고 싶은 이야기를 대신 전하는 일이 사명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루터기’를 만들기로 결심한 이유도 신앙에서 찾았다. 그는 유튜브에서 ‘북한고아’에 관한 영상을 보았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북한 아이가 먹을 것이 없어 토끼풀을 꼭 움켜 쥔 채 걸어가는 장면이었다. 그 소녀는 영양실조로 죽었다고 전해진다. 추상미 감독은 그때 경험을 이렇게 회상한다.

“그 아이를 보는데 ‘저 아이의 엄마는 어디에 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작품을 위해 저를 준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다른 나라의 지배받으며 갈망했던 자유 ▲분단과 전쟁의 상처로 생긴 속박으로부터의 자유 ▲전후 가난으로부터의 자유 등 우리를 둘러싼 모든 속박으로부터의 탈피야말로 우리 민족이 추구해온 핵심가치라고 추상미 감독은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신작 ‘그루터기’에 이러한 가치들이 표현되길 바랐다.

‘그루터기’는 오는 상반기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공개된다. 이후 극영화로 제작될 예정이다. 이미 지난해 9월 북한의 전쟁고아들 역할로 북향민 청소년들이 캐스팅 됐다. 추 감독은 말했다.

“영혼의 순수성이 우리 청소년과는 다르게 예뻤다. 그 나이에 겪을 수 없는 일들을 겪었던 아이들임에도 말이다.”    

범영수 기자 bumyungsu@hanmail.net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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