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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관련 가짜뉴스를 극복하려면

기사승인 2020.05.04  15:4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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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언론과 외신, 보수 정치인들까지 가세했던 ‘김정은 위중설’은 가짜로 판명났다. 떨어진 주식, 술렁였던 사람들은 고스란히 피해자가 됐다. 이 사태에 책임있는 당사자들은 일부 사과를 표하기도 했지만 관련 보도를 내보냈던 언론들은 묵묵부답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북한 관련 가짜뉴스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꼬장꼬장한 언론인이었던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는 생전인 1998년에 내놓은 『스핑크스의 코』(까치)라는 책에서 우리 언론을 향해 “반공주의의 주술에 빠져 있다”고 일갈했다. 

1990년대 중반은 북한의 대규모 식량난과 체제 위기, 그에 따른 핵개발과 전쟁 위기가 한반도를 휩쓸고 있었다. 그 막바지격인 1996년 10월엔 ‘북한의 괴비행체 편대 침투’ 속보가 몇 시간 동안 남한의 TV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불안에 휩싸인 사람들은 저마다 사재기에 나섰다. 하지만 몇 시간 뒤 북한군 침투 속보는 한바탕 소동으로 끝이 났다. 우리 군의 레이더에 잡혔던 ‘괴비행체 편대’는 다름 아닌 500여 마리의 도요새 떼였던 것이다.

이에 대해 리 명예교수는 “남북관계나 통일문제에 관해서 몸과 의식에 배어버린 무책임성의 무수한 사례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며 “더 놀랍고 한심스러운 것은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해 방송사의 단 한마디의 사과도 없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일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그와 유사한 수없이 되풀이된 사례들에서 여태까지 그들이 시청자에게 사과를 한 일이 있었는지 기억되지 않는다. 아무런 자기비판이나 반성의 표시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북한 관련 오보를 내고, 온 국민을 불안에 빠뜨리면서도 아무런 사과나 반성이 없기는 20몇 년 전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김정은 위중설’을 최초로 보도한 지난 4월 20일(현지시간) CNN 기사. CNN 화면 캡처

이 책에서 리 명예교수는 남북 관계,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서 언론이 명심해야 할 준칙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번 ‘김정은 위중설’을 포함해 왜 국내외 언론이 북한 관련 가짜뉴스들을 만들어내는지 그 원인은 물론 한반도 화해를 위한 언론의 역할까지 제시하고 있다. 물론 리 명예교수는 “이 모든 문제성은 북한에도 똑같은 비중으로 다뤄져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다.

우선 ‘냉전의식의 잔재’다. 리 명예교수는 “세계는 탈냉전시대라고 하지만 한국의 언론인들은 아직도 냉전시대를 살고 있다”고 했다. 세계는 1990년에 접어들면서 데탕트의 시대로 접어들었지만 1990년대의 국내는 여전히 미국과 소련이 대결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경험했듯이 2020년에도 미국과 중국이 버젓이 우리 땅에서 대결을 벌이고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미국 편, 중국 편’ 편 가르기를 할 건가.

두 번째는 ‘광적 반공사상’이다. 리 명예교수는 “같은 반공사상이라고 해도 남한의 그것은 지구상에서 가장 극단적이었다”며 “(남한의 반공사상은) 지난날 군부독재 체제의 정권유지책이었을 뿐만 아니라, 민족간의 화해를 거부하는 이데올로기로 악용되어 왔다는 이유에서 우리들의 머리에서 시급히 정리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지금도 뿌리깊은 반공사상이 보수계를 지배하고 있다. 무조건적인 ‘반북’보다는 북한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려는 자세가 진실에도 가까울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우리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상식적인 자세가 필요할 텐데 말이다.

세 번째는 ‘맹목적 애국주의’다. 리 명예교수는 “서로 상대가 있는 일에서는, 한쪽은 전적으로 선하고 다른 한쪽은 전적으로 악한 경우란 없는 법”이라고 했다. 자신의 잘잘못을 냉정하게 가리는 이성적 태도를 거부하고, 무조건 남한의 정당성만을 주장하는 경향은 결국 자기부정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북한만 아니라 남한 사회도 객관적으로 보자는 이러한 리 명예교수의 주장은 이 책에서만 아니라 리 명예교수의 오래된 지론이기도 하다. 이 같은 시각은 보수 일각에서 주장하듯 ‘남한의 사회주의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체제 우위에 있는 우리의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함이 맞을 것이다.

네 번째는 ‘문제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이다. 리 명예교수는 “모든 일어나는 일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이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없으면 그 일의 전모와 뜻을 알 수 없다”고 강조했다. 남한이 북한에 비해 체제 열세이던 1960~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추진했고, 그로부터 20년 후 체제 위상이 역전된 1990년대에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추진하는 역사적 배경이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이다. 체제 위기에서 '한 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리 명예교수는 “이러한 이해 없이 상대방을 궁지로 모는 정책이나 의식은 현명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지금 북한이 끊임없이 핵개발과 신형 무기 개발에 힘을 쏟아붓는 이유도 그렇다.

『스핑크스의 코』(까치) 표지.

다섯 번째는 ‘인과관계의 구조’다. 리 명예교수는 “남한과 북한 사이에서 일어났거나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대개의 경우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적이었다”고 했다. 서로가 원인을 제공하고 그에 반응하고 다시 반응하고 또다시 반응하는 식으로 확대, 격화되었다는 것이다. 리 명예교수는 또 다른 저서에서 휴전부터 1997년까지 남한과 북한이 휴전협정을 위반한 건수는 각각 42만여 건으로 비슷하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3.26 천안함 사건, 6.25, 7.27 즈음이 되면 국내 보수언론에서는 남한의 위반 건수는 언급 없이 북한의 휴정협정 위반 건수만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 그 기사를 읽는 독자는 자연스럽게 ‘외눈박이’가 되고 마는 것이다. 리 명예교수는 “남과 북이 각기 상대방을 악으로 규정하고 자기는 선으로 자처하는 정신 상태는 독선”이라며 “휴전선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놓고 상대방만을 원인제공자로 비난하는 남과 북의 태도는 그 어느 쪽도 옳다고 할 수 없다. 서로가 원인 제공자라는 사실 인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여섯 번째는 ‘동일 사실에 대한 판단의 이중 기준’이다. 리 명예교수는 “동일한 사건이라도 남한측의 행위일 때에는 ‘합법, 정당’하고 북한측의 행위일 경우에는 ‘침략, 도발, 범죄’로 규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이것은 동일 사실에 대한 가치판단에서 이중 기준을 적용하는 행위로서, 비논리적일 뿐 아니라 민족간 화해와 통일을 거부하는 태도”라고 비판했다.

일곱 번째는 ‘상대방 입장에 한번 서보는 마음’, 즉 역지사지의 마음이다. 남북한 경제력은 약 40배, 남북한 군사비 지출은 약 10배로 남한이 북한을 압도한다. 따라서 우리의 지속적 군비증강은 북한을 공포로, 한반도를 대결로 몰아갈 수밖에 없다. 리 명예교수는 해마다 몇 차례씩 실시되는 한미합동군사훈련에 대해 “20만 이상의 병력과 핵 항공모함과 핵 공격함대가 대거 동원되는 훈련 때에 보이는 북한의 반응을 비난하기는 쉽다”면서 “그러나 막강한 소련 극동 해군의 핵 공격함대와 북한 군이 휴전선 바로 북방에서 여러 날을 남한을 공격 목표로 하는 소-조 합동훈련을 20년 동안 해마다 감행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했겠는가를 우리 자신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여덟 번째는 ‘민족간 화해보다 대립을 부추기는 언론기관의 습성’이다. 리 명예교수는 “북한 내부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지식은 제한되어 있다”며 “그럴수록 우리는 한국의 매스컴이 으레 선정적으로 과장하거나 선동적으로 강조하는 의식, 성향, 습성을 이성적으로 반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번에 CNN을 비롯해 국내외 언론의 김정은 위중설 관련 ‘베껴쓰기’, ‘역수입(국내 언론의 북한 보도-해외 언론의 국내 언론 기사 인용-다시 국내 언론의 해외 기사 인용)’ 등의 관행은 사실확인 노력과 보도에 대한 책임 등 언론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자질이 얼마나 결여되어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리 명예교수는 책에서 ‘언론기관과 언론인의 거듭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지만 많은 언론기관과 언론인들은 여전히 깜깜한 무덤 속에 갇혀 있는 셈이다.

아홉 번째는 ‘북한의 이질화 문제’다. 리 명예교수는 “우리 자신과 한국의 자화상을 객관화해서 냉정한 마음으로 따져볼 의식과 자세가 필요하다”며 “이 의식적 자기비판은 남북관계를 위해서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정도”라고 밝혔다. 남북이 만나서 대화하고 교류하고 하나로 합치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서로의 이질성과 맞닥뜨리는 과정이기도 하다. 서로의 모습 속에 있는 이질성에서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을 때 남북은 비로소 동질감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열 번째는 ‘미국의 국가 이기주의와 패권주의’다. 리 명예교수는 해방 이후 우리나라가 군사적, 정치적 예속은 아니지만 다분히 ‘미국적’임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을 언급하며 “미국이 하는 일은 모두 옳고, 북한이 하는 일은 모두 그르다는 식의 민족 허무주의적 미국 숭배의식으로 남북관계, 남북문제, 한반도 상황, 통일문제를 대하는 한 남북한의 합일과 평화와 통일은 참으로 요원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미국 동맹국가 중 인구 비율에서 미국 유학 박사학위 소지자가 제일 많은 나라가 남한이라는 점을 들어 “미국인보다 더 미국적인 한국 지식인들이 주로 정부, 학계, 전문 직업, 언론 분야의 대북정책 수립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며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이 변해야 하는 만큼 남한도 변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아쉽다”고 밝혔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지금도 유효하다고 할 것이다.

열한 번째는 ‘동서독 통일에서 배워야 할 교훈’이다. 리 명예교수는 “한국 사람들은 서독이 자본주의 국가이고 반공정책을 취했지만 사회주의 국가인 동독보다도 더 사회주의적 복지국가임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며 “북한만 나무라지 말고 남한이 서독같이 될 생각은 왜 하지 않는가?”라고 반문하고 있다. 동서독 통일을 가져온 동서독 민간 교류와 기도회뿐만 아니라 체제에서도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번 ‘김정은 위중설’을 계기로 가짜뉴스를 양산한 언론, 정치인에 대한 비난과 책임추궁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남북 분단 해소와 공고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다. 북한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이고, 그 북한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지, 특히 대북제재와 코로나19 국면에서 남북의 공존을 고민하는 것이 훨씬 본질적인 것일지 모른다. 본질을 추구해 나가다 보면 가짜뉴스와 같은 비본질들은 자연스럽게 설 자리를 잃을 것이기에. 

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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