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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 방한 평가: 집단사고의 위험

기사승인 2017.11.24  10: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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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 제85호

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국빈 방한이 지나갔다. 우리는 이제 차분하고 냉철하게 대차대조표를 확인해봐야 한다. 트럼프는 당선 1년만의 첫 아시아순방이라는 점에서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게다가 북핵 문제로 전쟁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한반도, 오바마 8년의 허니문 기간을 뛰어넘을 기세로 밀착되고 있는 일본, 그리고 시나브로 패권 갈등이 가시화되고 있는 중국이 나란히 포함된 것은 상당한 함의를 지닌다. 트럼프는 '미국 제일주의(America First)' 기치 아래 한반도와 동북아의 지정학적 위기상황까지 장사꾼의 관점으로 활용해왔기에 예측불허의 돌발 상황도 얼마든지 가능했었다. 하지만 우려했던 것보다 나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 것 같다. 한국에서 전쟁위기를 고조시키는 공격적 발언도 거의 없었고, 한-미 양국의 이견도 두드러지지 않았다. 트레이드마크인 도발적 트위터도 전반적으로 조용한 편이었다.

사실 한-미 정상은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지 불과 6개월 만에 4번째 만남이자 3번째 양자회담이었던 탓에 새로울 것은 크게 없었다. 동맹의 견고성과 대북정책 공조에 대한 확인은 늘 동반되는 것이고, FTA 재협상을 포함한 통상 이슈나 미군의 주둔 분담금 인상 문제, 사드 조기 배치 확정 문제 등은 거론 여부와 압박 정도가 핵심 관전 포인트였다. 정부는 큰 기대나 대미 설득의 차원보다는 환대를 통한 우호증진과 대미지 컨트롤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평택 미군기지에 대한 전격적인 동반 방문과 대량무기구입계획 등은 한국이 내심 기대했던 플러스 요소라면, 앞에서 지적한 민감한 이슈 외에도 트럼프 방한 직전 군사옵션 문제가 회담의 주요의제가 될 것이라는 맥마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의 언급으로 인해 혹시 국회 연설이 지난 유엔 연설의 재판이 될 수 있다는 걱정이 컸던 것이 사실이었다. 트럼프 방문 일주일 전인 10월 31일 한-중이 사드 문제 해결을 위해 사드추가배치, 미사일방어체제 참여, 한미일 군사동맹에 대한 3가지 불가 입장을 표명했던 일이 뇌관이 될 여지도 없지 않았다.

지난 7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청와대

이러한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방한에 대한 국내외 평가들이 대체로 성공적이었다는 데 수렴된다. 무엇보다 트럼프 식 막말이나 돌출행동이 없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한국 국민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발언이나 행동은 없었고, 유엔 연설과 달리 북한을 전면 파괴한다는 등의 전쟁위기를 고조하지 않았으며, 신중하고 톤 다운된 모습을 유지했다고 할 수 있다. 트럼프의 달라진 모습은 필자도 부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아낸 트럼프의 방한이었다는 평가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대부분 미국이 한국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얻었을 뿐 그 반대 방향은 초라했다. 한국이 92%를 부담한 엄청난 규모와 첨단 시설의 미군기지 방문에서조차 한국의 보호자로서 당연한 미국의 권리라는 반응이었으며, 정상회담 이후 공동 기자회견문에도 기존 한-미 FTA를 비판하는 것을 빠뜨리지 않았다. 당선 1주년을 맞는 트럼프가 국내여론을 의식해 미국제일주의의 성과를 자랑하기에 바빴다. 자신이 무기를 팔았고, 이것이 무역역조를 해소할 것이며, 일자리를 만들 것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반면에 문재인 대통령은 이익 챙기기는 물론이고, 대북협상론과 한반도 평화이니셔티브를 제대로 강조하지 못했다.

한-미 동맹의 견고성을 확인했던 부분 역시 대체로 무난했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반면에 동맹유지비용이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다는 차가운 현실에는 눈을 감고 있는 것 같다. 트럼프는 방한 중에 여러 차례 한-미 동맹을 단순한 동맹 이상으로 위대한 동맹이자 영속적인 동맹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이면에는 핵 위기를 빌미 삼아 이익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미 동맹이 아무리 비대칭이라고 하더라도 상호적이어야 하며, 아무리 중요해도 우리 국익을 앞설 수 없다는 원칙이 무색했다. 트럼프는 이번에도 한-미 동맹의 일방적 비용 상승의 덫에 대한 현실감을 극대화시키고 떠났다. 그는 비즈니스적인 이익만 추구할 뿐 이전의 대통령들처럼 더 이상 민주주의, 평화, 민주주의 리더십 등 가치를 덧입히지 않는다. 위선적이지 않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지만 미국의 민낯은 어떤 배려나 여지도 없다. ‘미국 제일주의(America First)’는 단순히 국익 위주의 정책을 펴겠다는 수준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핵심은 동맹이든 적이든 상관없이 미국이 불리한 것은 무조건 뜯어고치고,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불문하겠다는 거친 외교다. 역사적으로 발칸반도와 함께 지정학적 저주로 불리고 있는 한반도에서 미국을 동맹파트너로 삼고 있다는 것은 분명 자산이다. 북한의 핵 위협은 물론이고, 중국의 부상은 오히려 미국의 필요성을 더 증대시킨다. 그러나 동맹 비용이 일방적으로 높아지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이런 사실들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방한에 대해 왜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우세할까? 우선 트럼프의 스타일에 대한 학습 효과다. 미국은 물론이고 우리에게도 과거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유형의 대통령인 트럼프는 지금까지 금도와 한계를 끊임없이 침범하며 자기 영역을 구축해왔다. 트럼프는 지금까지 전체 미국인의 대통령이 될 생각은 아예 없고, 하드코어 지지자들을 위한 선거운동처럼 통치를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국내외 할 것 없이 편을 가르고 싸움을 건다. 국가 연주에 대한 자세를 놓고 흑인 미식축구선수들과 맞서고, 백인들의 인종차별시위를 두고 해결보다 갈등을 부추긴다. 여당인 공화당과도 충돌하고, 자신이 임명한 국무장관을 조롱한다. 평화의 전당이라 할 수 있는 유엔에서 공개적으로 북한을 괴멸시키겠다고 하고, 이란을 살인 정권이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동맹국도 예외가 아니다. 나토 우방국을 거침없이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유화정책이라는 몰역사적 무례를 범한다. 전쟁이 나더라도 한국에서 수천 명이 죽을 뿐 미국은 상관없다는 막말도 서슴없다. 이를 두고 고단수의 ‘미치광이 전략‘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품격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조폭의 리더십에 가깝다.

트럼프의 이런 모습에 대한 학습효과로 인해 이만하면 방한에서의 행보가 상대적으로 괜찮았다는 평가를 하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국제정치이론의 정책결정이론에서 제기하는 ‘집단 사고(group think)’의 오류에 가깝다. 집단 사고는 정책결정 집단에서 동조나 합의를 강화시키는 경향을 일컫는 것이다. 집단에 참여하는 행위자가 전체 의견을 따르도록 압력을 받으며 이에 반대되는 의견은 개진되지 않거나 무시되기 쉽다. 또는 한 가지에 지나치게 몰입하다가 균형적인 시각이나 객관적인 판단이 마비되는 것이나 터널에 들어가면서 시야가 좁아져 버리는 터널비전현상과도 닮아있다. 트럼프가 이번 방한에서 대북강경입장에서 한발 물러났고, 대화모드로의 변화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평가에서 이러한 집단적 사고의 오류는 더욱 커졌다. 군사 옵션에 대한 협박성 어조가 거의 없고 대화무용론을 주장하던 트럼프가 협상을 거론했다는 사실 때문인 것 같은데 그렇게 판단하기에는 근거가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국회 연설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한 북한에 대한 거침없는 혐오와 멸시의 표현들은 결코 북한을 대화상대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들이었다. 지옥, 잔혹한 독재자, 고문, 강간, 살인 등의 용어들은 북한의 현실에 대한 전형적인 선입관이 짙게 배어 있었다. 북미관계가 최악의 수준이었으며, 북한을 향해 폭정의 전초기지, 피그미, 악의 축이라고 불렀던 조지 부시를 훨씬 능가하는 수준이다.

집단 사고의 오류라는 맥락에서 보면 최근의 한-중 정상회담도 해당된다. 양국의 3불 입장 표명 이후 한국 정부와 언론이 한-중간 사드 갈등이 해소되었다고 단정해버리는 바로 그것이다. 중국이 사드에 대한 반대 입장을 번복한 것이 아니라 투 트랙 전략을 채택한 것이다. 즉 중국이 사드 배치 반대라는 기본입장이 변한 것이 아니라 이는 그대로 유지하되, 한국과의 실용적 관계는 분리해서 복구하겠다는 것이다. 마치 문재인 정부가 일본과 위안부 문제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실용적인 관계는 복구하기로 한 것과 유사하다. 이는 매우 중요한 함의를 가지는데 우리 측에서 마치 중국이 양보했다는 식으로 공개적으로 선전하면 할수록 중국은 사드 반대 입장을 다시 꺼내들 수밖에 없고, 심한 경우 제재를 재가동할 수도 있다. 중국은 또한 이번 입장표명은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설정한 것일 뿐 실제로 한국이 준수하는지 지켜보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즉 한국의 행보에 따라 사드 문제가 재부상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11월 초는 트럼프의 방한과 한-중 정상회담, 그리고 문 대통령의 동남아순방 등 그야말로 숨 가쁜 정상외교전이 이어졌다. 앞에서 집단 사고의 위험성을 지적했지만, 그렇다고 외교성과 전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박근혜의 사드를 포함한 외교 실패로 최악으로 갔던 데서 다시 미-중 사이의 운신의 폭이 복구된 것은 매우 잘한 일이다. 다만 이를 과대평가할 경우 실패를 반복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우리가 선택을 할 수 있는 상황으로 돌아갔을 뿐이다. 즉, 미-중 사이의 실용적인 균형외교를 하겠다던 박근혜 정부가 원칙이나 치밀한 전략 없이 미국에게는 미국이 원하는 얘기를, 중국에게는 중국이 원하는 얘기를 하면서 우왕좌왕하다가 외교 레버리지를 잃어버렸던 상태를 되돌려 다시 선택할 수 있는 지점에 돌아온 셈이다. 문제 해결이나 성공이 아니라 이후의 선택에 따라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다.

이제부터 진짜 외교력이 발휘되어야 할 본 게임이 시작되었다. 중국과는 사드 문제가 일단 봉합되고, 대일 관계도 실용적인 투 트랙전략으로 올바른 방향을 잡은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신북방정책과 신남방정책의 본격 시동으로 외교 다변화에 나선 것 역시 바람직한 시도이다. 중장기적 번영을 위한 경제비전이자, 동북아의 진영대결구조와 안보딜레마를 보완할 수 있는 대안적 다자체제로서 중요한 함의를 가진 전략이다. 그러나 여전히 가장 큰 난제는 북핵 위기로 인한 남북 관계의 완전한 단절이다. 그리고 이에 못지않게 미국의 일방적인 프레임에 한국이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중국과 입장을 조율한 3가지는 바람직한 정책방향이지만, 미국의 아시아전략의 한계를 우리가 규정하는 것이므로 미국이 수용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특히 한-미-일 군사협력은 트럼프 정부가 대중국정책의 핵심으로 추진하고 있는 바 후폭풍이 거셀 것이다. 복안을 가지고 철저한 대비가 필요한 부분이다.

이제부터는 물밑으로 가야 한다. 외교적 사안이라도 국민에게 설명하고 소통하는 것은 당연하며,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는 지난 정부의 불통과 밀실 외교를 청산하고, 이른바 ‘국민 외교’를 선언했다. 그러나 국익을 위해 필요시 잠정적으로 비공개외교를 할 수도 있는데, 아마도 현재 시점이 아닐까 판단한다. 최근 일련의 외교 행보는 너무 많이 공개함으로써 정치쟁점화 되어 운신의 폭을 좁히는 측면이 있었다. 과거와는 달리 거의 모든 국가에서 외교에 끼치는 국내정치의 영향이 엄청나게 커진 상황에서 비공개전술이 더욱 필요하다. 한-중간 3불 입장에 대한 조율도 당분간 수면 아래에서 다루었으면 나을 뻔 했다. 대화 모색을 포함한 대북정책도 일단 수면 아래로 가야 한다.

오늘날 북핵 위기가 난제인 것은 가장 큰 피해당사자는 한국이지만, 당사자 한국이 카드를 가장 적게 가지고 있다는 한계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나오기 쉬운 자세는 자포자기의 패배주의거나 막연한 희망적 사고인데, 이런 양극단이 집단 사고의 오류로 빠지기 쉽다. 공동기자회견에서 한 기자가 트럼프에게 코리아 패싱 여부를 물었었다. 어이없는 수준의 질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현재 한국의 처지와 인식을 드러내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 한국을 “건너뛰지 않는다(no skipping)"는 그의 대답이 우리의 입지를 정해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스스로에게 자문하고 또 우리가 주도권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할 일이다. 미-중-일-러의 치열한 힘겨루기에 북한의 핵위기로 말미암은 지정학적 난관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 가진 힘이 결코 적지 않고, 난관만큼이나 전략적 중요성이 높다는 점을 백분 활용해야 한다.

---이 기고문의 견해는 필자의 개인 의견이지 동아시아 재단의 공식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필자 소개

김준형은 연세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사학위를, 미국 George Washington 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동대학교 국제지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청와대 안보실, 외교부정책실, 통일부 혁신위원회 위원이다. 또한 한반도평화포럼 외교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다. 미국 Fullbright 교환교수로 미국 George Mason 대학에서 강의했다. 그의 관심 및 연구 분야는 동북아국제정치, 미-중 관계, 한-미 관계이며, 주요 저서로는 <전쟁하는 인간>, <미국이 세계 최강이 아니라면>이 있고, 주요 논문으로 “아베 정부의 안보정책전환과 미국의 재균형전략: 한미일 관계를 중심으로.” 한국의 대미외교에 나타난 동맹의 자주성-실용성 넥서스, “G2 관계 변화와 미국의 대중정책의 딜레마 등이 있다.

*본 게시물의 저작권은 동아시아재단에 있습니다.

김준형 jhk@hand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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