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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가진 북한과 악수할 수 있나

기사승인 2017.04.12  09: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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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 제70호 ‘차기 정부를 위한 정책논쟁’ -남북관계-

남북관계는 최악이다. 대화는 실종되고, 신뢰는 사라졌고, 관계는 악화되었다. 동북아 질서도 불확실한 안개뿐이다. 그 중심에 북핵문제가 있다. 북핵문제는 관계 악화의 결과지만 동시에 원인이다. 6자회담이 중단된 지 10년째다. 그동안 북한은 억지력을 강화했고 국제사회는 매번 ‘역대 최강의 제재’로 대응했다. 억지와 제재의 악순환이 반복되었고,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한국의 차기 정부는 풀기 어려운 숙제를 물려받았다.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첫째는 북핵문제의 해법과 관련, 제재를 지속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대안을 선택하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둘째는 북핵문제와 남북관계의 관계로, 핵문제를 우선 해결할 것인지, 아니면 남북관계와 병행할 것인지의 선택이다. 셋째는 핵문제와 경제협력의 관계로, 연계할 것인지 아니면 분리할 것인지의 선택이다.

북핵문제, SWOT 분석: 강점과 약점 그리고 기회와 위협

가장 중요한 강점은 한국의 정권교체다. 2000년대 이후 북한문제에서 한국의 발언권이 커진 것이 사실이다. 주변국은 당사자인 한국의 결정을 존중한다.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는 알고 보면 이명박 정부의 기다리는 전략을 존중한 결과였다.

한국의 차기 정부가 적극적으로 외교적 해결을 모색하면, 북핵문제의 환경이 달라질 수 있다. 다행스럽게 미-중 양국의 북핵 해법도 변화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이 실패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남은 것은 군사적 해결과 외교적 해결이지만, 한반도에서 군사적 선택은 가능한 대안이 아니다. 트럼프 정부가 북핵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실용적으로 해법을 찾는다면, 한국의 차기정부와 얼마든지 공동대응을 할 수 있다. 중국의 북핵문제에 대한 피로감 역시 적극적인 중재외교의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

약점은 악화된 협상 환경이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핵능력이 달라졌다. 북한의 핵능력에 대한 정확한 정보평가는 쉽지 않지만, 미국 내에서 “북한 핵능력을 과소평가했다”(울시 전 CIA 국장)는 판단이 공감을 얻고 있다. 북한은 우라늄 농축으로 지속적으로 핵물질을 생산하고, 5차례의 핵실험으로 핵탄두를 소형화, 경량화, 표준화했다. 운반수단도 달라졌다. 다양한 종류의 이동식 미사일을 개발하고,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발사에 성공하고 장거리 미사일의 사거리를 늘렸다. 북한의 핵능력이 달라졌기 때문에 협상에서 북한의 요구 수준은 높아질 것이다. 핵동결 혹은 핵 포기의 상응조치는 과거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달라진 핵 능력을 반영해서 새로운 협상 틀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안타까운 것은 북한의 요구가 높아졌는데, 그런 요구를 들어줄 협상의 국내 환경이 나빠졌다는 점이다. 우선적으로 대북인식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 혐오에 가까운 북한인식은 차기 정부의 대북 협상 능력을 제한할 것이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협상으로 이익을 볼 수 있는 이해관계자가 제한된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다는 점은 협상태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북핵문제가 해결의 방향으로 가면, 기회의 창이 열린다. 남북관계의 발전수준이 달라질 수 있고, 경제협력 분야에서 공동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북방경제의 실현 가능성이다. 대륙 철도와 가스관 연결 사업은 이미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 현안이었다. 그동안 남북관계가 뒷받침 되지 못했기 때문에, 현실화될 수 없었다. 북핵문제의 진전은 북한 통과의 불안정성을 해소할 수 있다. 북한을 통과하는 가스파이프 라인의 건설은 러시아의 오랜 숙원사업이다. 수요자가 늘어나면 그만큼 가스가격 협상에서 유리하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방이 막히면서 동방으로의 출구가 더 중요해졌다. 한국의 경제적 이익도 적지 않고, 북한 역시 통과료로 가스를 받을 수 있다. 틸러슨 국무장관이 사할린 가스전의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는 엑슨 모빌의 CEO 출신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트럼프 정부도 흥미를 가질 수 있는 프로젝트다. 가스관 연결 사업은 철도·도로와 동시에 추진하기 때문에, 다자간 북방경제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물론 위협적 요소도 있다. 북핵문제의 외교적 해결은 상당한 시간을 요구하고, 신뢰가 없기 때문에 가다 서다 현상을 되풀이 할 것이다. 협상이 중단되면 얼마든지 과거의 대립으로 돌아갈 수 있다. 사드도입 문제처럼 군비경쟁을 재연하면, 남북관계의 악화뿐만 아니라 동북아의 긴장도 재발한다. 동북아에서 대북정책을 둘러싼 갈등이 재연되면, 북한은 더욱 억지력을 강화할 것이며, 도발과 제재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결정적으로 북핵문제 해결의 적정시기를 놓칠 것이다.

북핵문제에 관한 새로운 접근

틸러슨 국무장관은 “과거 20년간의 대북정책은 실패했다.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3.16 도쿄). 그러나 과연 새롭고 획기적인 정책이 존재할 수 있을까? 군사적 해결은 잃을 것이 너무 많고, 협상은 지속되지 못했고, 제재는 한계가 분명하다. 최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최악을 피해야 한다. 그리고 정책 결정의 기본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북한의 의도를 파악하고 달라진 상황을 반영하여 사용가능한 정책자원을 점검해서 더 효과적인 대응을 찾아야 한다. 구체적인 방법에 앞서 세 가지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는 장기적인 접근이다. 북핵문제는 오랜 대립의 결과이기 때문에, 금방 해결하기 어렵다. 어쩌면 임기 중에 북핵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한두 번의 협상으로 해결하기도 어렵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악화를 막는 것이다. 현재의 추세라면 “2020년 북한의 핵무기가 최대 100기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조엘 위트)도 있다. 당장 해결하기 어렵다면, 지금 수준에서 멈추어야 한다. 그래서 비핵화에 앞서 핵 동결이 중요하다. 동결이 이루어지면 시간을 벌 수 있고, 본격적으로 ‘핵 억지의 필요성이 없는 관계’를 만들기 위한 장기간의 과정으로 진입할 수 있다. 언덕에 오르면 넘어야 할 산이 보일 것이다.

두 번째는 복합적 접근이다. 북핵문제는 관계 악화의 산물이기 때문에, 관계의 성격이 변해야 해결할 수 있다. 신뢰 부족으로 악화된 관계를 개선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신뢰를 다시 쌓기 위해서는 다양한 영역에서 ‘접촉을 통한 변화’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남북관계에서 개성공단의 의미를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을 제재의 수단으로만 생각해서 너무 쉽게 폐쇄했다. 개성공단 부지는 북한군의 남하에서 핵심이동로이고, 개성공단이 들어서면서 그만큼 후방으로 후퇴했다. 개성공단의 출입과 통신은 양측 군이 담당했는데, 공단이 폐쇄되며 통신도 끊겨서 우발적 충돌을 막을 수 있는 의사소통 수단도 사라졌다. 물론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입주기업의 달라진 상황, 임금 재협상 등 개성공단 재개를 위해 검토해야 할 과제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뢰구축이 필요하고, 개성공단은 신뢰의 문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세 번째는 다자적 접근이다. 한국이 한반도 문제의 해결과정에서 당사자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북핵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군비경쟁의 악순환에 빠진다면, 한국은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다. 그래서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는 ‘당사자 해결 원칙’을 중시했다. 당사자의 위상과 역할이 여전히 중요하지만, 해결과정에서 다자간 협력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북핵문제는 한반도 냉전구조의 산물이지만, 동북아 지역의 현안이고, 동시에 세계적인 관심사다. 한국이 나서서 주변국의 공동대응을 이끌어내고, 중재안을 마련하고, 적극적으로 상황관리에 나설 필요가 있다. 나아가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동북아 지역의 다자간 안보협력의 기회로 활용하고, 동시에 다자간 북방경제의 틀에 남북경제협력을 포함하는 거시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차기정부에 바란다: 평화와 경제, 그리고 분권

평화가 민생이다. 정부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안보라고 부른다. 긴장이 고조되고 불안감이 증가하고 경제적 기회가 줄어들면 그것은 안보실패에 다름 아니다. 북핵문제의 해결 과정이 국민의 삶의 개선으로 이어져야 하며, 진짜 안보는 평화와 경제의 양 날개로 난다.

차기 정부는 불안정한 정전체제를 항구적인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를 잊지 말아야 한다.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평화체제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며, 동시에 ‘사실상의 통일’ 상태를 실현하는 과정이다. 2005년 9.19 공동성명에서 이미 합의했지만, 6자회담을 시작하면서 동시에 ‘한반도 평화체제’를 만들기 위한 4자회담(남북미중)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당시 6자회담과 함께 한반도 평화체제를 논의하는 별도의 4자회담을 열기로 한 이유가 있다. 남북미중의 4자는 한국전쟁의 전쟁당사자로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할 책임이 있다. 1990년대 후반 제네바에서 4자회담을 연 경험도 있다. 4자회담을 시작하면 당시의 논의 성과를 얼마든지 이어받을 수 있다. 마침 중국의 왕이 부장은 지난 3월 틸러슨 국무장관을 만났을 때,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두 바퀴’를 동시에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둘째, 평화와 경제의 선순환을 추구해야 한다. 남북 관계에서도 정치군사와 경제협력이 상호 보완할 수 있어야 한다. 동북아 지역 차원의 다자간 경제협력은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수단이다. 한국의 입장에서 북방경제는 성장잠재력을 확보하고 산업재편의 시간을 벌고 경제공간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다. 남북러 가스관 연결 사업이나 동북아 교통망 연결 사업은 ‘퍼주기론’과 같은 남북한의 양자 경제협력에 관한 오래된 편견을 우회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물론 북방경제는 한국경제의 체질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 도로 중심에서 철도중심으로 교통체계를 개혁하고, 양자 혹은 다자 경제협력에 나설 수 있는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접경지역을 평화경제 지대로 전환해야 한다.

셋째, 분권형 대북정책이 필요하다. 대북정책이 이념갈등의 저수지가 되고, 정치대립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북핵문제를 해결하고, 남북관계에서 평화와 공동번영의 기회를 열기 위해서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권한을 나누는 것이 책임을 공유하는 것이고, 합의형성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우선적으로 국회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 ‘남북관계 발전법’처럼 중장기적인 대북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는 당연히 초당적 협력이 필요하다. 동시에 지방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과거 동서독 통일과정에서 보면 도시교류가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여전히 남북관계의 모든 권한을 중앙정부가 행사하는 것은 지방분권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남북관계에서 정부와 민간의 역할분담도 중요하다.

지난 10년의 세월동안 핵을 가지려는 북한과 악수하지 않았다. 결과는 어떤가?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고, 핵문제의 해결도 그만큼 멀어졌다. 대화 자체를 거부해서 과연 무엇을 얻었는가? 대화의 목적은 여러 가지다. 그중에서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협상을 재개한다고 해서 결코 낙관할 수 없다. 협상은 쉽지 않을 것이고, 자주 실망할 것이며, 때로는 후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도발과 제재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실패한 외교와 결별해야 한다.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관계의 성격을 변화시키려는 장기간의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핵을 가지려는 북한과 악수할 수 있어야, 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찾을 수 있다.

 

필자 소개

김연철은 1996년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북한의 산업화와 공장관리의 정치(1953~70)’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삼성경제연구소 북한연구팀 수석연구원(1997~2002),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2004~2005) 등을 역임했고 2010년부터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 『냉전의 추억』(2009), 『북한의 산업화와 경제정책』(2001) 등 다수가 있다.

*본 게시물의 저작권은 동아시아재단에 있습니다.

김연철 dootakim@inj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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