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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해법: 올림픽 휴전과 2단계 동결론

기사승인 2017.10.24  10:5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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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 제83호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비관론이 팽배하다. 협상을 통한 해결의 문은 닫혔는가? 이제 비핵화의 목표를 포기해야 하는가? 북한의 핵능력이 달라졌기 때문에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게임 체인지’론은 진단이 틀렸다. 북핵문제는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지난 25년 동안 점차적으로 악화되어 왔다. 증세가 달라졌을 뿐, 병의 원인은 달라지지 않았다. 북한의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 하면, 남는 것은 군비경쟁의 악순환뿐이다. 북핵 역사를 돌이켜보고 달라진 상황을 반영하여 실현가능한 해법을 제시할 때다. 우리는 제재와 억지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해결의 입구를 찾아야 한다.

다가오는 협상의 시간

북한도 협상의 수요가 있다. 첫째는 제재의 효과다. 광물, 수산물, 위탁가공 등 북한의 주요 수출이 불가능해졌다. 수출을 못하면 외화가 줄고, 수입 축소로 이어져 전체적인 대외무역이 대폭 축소될 것이다. 중국이나 러시아에 나갔던 북한 노동자들의 인력수출 감소도 타격이 크다. 시장의 역할이 과거보다 커졌기 때문에, 제재가 북한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유엔의 제재결의안은 ‘트리거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고, 북한의 추가도발은 추가제재로 이어진다. 다음 제재결의안부터 원유 공급의 축소도 포함될 것이다.

둘째, 적정 억지력이다. 북한이 과거 냉전시대 소련 수준의 핵 억지력을 가질 이유도 없고, 그럴 능력도 없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재진입 기술을 갖추는 데 필요한 시간 동안 누적적으로 상승할 군비경쟁의 사회경제적 비용을 감당할지도 의문이다. 북한은 핵 보유의 기술적 완성 이전에 정치적 선언을 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북한은 평화공세로 전환할 것이다. 그 시기는 멀지 않았다.

북한 내부적으로 협상수요가 있어도, 국제사회가 협상의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국면을 전환할 수 없다. 제재가 북한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고, 과거 1990년대 중반의 경제위기로 이어진다고 해도, 북한 지도부는 핵무기를 포기하는 ‘민주적 결정’을 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중국이 북한을 붕괴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북중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다. 제재는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에게도 상당한 피해를 준다. 북한의 저렴한 인건비로 유지되는 동북경제는 이미 제재로 피해를 보고 있고, 중국은 1990년대 중반과 같은 대량난민의 유입을 바라지 않는다. 과거 사회주의권의 체제전환 사례를 보면, 경제위기가 정치 붕괴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제재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제재의 효과를 고려하면서, 이제 협상을 준비해야 한다. 당장 필요한 것은 상황 악화를 막고, 군비경쟁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중장기적인 출구를 상상하기 이전에, 당장의 입구부터 찾아야 한다. 대체로 해법을 고민하는 전문가들은 해결의 입구를 ‘북한의 핵능력 동결’로 본다. 지금 필요한 것은 좀 더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동결의 개념이다.

동결 1단계와 올림픽 휴전

동결의 대상은 크게 세 가지다. 핵실험, 장거리 미사일, 그리고 핵물질 생산이다.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의 중단을 선언하면, 그것은 상황악화의 중단을 의미한다. 그러나 핵물질 생산 중단은 선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찰과 검증을 필요로 한다. 북한이 이미 핵물질 생산 방식을 플루토늄에서 고농축 우라늄으로 말을 갈아탔기 때문에, 사찰과 검증은 과거보다 훨씬 어렵다. 검증의 방식은 플루토늄 생산시설인 원자로와 우라늄 농축시설이 다르다. 우라늄 농축시설은 원자로와 달리, 분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당연히 불신이라는 추가변수가 발생한다. 쉽지 않지만 핵물질 생산 중단은 여러 단계로 구분할 수 있고, 각각의 단계에 맞는 상응조치를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동결을 2단계로 나눌 필요가 있다.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중단을 1단계로 하고, 핵물질 생산 중단을 2단계로 구분하자. 북한을 협상의 문으로 초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9.19 공동성명’의 핵심 합의인 ‘말대말 행동대행동’이라는 동시병행원칙이 필요하다.

1단계 상황악화 중단을 올림픽 휴전과 동시에 추진하자. ‘올림픽 휴전’은 고대올림픽의 정신이고, 지구촌 모두 공감할 수 있다. 이미 문재인 정부는 유엔에 평창올림픽 개막 7일 전부터 폐막 7일 후까지 전 세계의 분쟁을 일시 중단하자는 결의안을 제출했다. 관례에 따라 11월 13일 유엔총회에서 의결한다. 올림픽 휴전을 북핵문제 해결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중국은 쌍중단, 즉 북한의 핵활동 중단과 한미 군사훈련의 중단을 제안한 바 있다. 올림픽 휴전과 쌍중단은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다. ‘올림픽 휴전’을 동계올림픽이 아니라, 장애인올림픽 폐막일인 3월 18일 이후 7일까지 연장하면, 한미군사훈련 시기와 겹친다. 남북한은 이 기간 동안 상황악화 중단을 합의하고,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을 재개하자. 중국과 북한의 핵실험∙미사일 중단 대가로 한미군사훈련을 중단하라는 주장은 거래의 균형이 맞지 않지만, 올림픽 휴전이라는 개념에서 일시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 다만 이후 군사훈련과 관련해서는 중국이나 북한도 일상적으로 하듯이, 당연히 한미 양국도 방어적인 군사훈련을 할 수 있고, 그런 차원에서 군사훈련의 중단이 아니라, 군사훈련의 정상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20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새클러윙에서 열린 평화올림픽을 위한 메트로폴리탄 평창의 밤 행사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청와대

2단계 동결과 평화체제 논의

핵물질 생산 중단을 논의할 2단계 동결 협상은 훨씬 복잡하고 어렵다. 2단계 동결 협상을 남북한과 미중 4자가 참여하는 ‘한반도 평화체제 회담’과 동시에 시작할 필요가 있다. 2단계 동결은 동결 대상에 따라 단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고, 마찬가지로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 역시 단계화 할 수 있다.

2단계 동결 협상은 6자 회담의 형식이 바람직하다. 북한과 미국의 양자협정도 가능하지만, 최근 트럼프 정부의 국제적 합의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보면, 양자협정보다 다자협정이 훨씬 안정적이다. 동결과정의 필요한 비용과 검증∙사찰의 합리성을 제고하기 위해 유럽연합을 비롯한 더 많은 국가의 참가도 가능하다.

과거의 핵 협상과 비교해서 달라져야 할 점이 있다. 바로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의 중요성이다. 4자회담은 6자회담보다 먼저 할 수 있고, 2단계가 아니라 1단계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 북핵문제는 한반도 냉전체제의 산물이기 때문에, 평화체제가 북핵 해법의 출구다. 불안정한 휴전체제를 항구적인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것은 시대의 요구이며 동시에 북핵문제의 가장 중요한 해법이다. 법적인 평화협정은 ‘사실상의 평화’에 해당하는 ‘한반도 평화체제’의 단계에 따라 여러 번 맺을 수 있다. 입구에서 일반적인 불가침 협정에 해당하는 핵무기의 선제불사용 협정을 맺을 필요가 있다. 중간단계로 종전선언과 종전관리체제를 구상할 수 있다.

올림픽과 입구의 중요성

북핵문제는 국제화되었고, 세계인의 관심 현안이다. 평창동계올림픽은 세계적 차원에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다. 시간이 지나면 점차 드러나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합리적 결정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미국은 북핵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권한을 갖고 있지만, 복잡한 협상과정을 주도할 수 있는 정책결정구조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동북아 관련국들은 미국의 정책표류가 안정되기를 기다릴 여유가 없다. 미국의 참여가 중요하지만, 동시에 미국의 부재를 보완할 대안적인 ‘국제적 합의’구조를 검토할 때다.

한국은 북핵문제의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좀 더 포괄적인 외교에 나설 필요가 있다.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바라는 지구촌 사람들의 요구를 모으고, 미국의 전문가들과 함께 해법을 마련해서, 트럼프 정부가 합리적인 정책결정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지구촌 사람들 누구도 올림픽 휴전에 공감할 수 있다. 우리는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이 절실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북핵 위기를 진정시켜야 한다. 평창으로 가는 길에서 우선적인 갈림길은 11월초 한미 정상회담이다. 200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해서 한반도의 분단현실을 체험하고 생각을 바꾸었듯이, 트럼프 대통령도 한반도 평화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이 왜 ‘오직평화’를 선택해야 하는지, 제재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점을, 평화유지가 한미동맹의 목적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그리고 평창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한미 양국이 손을 잡고, 평창을 북핵문제의 해결과 한반도 평화의 위대한 출발로 만들자고 말해야 한다. 결코 쉽지 않지만 해법의 입구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지속된 악순환의 터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입구를 찾지 못하는 현재의 상황에서 출구를 둘러싸고 논란을 벌일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출구를 잊어버릴 필요도 없다. 입구에 들어가면 언젠가는 ‘비핵화’라는 출구에 도달할 수 있다.

---이 기고문의 견해는 필자의 개인 의견이지 동아시아 재단의 공식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필자 소개

김연철은 1996년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북한의 산업화와 공장관리의 정치(1953~70)’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삼성경제연구소 북한연구팀 수석연구원(1997~2002),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2004~2005) 등을 역임했고 2010년부터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 『냉전의 추억』(2009), 『북한의 산업화와 경제정책』(2001) 등 다수가 있다.

*본 게시물의 저작권은 동아시아재단에 있습니다.

김연철 dootakim@inj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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