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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공세의 역사와 민낯

기사승인 2017.04.03  10:5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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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재단 ‘정책 논쟁’ 제68호: 한국판 메카시즘

1963년의 반(反)-메카시즘 광고와 오늘의 한국 정치

“우리들은 이제 이 나라 사회의 근대화 작업을 끈덕지게 방해하고 있는 일체의 메카시즘을 타도 청소해야 할 공동의 전선에 섰습니다.…(중략)…메카시즘의 한국적 아류들인 그들은 그 악습의 보검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시커먼 무쇠를 메카시즘이라는 번철에 달달 볶아 새빨간 빨갱이로 만들려는 수법을 농하고 있습니다.…(중략)…‘참다운 반공’이 무엇인가를, 그리고 ‘참다운 민주주의’가 무엇인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들의 정치 지반인 전근대적인 유제가 위협을 당하면 ‘용공’이니 ‘빨갱이’니 하는 상투적인 술어로 상대세력을 학살시켰던 것이 한국적 메카시즘의 아류들이 저질러온 행적이었습니다.…(중략)…전국의 지성인 여러분! 무슨 일이 있든지 우리는 차제에 한국적 메카시즘의 신봉자를 우리 사회에서 일소시키기 위해 분연히 궐기하여 과감히 투쟁합시다.”

1963년 10월 5일 <동아일보> 등 주요 일간지 1면에 실린 위의 반-메카시즘 광고는 누가 왜 게재했을까? 이 정치광고가 현재의 한국 정치와 국민에게 주는 역사적 의미와 정치적 교훈은 무엇일까?

이 정치광고는, 마치 오늘날 일부 극우세력이 자기들의 정치적 이해를 위하여 활용하는 메카시즘적 선동에 대하여, 민주세력이 그 폐해를 경고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광고는 제 5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박정희와 민주공화당이 야당인 민정당의 대선 후보 윤보선의 이념공세에 대항하기 위하여 <전진이냐? 후퇴냐?> 라는 제목으로 게재한 선거광고이다. 1948년 10월에 발생한 여순반란사건 이후 대대적으로 전개된 숙군과정에서, 박정희는 남로당원으로서의 좌익활동이 발각되어 사형선고를 받았고 그 이후 사면된 바 있다. 윤보선은 이 같은 박정희의 좌익활동을 공격했고, 박정희는 윤보선의 폭로를 메카시즘으로 규정하여 비판하였던 것이다.

1961년 박정희와 함께 5.16 군사쿠테타를 주도하였고 혁명공약을 기초하였던 김종필은 박정희의 좌익 경력을 의식하여 혁명공약 1조에 “반공을 국시의 제1의로 삼고…”라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강조하였다. 이를 본 박정희 자신도 “이거 나 때문에 썼겠구먼”이라고 반응한 것으로 김종필은 그의 증언록에서 증언하였다. 1971년 제7대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는 신민당 후보인 김대중을 상대로 가까스로 3선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에 위협을 느낀 박정희는 김대중을 용공이라고 색칠하여 본격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하였다. 이후로 박정희가 동원한 메카시즘은 유신체제를 지탱하는 지배도구가 되었던 것이다. 1963년 메카시즘을 비판했던 박정희는 1970년 이후 메카시즘을 정권유지의 보검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제2의 군사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또한 1981년 1월 김대중을 내란을 음모한 빨갱이로 몰아 사형을 선고한 바 있다. 최근에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정에서 박근혜 지지세력들이 촛불집회 참가자들에 대하여 좌파 빨갱이와 종북주의자로 공격하고 있다. 심지어 이들은 국가기관인 헌법재판소와 특검에 대하여도 유사한 공세를 가한 바 있다.

한국의 색깔론은 반드시 여야간의 정치대립에서 나온 것만은 아니다. 고 강원룡 목사의 회고에 의하면, 특히 김대중에 대한 색깔론은 1960년 4.19혁명 전후로 민주당 내에 벌어진 파벌싸움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소위 민주당 구파가 김대중이 속한 같은 당의 경쟁그룹인 신파를 공격하는 무기로 색깔론을 동원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야당이나 민주화운동 세력 내부에서도 간혹 경쟁자를 과격하다거나 빨갱이라고 공격하는 사례도 없지 않았다. 이처럼 한국정치사에서 한국판 메카시즘은 다양한 얼굴로 민주주의와 이성적인 사회 발전을 방해해 왔다.

한국의 이념갈등은 과연 이념에 기반하고 있는가? 세 가지의 컴플렉스

어느 시기 어느 사회에서든 이념갈등은 보다 복잡한 정치적·역사적 배경하에서 증폭되어 왔다. 1950년대 미국의 월트디즈니는 메카시즘의 광풍 속에서 공산주의에 관심이 있는 경쟁 영화사나 감독들을 밀고하여 자신의 회사가 급성장하는 계기를 만들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7년 3월 4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자신을 도청하였다는 근거가 약한 폭로를 하였고, 이를 반박한 오바마 대통령을 메카시즘이라고 명명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사실 남미의 독재정부들도 민주화 세력을 탄압하는 데 반공이데올로기와 메카시즘을 동원한 바 있다. 2013년 12월 12일, 북한의 김정은이 장성택을 처형하였는데, ‘북한 전복’이란 그의 죄목도 사실은 아이러니하게도 북한판 메카시즘 내지는 색깔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한국에서 ‘종북논리’를 동원하여 반대자를 공격하였다면, 북한은 장성택에게 “사상이 반북한적이고 적국과 사상이 동일하다”며 ‘종남논리’를 적용하였던 것이다.

한국에서의 이념갈등은 한국전쟁이 낳은 부정적 유산 중의 하나이다. 한국전쟁은 많은 전쟁의 희생자와 갈등을 낳았고 한국사회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좁혀 놓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있기 이전 이미 일제 강점기에 항일 투쟁의 방법을 두고 이념갈등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현재의 색깔논쟁은 보다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소위 좌우라는 이념의 역사가 일천한 한국에서는, 이념이 개인 및 정파의 이익을 위하여 악용, 왜곡, 그리고 과장되어 선동의 도구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에서의 이념갈등은 제대로 된 이념에 기반하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아, 합리적이거나 건강하다고 보기 힘들며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한국정치사를 통해, 특히 엘리트 그룹에서, 메카시즘이 횡행한 데는 한국사회의 적지 않은 권력자들이 안고 있는 아래의 세 가지 컴플렉스가 보이지 않는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1) 일제 강점기의 본인이나 가족의 친일경력, (2) 군사독재에 과도하게 참여하고 각종 불의나 이해관계에 깊이 관여하였던 어두운 경험, (3) 한국전쟁 이래 현재까지 사회주의 내지는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변신한 인물들의 심리적 부채와 생존술 등이다. 수많은 친일부역자들이 청산되지 않은 채 군대나 경찰 등으로 자리를 옮겨 신분을 세탁하였고, 이들은 해방정국과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미 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비호 하에, 사회주의 운동이나 공산주의 북한과 싸운 애국자로 재탄생하였다. 이들은 군사독재에 참여하여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거나 부정부패에 관여하기도 하였으며 부와 권력을 축적할 수 있었고, 기득권을 지키기 위하여 자신들은 애국으로, 민주화세력이나 정치적 경쟁자를 좌파 빨갱이로, 공격하게 되었다.

2005년 5월 3일, 여야합의로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 이 통과된 이후, 일제강점기와 독재시기에 벌어진 반민주적 반인권적 사건에 대한 진실이 대대적으로 밝혀짐으로써, 해당 시기에 가해자의 위치에 있었던 일부 집권 엘리트들의 심리적 불안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른 한편 최근 사회주의나 민주화운동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 중에서 변신한 일부 인사들은 심리적 부채나 생존술로써 누구보다도 과도하게 정치적 경쟁집단을 색깔론으로 공격하곤 하였다. 이들이 만들어낸 메카시즘은 개인적으로는 심리적 보상이자 상징적 이념조작이었고 개인적 이익을 지키기 위한 효과적인 지배도구였으나, 사회적으로는 치유과정에 있는 한국의 트라우마를 다시 후비는 것이고 사회통합을 해치는 행위들이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한국형 뉴라이트그룹이 색깔론을 양산해 내었고, 보수와 반공, 그리고 안보논리를 강조하였다. 북한의 계속되는 도발과 위협은 색깔공세를 위한 좋은 대외적 환경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국가안전보장회의 위원 16명 중 이명박 대통령을 포함한 12명이 군미필자라는 국민의 조롱과 함께 안보에 관한 국민적 우려를 증폭시킨 바 있다. 한편, 2015년 10월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대한민국 국사학자의 90%가 좌파이다”라고 단언하고, 좌파와의 역사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색깔론을 동원하였다. 그는 2015년 7월 방미 중에는 “진보 좌파의 준동으로 대한민국의 미래가 걱정된다”라고 발언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2016년 4월 13일 총선을 앞둔 여당 내 공천갈등과정에서, 김무성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대립하게 되자 어버이연합 등 관제 동원된 단체들은 그를 빨갱이라고 공격한 바 있다.

김무성은 다시 최근 박근혜 탄핵과정에서 기존 여당에서 탈당하여 바른정당을 창당하면서 “정권을 좌파에게 넘길 수 없다”는 색깔논쟁에 불을 지폈다. 이런 사례들은 한국의 색깔논쟁과 이념갈등이 얼마나 건강하지 않으며, 제대로 된 이념에 기반하지도 않고, 보수적 덕목에 기초 하지도 않은 것임을 확인해 준다. 보수의 덕목인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보이지 않고 천박한 정치공학과 개인적 탐욕만이 횡행하는 슬픈 현실이 아닐까? 어쩌면 한국정치의 척박한 현장에서 좌우라는 이념과 보수라는 가치가 수난당하고 좌초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최근 박근혜 탄핵 반대 데모에서 ‘애국’이라는 단어와 ‘태극기’라는 상징이 일부 비합리적이고 선동적인 정치세력들에게 납치되어 수난당한 것처럼 말이다.

민주화 이후 색깔공세의 부활 : 국가보안법의 역설

돌이켜 보면, 한국에서 색깔공세는 권위주의 시대에 비하여 민주화 이후에 전체 사회로 더 확산된 느낌이다. 왜 그럴까? 권위주의 시대에 몇몇 정적들에게 공산주의 색깔을 덫칠하려는 노력이 있었고 많은 민주화 인사들이 투옥되거나 목숨을 잃은 것은 사실이지만, 색깔논쟁 혹은 메카시즘이 요즈음처럼 사회전반과, 특히 정치엘리트들 사이에서, 범국가적 정치공방으로 확산된 적은 없었다. 역설적이게도 민주화 이후에 색깔공세가 부활하고 확산된 셈이다.

한국은 1987년 민주화 이행 이후 현재 민주공고화의 과정에 놓여 있다. 민주공고화는 각종 제도와 문화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권위주의 시대의 제도들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었고, 사회의 주요 쟁점을 바라보는 문화, 제도, 규범이 보다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전환되고 있다. 권위주의 시대 한국정치를 규정하였던 특징은 크게 국가보안법과 지역감정으로 요약될 수 있다. 독재정권은 정치적 반대의견을 국가보안법으로 충분히 통제할 수 있었고, 지역감정을 자극하여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남북분단 상황에서 국가보안법의 본질이 유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이후의 국가보안법의 지배도구로서의 기능은 급격히 약화되었다. 국가보안법 위반사범으로 접수된 사람은 1997년 1,032명에서 2014년 108명으로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또한 기소된 사람들 중에서 구속율은 1997년 67.5%에서 2014년 12.3%로 낮아졌다. 사법부의 구성원들이 국가보안법을 신중하게 적용하고 있고, 법과 제도에 대한 규범과 문화가 보다 민주화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국가보안법이 정권유지를 위한 정치도구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아울러 1996년 10월 헌법재판소는 영화 사전심의를 검열로 규정하여 위헌 결정을 내림으로써 권위주의 방식의 문화통제가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검열 폐지와 김대중 정부의 민주적인 문화정책은 <실미도 (2003)>, <태극기 휘날리며 (2003)>, <올드보이 (2003)>, <피에타 (2012)> 등 한류 영화 붐을 만들어내고 다수의 국제적인 감독들과 배우들을 탄생시키는 데 공헌하였지만, 박근혜 정부가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계기로 작용하였던 것이다. 노무현을 다룬 영화 <변호인 (2013)>을 빨갱이 영화로 보고 블랙리스트 작업을 시작한 것으로 구속기소된 김기춘 비서실장은 색깔공세와 지역감정 조장의 원조로 알려져 있다. 또한, 유권자의 투표행태도 많이 합리화되어 지역감정도 권위주의 시대처럼 분할통치를 위한 도구가 되지 못한 지도 꽤 오래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시대적 흐름 속에서 민주적 규범과 가치에 익숙하지 않고 소위 박정희시대를 답습하고자 하였던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색깔공세와 메카시즘을 부활시킨 정치적 온상이 되었다. 국가보안법이라는 권위주의 시대의 억압적 제도와 지역감정이라는 비민주적 정치문화가 힘을 잃은 상태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하여 민주공고화에 대항할 새로운 이념적 도구가 필요하였던 것이다. 정치권력에 의한 언론장악, 주요 민주적 기구에 비민주적인 뉴라이트 인사들 대거 기용, 비민주적 리더십 스타일과 소통부재, 국가기관에 의한 민간인 불법 사찰과 도청, 빈번한 색깔공세 등은 한국 민주주의의 후퇴를 보여주는 정치현상들이었다. 용공 좌빨, 종북 등의 색깔공세는 이들이 다시 불러낸 권위주의 시대의 망령이었고, 한국전쟁 이후 한국사회가 치유하고 있던 트라우마를 다시 자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박근혜 정부가 작성하고 실행하였던 사회 각 분야에 걸친 블랙리스트, 청와대가 기획한 관제데모에 국정원과 전경련의 자금이 지원된 사실, 국정 역사교과서 추진 등은 색깔공세가 정부차원에서 제도적으로 추진되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들이었다. 민주사회에서 누구나 사상적 자유를 누릴 수 있고 이념갈등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건강한 다원주의 현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가 색깔 공세를 제도적으로 지원하거나 주도하고, 일부 정치엘리트가 정치적 이익을 위하여 대중을 색깔공세로 선동하는 일은 민주사회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고, 그들 자신이 앞에 지적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상대방을 빨갱이나 종북으로 지칭하는 것은, “나는, 나의 정치적 입장에 반대하고 이익추구를 도와주지 않는, 너를 죽도록 싫어하고 정치적으로 공격하고 싶다”는 정도의 의미를 과격하게 표현한 것 아닐까?

한국 민주주의의 공고화 : 정치와 이념의 건전한 복원

민주주의의 역사는 이념 경쟁의 역사이다.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 왕정(앙시앵 레짐)을 무너뜨리고 소집된 국민회의에서 보수성향인 왕당파는 의장석을 중심으로 우측에, 개혁성향인 공화파는 좌측에 자리했던 것이 현재 좌우파의 기원이다. 빨간색은 1871년 파리코뮌 이래 좌파를 의미했지만, 로마제국 이래로 황제와 귀족 등 권력의 상징이었다. 빨간색은 염색 비용이 비쌌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붉은 광장은 아름다운 광장이란 뜻으로 빨갱이와 무관하다. 중국 홍성기의 붉은 색은 복과 부를 나타내는 중국 전통색일 뿐이다. 한국사회는 시민사회나 부르주아의 역사적 성장과정이 결여된 채, 식민지배와 한국전쟁을 거쳐, 좌우이념이 대립적이고 표피적인 형태로 이식되었다. 한국에서 좌우이념의 역사적 정신적 토양이 빈곤한 이유이다. 하지만, 복원력이 뛰어난 한국의 민주주의는 치유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박정희 시대에 대한 과도한 신화를 종식시켜 민주주의가 다시 회복되고 시민사회가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치는 경제와 사회를 발전시키는 가장 고부가가치 산업이라 할 수 있다. 개인과 정파의 이익을 위한 시대착오적 색깔공세가 아닌, 정책적 비전과 철학의 차별성에 기초한 이념 경쟁은 정치의 본연의 역할을 복원하여 한국정치의 생산성을 높이고 민주주의의 질을 제고하는 데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필자 소개

류상영은 현재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이고 동아시아재단의 운영이사이면서 <동아시아정책논쟁>의 editor 를 맡고 있다. 연세대 대학원에서 정치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1995-2001)을 지낸바 있으며 일본 게이오대학 방문연구원(1992-1994),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학교 방문교수(2009-2010) 등을 지냈다. 김대중도서관 관장(2004-2009)을 역임하면서 <김대중 구술사>를 구축하는 등 사료 수집과 연구에 힘썼다. 그는 박정희와 김대중의 역사와 정치경제에 관해서 많은 연구결과를 출간하였다. 그동안 역사와 이론을 어떻게 이론적으로 깊이있게 결합하고 분석할 것인지에 관심을 가져왔다. 최근에는 박정희와 김대중을 민족주의와 한국정치사적 시각에서 비교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본 게시물의 저작권은 동아시아재단에 있습니다.

류상영 syrhyu@yonsei.ac.kr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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