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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기술전쟁과 한국의 전략

기사승인 2022.05.11  11: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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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 제178호

선택의 딜레마를 둘러싼 한국 내 쟁점들

한국 경제와 기업은 미-중 기술전쟁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다. 과연 이 기술전쟁의 핵심은 무엇이고,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한 국내외의 논쟁이 뜨겁다. 미국과 중국은 각자의 국익에 따라 경제안보와 가치에 대한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의 대응에 대한 국내의 논쟁은 몇 가지로 요약된다. 1) 대미 협력을 고도화하면서 중국과의 호혜적인 무역관계를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 2) 강대국의 압력 속에서 한국의 기술주권 확보와 개방적 선순환을 어떻게 병행할 수 있을 것인가? 3) 기술혁신과 투자에서 한-미간의 균형된 기술동맹은 가능한 것인가? 이런 쟁점들에 대하여 한국 내 찬반론은 명확하게 나누어져 있다.

 

미-중 전략 경쟁의 진화: 무역 전쟁에서 기술 경쟁으로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은 몇 차례 단계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미-중 전략 경쟁은 2018년 7월 트럼프 행정부가 34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 818개 품목에 대하여 25%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이 미국산 제품에 동일한 규모의 보복 관세를 부과하면서 미-중 양국은 무역 전쟁에 돌입하였다. 이후 미-중 양국은 무역 전쟁의 수위를 지속적으로 높여왔다. 2022년 1월 기준 미국이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 중국산 수입품의 비중은 66.4%에 달하고, 중국 정부 역시 미국산 수입품 가운데 58.3%에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상대국 수입품에 부과하는 평균 관세율도 19.3%와 21.2%에 달한다. 특히, 미국과 중국이 다른 국가들에 부과하는 평균 관세율이 각각 3.0%와 6.5%라는 점을 고려하면, 무역 전쟁의 강도와 범위를 짐작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은 트럼프 행정부가 5G 통신 서비스의 도입과 관련 중국 화웨이(华为)를 제재하면서 기술 경쟁의 단계로 이행하였다. 2019년 4월에서 2020년 9월까지 미국은 화웨이와 SMIC에 대한 규제를 4차례에 걸쳐 발표・시행한 데서 나타나듯이, 5G 네트워크 장비 도입 문제에서 시작된 기술 경쟁이 2019년 이후 미-중 기술 경쟁의 핵으로 부상하였다. 이후 미-중 기술 경쟁은 배터리, 의약품, 희소 자원, 우주 분야로 빠르게 확장되었다.

 

기술 경쟁과 존재적 위협

기술 경쟁이 미-중 전략 경쟁의 핵으로 부상한 이유는 무엇인가? 첨단기술이 미래 경쟁력에서 차지하는 중요성, 경제적 강압의 수단으로서 유용성, 안보에 미치는 영향, 국내정치적 고려 등 다양한 요인이 미-중 전략 경쟁을 기술 경쟁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의 기술 추격이 가속화하면서 가능성의 영역에 머물렀던 ‘기술 굴기’가 현실화되기 시작하였다. 그래햄 앨리슨(Graham Allison)과 에릭 슈미트(Eric Schmidt) 등 각계 전문가들이 수행한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 벨퍼과학국제문제센터(Belfer Center for Science and International Affairs)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중국이 AI, 5G, 퀀텀, 그린 에너지 분야 가운데 일부 핵심 기술에서 이미 미국을 추월하여 세계 1위가 되었거나, 현재의 기술 발전 경로가 유지될 경우 10년 이내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의 부상이 첨단기술 분야까지 확장된 것이다.

미국이 경제 및 산업의 총량에서 상대적으로 퇴조하는 가운데 가시화된 중국의 기술 굴기는 미국의 대중 전략에서 첨단기술의 보호와 경쟁력 향상이 더 이상 미루기 어려운 시급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첨단기술의 경쟁력 확보와 추격을 사활적 이익(vital interests)로 보는 이유는 미국과 중국이 이념과 체제의 상이성으로 인해 상대를 존재적 위협(existential threat)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의 기술 굴기가 불공정한 기술 혁신과 불법적인 기술 탈취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미국의 시각에서 확인된다. 미국은 특히 중국 기술 굴기의 이면에는 시진핑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군민융합’이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이외에도 중국 정부는 첨단기술 개발을 위해 각종 기금을 활용하여 천문학적 규모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불공정한 방식으로 기술 추격을 한다는 것이 미국의 인식이다. 2020년 중국이 핵심 첨단기술에 투입한 보조금의 규모가 2천 136억 위안(33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미국의 시각에서 볼 때, 불법적인 기술 탈취 또한 심각한 문제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이 첨단기술 경쟁에서 불공정과 불법적 방식을 광범위하게 활용하는 것을 ‘경제적 침공’(economic aggression)으로 규정하고, 이를 국가안보의 문제라고 주장한 것은 이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이러한 인식에 기반하여 CIFIUS를 개혁하여 중국 자본 투자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고, Entity List 지정을 통해 첨단기술 보호와 유출 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하였다.

 

첨단기술: 경제적 강압의 수단

첨단기술은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는 경제적 강압의 수단으로서 유용성이 입증되고 있다. 미국은 중국산 수입품 가운데 60% 이상의 품목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등 일반의 예상을 뛰어넘는 범위와 강도의 무역 전쟁을 서슴지 않았음에도 중국으로부터 전향적인 양보를 얻어내는 데 성공적이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중국의 자립 추구를 가속화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2021년 1월 중국이 2022년까지 2년간 미국산 제품과 서비스 수입의 2천억 달러 확대를 약속한 1단계 합의에 도달하기는 하였으나, 전략 경쟁이 격화되면서 중국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 미국의 평가이다. 페터슨국제경제연구소(Peterson Institute of International Economics)에 따르면, 1단계 합의의 이행률이 57%에 불과하다. 전면전에 가까운 무역 전쟁을 치렀음에도 목표 달성에는 제한적인 효과가 있었을 뿐이었다.

한편, 첨단기술의 활용은 상대국에 대한 압박과 국내적 비용 면에서 관세 부과와 같은 전통적 방식의 경제적 강압에 비해 효과적이다. 화웨이가 미국의 집중적인 견제의 결과 2021년 매출이 전년 대비 28.9% 감소한 것처럼 첨단기술의 제한은 중국의 기술 굴기를 지연시키는 가운데 미국의 기술 혁신 생태계를 재편하는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첨단기술을 활용한 경제적 강압은 관세 전쟁과 달리, 기술과 생산의 네트워크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이 네트워크 내의 주요 길목을 차단하는 것만으로도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첨단기술이 ‘무기화된 상호의존’의 유력한 수단인 것이다. 첨단기술 네트워크를 활용한 경제적 강압은 국내적 부담을 최소화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전통적 방식의 무역 전쟁의 경우, 관세의 부담이 궁극적으로 미국 소비자와 기업에게 전가되기 마련이다. 관세 전쟁으로 인해 미국이 약 5백억 달러의 추가 비용을 부담하게 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첨단기술을 활용한 경제적 강압은 국내적 부담을 최소화함으로써 중국을 장기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방식이다. 미국은 CHIPS Act를 통해 반도체 국내 생산 기반 확대에 520억 달러를 투입하는 등 해외 생산 의존도를 낮추고, 혁신을 위한 인센티브를 재구성함으로써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유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혁신 역량 생태계 재편의 국내적 차원

기술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수밖에 없는 것은 미국과 중국이 모두 국내정치적 고려를 기술 경쟁에 투사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바이든 행정부가 취임 일성으로 “Build Back Better”를 주창하고 ‘중산층을 위한 외교정책’(Foreign Policy for the Middle Class)을 지향한 데서 나타나듯이, 미국에서 대중국 정책과 국내정책은 긴밀하게 연계되었다. 이러한 정책 기조는 바이든 행정부가 취임 직후 착수하여 발표한 ‘100일 공급망 검토’의 제목인 ‘공급망 복원력 구축, 미국 제조업의 재활성화, 그리고 포괄적 성장의 촉진’(Building Resilient Supply Chains, Revitalizing American Manufacturing, and Fostering Broad-Based Growth)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국 기술 경쟁 전략의 목표를 읽을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단기적으로는 공급망의 안정성을 향상시키는 노력을 하는 가운데, 중장기적으로는 미국 제조업 기반의 재건을 지향하며, 그 혜택이 중산층에 고루 배분되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대중국 정책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공급망 재편 전략이 중산층 기반의 성장이라는 국내정치 목표와 긴밀하게 통합된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CHIPS Act와 미국혁신경쟁법(US Innovation and Competition Act) 등을 잇달아 추진하는 것은 중국과의 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는 동시에 중산층 복원이라는 국내정치적 어젠다를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구상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혁신경쟁법을 통해 핵심 기술에 2천 5백억 달러 투자하는 등 다양한 지원책을 강구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첨단기술 개발에 투자하는 지원금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소규모라는 근원적 한계가 있다. 중국 정부가 민간 부문과 함께 2025년까지 5G 네트워크, 전기자동차 충전 설비, AI 등 차세대 인프라 개발에 1조 6천억 달러를 투입할 계획을 발표한 데서 나타나듯이, 미국이 정부 주도의 투자 규모 면에서 중국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일 수 있다. 미국은 중국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경쟁하기보다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의 혁신을 추동하였던 생태계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중국을 상대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연구기관, 정부 지원금, 벤처 캐피털, 자유 시장 경쟁 등 미국의 혁신 생태계를 구성하는 행위자들 사이에 경쟁과 협력의 균형을 통해 기술 혁신의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다. 중국과의 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개방성과 경쟁이 조화되는 혁신 생태계를 복원하되, 중국이 미국 생태계의 개방성을 이용하여 불법적 방식으로 기술을 탈취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것이 혁신경쟁법의 의도이다.

 

한국의 대응 전략 1: 기술 경쟁과 시장 접근의 분리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기술 경쟁이 첨예화될수록 한국이 직면할 딜레마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경제적 강압에 대한 반대와 시장으로서 중국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광범위한 공감대가 존재한다는 전제 위에 한국의 대응 전략이 모색될 필요가 있다. 미-중 기술 경쟁이 어떠한 방향으로 전개되든 한국과 같은 중견국 또는 약소국들이 경제적 강압의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기본 원칙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이와 동시에 미-중 기술 경쟁이 아무리 격화되더라도 거대한 중국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유지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두 가지 전제는 한국이 미-중 기술 경쟁에서 직면하게 되는 이익과 가치 사이의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는 데 필요하다.

반도체 분야의 동향은 이익과 가치 사이의 균형의 단초를 찾을 수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중국 시장에서 한국산 반도체 점유율이 2018년 24.7%에서 19.2%로 5.5% 포인트 하락하였다. 반면, 대만과 일본의 점유율은 각각 4.4% 포인트, 1.8% 포인트 증가하였다. 같은 기간 중국의 반도체 수입이 37.2% 증가하였는데, 대만과 일본으로부터 수입이 각각 57.4%와 34.8% 증가하였다. 미-중 기술 경쟁의 파고 속에서 미국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들인 대만과 일본은 중국 시장 점유율을 오히려 높일 수 있었다. 2021년 미국의 주요 반도체 업체들의 대중 수출 역시 증가하였다. 미국조차도 중국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첨단기술의 활용도를 높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중국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유지・확대를 추구하는 것이다. 정부 전략은 한국 기업들이 미국의 리쇼어링 및 기술 경쟁 전략에 협조하는 동시에 중국 시장에서 현재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측면 지원하는 데서 시작하여야 할 것이다.

 

한국의 대응 전략 2: 개방적 기술 주권의 추구

미-중 기술 경쟁은 주요국들이 기술 주권을 추구하는 체제적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에 이어 EU와 일본도 반도체를 포함한 첨단기술에 대규모 보조금을 지급하는 대열에 동참하였다. 핵심 첨단기술의 경쟁력 확보가 미-중 기술 경쟁으로 인해 획기적으로 증가한 초불확실성에 대응하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면에서 정부가 2021년 12월 ‘10개 국가필수전략기술’을 선정하고, 국가적 역량을 결집하기로 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불확실한 대외 환경에 대응하는 지렛대로서 기술 주권을 확보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나, 개방성을 유지하는 노력은 여전히 필요하다. 기술 혁신이 닫힌 생태계가 아니라 열린 생태계에서 더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자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개방성과 포용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대외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하는 데 국가적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면에서 핵심 첨단기술 혁신 역량을 제고하고 공급망 내 허브 위치의 확보함으로써 지정학적 갈등으로 인한 경제적 강압에 대응하는 지렛대를 확보하는 한편, 개방성에 기초한 국제협력을 동시에 추구함으로써 혁신 역량 강화를 위한 대외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의 대응 전략 3: 생산 협력에서 기술 혁신 협력으로

시장으로서 중국과의 관계를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미국은 혁신의 원천으로서 한국에게 중요하다. 최근까지 한-미 협력은 주요 첨단산업에서 미국 내 생산 역량 확대를 위한 생산 협력 방식으로 추진되어 왔다. 향후 한-미 협력은 생산 협력에서 기술 혁신을 위한 협력으로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한-미 협력을 평면적으로 확대하는 데 따른 미-중 사이 선택의 딜레마를 완화하는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미래지향적이고 입체적인 협력으로 발전시킨다는 의미가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미국 내 혁신 생태계의 재구성에 한국이 참여하는 기회를 확보하는 것은 한-미 관계를 신정부가 추구하는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격상시킨다는 의미도 있다.

 

---이 기고문의 견해는 필자의 개인 의견이지 동아시아 재단의 공식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필자 소개

이승주는 현재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로, 동아시아정치경제론, 국제정치경제론, 일본정치론 등을 강의하고 있다. 저자는 연세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후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또한, 그는 통일연구원 연구원, Berkeley APEC Study Center Postdoctoral Fellow, 싱가포르 국립대학교정치학과 조교수를 역임하였다. 주요 논문 및 저서로는 Trade policy in the Asia-Pacific (2010), “South Korea's Regional Economic Cooperation Policy: The Evolution of an Adaptive Strategy” (2010) “The Future of Northeast Asia's Institutional Architecture” (2010) 등이 있다.

이승주 seungjoo@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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