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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착오적 ‘풍선전쟁’, 실종된 남북의 이성

기사승인 2024.06.24  13:2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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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재단 현안진단 제330호

북한의 복합적 무력시위

지난 5월 26일 김강일 북한 국방성 부상은 담화를 내고 한·미의 ‘적대적인 공중정탐행위’, ‘삐라와 각종 너절한 물건짝들’ 살포, 그리고 ‘적의 해상국경 침범’ 등 세 가지 문제를 제기했다. 최근 한·미 공군의 훈련과 정찰,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그리고 서해 북방한계선(NLL) 이남의 우리 군과 해경의 작전을 비난한 것이다. 김강일 부상의 담화 직후인 28일부터 북한은 대남 오물풍선 살포, 서해 NLL 인근 GPS 교란 공격, 그리고 30일 김정은 위원장 참관 하에 실시된 무더기 방사포 발사를 통한 대남 위협 등 복합도발을 단행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해 12월 말 남북관계를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김강일 부상의 담화는 제기한 문제들에 대한 대응의 예고였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5월 28일부터 6월 9일까지 네 차례에 걸쳐 오물풍선을 살포했으며, 우리 측이 확인한 것은 1,600여 개다. 바람에 의지하는 풍선의 특성상 정상 부양에 실패하거나 확인이 어려운 산악 또는 바다로 낙하한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 6월 2일 김강일 부상은 자신들이 보낸 오물풍선이 3,500여 개였고, 15톤의 ‘휴지쓰레기’를 살포했다고 밝혔으며, 9일 김여정 부부장은 7.5톤을 1,400여개의 풍선에 실어 보낸 사실을 공개했다. 2017년 한 해 북한이 살포한 대남풍선은 1000여 개였다. 따라서 이번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는 단기적 대응이 아닌 상당 기간의 계획과 준비의 결과일 개연성이 있다. 지난해 9월 대북전단금지법 위헌판결 이후 민간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가 재개되었으며, 금년 봄부터 본격화되었기 때문이다.

5월 28일부터 오물풍선 살포와 함께 북한은 서해에서 GPS공격을 단행했으며, 이는 김강일 부상이 비난한 NLL 인근 우리 군과 해경의 활동에 대한 대응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지난 3월 한·미 연합훈련 기간 중에도 사흘간 GPS 교란 공격을 시도한 바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서해 NLL을 ‘불법, 무법’으로 규정하고, “대한민국이 우리의 령토, 령공, 령해를 0.001㎜라도 침범한다면 그것은 곧 전쟁도발로 간주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 위원장은 2월 15일 지대함 미사일 바다수리-6형의 검수사격을 실시한 자리에서 한국 해군이 자신들의 수역을 침범하고 있다며, 또다시 주권 침해 및 무력도발로 간주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지대함 미사일을 사용할 수 있음을 경고한 셈이다. 그러나 북한의 빈약한 해군력으로 한국 해군에 정면으로 맞서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NLL 분쟁 수역화를 위해 북한이 선택한 방안은 기존의 해안포 공격에 더하여 GPS 교란 공격의 추가였다. GPS 교란 공격은 주체와 원점이 불분명한 회색지대 도발로 우리 군의 대응 수단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한·미 공군의 연합훈련을 비난한 김강일 부상의 담화 직후인 5월 27일 밤 북한은 정찰위성 만리경-1-1호를 신형 위성운반로켓에 탑재해 발사했으나 실패했다. 당일 오후 1시경부터 한국공군은 F-35A와 F-15K 등 전투기 약 20대를 동원해 타격훈련을 실시했다.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에 대해 선제 타격훈련으로 대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찰위성 발사 실패 직후인 28일 김정은 위원장은 국방과학원 창립 60돌 기념연설을 통해 한국공군의 훈련을 ‘용서 못할 불장난’이라며 격렬하게 비난했다. 만리경-1-1호 발사 장소에 김 위원장이 있었을 개연성이 큰 만큼 스텔스기를 동원한 한국공군의 타격훈련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김 위원장의 분노는 5월 30일 600㎜ 초대형 방사포(KN-25) 18문의 동시 사격으로 이어졌다. 북한 매체는 당 중앙군사위원회의 '비밀암호지령문'이 전송된 뒤 김 위원장의 사격 명령이 내려졌다고 보도했다. 핵탄두 활성화를 위해서는 암호 해제를 위한 ‘비밀암호지령문’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북한이 김 위원장 참관 하에 18발의 핵무기를 우리를 향해 동시 발사하는 훈련으로 위력 시위한 셈이다.

 

‘풍선전쟁’과 남북한의 실책

북한은 사상 초유의 대량 오물풍선을 살포했지만 성공적인 성과를 도출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북한은 동물 분뇨까지 포함한 문자 그대로의 ‘오물’을 살포함으로써 우리 사회는 물론 국제적으로 비정상 체제임을 스스로 입증했다. 북한이 2020년 6월 남측 민간단체의 전단 살포를 명분으로 개성공단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직후 인민군 총참모부가 예고한 이른바 '4대 군사행동계획'에는 ‘북한 주민의 대남삐라살포 시 군사적 보장’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번 대량 오물풍선 살포의 경우 북한 국방성이 담화를 내고 인민군이 직접 살포했다는 점에서 남측 민간단체의 전단 살포에 대한 대응 명분 확보에 한계를 보였다. 유엔군 사령부는 즉각 북한의 행위를 정전협정 위반으로 규정하고 조사에 착수했다.

북한의 1차 오물풍선 살포에 대해 경고한 한국 정부는 2차 살포 뒤 즉각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결정했다. 북한 내륙 20~30㎞까지 영향을 미치는 대북 확성기 방송은 북한이 가장 꺼려하는 심리전 수단으로 대부분의 남북대화에서 중단을 요구해온 사안이다. 한국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북한의 대남 오물풍선 살포가 위협적이라는 답변이 60%이며, 정부의 확성기 방송 재개에 대해 55%가 ‘잘한 일’로 평가했다. 두 차례 오물풍선 살포로 북한이 오랫동안 노력해 달성한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이 일순간에 물거품이 된 셈이다.

북한 오물풍선 사태는 일부 남측 민간단체의 공개적인 대북전단 살포에서 촉발되었다. 접경지역에서의 공개적인 대북전단 살포는 여러 면에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대북전단을 공개 살포할 경우 북한군이 대응 체제 및 수거에 나선다는 점에서 북한 주민이 전단에 접근하기 쉽지 않다. 민간단체가 주장하는 북한 주민에 대한 구호 및 영향력 행사라는 명분이 희석되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대북전단 공개 살포로 접경지역의 긴장 고조와 우발적 충돌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인민군은 2014년 10월 연천에서 대북전단 기구를 향해 14.5㎜ 고사총을 발사하였으며 우리 측 군부대 주둔지와 면사무소 등에 낙탄했다. 한국군은 경고방송 후 중기관총으로 40여발을 북GP를 향해 대응사격, 북한군의 우리 측 군 초소를 향한 개인화기 응사, 다시 한국군의 북한 GP에 재응사가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2차 오물풍선 살포 직후인 6월 3일 통일부는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 “표현의 자유보장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의 취지를 고려해 접근하고 있다”며 자제 요청을 하지 않았다. 6월 6일 민간단체가 공개적으로 대북전단을 살포했지만 현장에서 아무런 제지가 없었으며, 통일부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6월 14일 통일부는 대북전단 단체 1곳과 면담을 가졌지만 살포 자제를 요청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은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한 위헌 판결을 내리며 동시에 전단 살포를 금지하거나 처벌하지 않더라도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따라 살포를 직접 제지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민간단체의 공개적 대북전단 살포가 어떤 위험을 초래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부가 위험한 상황을 방치한 셈이다.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를 명분으로 정부는 9.19 남북군사합의를 전면 효력정지시킴으로써 남북한 간 군사적 충돌을 방지할 수 있는 그 어떤 완충장치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향후 남북한 간 긴장고조와 이로 인한 충돌이 발생할 경우 한국 정부 역시 책임을 면키 어려운 상황을 자초한 셈이다. 대북 전단에 대한 북한 당국의 강경 대응과 한국 정부의 강경 맞대응이 일촉즉발의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남북기본합의서 복원과 지속가능한 남북관계 확립에 나서야

6월 9일 4차 오물풍선 살포 직후 김여정 부부장은 심야 담화를 내고 남측 민간단체들의 ‘도발적인 정치 선동물’과 달리 자신들은 ‘빈 휴지장’들만 살포했으며, ‘정당하고도 매우 낮은 단계의 반사적인 반응’이라고 강변했다. 김 부부장은 남측이 대북전단 살포와 확성기방송을 병행할 경우 ‘새로운 대응’을 예고했지만 담화 전반은 상대적으로 순화된 표현과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한국군도 북한의 4차 대남 풍선 살포에 대해서는 확성기 방송을 실시하지 않았다. ‘풍선전쟁’의 홍역을 겪고서야 겨우 상황을 관리하려는 의도가 읽혀지는 대목이다.

문제는 일부 민간단체의 선정적이고 공개적인 대북전단 살포 재개 여부이다. 북한의 민주화와 주민의 인권이 개선되도록 보편적 가치 실현을 위한 노력은 지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남북관계를 파국으로 몰아가고 군사적 충돌을 야기할 수 있는 행위는 지양되어야 한다. 특히 민감한 접경지역에서 대북전단을 공개적으로 살포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동시에 아무 실익을 기대할 수 없는 행위에 불과하다는 점을 직시할 일이다. 당장 접경지역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으며, 대북 확성기 방송이 실시되면 해당 지역 병사들과 주민들은 밤잠조차 제대로 잘 수 없게 된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되 접경지역의 공개적 대북전단 살포는 국민들의 안전과 생명권에 대한 고려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상황의 안정적 관리와 함께 보다 근본적인 해법이 모색되어야 한다. 냉전기 동서독 간에도 ‘풍선전쟁’이 벌어진 바 있다. 전단 살포는 동독이 먼저 시작했지만 서독군은 민간인 복장을 하고 아이들까지 대동해 비밀리에 동독으로 전단을 살포했다. 동서독이 강경대응을 이어가면서 양측 간 ‘풍선전쟁’은 시간이 갈수록 격렬해졌다. 남북한과 마찬가지로 서독은 심리전에서 동독에 우위를 점했다. 동서독 간 ‘풍선전쟁’ 종결의 실마리는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 과정에서 찾아지기 시작했다. 1972년 중반 동독은 대 서독 체제선전 방송을 중단했으며, 기본조약을 통해 서독은 민간교류 확대와 동독으로의 언론 특파원 파견 등을 얻어냈다.

남북한 간 ‘풍선전쟁’의 근본적 원인은 지속가능한 남북관계를 규율할 합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현 남북관계를 전쟁 중 2국관계로 규정하고 우리를 철두철미의 주적으로 명시했다는 점에서 언제든 갈등이 불거질 수 있는 상황이다. 전쟁 중 2국 관계는 남북한 모두에게 전시체제를 요구하며, 감당하기 어려운 고비용구조를 형성한다.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풍선전쟁’은 남북 갈등의 한 사례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남북한의 공존과 지속가능한 남북관계 형성을 위한 근본적 해법을 모색할 때이다. 그 해답은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 체제의 복원이라고 할 수 있다. 1991년 12월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 전문은 남북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로 규정하고, 평화통일을 향한 공동의 노력을 경주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관계에 대한 헌법과 국제법 간 모순을 해결하는 동시에 평화적 공존과 통일 미래를 향한 로드맵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남북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대안이다.

김정은 정권은 반통일 반민족 인식을 거두고 북한의 미래를 위한 현명한 선택을 내려야 할 것이다. 윤석열 정권도 말로만 자유민주적 통일을 내세울 게 아니라 위기를 고조시키는 ‘힘에 의한 평화’가 아닌 ‘대화를 통한 평화’로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대통령 대북 특별 선언’ 또는 고위급 특사 파견을 포함해 남북대화 재개를 위한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미국은 물론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에게도 한반도 위기 해소를 위한 협력을 전방위적으로 견인해 내야 할 것이다.

평화재단 hyeonanjindan@p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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