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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통일의 꿈을 키우는 어린이들

기사승인 2020.10.14  13:4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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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떤 집에 딸 형제가 있었대.”

“그래서?”

“무척 사이가 좋았대.”

“암 그래야지.”

“놀 때도 같이 놀고 학교 갈 때도 같이 가고.”

“잘 때도 같이 자고.”

“응.”

“그래서 엄마 아빠도 무척 기뻐하셨대.”

“그렇겠지.”

“그런데 말야, 언니한테 남자 친구가 생긴 거야.”

“그래?”

“그런데 그 남자 친구가 동생을 또 좋아한 거야.”

“무슨 남자가 그래?”

“에이 지조 없다.”

“하여튼 언니, 동생이 모두 그 남자 친구에게 반한 거야.”

“저걸 어째?”

“사랑싸움 나게 생겼네?”

“하하, 문제가 심각해지겠는 걸?”

“자, 그래서 그 때부터 언니, 동생이 서로 미워하게 되었대.”

“불행한 일이로다.”

“그 남자에게 남동생은 없었나?”

“왜?”

“그 남자는 외아들이래.”

“저런 저런.”

“그래서 그때부터 언니 동생이 서로 말도 안했대.”

“어쩌면?”

“한 지붕 아래 살면서 말 않고 사는 것도 여간 고통이 아닐 텐데.”

“지독하다, 지독해.”

“그러니까 여자가 화를 내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지 않니?”

“여자가 더 무섭다 잉?”

“그걸 지금 처음 알았냐?”

“앞으로 여자들 화나게 하지 말아야겠다, 너.”

현숙이, 미자, 철호, 민형이가 마을회관 난로 옆에서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너희들 남자들 같으면 어떻게 했겠니?”

“형하고 동생에게 한 여자가 나타났다. 그런데 형도 그 여자를 좋아하고 동생도 그 여자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 말이지?”

“응.”

“우선 나이가 비슷한 쪽에서 양보를 하겠지.”

“그래?”

“난 그렇게 쉽게 양보되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떤 책에서 보니까 여자에게는 사랑이 인생의 전부지만 남자에게는 일부일 뿐이래.”

“그러니까 여자는 자기 애인을 죽어도 양보 못하지만 남자는 양보할 수 있다 그 말이니?”

“말하자면 그렇지.”

“그래? 그거 편리해서 좋구나? 하기야 남자도 사람 나름이겠지만.”

“철호야, 너도 네 애인 양보하는 쪽에 드냐?”

현숙이가 의미 있게 물었다.

“나? 나는 절대 양보 못해.”

철호가 말하자,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는 현숙이었다.

일러스트 by 한재진.

미자가 물었다.

“민형아, 넌?”

“나도 절대 양보 안하지.”

하고 싱긋 웃었다.

“그런데 그 언니 동생은 남자친구 하나 때문에 자그마치 일곱 달이나 말을 안했대.”

“야, 지독하다. 지독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아니, 일곱 달 지나서는 말을 했다니?”

“응, 그 남자가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간 다음에야.”

“휴, 잘 갔다. 잘 갔어. 전학 안 갔으면 반반으로 찢겨 죽었을 텐데....”

“천만 다행이다.”

“그동안 걔네 엄마 아빠 속상한 것은 말도 못하겠다.”

“그러게나 말야.”

“그래 그 남자애 전학 간 뒤엔 옛날처럼 다시 친하게 됐대?”

“그게 그렇게 쉽게 되나? 한 번 금이 간 그릇은 아무래도 새 그릇은 될 수 없는 법이지.”

“허, 참.”

철호가 어른처럼 혀를 찼다.

모두들 불행한 언니 아우 이야기에 동정이 갔다.

“차라리 처음부터 그 남자 아이가 걔들 앞에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아니야. 그 남자 아이가 나타난 게 문제가 아니라, 문제는 딴 데 있어.”

“어디에?”

“동생에게.”

“왜?”

“언니에게 먼저 생긴 남자 친구면 으레 언니의 남자로 여길 것이지, 왜 끼어드느냔 말야.”

“아니야. 그 남자 아이가 나빠! 언니와 사귀었으면 계속 언니하고만 사귀어야지, 뭣땜에 언니 동생 다 좋아하니?”

서로 의견이 달랐다.

창밖엔 싸락눈이 내리고 있었다.

“내년엔 우리 분교도 문을 닫는다고 하더라.”

“그러면 10리나 걸어야 학교에 가겠구나. 면사무소가 있는 데까지 나가야 할 테니....”

“우리 학교에 전교생이 17명이니 그런 말도 나오게 생겼지. 우리가 졸업하고 나면 12명밖에 안되지.”

“새로 들어올 1학년이 꼭 1명이라는 거야.”

“그러면 전교생 13명!”

“안됐다. 1학년이 10리를 걸어야 학교를 가게 되다니!”

“대한민국 시골의 공통적인 문제인걸, 뭐.”

“아주 문명이 발달한 나라에서는 반대로 도시에서 시골로 내려오는 인구가 늘고 있는 곳도 있대더라.”

“직장은 도시에, 집은 시골에 있대더라.”

“그렇게라도 되었으면....”

“얘, 얘 요새 신문 보면, 내일 당장이라도 통일이 될 것 같더라.”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쉽지는 않을 거야.”

“속지나 않았으면 좋겠어. 같은 민족이라는 면만 생각하면 금방이라도 서로 얼싸 안고 통일축제를 벌려도 좋지만 문제는 아직도 그들이 공산주의자들이라는 것이 걸림돌이지.”

“속이기 잘하고.”

“과거의 습성이 말끔히 씻어졌다고 믿을 수가 없거든.”

“공산주의가 가장 성했던 소련이 무너진 판에, 무슨 똥고집으로 공산주의에 매달려 저러는지 몰라.”

“그러니까 큰 맹꽁이지.”

“그래그래. 앞뒤가 꽁꽁 막힌 맹꽁이야.”

“그러나 저러나 식량이 모자라 폭동이 들끓는다는데 이럴 때 솔직히 우리 남한에게 그 남아 썩고 있는 쌀, ‘우리에게 싸게 파시오.’하면 뭐가 어때? 체면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저러는 걸까? 미국이나 중국 같은 큰 나라에서 얻어먹으면 체면이 덜 깍이고 같은 동족인 남한에게 아쉬운 소릴하면 체면이 더 깍이나?”

“왜 아냐?”

“동생이 배고플 때 ‘형님, 뭐 먹을 것 좀 주세요.’하고 형에게 아쉬운 이야기 하는 것 하고, 전혀 모르거나 친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배고픈데 먹을 것 좀 주세요.’하는 것 하고 어느 편이 좋으냐고. 아무래도 형에게 부탁하는 게 더 쉽지 않느냐고.”

“그래, 맞아.”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니? 정작 남북이 통일되어 자유롭게 살고 싶은 곳에서 살게 하면.”

“......음. 나는 우선 서로 만나 보려고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굉장히 붐빌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과연 어디서 사는지를 심사숙고해서 결정하고 이사는 천천히 그 후에나 할 것 같아.”

“북쪽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많을까, 남쪽으로 내려오는 사람들이 많을까?”

“그건 그때 봐야 알겠지. 그러나 내 생각에는 남쪽으로 내려오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 같아.”

“왜?”

“동독과 서독이 통일된 뒤에 생긴 일을 봐서도.”

“북쪽에 고향을 둔 남한 사람들도 많지 않니?”

“하지만 북한 사람들은 자기네 사는 곳이 지상 천국이라고 계속 교육을 받아 왔지 않아?”

“거짓은 반듯이 드러나게 돼 있으니까 그건 별로 걱정이 안 돼.”

현숙, 미자, 철호, 민형은 분교 숙직실에서 선생님과 고구마 구워 먹으며 읽은 신문들 기사에서 얻은 시사지식을 총 동원하여 이야기를 했다. 숙직실에는 조간신문 한 가지, 석간신문 한 가지 이렇게 두 가지가 교무실에서 돌다가 밤엔 숙직실로 모이곤 하였다.

“얘들아, 우리 지금 학교 갈까?”

“왜?”

“선생님 또 숙직하실 거야. 남자 선생님 두 분이서 하루 건너씩 숙직하시니까 자주 하시지 않니?”

“하지만 어머니 아버지 허락도 받지 않고 가면 되니?”

“학교로 전화해 보자. 우리 선생님이 숙직이시면 집에도 전화로 연락하고 선생님께 가면 되지 않니?”

“그래, 우리 선생님 너무 외로우시겠다.”

“그래, 그래.”

다이얼을 돌렸다.

마침 담임선생님이 숙직이셨다.

“거 봐, 내 말이 맞지.”

네 아이는 차례로 전화를 했다. 숙직실에서 선생님과 같이 있다가 내일 오겠다고.

다행히 네 명 다 허락을 받았다.

“야, 이 긴 긴 밤을 맨 입으로 어떻게 세우냐? 뭐 좀 가지고 가야하지 않겠니? 선생님도 드리게.”

“난 달걀 열 개 가져올게.”

“난 고구마.”

“그래 난 홍시 열 개.”

“좋아, 난 땅콩엿 만들어 둔 것 가져올게.”

“그럼 공연히 전화 했잖아? 집에 가서 허락 받아도 되는걸.”

“글쎄말이야, 공연히 전화료만 물게 됐네.”

“괜찮아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뭐. 자, 그럼 각자 자기 집으로 해산!”

철호가 고함을 쳤다.

“현숙아, 내가 너네 집에 먼저 데려다 주고 갈게. 내가 집에서 올 때까지 기다려.”

“고마워.”

“민형아, 철호 하는 말 들었지?”

“응, 나도 그렇게 할 참이야. 내가 누구니?” (계속)

 

박승일

1942년 12월 23일 평안남도 강서에서 태어났다. 실제는 1940년생이다. 교사로 18년, 목회자로 32년 일했다. 한국문인협회 및 국제PEN 한국회원이다. 저서는 동화, 수필집 등 65권이다. 현재는 춘천장로교회 은퇴목사다. 

박승일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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