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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대한 방위비 분담금 인상 압력이 비합리적이고 불공정한 이유

기사승인 2019.08.27  10:4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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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 제124호

두 얼굴의 트럼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만큼이나 한국에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는 2017년 취임 이후부터 2018년 초까지는 ‘미친 자(mad man)’의 전형을 보여줬다. 북한을 상대로 “화염과 분노”, “완전 파괴”, “핵 버튼” 발언을 쏟아내며 코리아 아마겟돈의 문턱을 두드렸다. 그러나 이는 공포 마케팅의 일환이었다. ‘내가 두려우면 내가 하라는 대로 해!’라는 강압 외교의 전형을 보여준 것이다.

그 주된 상대는 한국이었다. 문재인 정부로서도 트럼프의 극단적인 선택을 예방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는 바로 그 부담감을 이용했다. 공포 마케팅을 통해 무기 판매를 최대한 늘리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방위비 분담금 협상 등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고 했다.

‘미친 자’를 자처했던 트럼프는 2018년 3월부터는 ‘한반도 피스메이커’로 둔갑했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 제안을 전격적으로 수락했고, 그 이후 그를 세 차례나 만났다. 최근에도 추가적인 정상회담도 “학수고대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듯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면서 한국인들의 트럼프에 대한 호감도도 크게 높아졌다. 미국의 설문조사 전문업체인 퓨 리서치 센터가 2018년 10월 1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트럼프에 대한 지지도는 44%로 나타났다. 이는 트럼프가 노골적으로 편을 들고 있는 이스라엘의 69%에 이어 미국의 주요 동맹국들 가운데 2위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반면 전통적인 맹방들로 불려왔던 호주 32%, 일본 30%, 영국 28%, 캐나다 25%, 독일 10%, 프랑스 9% 등을 기록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장삿속은 변함이 없다. ‘미친 자’를 자처한 시기에는 한국에 ‘공포심’을 안겨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려고 했다면, ‘피스메이커’로 둔갑한 이후에는 ‘기대감’을 불러일으켜 최대한 돈을 벌려고 한다. 한국을 미국의 현금자동지급기(ATM)로 취급하는 게 아니냐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흡사한 평가는 미국 언론에서도 나왔다. 보수 성향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19년 3월 14일자 사설에서 “동맹은 맨해튼의 부동산 거래가 아니다”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방식은 미군을 용병처럼 보이게 만든다”고 일침을 가한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발언 수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는 8월 9일 뉴욕에서 열린 대선 캠페인 모금 행사에선 젊은 시절 아버지와 함께 임대료를 받으러 다녔던 일화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브루클린의 임대아파트에서 114달러를 받는 것보다 한국에서 10억 달러를 받는 게 더 쉬웠다.”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비무장지대(DMZ)를 함께 방문하고 있다(2019. 6. 30). 청와대 제공

트럼프의 요구가 황당하고 부당한 이유

2016년 대선 유세 때 트럼프는 주한미군의 방위비 분담금을 미국이 모두 부담하고 있다고 ‘가짜뉴스’를 퍼트리면서 한국을 “무임 승차자(free rider)”로 불렀다. 그러면서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의 방위비 분담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대통령 취임 이후 한국이 상당한 수준의 분담을 하고 있다는 팩트를 알 법도 했을 텐데, 트럼프는 막무가내였다. 문재인 정부에 노골적인 압력을 가해 2019년 방위비 분담금을 전년도보다 8.2%나 올려 1조 389억 원을 받아 내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의 탐욕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있다. 2019년 한미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의 유효기간은 1년이기 때문에 내년을 겨냥해 터무니없는 인상을 거론하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그는 지난 5월 초 플로리다 유세 연설에서 “군 장성들에게 그 나라 방위비로 우리가 얼마나 쓰는지를 물어봤더니 (연간) 50억 달러라고 하더라”며 “그러나 그 나라는 우리에게 5억 달러만 주고 있다. 무척 부자이면서 어쩌면 우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라를 지키느라 45억 달러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한국을 특칭하지 않았지만, 여러 가지 정황상 한국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를 뒷받침하듯 8월 9-10일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의 방한에 앞서 ‘50억 달러’설이 국내외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다. “트럼프가 비공개 대화에서 50억 달러를 언급했다”는 것이다. 앞선 3월에는 트럼프가 ‘미군 주둔비용+50’을 고안해냈다는 보도도 나왔다. 미군 주둔 비용 전체에 50%의 프리미엄까지 얹어 받아내겠다는 것인데, 이렇게 될 경우 한국에 들이밀 청구서에는 30억 달러가 찍히게 된다.

정확한 액수를 떠나 트럼프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는 대단히 비합리적이고 불공정하다. 우선 방위비 분담금 자체가 예외적인 것이다. 본래 한미동맹에는 방위비 분담금이라는 것이 없었다.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제5조에는 주한미군 유지에 따른 경비는 미국이 부담하고 한국은 주한미군 주둔에 필요한 시설과 구역을 제공한다고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90년부터 미국은 예외적인 특별 조치로 한국에도 주한미군 주둔 경비 분담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91년 1073억 원이었던 것이 2019년에는 약 10배에 해당하는 1조 389억으로 치솟았다. 이는 직접 비용에 한정한 것으로 토지 임대료와 세금 감면과 같은 간접 비용까지 감안하면 한국의 분담율은 70%를 넘는다. 그런데 같은 기간 주한미군의 병력 수는 약 44,000명에서 28,500명으로 줄었다.

일본과 비교해도 한국의 방위비 부담이 훨씬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분석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한국은 주한미군 주둔 지원에 직접과 간접 비용을 합쳐 5조 4563억 원을 사용했다. 반면 일본은 6조 7757억 원을 주일미군 지원에 썼다. 액수로 보면 일본이 한국보다 많이 쓴 것처럼 보이지만, 병력 수를 감안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2015년 기준으로 주한미군이 2만8034명이었던 반면에 주일미군은 6만2108명이었다.

이를 미군 1인당으로 환산해보면 한국이 일본보다 2배 가까이 지원하고 있다. GDP 대비로 봐도 한국이 일본보다 2.5배 가량 더 많다. 사정이 이렇다면 트럼프는 한국에 감사함을 표해야 맞지만, 오히려 그는 한국을 모욕하면서 방위비 분담금을 터무니없이 인상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은 한국이 주는 방위비 분담금도 다 쓰지 못해왔다. 이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용처에 비해 과도하게 책정돼 생긴 ‘미집행액’이고, 또 하나는 쓴다고 해서 줬는데 쓰지 못하고 남은 ‘불용액’이다. 이렇게 생긴 돈만 해도 수천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남은 돈을 한국의 국고에 반환하고 방위비 분담금은 늘릴 것이 아니라 줄이는 것이 상식에 맞다. 하지만 이전 미국의 행정부들은 남은 돈을 반환하지 않고 은행에 예치해 수백억 원의 이자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트럼프 행정부는 더 올려달라고 압박하고 있다.

방위비 분담금 전용 문제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평택에 있는 캠프 험프리스 기지 확장 사업이 단적인 예이다. 2004년 한미 양국 정부는 용산기지와 2사단을 캠프 험프리스를 대폭 확장해 이전키로 합의했다. 그리고 그 비용은 반반씩 부담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미국은 자국 부담을 한국이 준 방위비 분담금을 전용해 충당했다. 그 결과 평택 미군기지 확장 사업의 비용 부담률은 한국이 93%, 미국이 7%였다. 이 자체도 부당한 일이지만, 주목할 점은 있다. 작년에 캠프 험프리스 확장 사업이 마무리됨에 따라 방위비 분담금을 인상해야 할 사유가 또 하나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전용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이 제공한 방위비 분담금 가운데 954억 원을 ‘주일미군’ 장비를 정비하는 데 사용한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전용은 앞으로 얼마든지 재현될 수 있다. 일례로 2017년 주한미군 사령관은 경북 성주에 배치된 사드 기지를 향상시키는 데에 방위비 분담금을 전용해서 사용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한국이 사드 부지를 제공하고 전개비용과 운영유지비는 미국이 부담한다는 합의와 배치되는 것이다. 또한 미국은 한국의 분담금을 올릴 근거가 마땅치 않자, ‘작전 지원비’를 신설해 전략 자산 전개 비용을 한국이 부담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또한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에서 탈퇴한 미국은 한국에도 미사일 배치를 타진하고 있는데, 미사일 배치 시 그 시설 비용으로 방위비 분담금을 사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들 가운데 어느 것 하나라도 현실화될 경우 한국은 이중삼중의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는 점은 명약관화하다.

트럼프는 주한미군이 마치 한국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주장해왔다. 그리고 여차하면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도 있다는 발언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주한미군은 어느 일방의 이익이 아니라 양국 모두의 이익을 위해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가 너희를 지켜주고 있으니 돈을 많이 내라’는 식의 트럼프의 화법은 한국인들에게 모욕감을 안겨주면서 주한미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확산시키고 있다. 한미동맹을 상징하는 구호는 “함께 가자”인데, 트럼프가 한미동맹을 무기 판매와 방위비 분담금 증대를 통한 ‘돈벌이’ 수단으로 삼을수록 동맹의 건강한 발전은 어려워진다.

 

문재인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는 ‘미친 자’와 ‘피스메이커’를 넘나드는 트럼프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구체적으로는 분담금 증액 요구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일단 ‘공미증’(恐美症)과 ‘의존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트럼프에 대한 두려움이야말로 그가 가장 원하는 것이고, 한국을 길들이는 유력한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동시에 한반도 평화에 대한 그의 선의를 과신하는 것도 위험하다. 그의 한반도 정책은 평화에 대한 확고한 신념보다는 국내 정치적 득실관계에 대한 판단 및 금전적 욕심에 따라 이뤄져온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에 대한 ‘선택적 변화’도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여기서 ‘선택적 변화’란 한미동맹의 유지를 전제로 하면서도 한반도 평화와 주권의 관점에서 변화를 모색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전시작전권의 조속한 환수,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중단, 사드 철수를 비롯한 주한미군의 감축, 그리고 방위비 분담금 구조 개혁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들 네 가지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 것이다.

먼저 전작권의 전환을 조속히 마무리 지을 필요가 있다. 전작권 전환은 1990년대 초부터 논의되고 때때로 합의도 이뤘지만 30년 가까이 연기를 거듭해왔다. 그런데 이 사이에 군사력을 포함한 한국의 국력은 비약적으로 성장해왔다. 주한미군도 인정한 것처럼 한국군 지휘관의 능력도 우수하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는 2020년이나 늦어도 2021년에 전작권을 환수해야 한다. 이렇게 한국 주도의 안보 능력을 갖춤으로써 ‘미국이 한국을 지켜주니까 돈을 많이 내라’는 식의 트럼프의 궤변을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트럼프는 또한 분담금 증액 요구의 근거로 사드 배치 및 한미군사훈련을 제시해왔다. 그는 사드를 만드는 데에 10억 달러가 들어간 만큼 그 돈을 한국이 내거나 사드를 철수시켜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한미군사훈련에 대해서도 “도발적인 워게임”이라거나 “어리석고 돈도 많이 들어간다(ridiculous and expensive)”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트럼프의 발언을 선택적 변화의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트럼프의 발언에 압박을 느끼기보다는 사드 철수와 한미군사훈련 중단을 미국에 제안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주한미군 감축도 논의 대상에 올려둘 필요가 있다. 이러한 조치들은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일 뿐만 아니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당장 현안이 되고 있는 방위비 분담금 문제에 있어서도 당당하게 맞설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는 세 가지를 주문하고 싶다. 첫째, 미국의 분담금 인상 요구가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부당한지를 조목조목 설명해야 한다. 둘째, 그래도 미국이 올려달라고 압박하면 버티기를 선택해야 한다. 합의를 거부하면 올해 분담금이 내년에도 자동으로 적용되게 된다. 셋째, 현재의 총액형을 소요 충족형으로 바꿔야 한다. 이를 통해 미국이 마음대로 분담금을 전용하는 사례가 더 이상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 기고문의 견해는 필자의 개인 의견이지 동아시아재단의 공식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저자 소개

정욱식은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대 후반 북한의 대기근과 남한의 IMF 경제위기를 목도하고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운동과 연구를 시작했다. 1999년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어 지금까지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 시민평화포럼 운영위원장, 서울시 남북교류협력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쓰는 한편, 팟캐스트 '진짜안보'를 진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비핵화의 최후』 (2018), 『핵과 인간』 (2018), 『사드의 모든 것』 (2017), 『21세기의 한미동맹은 어디로?』 (2008) 등이 있다.

정욱식 mail@keaf.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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