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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한 종교의 역할과 과제 1

기사승인 2019.02.28  17:5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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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통일연대 평화칼럼] 박종화 목사

1. 3.1 운동이 보여준 <종교인 연대>와 <자유.상생.평화의 공동체>

 

종교인 연대: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

1919년 3월 1일 <3.1 독립선언서>가 낭독되고 공표되었다. 그에 앞서 2월 27일 인쇄되어 28일에는 이미 전국에 배포되고 있었다. 종교 지도자들이 민족 구성원들을 대표하여 이 선언서에 서명하였다. 천도교 소속 15인, 불교 소속 2인, 기독교 소속 16인 이었다.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에 더하여 서명에서는 빠졌으나, 실제로 이 선언을 준비하고 확산운동을 주도한 이들을 합하여 총 48인의 민족대표가 활동했다. 48인 가운데 24인이 기독교 소속이었다. 민족 근대사에 있어서 종교 간의 연합과 협력의 틀을 모범적으로 제시한 최초의 결실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주제에 담긴 대로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공동체를 위한 “종교”의 역할과 과제를 “기독교”의 역할과 과제를 중심으로 하여 다루려고 한다. 하지만 두 가지 상호 연결점을 전제로 한다. 첫째로 3.1운동에서 기독교인들은 이웃종교인들과 더불어 민족 독립과 상생평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전제로 연대활동을 펼쳤다는 점이다. 앞으로의 동북아 평화를 위한 역할에서도 똑같은 종교인 연대가 긴요하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둘째는 기독교인들은 이웃종교인들과 더불어 연대활동의 전제가 되는 3.1운동의 기본 가치관을 공유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공동의 목표와 가치관의 공유가 종교인들의 교류와 협력의 요체이며, 동시에 그런 공동의 기반위에서 연대하는 종교인들은 나름의 다양한 특별한 공헌을 하게 된다. 이 점은 동북아 평화를 위한 미래의 과제수행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바로 종교인들 상호간의 연대와 협력이 지니는 “다양성 속에서의 일치”(unity in diversity)라 이름 할 수 있고 또는 거꾸로 “일치 하에서의 다양성”(diversity in unity)이라고 지칭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둘은 한 동전의 양면이다. 이 양 면을 바로 3.1 독립운동에서 보인 종교인들의 가치관 공유와 연대활동이 명실 공히 보여주었다. 사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종교인들의 대화와 협력이 인류의 상생과 평화를 위하여 긴급한 과제로 등장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그것이 어떠한 계기와 가치관과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역사적 경험이 일천하다. 오히려 인류의 상생과 평화를 깨고 적대관계를 넘어서 조직적 폭력과 전쟁으로 치닫는 단초를 오히려 종교집단 간의 갈등과 대립이 제공하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세계의 역사발전 과정을 통해서 수 없이 보아왔고 또 오늘의 현실에서도 지긋지긋하게 목도하고 있다. 하지만 3.1운동이라는 역사적 전환점에서 한국의 종교인들이 보인 협력과 연대는 자랑스러운 세계사적 본보기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우리가 3.1 정신을 계승하고 이를 창조적으로 발전시켜 한반도와 동북아에 자유, 상생, 평화의 공동체를 새롭게 건설하는 일로 승화되어 인류 상생의 한 본보기를 제공해야 한다는 과제도 안고 있다.

한 가지 첨언할 것이 있다. 필자는 여기서 가능한 한 “종교” 대신에 “종교인”이라 쓰고 싶다. 그 이유는 이것이다. 그동안 세계의 종교 간의 갈등해소와 화해를 이루는 방안으로 “종교 간의 대화”(Inter-religious Dialogue)를 오랫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해온 바 있다. 아직은 완결된 평가를 내리기에는 시기상조이지만 잠정적인 필자의 평가는 기대점 이하이다. 종교 간의 대화는 종교마다 지니는 교리의 비교연구나 토론을 통한 합일점 찾기와 상이점 규명이 중심이었다. 그 결과 종교 상호간에 상대를 배척하고 적대적 대결로 치닫는 “배타주의”(exclusivism)가 등장하거나, 상호 간의 차이보다는 상응성에 집중하여 “혼합주의”(syncretism)에 빠지는 양극단의 부정적 현상이 생겨났다. 둘 다 대화는 불가능하다. 그런가 하면 중간에 일종의 상생과 화해의 입장도 등장했다. 종교 상호 간에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자신의 독자성을 주창하는 “포용주의”(inclusivism)의 등장이 그것이다. 이는 각자의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한 바탕에서 “협력”과 “평화적 공존”을 강조한 현실적인 입장이라 생각한다. 여기에 중요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종교는 어떤 상황에서도 보편적 가치체계를 담고 주창한다. 하지만 그 가치를 구체적인 삶 속에서 경험하고 살아있는 가치로 맛보는 주체는 종교 자체가 아니라 “종교인”이다. 포용의 주체는 사람이고 종교인이다. 3.1운동은 바로 이러한 살아있는 “종교인들”이 “협력”하고 “연대”하여 “독립”과 “상생”과 “평화”를 살아있는 가치관으로 삼고 이를 실천하고자 궐기한 혁명적 사건이었다. 따라서 필자가 여기서 쓰는 종교 내지 기독교라는 표현은 위에 언급한 종교인들 내지 기독인들의 집합적 표현으로 씀을 이해하기 바란다.

종교인들의 조직적 연대

첫째로 종교인들의 협력과 연대활동의 측면에서 3.1 운동을 살펴보자. 우리가 아는 대로 3.1운동 이전에도 만주에 주로 포진했던 대종교를 신봉하던 재만 동포들이 주축이 되어 일명 “무오독립선언”이라 일컫는 <대한독립선언>(1918.12.)을 발표했고, 무장투쟁의 강열한 독립의지를 표명했는가 하면, 미주에서는 기독인들 중심의 “신민회”(1903), “공립협회” (1905) 등이 설립되어 독립운동에 박차를 가했다. 이들 운동이 3.1운동과 맥을 함께하는 것임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둘째로 동경의 재일조선 YMCA에서 일본에 유학중인 유학생 학우회가 조선 유학생대회(약 600여명 참석)를 열고 <도쿄 조선 청년 독립단>의 이름으로 발표한 “2.8 독립선언”이 있다. 이것은 3.1 독립선언의 선두주자 역할을 했으며, 이 2.8 선언의 핵심 인물들의 상당부분이 기독교인들이었지만 비 기독교인들이나 다른 종교에 속하는 청년들과 협력하는 독립을 위한 종교인연대의 결실이었다. <2.8선언>은 일어, 영어 등으로도 번역되어 주일 각국 대사관과 언론사 등에 배부되었고, NYT (1919.03.13.)에도 그 내용이 상세히 보도될 정도로 파장이 컸다.

셋째로 이미 부터 국내의 두 곳에서 활동하던 기독교 중심의 독립운동(평양의 선우혁 중심과 서울의 이갑성 중심)이 이승훈의 중재에 의해 연합되고, 나아가 천도교 및 불교 진영의 독립 운동세력과 합류되어 급기야는 종교인 민족지도자 연대의 3.1독립운동으로 승화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기독인 지도자들의 경우 처음에는 이웃종교인들과의 연대에 교리적으로 회의론도 제기되기는 했으나 종국에는 민족독립이라는 대의에 협력하고 연대하는 개방적 헌신을 보인 점이 훌륭한 교훈으로 남는다. 이렇듯 종교의 범위를 초월하는 민족의 독립과 평화 운동이라는 공동의 가치관과 비전을 향하여서는 종교인들 상호간에 연대와 협력이 긴요함을 적시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종교인들의 가치관 공유

넷째로 종교 집단의 차이를 초월하여 민족의 독립과 평화건설이라는 대의와 기본 가치관을 공유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일에 헌신적으로 임한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2.8선언>과 <3.1선언>은 표현상의 편차는 있으나 기본적으로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주창하면서도 폐쇄적인 민족주의에 묶이지 않고 이를 초월하는 “인류의 상생”을 위한 “보편적 평화 공동체”를 내세우고 동시에 그 방법론으로 “비폭력적 평화”를 명쾌하게 공통으로 선언하고 있다. 이런 선언의 핵심에는 2.8 선언서의 기초자인 이광수나 3.1독립 선언서의 초안자인 최남선의 증언대로 선언에 동참한 종교들이 공통으로 제시하는 기본적인 “자유”와 “상생”과 “평화”의 사상이 자리하고 있으며, 바로 이 런 가치관들이 기독교의 기본 이념과도 상통하고 있다는 말이다.

섯째로 3.1운동은 민족의 독립만이 아니라 세계적 지평에서 민족자결의 대의를 말하고, 동시에 대한독립이 동북아 평화의 전제이며 동시에 상생의 요체라고 본 점이 중요하다. 다 알다 시피 독립운동과 선언은 미국 대통령 윌슨이 연두교서 형식으로 천명한 “14개 항의 민족자결주의 선언”(1919.1.)에 힘입은 바 크다. 세계 제1차 대전의 종전(1918.11.11.)과 함께 전쟁 상처 치유와 함께 새 국제질서 확립의 실질적 복안으로 독일과 오지리 등 패전국으로 하여금 다시는 전쟁을 못 일으키고 식민지를 내어 놓게 하되 그것들을 영국, 불란서, 러시아 등이 차지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으로 제시되었으며, 실제로 유럽 이외 등에게 자유롭고 동등한 권리로 자신들의 역사적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자결권을 제창한 것은 일단 조선 민족의 독립열정에 불길을 당긴 것 역시 사실이다. 동시에 3.1운동이 당장에 주창한 독립은 얻지 못했으나, 다른 나라의 민족독립 운동에 자극제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중국의 북경대학생 주도의 반봉건주의-반제국주의 지향의 <5.4 운동>(1919.5.4.)에 영향을 주었고, 나아가 이미 인도에서 시작된 간디 주도하의 영국 식민지 반대운동인 “불복종, 비협력, 비폭력 무저항주의 운동”(1915년 시작)을 한층 더 고무시키는 촉진제 역할을 한 것이다. 민족의 독립과 세계시민의 평화가 하나의 연결고리로 사고되고 실천항목으로 결행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3.1선언>은 “자유”와 “독립”의 선언이다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 한다. 우리 는 이를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가 모두 평등하다는 큰 뜻을 분명히 하고, 우리 후손이 민족 스스로 살아갈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게 할 것이다....이것은 하늘의 뜻이고 시대의 흐름이며, 전 인류가 함께 살아갈 정당한 권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1)

여기에는 민족의 “자주 독립”과 “민족 자결”이 인류의 자유권과 평등권의 구체적 내용이고, 이것이 비단 세계역사의 정의일 뿐만 아니라 “하늘의 뜻”이라는 표현을 빌려 민족마다의 ‘천부적 자주권’을 대내외에 선포한 역사적 진실의 표현이다. 분명히 천부의 권리인 “자유”는 민족에게는 민족의 “독립과 자주와 자결”로, 종교인에게는 “신앙의 자유”로, 세계 인류에게는 “만인 평등”으로, 국제사회에는 자유와 평등이 꽃피는 “평화 공동체”로 결실을 맺는다는 지극히 인륜적이며 종교적 심성이 깊이 박힌 정론이다.

<3.1 선언>은 “상생”과 “화해”의 선언이다

독립을 촉구하는 대한의 식민제국 일본에 대한 태도는 무엇인가? 억압자에 대한 피 억압자의 자세는 무엇인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폭력적 보복인가 아니면 진실과 화해인가? 우선 기독교인 지도자들 가운데에서 3.1 선언을 “독립청원”으로 하자는 개량주의 내지는 온건 저항주의 주창자들이 있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제의 식민억압체제를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주시는 고난과 시련과 채찍으로 파악하는 신앙관 때문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종회합의 과정을 통하여 “독립선언”으로 통일했다고 한다.2) 선언의 기본 태도는 무엇인가? 독립 까지 “육탄혈전”(무오 독립선언)의 의지를 표명하고, “최후의 일인, 최후의 일각 까지”(3.1선언/2.8선언) 쟁취한다는 열정은 분명하게 선포하면서도 기본적으로는 상생과 화해를 외친다.

“우리 독립은 민족을 스스로 보호하는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지 결코 사원의 감 정으로 보복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의 합병수단은 사기와 강박과 무력폭행 등에 의한 것임으로 무효이니, 섬은 섬으로 돌아가고 반도는 반도로 돌아오고, 대륙은 대륙으로 회복하라” 3)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우리 자신을 바로 세우는 것이지 남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양심이 시키는 대로 우리의 새로운 운명을 만들어 가는 것이고...단지 낡은 생각과 낡 은 세력에 사로잡힌 일본 정치인들이 공명심으로 희생시킨 불합리한 현실을 바로 잡 고...진정한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사이좋은 세상을 여는 것이 서로 재앙을 피하고 행복해지는 지름길임이 분명하지 않은가!” 4)

<3.1 선언>은 “평화공동체” 형성의 선언이다

실질적으로 <3.1 선언>이 주장하는 “동양평화론”은 일본 식민지배의 종식과 함께 재발을 막자는 것임과 동시에 조선의 진정한 독립은 그것이 적어도 일본 중국 한국 3국이 합의하는 자주와 상생과 화해의 공동체를 결성한 바탕 위에서 진정으로 유지 발전된다는 국제관계적 현실을 직시한 것이고,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지금의 현실에서도 타당하다.

“오늘 우리 조선의 독립은 조선인이 정당한 번영을 이루게 하는 것인 동시에, 일본이 잘못된 길에서 빠져나와 동양에 대한 책임을 다하게 하는 것이다. 또 중국이 일본에 땅을 빼앗길 것이라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며,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의 중요한 부분인 동양 평화를 이룰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5)

 

1)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약칭 추진위)가 “쉽고 바르게 읽는 선언서”로 재구성한 본문에 따랐다.
2) 이만열 강의, “3.1운동과 기독교”, 2019.01.15., 평통연대 특별포럼 강의문 참조.
3) <무오 독립선언>(조소앙이 기초하고 39명이 서명; 1919.2.1. 발표; 이 날이 음력으로 1918년 무오년임으로 “무오 독립선언”이라 칭했다고 함)에서 인용
4) 추진위의 새번역에서 인용
5) 상동

 

* 이 칼럼은 평화통일연대에서 제공했습니다. 

 

 

 

 

 

 

 

 

 

박종화 목사 parkjw10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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