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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사학자가 본 남북관계 회고와 바람직한 통일론

기사승인 2017.11.14  08: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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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사학자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가 최근 통일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잇달아 피력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명예교수는 지난달 31일 인천에서 열린 남북시민마당에서, 그리고 지난 4일 통일코리아협동조합이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통일과 역사의식’을 주제로 각각 강연했다. 이 명예교수는 일제 시대 사회주의 영향으로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배경에서부터 한국전쟁 당시 교회의 처신, 그리고 냉전 시대 남북 교회의 교류, 남북의 통일 방안, 북핵 등 다소 민감한 분야에 대해 거침없는 의견을 피력했다.

지난달 31일 인천 논현동 예사랑선교회 세미나실에서 열린 남북시민마당. ⓒ유코리아뉴스

우선 1920년대 사회주의가 국내에 도입되면서 청년운동이나 노동자·농민운동, 기독교계에 큰 영향을 끼쳤던 점을 설명하며 당시 개인 구원에 머물렀던 교회나 총회로 하여금 농촌부나 사회부를 둬서 각종 사회 구제에 나서게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1930년대 초, 누진적 세금제, 부녀자나 청소년들의 노동에 대한 혜택, 최저임금제를 명기한 ‘기독교 사회신조’ 발표로 이어졌다는 것.

이 명예교수는 “1930년대 말, 1940년대 초, 즉 일제 말이 되면서 우리나라 안에는 민족운동이 거의 사라졌다”며 “당시 옥에 갇힌 사상범은 신사참배 반대자, 사회주의자가 주를 이뤘으며, 둘은 이념과 지향은 다르지만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사이였다”고 설명했다. 이런 영향으로 기존 우파가 주류이던 임시정부에도 1940년대부터 김구를 중심으로 한 우파와 새문안교회 장로였던 김규식, 김원봉을 중심으로 한 좌파가 공존했다. 하지만 해방과 동시에 기독교와 사회주의는 다시 결렬됐다. 이 명예교수는 이덕주 감신대 교수의 저서 『기독교 사회주의 산책』의 일독을 권하기도 했다.

1972년 박정희와 김일성이 주도해서 체결했던 7·4 남북공동성명의 의미도 짚었다. 1960년대부터 북한은 고려연방제, 남북연방제 등을 공식적인 통일방안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은 주한미군 철수를 전제로 한 것이기에 북한의 적화통일 의도가 숨어 있다는 비판이 남한에서 제기됐다. 이에 대해 남한 정부는 이승만 때부터 추진해오던 북진통일, 멸공통일을 기본적인 방안으로 추진해 왔다.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을 내용으로 하는 7·4 남북공동성명은 더 이상 남북 사이에 적대가 아닌 평화통일이 자리잡게 했다는 것이다.

이 명예교수는 “1960년 4·19혁명 때도 학생들에 의해 평화통일론이 주장되긴 했지만 핍박으로 힘을 받지 못했다”며 “남북이 이 3가지 통일론(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에 합의를 봤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다. 남북은 이후의 통일 논의에서도 이 3가지에서부터 시작해 계속 발전해 나아갔다”고 밝혔다.

지난달 31일 인천 논현동 예사랑선교회 세미나실에서 열린 남북시민마당에서 이만열 명예교수가 '통일과 역사의식'을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유코리아뉴스

1991년 12월 남북은 고위급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공동 선언했다. 당시 남한엔 주한미군에 의한 전술핵이 수백 기 배치돼 있던 상황이다. 최근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전술핵과 전략핵에 대해 이 명예교수는, 전술핵은 한 부대 등을 대상으로 한 국지전에 사용할 수 있는 핵으로, 전략핵은 평양 같은 한 도시를 대상으로 한 핵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최근 국내에서 논란이 됐던 (전략핵이 아닌) ‘전술핵 재배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개발 역시 한반도 비핵화 선언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2007년 10·4 정상선언에서 발표한 ‘서해안 평화지대’의 의미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이 명예교수는 “남한으로서는 서로 충돌할 수 있는 서해안 지역을 모두 평화지대로 만들자는 것으로 굉장히 중요한 것이었다”며 “하지만 그 다음 들어선 이명박이 ‘이걸 하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 줄 아느냐’며 단칼에 안된다고 쳐버렸다. 그러면서도 22조나 부으면서 4대강 사업을 하고, 수천 억 원이 넘는 돈을 자원외교로 허비했다. 이걸 굉장히 아쉽고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명예교수는 “이명박·박근혜 때 대북정책이라고 하는 것은 (대북) 교섭이 아니라 끊어버리는 것이었다”며 “적대감을 더 부추기는 것이니까 정책이라고 할 게 없다”고 혹평했다.

북핵 폐기·한반도 평화협정·북미 관계 정상화 등 획기적인 내용을 담은 북미간 공동성명이 2005년 9월 19일 베이징에서 발표됐다. 하지만 다음날 미국은 BDA(방코델타아시아) 북한 계좌를 동결하고 이듬해 7월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협약은 파기에 이르고 만다. 이에 대해 이 명예교수는 “미국에 대해 실망을 많이 했다”며 “저는 미국이 과연 북핵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가. 미국이 핵문제를 통해 한반도에 관여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많이 가졌다”고 밝혔다.

이 명예교수는 “북한 핵개발이 옳다는 게 아니라 9·19 공동성명 다음날 미국이 BDA 문제를 터뜨리는 등 북이 저렇게 핵개발을 할 수밖에 없는 객관적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시민마당 참석자들. ⓒ유코리아뉴스

기독교인으로서 가져야 할 올바른 통일방식에 대해서는 “고려연방제나 한민족통일방안은 어렵다”며 “휴전선상에 개성공단을 10개 만들어보고, 그게 잘 되면 100개로 확대하고, 그러다 보면 남북은 사실상의 통일이 될 것이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쉬운 것부터 하면 어떨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명예교수는 “통일이 우리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다. 한반도가 차지하고 있는 지정학적 위치가 있다”며 “그래서 오래 전부터 중립화 통일방안을 올바른 통일방안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면 주변 나라도 한반도 통일을 이해하고 받아들일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진보정권이나 보수정권이나 아무리 집권해도 국내 정착한 탈북민들의 삶이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 한 탈북민의 지적엔 “만약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들어서지 않고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10년 더 연장됐다면 어떻게 됐을까?”라고 묻고, “저는 북한에 여섯 번 다녀왔다. 그렇게 북한을 다니는 동안 북한의 변화를 볼 수 있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처럼 남북화해가 계속됐다면 지금 남북관계가 훨씬 원활해졌을 것이고, 개성공단은 몇 개 더 생겼을 것”이라고 했다.

이 명예교수는 또 “보수정권은 탈북민들을 편가르기 하지만 진보정권은 편가르기 하지 않는다. 비록 예산이 없어서 적극 지원을 하지 못해 똑같다고 할 수는 있지만 진보정권이 10년 더 했다면 탈북민들도 더 많아지고 탈북민 지원도 더 많아졌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북한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지적엔 “그렇지 않다”며 “사람이 오가고 물건이 들어가면 북한 인민들의 변화는 있을 것이다. 역사의 발전을 보면 변화는 전혀 불가능한 게 아니다. 차르 정권하에서도 변화가 있지 않았나”라고 반문했다. 교류를 통한 아래로부터의 북한 변화는 곧 북한 핵무용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거라는 의미다.

1992년, 1993년 홍정길 목사가 보수 교계 목회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북나눔운동 결성에 적극 앞장선 일화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1992년 12월, 이 명예교수가 미국 체류시 홍정길 목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북한을 돕기 위한 남북나눔운동을 조직하려 하는데 함께하기로 했던 대형교회 목사들이 다 빠지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명예교수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다. 이 명예교수는 “대형교회 목사들이 떨어져나간 이유가 안기부에서 그 목사들에게 협박을 했고, 어쩔 수 없이 홍 목사가 남북나눔운동을 맡게 됐는데 안기부에서 홍 목사에게도 (남북나눔운동 결성을) 하지 말라고 협박전화가 왔다. 홍 목사는 나중에 ‘안기부에서 그 말을 안했으면 긴가민가 했을 텐데 그 말(협박)을 하는 바람에 오기로 하게 됐다’고 털어놨다”고 밝혔다. 1993년 2월 미국에서 귀국한 이 명예교수는 두 달 후 결성된 남북나눔운동에 홍 목사를 도와 적극 참여했다.

지난 4일 통일코리아협동조합이 서울 용산구 레미제라블에서 개최한 심포지엄에서 이만열 명예교수가 강연을 하고 있다. ⓒ유코리아뉴스

6·25 때 교회가 ‘휴전 반대’ 시위를 앞장섰던 사실도 꼬집었다. 이 명예교수는 “교회로서 전쟁 반대를 해야 하는데도 오히려 휴전 반대를 했다. 한국교회가 6·25 때 그렇게 했다”며 “또 압록강, 두만강까지 가서 통일해야 한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한국교회 이름으로 트루먼, 아이젠하워 대통령 앞으로 편지도 보냈다. 이건 기독교 본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싸우지 말고 평화하자는 게 기독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이 명예교수는 1988년 2월 NCCK(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발표한 한국기독교 통일선언과 이어진 노태우 대통령의 7·7 특별선언(남북간 물자거래 및 문호개방, 북한은 미국·일본, 한국은 중국·소련과의 관계 개선 등의 내용)을 언급하며 “난 통일에 있어서는 노태우 정권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은 제대로 평가를 못받고 있다. 당시 우리는 중국-소련과 수교했지만 북은 미국-일본과 수교를 못했다. 그때 수교를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4일 통일코리아협동조합이 서울 용산구 레미제라블에서 개최한 심포지엄에서 이만열 명예교수가 강연을 하고 있다. ⓒ유코리아뉴스

참석자들의 다양한 질문에도 거침없는 답변을 이어갔다.

‘통일은 도적같이 올 수도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 배경은 북한붕괴론”이라며 “이건 국민들에게 굉장한 허구를 제공하는 것으로 북한도 유엔 가입국인데 북이 붕괴하면 우리가 올라가서 차지할 수 있겠나? 국민을 향해 사기치는 소리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북한과의 수교에 응하지 않는 이유를 묻는 질문엔 “저는 통일 전문가가 아니어서 확실히는 모르기 때문에 추측에 의해 답변하겠다”고 전제하고, “북한과 미국 사이에 국교가 이뤄지고 평화가 이뤄진다면 가장 먼저 문제가 되는 게 주한미군이 될 것”이라며 “그건(주한미군 철수는) 북한만의 요구가 아닌 국제사회의 요구가 될 수 있다. 남한은 좋은 위치에 미군 부대 주고, 돈도 준다. 평택 미군기지는 우리가 지어주고 있다. 미군 입장에서는 이렇게 주둔하기 좋은 나라가 없다”고 말했다.

해방 후 북한 피난민들이 개척한 교회와 해방 전에 있었던 자생적인 교회의 신앙관 차이를 묻는 질문엔 “북한에서 내려온 교인들이 북에서 핍박을 많이 받았고, 이런 공통점 때문에 남한에 와서 끼리끼리 모였다. 따라서 이들에게 교회는 신앙공동체일 뿐 아니라 경제공동체이기도 했다. 동대문, 남대문 시장 등에서 고생해서 부를 이룬 건 그들끼리 서로 도왔기에 가능했다. 따라서 거기서 사상적으로 이탈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북한을 도와야 한다’ 이런 말하기가 참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 명예교수는 영락교회 통일 관련 강의에서 한 참석자가 ‘북한에 대해 얼마나 아느냐?’고 질문했던 경험을 얘기하며 “그분들 속에 (북한 정권에 대한) 증오가 그대로 남아 있기에 그 속에 신앙이 들어가기 힘들다”며 “서로 모여서 공동 생활하는 게 중요하니까 신앙과 관계없이 교회에 남아 있는 사람들도 있지 않나. 개인적으로 북한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갖더라도 그걸 표출하지는 못하는 듯 하다”고 말했다.

통일과 관련한 탈북민의 역할에 대해서는 “남한에서 훈련받은 걸 써야 할 기회가 많을 것”이라며 “북쪽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고향에 가서 선도하는 역할은 굉장히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이 명예교수는 현재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탈북민들이 모이는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심포지엄 참가자들과 함께 한 이만열 명예교수 ⓒ유코리아뉴스

젊은이들이 통일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너무 처음부터 큰 목표를 갖고 하지 말고 자주 모이고, 문제를 두고 기도하고, 확산시키는 방법이 뭘지 생각하고, 그리고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때가 이루면 거두리라’는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며 “난 한때는 열심히 통일운동 한다고 생각했지만 언제부턴가 ‘내 생애에는 통일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말도 많이 한다. 저처럼 포기하는 생각하지 말고, 여러분 세대에 이룩해야 할 것이 통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명예교수는 “여러분과 여러분 자손에게는 그런 분단을 물려주지 말았으면 좋겠다”며 “‘통일을 위해서 뭘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일단 통일 관련 단체에 회원으로 가입하거나 후원부터 하라. 통일은 거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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