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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접촉, 시기 상조인가?

기사승인 2017.05.24  18: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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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접촉·교류가 과연 ‘시기 상조’ ‘균형감 상실’일까?

천안함 사고 두 달여 만인 2010년 5월 24일 이명박 정부는 △남북 교역 중단과 대북 신규 투자 금지 △대북 지원사업의 원칙적 보류 △국민의 방북 불허 등 북한과의 교류 및 지원을 중단하는 5·24조치를 단행했다. 그로부터 7년이 흐른 오늘, 정권은 바뀌었고, 남북교류 재개 목소리는 드높다. 새 정부 당국자 사이에서도 북한과의 접촉, 교류 재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만큼 남북교류 중단의 여파가 전쟁 위기 조장은 물론 사회 전체를 심각하게 옥죄었던 탓이다.

하지만 우리 언론들은 상황과 시기를 내세워 이 같은 교류 재개 움직임을 우려하고 있다.

지금은 대북 교류·대화의 때가 아니라는 언론들

우선 <조선일보>는 23일자 사설(‘우리가 5·24 해제하면 천안함 장병들은 누가 죽인 건가’)에서 “5·24 제재는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으로 우리 군인 46명이 숨지고 나서 취한 최소한의 조치였다”며 “북은 이런 범죄 행위, 공격 행위에 대해 어떤 책임도 인정한 적이 없다. 이런 북의 행태는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 우리가 먼저 나서서 5·24조치를 해제하면 천안함 폭침은 누구의 책임이 되는가”라고 반문했다.

<조선일보>는 같은 날 문재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인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와의 인터뷰를 게재했다. 여기서 문 특보는 개인 의견을 전제로 “5.24조치는 이미 유명무실화됐으니 해제해야 한다”며 “북핵을 없애는 것은 다음 문제이고 당장 북한이 미사일을 증강하는 것을 저지하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 정상적인 거래를 하면서 북을 안심시켜 대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자사의 인터뷰 기사, 그것도 사견을 전제로 한 인터뷰 내용을 가지고 마치 문재인 정부가 ‘5·24조치 해제’를 언급한 것인양 비판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은 “새 정부 인사들은 햇볕정책을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여기는 사람들”이라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북은 교류를 위해 방북한 우리 민간인들을 인질로 잡을 수 있는 상황이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고 지적하고 있다.

5월 23일자 <조선일보> 사설

이 같은 ‘시기 상조’ 논조는 같은 날 <중앙일보> 사설(‘북한은 미사일 쏘고 통일부는 민간교류 외치고...’)에서 “맞는 소리를 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타이밍이다”, <서울신문> 사설(‘南 대화 의지 시험하는 北 북극성 2형 실전 배치’)에서 “대화를 서두르다가 국민적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비난의 표적이 되고만 과거의 우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기 상조’에 대한 우려는 24일에도 이어지고 있다.

<매일경제>는 같은 날 ‘文정부 남북교류 논의 국제사회 제재와 엇박자 우려된다’ 제목의 사설에서 “대북 인도적 지원과 민간 교류는 군사적 긴장과 별도로 필요하며 궁극적으로 남북관계의 안정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시점 선택이다. 갑작스레 건너뛰는 정책 변화는 득보다 실을 키울 수도 있음을 감안하기 바란다”고 충고하고 있다.

<서울신문> 사설(‘北 비행체 도발, 대북정책 일관되고 정교해야’)도 “문제는 남북관계 개선 속도”라며 “북한이 도발을 중단하지 않고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인도적 교류 이외의 남북 협력에는 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했고, <한국일보>도 ‘새 정부 대북 교류·대화 재개 목소리 성급하다’ 제목의 사설에서 “새 정부의 성급한 제스처가 국제사회에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북한에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고 있다. 다만 <한국일보>는 대북 접근의 틀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처럼 북한이 먼저 달라지면 돕겠다는 식의 실효성 없는 접근이 아니라 북한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내는 틀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5월 24일자 <한국일보> 사설

시기와 함께 ‘국제 공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국제 공조 엇박자” 우려하는 언론들

<동아일보>는 23일자 사설(‘北 잇단 주체탄 도발 ... 대북제재 완화할 때인가’)에서 “최근 중국까지 대북 압박에 동참하는 등 전례 없는 국제공조가 이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민간교류를 내세워 기존 제재마저 해제해 주겠다는 엇박자 신호를 보낸다면 북한의 모험주의적 도발은 더욱 대담해질 것”이라고 짚었다.

<세계일보>도 같은 날 사설(‘北 미사일 도발 상황에서 대화 외치는 안보라인’)에서 문재인 정부 들어 두 차례 북한의 북극성2형 미사일 발사 사실을 언급하며 “미국이 다시 격한 반응을 보이고, 유엔 안보리가 비공개 회의를 긴급 소집한 것은 이 때문”이라며 “이런 상황이라면 강력한 대북 경고가 나와야 옳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경제>도 24일자 사설(대북 유화책, '한반도 문제 북한주도‘로 이어질 수도’)에서 “어설픈 대북 유화책은 자칫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에서 한국을 왕따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며 “국제사회는 지금 추가적인 대북 제재를 논의 중이다. 그런 와중에 한국이 앞장서 대북 제재를 푼다면 세계는 우리를 어떻게 볼까”라고 묻고 있다.

‘균형감 결여’를 꼬집는 신문도 있었다.

“균형감 갖춘 북핵 전문가 기용하라”는 언론들

<국민일보>는 23일 사설(‘북한의 미사일 도발에도 남북교류 시동 건 정부’)에서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라인 수장들을 언급하며 “새 수장 면면을 보면 기대보다 우려가 앞선다”며 “참신해 보이지만 북핵 문제를 직접 다뤄본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이 걸린다. 청와대 국가안보실 1, 2차장과 외교부 1, 2차관 등 후속 인사 때 균형감을 갖춘 북핵 전문가 기용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세계일보>도 같은 날 사설에서 “새로 지명된 청와대와 외교안보 수장은 북핵과 4강 외교에 대한 경험이 전무하다”며 “그런 상황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대량 실전배치에 입을 다물고, 남북관계 복원만 외친다면 균형감을 상실했다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다만 <한겨레>는 새 정부의 대북 교류와 대화 제스처를 적극 환영하는 목소리를 냈다. <한겨레>는 23일자 사설(‘남북 민간교류 복원으로 긴장 완화 물꼬 터야’)에서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는 상황에서도 인도적 지원을 비롯한 남북 교류를 복원하겠다는 새 정부의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면서 “한국과 미국의 새 정부가 모두 대북 대화에 의지를 보이는 만큼 북한도 진정성 있는 화답으로 한반도 문제 해결에 나서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시기, 국제 공조, 균형감각 등을 우려하는 언론들의 직필은 이해 못할 바가 아니다. 문제는 지난 수년간 쌓여온 남북관계 단절이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치달을지 모른다는 지금의 한반도 상황이다. 문 대통령도 후보 시절 몇 차례 강조했듯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면 미국도 가고 평양도 가겠다는 말은 그래서 가볍지 않게 들리는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북핵·미사일 문제를 상수(常數)가 아닌 변수(變數)로 생각했다. 북한은 체제·생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벼랑끝 전략, 그러니까 핵개발에 착수했다. 그 시점을 길게는 한국전쟁 직후, 짧게는 1994년 1차 북핵 위기 이전으로 본다. 체제·생존 위기 타개를 위해 핵·미사일 개발에 올인하는 북한을 변수로 여기는 한 한반도 위기는 해법이 없다. 북한이 핵이나 미사일 실험을 할 때마다 남북은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에 접어들고, 결국엔 더 강력한 방어무기 도입→더 센 공격무기 개발이라는 악순환에 빠지고 말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북핵 위기 대응책이었다. 사실상은 한반도를 극단의 대결과 위험으로 내몰았다.

반면 북핵·미사일을 상수로 놓으면 어떻게 될까. 북한은 체제·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핵·미사일 개발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거기서부터 상황 타개를 고민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렇게 되면 복잡한 북핵 문제와는 별개로 남북 민간 교류나 인도적 지원은 계속하게 된다. 교류나 대화를 계속하는 상황에서 도발이나 긴장 조성은 쉽지 않다. 그리고 이런 교류나 대화를 통해 북한을 끊임없이 국제무대로 안내한다면 북한의 도발 명분이나 가능성 모두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결국 나중엔 북핵·미사일 개발의 근거조차 사라지게 된다. 이것이 김대중·노무현 정부, 나아가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대북 정책의 근간이다.

따라서 대북 접촉과 교류의 시기는 여러 언론들이 지적하듯 이른 것이 아니다. 빠를수록 좋다. 당장 남북이 공감하는 민간 교류부터 시행에 들어가야 한다. 물론 그에 앞서 미국과의 협의,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공조는 필수적이다. 이미 트럼프 정부는 대북 제재가 아닌 대화를 상정에 두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오고 있다. 중국도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지한다고 공식 표명했다. 국제사회 분위기도 대북 교류를 지원하는 쪽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균형감에 대한 우려 목소리도 있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하다. 지금은 진보-보수의 문제로 한반도 사안들을 보기엔 상황이 너무 오래되고 심각하다. 오직 국익의 차원에서 북한과 교류할 것은 교류하고, 또 한반도 위기를 조장하는 핵·미사일 문제에 대해서는 따져야 한다. ‘국익 우선’ 접근은 문 대통령도 후보 시절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것을 협상테이블에 올려놔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남북은 박정희 정부 때부터 노무현 정부 때까지 7·4 남북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 공동선언, 10·4 정상선언 등 공식적으로 네 차례에 걸쳐 남북 정상 내지는 당국간 합의를 이끌어낸 바 있다. 그 합의는 변함없이 유효하다.

단, 5·24조치 해제나 개성공단 및 금강산관광 재개까지 언급하기엔 지금의 북핵·미사일 문제가 너무 심각한 것은 맞다. 일단 판문점 연락통신망 등을 재개하고, 이를 통해 실무자간 접촉을 하고 이를 통해 새 정부의 대화·교류 의지를 확고히 전달한다면, 얽히고설킨 남북문제의 실타래는 의외로 쉽게 풀릴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언론들은 ‘시기 상조’나 ‘균형감’ 같은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라, 안보와 체제에 대한 분명한 자신감,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확고한 목표와 신념 등 문재인 정부가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을 건드리는 게 필요하다. 

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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