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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어떻게 치유해야 할 것인가?

기사승인 2017.05.11  19:4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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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 제74호 ‘차기 정부를 위한 정책논쟁’(사회문화)

최근에 가장 크게 주목을 받는 사안은 대통령이 부정부패의 죄목으로 탄핵되어 재판이 진행 중에 있는 사건이다. 이로 인한 사회 분열과 대립이 대선정국과 맞물리면서 심각한 갈등으로 치닫고 있는 형상이다. 대통령과 측근들의 부정부패에 대한 혐의는 등장인물과 무대 현장이 매우 광범위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철저하게 계획되고 조직된 형태로 이루어짐에 따라 대다수의 관객이 몰입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대통령의 연설문 수정에서부터 정부의 인사 및 예산을 비롯하여 정책입안과 집행에 이르기까지 주요 의사결정과정에 깊숙이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심지어 대기업과의 비밀스러운 거래를 통해 막대한 자금을 갈취한 것으로 나타나 정경유착의 낡은 관행을 업그레이드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가짜 뉴스와 외설스러운 내용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가운데 이번 사태의 핵심 스토리는 부정부패의 맥을 유지한 채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내용이었다. 부패 스캔들은 나라를 뒤흔들며 권력의 최상부에서 출발하여 정치적 분열과 사회적 내홍, 문화적 외상에 이르기까지 총체적 난국을 가져왔다. 향후 사회발전을 저해하는 근원적인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에서 상처를 치료하고 지불해야 할 비용과 시간 및 노력이 크다고 하겠다.

한국의 사회문화, SWOT 분석: 강점, 약점, 기회, 위협 요인들

한국 사회의 강점은 역동성에 있다. 속도와 감성을 강조하는 특성은 그동안 체제의 효율성과 함께 사회적 자원을 동원하여 급속한 경제성장의 원동력으로서 작동해 왔다. 능력주의와 평등주의에 관한 사회구성원의 욕구도 매우 강해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함께 가꾸어 나갈 잠재력이 높다. 중앙집권화의 전통과 역사적·문화적 경험의 공유는 신뢰구축을 위한 힘의 원천이자 패쇄적이지만 강한 사회연대의 근원이기도 하다.

반면에 한국사회의 약점은 사회적 권위체계와 신뢰의 붕괴에 있다. 일상 삶에서 접하는 규칙위반과 독과점에 따른 지대추구 경향은 정부정책과 공공선에 대한 사회신뢰를 무너뜨리고 공동체 의식을 와해시키고 있다. 전통과 산업 사회의 특성이 공존하고 있지만 양자의 원리가 조화롭게 안착되기도 전에 도래한 아노미적 상황에서는 사회 전체의 공통분모를 찾기 어렵다. 갈등은 넘쳐나는데 아무도 승복하지 않는 것이다.

한편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에 따른 정보 및 소통의 확산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이는 기회요인이 될 것이다. 물적 및 인적 자원 등 다원화된 사회요소의 순환을 기반으로 사회갈등을 완화시키는 투명한 기제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를 통해 기존의 효율성과 성장만을 강조하는 틀에서 벗어나 각 부문간 상생의 길을 모색하고 사회규범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때 사회갈등은 치유될 수 있다. 공적 및 사적 영역이 만나는 곳에서 사회 신뢰가 정착된다면 비로소 해결의 가능성은 열리게 된다.

대내적인 위협요인을 살펴보면 실제로 사회적 자원의 분배를 둘러싼 갈등의 불씨는 지속되고 있으며, 왜곡된 정치문화의 행태가 시장 및 시민사회의 영역에까지 확장되고 있다. 가족, 집단, 지역, 계층 차원에서 대립과 해체가 진행되고 상대적 박탈감에 따른 분절현상으로 발전은 지체될 수밖에 없다. 대외적으로는 북한의 핵위협과 함께 중국은 사드 배치를 매개로 한국을 공공연히 위협하고 미국은 미국대로 자국의 이해관계에 집중하며 일본은 소녀상을 포함하여 긴장을 야기하는 행위를 보여주는 등 국가적 위기가 가중되고 있다.

권력과 제도에 대한 불신이 가져온 사회적 비용들

이와 같은 좌표는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부족한 요소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사회적 자본으로 외견상 보이지 않지만 사회 내에서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대단히 중요한 무형의 자산을 말한다. 사회구성원의 소통과 신뢰를 기반으로 삶의 피로와 위험도를 줄이고 만족도를 높이면 사회에 대한 애정과 정서적 안정은 쌓이게 된다. 한국의 경우 그동안 사회발전을 거치면서 서구의 선진 제도는 거의 다 들여와서 가지고 있지만, 이를 운영하는 민주적 문화는 아직 정착되지 못한 채 고유한 자조 및 협동의 전통을 잃어감에 따라 공동체의 신뢰가 무너져 버린 상태이다. 곧 제도는 빌려와도 문화는 빌려올 수 없는데,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경제 자본에 치중한 나머지 사회 자본에 소홀했던 것이다.

사회 자본은 결코 단기간에 쌓을 수 없지만, 상호 신뢰가 가능하려면 인권 및 사회정의와 같은 보편적 규범에 대한 사회적 준수가 있어야 하며 이에 대한 공통된 인식과 실천을 바탕으로 한다. 더욱이 위로 올라갈수록 교양과 규범이 있고 사회의 거울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의 지배층은 그렇지 못하며 오히려 천민자본주의 행태가 곳곳에서 나타나 사회신뢰의 형성에 커다란 장애가 되고 있다. 많이 가질수록 많은 책임이 따르는 게 상식인데 상류층은 책임에 둔감할 뿐만 아니라 특권을 남용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사회로부터 존경은커녕 경멸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국제투명성기구에 의하면 한국의 부패지수는 53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가운데 29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전년도에 비해 무려 15단계나 하락한 결과로서 대통령 탄핵에 의한 권력형 부정부패가 결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분배체계와 사회통합수준은 각기 .218(27위) 및 .595(25위)로 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차기 정부의 최우선 국정과제로 ‘부정부패척결’(29.9%)이 ‘경제위기극복’(26.7%)보다 높은 순위를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전국 230명 기초지방자치단체장 가운데 각종 선거법 부패문제로 검찰로부터 기소된 숫자가 110명에 이르고 있으며, 37명의 중도퇴출로 보궐선거 비용만도 500억 원을 상회하는 등 심각한 수준에 와 있다. 유독 정서적 공감을 강조하는 한국문화에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주고받는 행위들이 누적되어 왔던 것이다. 잘못된 일상적 관행들은 대형 비리사건만큼이나 한국사회에서 부패친화적인 문화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차기 정부에 대한 제언: 정치, 경제, 사회 신뢰의 회복

새로운 시대는 결코 저절로 오지 않는다. 더욱이 과거로 회귀하여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힘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강하다. 우리들의 꿈을 짓밟은 대가로 자라온 탐욕과 부패의 세월이 수 십 년인데, 어떻게 세상이 단번에 바뀔 수가 있는가? 새로운 정신, 새로운 문화가 필요한 것이다. 사회발전은 특정 집단이나 기업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전체 국민들이 하루 12시간 이상씩 일하면서 다 같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그 혜택의 절대적 수혜자인 재벌과 국가 및 정치권력이 결탁하여 구성원을 기만하는 행위를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된다. 사회가 철저하게 감시하지 않으면, 우리를 속이고 우롱하는 세력에 의해 부정부패는 언제든지 또 일어날 수 있으며 국민은 업신여겨도 된다는 소리를 또 듣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갈등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며, 건설적으로 활용하면 신뢰를 회복하고 변화의 실마리가 된다. 잃기는 쉬워도 얻기는 힘든 사회구성원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개혁과제의 지속적 수행과 획기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첫째, 한국사회의 에너지를 재충전하기 위해서는 정치권 스스로가 통합의 촉매제가 아니라 갈등을 조장하는 원인 제공자의 역할을 한다는 인식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한국 정치사에서 신뢰의 형성은 미래 권력이 더 잘해서가 아니라 현재 권력의 잘못에 의존해 왔으며, 측근 중심의 구습과 패악의 위험성은 비난의 정치만큼 여전하다. 탄핵 정국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정치인들이다. 그들은 그동안 무엇을 하였는가? 더 이상 국민을 속이는 정치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명제를 명심해야 한다. 현재의 국면을 정치적 공격의 기회로 여기기보다는 스스로 과거의 잘못을 성찰하고 공약(空約)이 아닌 현실적인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반부패전담기구의 활성화이다.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의 설치나 내부자 고발에 대한 실질적 보호 및 보상 강화 등을 반드시 제도화해야 한다.

둘째, 특권과 뇌물 등 잘못된 관행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며 특히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경제적 차원의 부정부패 근절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윤리경영을 강화하고 기득권 구조를 혁신해야 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기초한 사회적 권위체계가 사회 저변에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한다. 서구에서 수백 년 걸렸다고 해서 우리도 같은 시간이 걸린다는 가정은 없다. 제대로 방향을 잡고 노력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시간과 노력으로 성숙된 기업문화를 구현할 수가 있다. 대통령의 사면권 폐지와 기업부패방지법 및 사회적 책임법의 제정, 정보공개의 확산 등 정책적 방안은 부패문화를 개혁하고 기업경쟁력을 강화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오늘의 위기상황은 경제성장의 규모만큼 부패의 정도가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셋째, 사회구성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는 시민의식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 공동체 현안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갈등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시민의식을 자연스럽고 당연시하도록 생활화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이 필요하다. 사회적 합의과정을 거쳐 각 분야별 공정한 윤리기준을 수립하고 법제도적 절차의 평등한 집행에 기초하여 투명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를 통해 사회규범과 법질서를 우직하게 지키는 것이 결코 바보나 낭비가 아니라는 원칙을 정착시킬 수가 있다. 나아가 시대적 변화를 막는 각종 규제와 관습을 타파해야 하며 사회구성원이 각자의 능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장(場)을 마련해야 한다. 참다운 시민문화의 실천에 따른 파급효과는 막대하며, 작은 결혼식에서와 같이 바람직한 행위규범이 사회전반으로 확산될 때 갈등해결을 위한 사회신뢰의 길은 활짝 열리게 된다.

갈 길은 먼데 마음은 조급하며, 쉽고 빠른 지름길은 아직 없다. 다행히 대통령 선거를 눈앞에 두고 있으며 새로운 사회에서는 현상유지가 아니라 구성원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하고자 하는 노력이 변화의 씨앗이 된다. 이제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가 바로 우리의 미래이다. 우리가 객체에서 주체가 될 때, 사람이 바뀌는 만큼 세상이 바뀌기 때문이다.

필자 소개

서문기는 서울대 사회학과를 거쳐 미국 브라운대에서 사회학 박사를 받았으며, 영국 옥스퍼드 대학원에서 Senior Associate Member로 활동한 후 현재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회과학연구소장 및 한국사회학회, 한국정보사회학회, 한국사회과학협의회 이사를 역임하고, Korean Honor Scholar, 인촌기념펠로우, 매경비트펠로우, Best Teacher 등 다양한 학술활동을 하고 있다. 전공분야는 사회발전론 및 사회정책, 정보사회학이며, 주요 연구업적으로 『Developmental Transformation in South Korea』, 『한국사회의 위험과 안전』, 『한국의 오늘과 내일을 말하다』, “한국사회의 정부신뢰구조,” “한국의 사회갈등 구조연구,” “정보사회와 골드칼라,” “The Internet Edge,” “Quality of Life and Happiness” 등 다수가 있다.

*본 게시물의 저작권은 동아시아재단에 있습니다.

서문기 mgsuh@s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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