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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행여 ‘최순실 국면’을 북핵으로 덮을 생각일랑은

기사승인 2016.10.31  21:2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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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실세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사면초가에 몰렸다. 청와대 수석들이 전원 사표를 제출했고, 여당인 새누리당은 대통령에게 거국내각을 제안했다. 논란의 중심에 섰던 최 씨도 급거 귀국해 31일 검찰에 소환됐다. 반면 야당은 특별법에 의한 특검 및 철저한 진상규명, 대통령의 2선 후퇴를 요구하고 있다.

대통령 하야, 탄핵 요구 목소리가 SNS 등 온라인은 물론 오프라인에서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대통령 지지율은 10%대로 곤두박질쳤다. 대통령과 여당은 탄핵, 하야까지 받아들일 준비가 안되어 있는 것 같지만 국민들은 이미 박근혜 대통령을 마음속에서 탄핵해버린 양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정직하고 양심적인 대통령이라면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자신부터 수사를 받겠다고 나올 것이다. 반면 거짓되고 비양심적인 대통령이라면 이런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한 정략을 도모할 것이다.

오늘자 <한국일보> 기사를 보며 후자의 가능성이 없지 않은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기사의 요지는 박정희 대통령이 방위산업체의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시작한 ‘방위산업진흥회의’가 36년 만인 오는 11월 7일 열릴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회의 이름이 ‘북핵·미사일 대응을 위한 국방연구개발 활성화 전략회의’로 둔갑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 소식통은 “최순실 사태가 터지고 나서 윗선의 갑작스런 지시로 회의 명칭과 성격이 바뀐 것으로 안다”며 “방산업계의 위기극복을 위해 업체의 의견을 가감 없이 듣는 게 아니라 마치 호위부대로 동원하려는 듯한 인상이 짙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올해 초부터 국내 방산업체들을 상대로 수출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해온 방위사업청으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격이 됐다는 게 신문의 지적이다.

1일부터 도쿄에서 갖기로 한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 논의도 그런 차원에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지난 2012년 이명박 정부는 이 협정을 밀실 추진하다 국민적 반대 여론에 부딪혀 취소한 바 있다. 이번 협정 추진에 대해 김진표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국방의 문제까지도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를 해결하기 위해 이 시점에 꺼낸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가 북핵 위기를 지나칠 정도로 강조해온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올해 1월 6일 북한이 수소탄 실험(4차 핵실험)을 감행한 이틀 뒤인 8일 대북 심리전 방송을 재개했고, 2월 10일엔 남북 민간인 교류의 마지막 끈이었던 개성공단을 전면 중단(폐쇄)한 데 이어, 7월 8일엔 중국과 러시아가 강력 반발하고 있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도입을 전격 발표했다. 북핵 대응 카드라는 게 박근혜 정부의 설명이지만 대북 심리전은 휴전선 인근 우리 민간인들의 우려와 인명 피해를 가져올 수 있고, 개성공단 폐쇄 역시 북한보다는 우리 측 기업이나 근로자·가족들에게 끼치는 폐해가 크고, 사드는 북핵에 대한 실질적 방어가 아닌 심리적 방어에 그치는 것으로 중국의 반발과 한반도 긴장만 고조시킨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이러한 결정 하나하나가 관련 부처간의 심도있는 논의나 주민 설득 없이 군사작전 하듯이 진행하는 바람에 정책 혼선과 여론 분열이 컸던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경제나 민생 문제 등 아킬레스건을 덮기 위해 북핵 문제를 일부러 강조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 제기가 있었다. 지난 24일 박 대통령이 국회 연설에서 제안한 개헌도 그런 차원에서 기대나 호응보다는 비판과 우려가 더 많았다.

‘북풍’은 역대 독재정권들이 선거나 내부 국면에서 불리할 때면 어김없이 사용했던 정략이다. 한때 그 북풍은 선거 결과를 뒤집거나 국면 전환을 가져다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북풍은 통하지 않는다는 걸 지난 20여 년의 선거 결과와 북핵 실험에서도 흔들림없는 시민들의 일상생활이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 않을 거라 믿지만 행여 박근혜 대통령이 국면 전환을 위해 북핵이나 다른 정략을 생각하고 있다면 속히 내려놓길 바란다. 이미 통치력을 잃은 박근혜 정부가 스스로 마침표를 찍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유코리아뉴스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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