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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왜 붕괴되지 않는걸까?

기사승인 2016.09.07  16:5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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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성시스템과 극장국가 프레임

1994년 김일성의 사망에 이어 수많은 아사자를 초래했다고 알려진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를 전후로 학계와 언론을 통해 북한 붕괴론은 본격적으로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우리의 인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통일방정식에 북한은 통일의 대상이기보다 흡수의 대상, 통일번영과정의 영토, 자원적 편익의 개념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 사실인 듯하다.

물론 흡수통일이라 함은 무력통일이 아닌 평화적인 방식의 흡수통일이다. 이러한 시나리오는 남북한간의 평화를 의미하지 북한 내의 평화까지 소망하진 않는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평화통일은 북한체제의 종식을 잠정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것이며, 극단적으로 북한 내의 급변 상황이 일어난다고 한들, 그리 놀라울 일은 아니다 라는 상황인식도 자리잡고 있다.

우리는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두 차례의 세습을 통한 북한의 정권 승계과정을 목도했다. 본 에세이는 북한 붕괴를 염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이들의 ‘솔직한 의도’에 반하는 저들이 무너지지 않는 나름의 합리적 정황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인민대중 탄압국가가 70년 넘게 버틴다는 것

저 가난하고 인민대중에 대한 탄압을 지속하는 체제가 어떻게 70년이 넘게 유지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어떠한 조건에서 국가는 무너지는가 라는 관점에서 접근되어야 한다. 무너짐은 다양한 관점의 해석을 필요로 한다. 평화적 또는 투쟁적 정권교체로 인한 김부자 세습체제의 종결만을 말하는가? 기득권 엘리트집단의 교체를 의미하는가? 사회주의 체제전환이라는 근본적인 구조의 변화를 말하는가? 붕괴라는 것이 갖는 성질의 복잡다단함을 간과해서는 생산적인 논의를 끌어내기가 어렵다. 여기서는 '북한 지배집단의 교체'라는 조작적 정의로 논의를 전개해 가고자 한다.

우리는 흔히 외부적 충격이나 내부적 변수로 인한 북한의 붕괴를 거론해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같이 북한을 외부의 무력 침공에 의해 무너뜨릴 수 있는가를 살펴보면, 중국과 러시아의 동북아 정세안정에 관한 의지가 확고하므로 현실가능성이 낮다. 이미 여러 번 시도되었던 경제적 제재로 인한 봉쇄정책으로 무너뜨릴 수 있는가, 역시 중국의 공식·비공식적인 대북 경제지원으로 인해 비현실적 가정이 된다. 외부로부터 새로운 문화사상이 들어갈 수 있느냐의 관점에서는, 비공식적인 루트로 문화사상의 침투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이 역시 제한적이며 북한의 붕괴를 거론할 수준으로 올라온 의제는 아니다. 결과적으로 외부요인으로 북한 붕괴의 가능성을 설명하기는 어려움이 따른다.

다른 한편으로, 내부적으로 붕괴되는 경우에 필요한 변수는 무엇이 있는가. 흔히 군부 쿠데타, 민중봉기의 가능성이 있는가. 평화적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있느냐의 질문들의 난립현상을 목도하게 된다. 내부적으로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이 제로라고 할 수는 없다. 김정일 시대 선군정치의 위상이 김정은 시대에 와서 경제관료들의 중용과 부침 많은 정치엘리트들의 이동으로 인해 내재적 불만들이 쌓여가고 있을 수 있다. 김정은이 정권 초기에 행하는 숙청 방식에 대한 평가도 체제불안요인으로 작동할지, 체제 유지를 위한 합리적 정권교체 수단으로 평가될지, 당장은 성급한 면이 있을 것이다. 다만 선대의 경우와 대비해서 어떠한 특징을 갖는지 살펴볼 필요는 있다.

   
▲ 2011년 1월 북한의 '아리랑' 공연 장면 ⓒFlickr.com

내부 쿠데타는 가능한가
김정은 체제의 숙청이 선대들의 방식과 맥락적으로 연결되고 있는가의 문제도 중요한 대목이다. 북한 정권수립 초기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만주파는 강력한 결속력을 가지고 있었다. 1950년대 권력 투쟁은 각 파벌 숙청 대상자들의 책임소재 문제도 있으나, 전체적으로 김일성 권력수립의 과정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 과정은 권력 없는 빈농, 고농들, 즉 밑바닥에서부터의 성장 세력이 당의 중심으로 설 수 있는 길을 터주는 계기로 작용했다. 김정일 시기의 숙청은 그네들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가 존재했다. 김일성종합대학 출신을 비롯한 젊은 엘리트 계층에서 추동하는 사상, 기술, 문화의 3대 혁명소조 운동과, 이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숙청은 이른바 김정일 세대의 등장을 대내외적으로 공표하는 상징적인 작업이었다. 김일성에서 김정일로의 단순한 부자 세습의 문제가 아니라, 김정일로 대표되는 새로운 혁명세대, 그들이 새롭게 권력을 창출하는 과정과 연관된다. 물론 김일성을 옹위했던 항일혁명투쟁세대들은 김정은 체제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권력의 핵심으로 있는 것이고, 비유컨대 신라의 골품제도인 성골, 진골을 뒷받침해주는 이른바 육두품 엘리트들이 바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정은은 어떤 의미의 세대인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김정은의 숙청과 체제 불안정성을 해석하는 주요 단초가 될 것이다. 김정은을 옹위하는 것은 여전히 빨치산 그룹들이다. 김정일처럼 3대 혁명소조나, 혁명가극과 같은 문화산업을 통해 성장한 세력이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형국도 아니다. 새로운 세대교체, 새로운 사회의 창출이라기보다는 기존에 유지되는 시스템 속에서 자신에게 충성을 바치기 위한 상호 경쟁을 촉진하는 정도의 의미로 파악된다. 그것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자원이 될 수 있느냐는 의심스럽고 노정된 한계가 따른다. 충성경쟁이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어도 장기화되면 피로도가 누적된다. 결국은 충성은 안하고 눈치만 보게 되거나 이른바 ‘예스맨’만 양산하게 되어 체제, 경제의 비효율성을 가속화시킨다. 잦은 숙청을 통한 통치방식 자체는 지속가능한 체제존속과는 거리가 있다.

숙청의 후과(後果)로서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다고 한들, 이것이 곧 새로운 체제의 등장을 의미하지도 않을 것이다. 집단지도체제의 권력으로 재편된 북한이라면 굉장히 논리 정연한 방식으로 일부 수정노선이 제시될 것이고 인민대중은 또한 그러한 지도방식에 편승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민중봉기는 시스템적으로도 의식적으로도 실현되기 어려운 이상적인 이야기이다.

북한은 체제·이념적으로 강고하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사회 전반적으로 수십 년간 수령의 ‘은혜’가 넘치는 시스템에서 공생한 민중이 목숨을 걸고 봉기할 이유는 없다(고난의 행군 시기 청년기를 보낸 혁명4세대보다 20, 30년 젊은 1990년과 2000년대 중반 사이 태어난 이른바 ‘사이세대’가 어떤 의식체계를 구축하고 있느냐의 변수를 보아야 하지만, 아직 뚜렷한 이상징후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경제적 변수만으로 대규모 민중봉기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은 가진 자, 없는 자 모두가 굶어 객사하는 경우에 이를지라도 북한의 통치시스템은 작동된다, 라는 고난의 행군의 경험으로 확인된 바 있다.

북한에서 민중봉기가 불가한 이유
앞에서 살펴본 몇 가지 정황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다시 이 질문을 상기해보아야 한다. 북한은 왜 유지될 수밖에 없는가. 단순히 설명하면 붕괴되지 않을 만큼의 강고한 체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강고하다는 것은 강한 힘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부러지지 않을 유연성을 함께 갖고 있을 때 강고하다고 얘기할 수 있다. 국가폭력의 일상화로 설명되는 인민대중들에게는 가혹한 강성체제이지만, 또 하나는 이것을 보완하고 있는 연성체제 유지 시스템이 발달해 있고 탁월하게 작동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체제의 유지에서는 이미 궤도에 오른 연성시스템이 상당히 중요할 것이다.

이러한 연성시스템은 무엇으로 유지할까. 가부장적 혹은 권위주의적인 문화, 적대적 위기의식의 끊임없는 재생산과 맞물려 하나로 뭉치는 민족주의적 성향,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을 넘어가며, 김정은 체제 들어 점진적 경제적 성취가 이뤄지는 부분에 기인하는 미래에 대한 기대 등으로 설명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아무리 불만이 나와도 북한사람들은 민족의 통일을 기대한다. 지금 어려워도 언젠가 통일된 조국이 우리를 구원해줄 것이다, 라는 기대이며 그 과정에 미 제국주의가 타파되면 우리 민족은 잘 살 수 있다, 라는 신념이 내재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민중의 신념과 기대심리가 연성시스템의 골자를 이룬다. 그런 나라가 무너질 것이라 주장하는 것에 의문을 달 수 있어야 한다. 역으로 북한은 왜 무너져야 하는가? 라는 역발상이다. 현실적으로 북한은 무너질 지점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를 면밀히 고찰하기 위해서는 강성시스템과 연성시스템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분석하는 것이 남겨진 숙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정병호, 권헌익 교수가 클리퍼드 기어츠의 <극장국가 이론>을 북한에 적용하여 제시한 결과로 설명될 수 있다. '피바다' '꽃파는처녀' '아리랑 대축전'의 과시적 스펙터클이 극장국가의 뛰어난 통치 기제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집단의 통치방식에 강제적 혹은 자발적으로 조응하는 인민대중의 특성이 바로 연성시스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이우영 교수는 예술과 문학은 중요한 정치적 행위이며 김정일은 사회주의체제의 정치지도자로서 공적 임무를 수행했다고 해석한 바 있다. 통치 역사가 짧은 김정은은 차치하고, 김일성, 김정일 시대에 꿈꾸었던 북한의 비전이 비단 이 부자의 일방적 전유물로 그쳤다는 견해에 관해서는, ‘카리스마 권력’의 예술과 상징을 통한 정치적 기술이 인민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침투했다는 점에서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반박이 가능하다. 김일성이 없는 북한에서도 지속적으로 ‘주체사상’은 작동한 것이다. 그들이 갈망한 ‘강성대국’에 관한 그리움은 체제유지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북한사회의 ‘주체’에서 목도하듯, 사람이라는 객체는 본디 상징에 취약한 존재일 것이다. 기어츠가 이야기한 ‘극장 국가’ 개념은 비록 북한이라는 체제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지지 않는 비유였다 할지라도 연성시스템을 설명하기에 매우 흥미로운 접근방식이다.

자발적 통치방식 ‘연성시스템’ 이해하기
이러한 북한사회의 연성시스템 구축은 나름의 사연이 있다. 김일성 사후 ‘대국장’의 정점을 고난의 행군으로 오르며 김정일은 충효일심에의 방식을 인민대중에게 명하였다. 이미 1985년 혁명열사릉 개건공사에서 김정숙이 1세대 혁명유산의 중심으로 서게 되었던 것은 김정일의 기획이었다. 이 지극한 효심으로 대변되는 묘지개축 행위는 충효일심의 대중동원 방식을 탁월하게 이끄는 자양분이 되었는데, 사실상 1949년 작고한 어머니 김정숙이 아들 김정일 체제의 지탱을 위해 감당해야 했던 빨치산 혁명투사로서의 마지막 정치적 행보였는지도 모른다. 이에 따라 극장국가의 구성원들은 정권이 기획한 과시의 정치를 전근대적이거나 봉건적 현상이 아니라 현대적인 정치적 수행으로 체화하여야만 했다.

인민은 정권이 직면한 카리스마 세습의 딜레마를 극복해 왔을 뿐 아니라 당과의 연결 고리인 영광의 ‘인전대’ 역할을 충성스럽게 자처했다. 그 결과는 고난의 행군 시기, 배급제가 붕괴하는 과정에서도 충효에 정성을 다하는 가족구성원을 향해 근엄한 표정의 가장이 자행하는 착취라는 뼈아픈 모순으로 귀결되었다. 이는 북한 고유의 연성시스템의 작동이 초래한 비극임에 분명했다. 세계에서 손에 꼽힐 정도의 빈곤국가이자 인권취약국가인 북한이 세계 속의 조선이 아닌 조선 속의 세계를 주창할 수 있는 공간이 혁명렬사릉과 국제친선전람관 그리고 5.1 능라도 경기장 뒤에 수놓아지는 아리랑 집단체조의 향연 외에 또 어디에 있을까.

만주에 기원하는 극장국가의 디렉터가 세 번째 바뀌었다. 김정은 역시 정치권력에 장애가 되는 요소에 관해 본능적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아는 듯하다. 북한사를 보면, 하부 토대가 없던 시절에도 인민들은 상부의 실정에 섣불리 균열을 내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탁월한 연출가의 의도에 버금가는 bottom-up 식 충성도를 유지하였다. 그것은 실로 위대한 것일 수 있으나, 그 초연함은 자기모순 앞에는 한없이 처연해지기 쉬운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맑스가 주장한 사적 유물론에 등장하는 하부구조와 상부구조의 조응의 측면에서, 한없이 자애롭고 때로는 근엄하기 그지없는 상부구조 아래에는 인민대중들의 피와 땀으로 얼룩진 피폐하지 짝이 없는 처절한 하부구조로 점철되는 반세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저항의 역사’의 부재
마지막으로 북한이 붕괴하지 않는 이유로 인민대중에게는 조직적 저항의 역사가 부재함을 꼽을 수 있다. 그 경제적 착취의 대상군조차 계층간·세대간 복합구조로 얽혀 있어 명확치가 않다. 부계 지도체제는 영도자의 역할을 하지만 그에 대한 집단적 원망의 표출은 가능하지 않기에 북한사회 내 다음 단계를 향한 저항은 원천적으로 싹트기 어렵다. 비난의 화살은 당 일꾼, 내각 구성원 등 령도에 부응하지 못한 관리들에게 돌려도 된다. 다만 이를 넘어서는 대안시스템을 구축할 세력도 이를 지원할 외부세력이 전무하다는 것이 난제이다.

베버는 카리스마의 궁극적인 몰락이 자연스런 역사적 과정의 일부라는 자연소멸의 논리를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북한은 이러한 자연소멸의 힘에 ‘주체’의 이름으로 정면 저항하고 있다. 나의 가족과 벗과 이웃이 쓰러져갔을지언정, 수령과 국가를 부정하지 않았다. 남한으로 온 북한이탈주민의 일부가 여전히 북한사회에 대한 향수와 자부심을 지니고 산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이는 곧 극장국가의 핵심 상징인 '총대철학'의 끈질긴 작동이며, 아직 극장 공연이 끝나지 않았다, 라는 인민의 호소력 짙은 절규로 볼 수 있다.

북한에서 이제껏 ‘주체’가 작동해왔던 것과, 김정은 시대에도 당장은 흔들림없이 작동할 것이라는 관측에 대해 '왜'라는 수많은 질문이 붙고 있다. 북한정권이 ‘언제까지 가능할 것인가’ 라는 세간의 질문을 지도부 스스로가 상쇄시키려면, 혁명 빨치산 세력 스스로가 대중적 기반으로 돌아가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빨치산 유산에 기원을 둔 북한 체제의 혁명적 역사관 전체를 손대지 않고서는 실행되기 어려운 작업일 것이다.

   
 

2012년 공식 집권 이후 엘리트계층의 과감한 숙청을 단행하며 권력 기반을 공고히 다져가는 가운데, 김정은이 극장국가로 토대를 구축한 북한 고유의 연성시스템을 어떻게 원용(援用)해 나갈 것인지가 ‘북한은 왜 무너지지 않는가’라는 물음에 일련을 답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한기호/ 우양재단 과장, 소셜캠페이너 '탈분단통일연구소' 운영자, 연세대 통일학 박사과정

*이 글은 한기호 님의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kiho.han.7/posts/1265747426803310)에도 게재됐습니다.

한기호 kyosoma@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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