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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인권은 어떻게 연어가 되었나?

기사승인 2018.05.11  09: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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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해 국면과 맞닥뜨린 북한인권 문제

요 며칠, 정상회담을 사이로 나를 포함하여 울분을 토하듯 세대간·이념간 다양한 이슈와 의견들, 감정들이 세상 밖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묵혀두었던 응어리들이 터져 나올 때는 ‘기존질서’와 충돌하는 지점도 자연스레 발생한다. 우리는 태생부터 냉전과 벗삼아 살아왔고 이 같은 충돌과 갈등에 익숙하지만 상대를 인정하며 의견을 모으고 합의를 도출해내는 일반적인 컨센서스 절차에는 서툴다.

그러한 충돌의 예로, 최근 북한인권에 대한 감정을 여과없이 표출한 대학생과 이를 타이르는 한 기성세대와의 온라인 상에서의 글이 화제다. 이화여대에 재학중이라는 여학생의 글도 찾아보았고, 이에 대응하는 유OO씨 페이스북 상의 장문의 글도, 그리고 그를 지지하는 수많은 댓글도 보았다. 두 사람의 주장 모두 일리가 있으나 논리의 맹점도 있다.

이 학생은 김정은을 귀엽다고 표현한 한 친구들에게 북한인권을 유린한 자에게 어떻게 그런 태도를 보일 수 있느냐는 거친 언변을 쏟아내었다. 북한인권 개선을 주장하는 이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반응이다. 그러나 이는 갈등과 대립구조로 남북관계를 바라볼 때 또한 북한인권 이슈 하나로만 북한을 다그칠 때 우리는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이런 논지가 득세할 경우 지난 정부에서 목도하였듯, 관계개선으로 인한 인권 낙수효과 역시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관계개선이 되면 북한인권이 좋아지느냐? 예상컨대 저 사회가 열리면 열릴수록 북한인권 수준은 적어도 지금보다 나빠지기는 어렵다.

이와 같은 기조 하에 유OO 씨는 어른이 학생을 타이르는 논조로 “남한의 민주주의를 성취한 사람이 문재인 같은 사람들이다. 북한인권을 페북에 언급한다고 북한인권이 나아지느냐, 먼저 남한의 잔혹했던 역사에 관심을 갖고 난 다음에 세상으로 눈을 돌리라”는 취지로 본인의 입장을 설명한 듯하다. 이는 필자도 탈북민 지원사업 초기에 북한인권현장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탈북청년들에게 설파했던 논리인데 중간에 약간의 수정을 필요로 했다. 우리 사회에 대한 인권 혹은 북한에 대한 인권 모두 개인이 선호하고 관심을 갖고 발언을 하는 데 구태여 우선순위를 따질 필요가 있을까 라는 부분이다.

유OO 씨가 언급한 대로 국내 인권상황은 많이 호전되었으나 북한은 가시적으로 인권이 개선되지 못한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남한을 노크한 3만 2천의 탈북민의 이야기가 모두 거짓이 아니라면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팩트이다. NPO 후원자를 예로 들어보자. 국내아동에 관심이 있는 사람과 북한아동, 내전지역의 아동이나 난민신분의 아동에 후원을 바라는 사람, 모두 선호 층위가 다양하고 개인의 자유이다. 제도권 내 개인은 민주시민이자 세계시민이다. 굳이 절차를 따져가며 인권논의의 자리와 순서를 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일반론으로 확대해서 보자. 북한인권 개선과 남북관계의 개선은 양립하기 힘들다? 오래된 명제처럼 이 사회에 자리잡아 왔다. 짚고 넘어갈 문제는, 북한인권 개선의 목소리가 전혀 북한사회에 준 영향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생각하는 부분에 있다. 이는 단정하기 어렵다. 이북의 어린이들에게 빵도 보내야 하지만, 북한인권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거나 특별히 관심이 있는 이들은 나름의 루트를 통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다. 북한 정부 입장에서 인권의 목소리가 지속해서 귓가에 맴돌게 되면 어떻게 될까. 짜증날까? 짜증나겠지. 그런데 짜증만 날까? 눈치도 보겠지. 국제사회의 법인을 개인 차원으로 치환해 가정하면 이해가 빠르다. 단지 남북관계가 공세적 북한인권 현안에만 치중하거나, 과정에 정치, 안보 이슈가 결합하면, 그 효과는 반감되는 것이 그간의 문제였던 것이다.

우리 사회의 대북인권 관점이 국가안보에서 북한주민 개개인의 인간안보로 전환될 때 보다 보편적 정서에 기반한 논의들이 가능하다. 예로 옆집에 부부싸움이 났다고 가정하자. 칼을 든 남편과 아내, 내 입장에선 옆집 남편을 자제시켜야 할 것이다. 분명 그 부분을 지적해야 하는 것인데 평소 관계가 나빴다면 이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고, 관계가 좋았다면 옆집 남자는 나의 지적에 자신의 폭언, 폭력을 반성하고 현실을 돌아볼 여지가 있는 것이다. 이는 반어적으로 현 정부가 북한인권과 탈북민 의제에 관해서는 기존 정부에 비해 운신의 폭을 넓게 가져갈 수 있는 포지션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김정일, 김정은 위원장이 현 여권과의 정상회담 시 먼저 현실적인 탈북민 문제를 언급한 것은 의미있는 대목이다.

현 정부에 완곡한 목소리로 탈북민에 대한 관심을 호소했던 필자의 지난 한겨레 칼럼도 이와 같은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지난달 강경화 외교부 장관 역시, 정상회담 의제로는 당장 적절치 않으나, 북한인권 개선을 도모하는 것이 정부의 확고한 의지임을 분명히 했다. 우리는 이런 현실적인 입장은 고려하되, 현존하는 북한인권 현장의 수요를 인정하고 방식의 수준과 효과성 등에 대한 논의는 지속적으로 수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복기해보건대 2013년 차인표 씨가 라오스 탈북민 북송을 반대하는 집회 현장에서 목소리를 높일 때, 현 여당 진영의 어떤 기관이나 단체에서 집회나 촉구의 목소리 혹은 조용한 외교의 흔적을 개인적으로 발견하지 못했다. 물론 나 역시 마음만 보탰을 뿐 집회에 참석하지 못했기에 9명의 탈북소년들이 자의에 반해 북송될 때 무력했던 자화상에 대해 부끄러움을 갖고 있다. 요지는 국제사회에 연대하여 움직일 수 있는 정부의 외교행정의 기본범위까지 제한을 두진 말자는 이야기다.

한편, 이러한 현장 수요와 활동으로 북한인권은 개선되었나라는 질문이 가능하다. 유엔 COI와 기타 국내외 단체의 북한인권 운동을 통하여 일시적이나마 중국과 제3국에서 행해지던 북한경제난민의 북송이라든지, 내부 인권 상황을 국제사회에 알리려는 노력들로 미미하나마 변화가 감지된 부분이 있다. 이런 견지에서 미 국무부는 북한인권 프로그램을 위해 대기중인 이용가능한 연례 기금, 즉 잠재적 인권개선 지원금을 지난해 265만 달러 대비 두 배로 늘렸다고 한다. 미 민주주의진흥재단(NED)은 북한 반인도범죄 디지털 매핑을 제작하였으나,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북미회담은 성사되었다. 물론 이를 집행하는 탈북민 단체를 비롯한 기구들이 얼마만큼 성과를 거두었는지 그 실효성에 의문을 갖고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국제사회 공동행동의 작은 결실로 북한정부로 하여금 유엔인권이사회 보편적 인권정례검토에 소극적으로나마 수용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인권에 관한 목소리 자체를 인정해야 하는 근거가 된다. 방식의 문제-삐라와 같이 DMZ 지역에서 작은 군사분쟁(MID)을 유도했던 방식, 북한거주 주민의 도강비를 세금으로 전용했던 문제를 비롯 제도와 충돌하는 방식-는 있을지언정 보편적 정서에 기반한 인권 개선 목소리 자체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것은 넌센스다.

물론 북한인권 문제에 한하여 남북한 특수관계를 상수로 볼 여지도 있다. 이에 따라 남한정부의 표면적인 활동의 제약은 기정사실이고 이해해야 할 대목이다. 현 여당의 노력을 폄하해서는 안 될 지점도 있다. 관련 데이터 수집의 어려움이 있으나, 김영삼 정권 말기 북한은 고난의 행군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남한 땅에 도착한 한 탈북자는 “토끼는 굶어죽고, 노루는 도망치고, 이 땅(북한)에는 승냥이와 여우만 남아 물고 뜯고 한다.”고 당시 상황을 비유적으로 설명했다. 그럼에도 국내로 입국한 탈북자는 연간 86명에 불과했다. 김대중 정권 말에는 1,139명, 노무현 정부 말에는 2,544명으로 10년 사이 30배 가까이 늘었다. 탈북과 입국간에 다소의 시간이 소요됨을 감안해도 유의미한 수치이다. 조용한 대중, 대 국제 외교의 분명한 성과라 볼 수 있으며 2010년 북한이탈주민 지원의 컨트롤타워인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 설립의 동력이 된 것도 이 같은 정황 때문이다.

종합해보건대, 현재의 상황은 마치 연어(북한인권)가 대세(화해무드)를 거슬러 오르려는 것 같다. 거대한 물결에 숨이 찬 연어가 편승하여 함께 흘러갈 수 있도록 자리를 남겨두었으면 한다. 이 학생과 유OO 씨는 어쩌면 우리 사회 대표적 갈등의 대변자일지 모른다. 정상회담이 잘되는 것은 필자부터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대목이다. 거친 언변과 감정 섞인 토로는 차치하고 북한인권과 정상회담에 대한 일각의 우려까지 현재 분위기에 편승하여 대중적으로 압도하거나 묵살하지는 말자. 분단사회 극복을 위해 모두 필요한 의견들이고 이는 건강한 사회라는 방증이다.

평화와 통일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이 시점에서 우리는 여느 때보다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관련 이슈들이 쏟아질 것이고 이를 잘 견뎌내면 대립과 반목이 아닌 평화로 가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70여 년간 분단경계선은 굳건했다. 우리의 생각도 경직되어 있는 부분이 많을 것이기에 누구보다 앞서 열어놔야 한다. 그간 마주앉지 못했던 북한 주민들과의 ‘평범한 담소’를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그래야 한다.

한기호/ 탈분단 칼럼니스트·연세대학교 통일학 박사수료

한기호 kyosoma@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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