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시도를 중단하라

기사승인 2015.09.15  10:24:38

공유
default_news_ad2
ad43

한국사 교과서를 검정에서 국정으로 전환하겠다는 의도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이를 보면서, 몇 년 전 교과서 채택에서 망신을 당했던 교학사 교과서 집필 책임자가 ‘국정화’를 예고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국정화가 마치 0% 채택률 교과서 저자가 예고한 것을 따르는 것 같아 모멸감이 든다. 나는 그의 논거를 교언영색이요, 치욕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국정화는, 교학사 교과서에 그렇게 공을 들였던 정부가 그것이 실패하자 그 연장선상에서 들고 나온 것일까. 정부의 딱한 사정은 말할 것도 없고 국민으로서도 그런 국정화에 신뢰를 줄 수 없다.

국정화의 논거는 아직 아리숭하다. 어제의 반대론자가 오늘의 찬성론자로 표변하여 설쳐대니 어디까지 곧이들어야 할지 헷갈린다. 단일교과서로 가르쳐야만 분단하에서 사상적 통일을 기할 수 있고 대입입시도 혼선을 피할 수 있단다. 김무성은 ‘학계 대부분이 좌파’이고 현행 검정교과서가 ‘좌편향’이며 ‘자학사관’에 입각해 있다고 외쳐댄다. 이런 주장은 무지에다 무책임하다. 정부수립 초기 혼란이 심했지만 교과서는 검인정이었다. 대학입시의 혼선을 우려하지만, 검정제 하의 다른 과목 입시도 그랬는지 대답해야 한다. 친일·독재·부패 청산 주장을 ‘좌파’로 모는 것은 일종의 선동이다. 교과서가 ‘좌편향’이라고 불어대는 것은 그 교과서를 검정한 새누리정권 스스로를 모독하는 말이어서 명예훼손감이다. ‘자학사관’이란 말도 1990년대 중반에 조성된 일본의 반성적 역사관을 두고 당시 아베 등 자민당 극우세력이 이를 비난하면서 써먹은 말이다. 하필이면 그런 용어를 빌어 우리 교과서와 역사관에 침을 뱉다니!

국정화를 반대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국정화는, 국정제→검인정→자유발행제로 가는 세계적 교과서 발행 추세에 역행한다. 국정제를 시행하는 나라가 북한과 몇몇 나라뿐인데 굳이 그 대열에 동참하여, 정부 스스로 ‘종북’에 앞장서고 있다는 오해를 자청하겠다는 건가. 따라서 국정화 대신 교과서 제작의 자율성을 허용하는 것이 이 시점에서 옳은 방향이다. 국정화는 학계 교육계가 반대하고 공론 또한 부정적이며, 학자, 교육자와 국격에 부끄럼을 준다. 이와 관련, 필자는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때에 일본 측으로부터 국정제를 사용하는 한국이 검정제를 사용하는 일본의 교과서를 비판할 수 있느냐는 비판과 함께 망신을 당했다. 국정화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규정한 헌법 정신과도 합치되지 않고 우리 사회의 역사적 상상력과 비판능력 및 문화 창조의 역량을 크게 위축시킬 것이라는 지적이다. 비판정신과 상상력을 상실한 역사교육의 결과가 어떤지 알지 않는가. 천편일률 ‘나랏님 찬양’을 읊어대는 TV에 비쳐지는 저 아이들의 모습 말이다. 전체주의는 이렇게 역사 해석의 창의성과 민주성, 다양성마저 말살한다. 그래도 국정화를 고집하겠다는 건가.

국정제는 유신시대의 산물로서 국사교육의 국가독점화를 가져왔다. 이 시점에서 국정화가 노리는 것은, 부정적인 역사인식을 바꾼다는 명분으로, 결국 한국 근현대사의 주체를 독립운동 및 민주화운동 세력에서 친일파와 독재정권 세력으로 바꿔치기 하려는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적 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을 강조하는 헌법과도 배치된다. 그러지 않아도 국사교과서 집필지침에서 근현대사와 독립운동사 축소 의도가 불거지고, 민주화운동의 강조는 금기시되면서 좌편향으로 몰리고 있다. 검정제하에서도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강조가 좌편향․자학사관으로 몰리는데, 국정제로 될 경우 헌법정신에 따라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 평화통일의 역사가 제대로 서술될 수 있을까.

전국의 중고등학교 역사교사 2,255명이 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고, 더 많은 수의 교사들이 반대한다. 최근에는 대학 교수 및 관련학회들, 독립운동단체와 시민단체,학부형들과 시도교육감 등도 가세하고 있다. 국정화가 국력소진을 가져올 것이 뻔한데, 국민과의 이런 갈등이 바람직할까. 국정화가 “자율성과 다양성 그리고 창의성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교육 이념과 배치”되기 때문에 헌법재판소도 일찍이 국정화를 학생들의 사고력을 획일화·정형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현행 검정제 교과서도 ‘지나치게 통일’되어 있다고 비판적인데, 거기에 더해 국정화까지 시도하겠다는 것인가.

국사교육강화책을 내세워 모처럼 온 국민의 환영을 받았던 정부가 국정화 시도로 갈등을 부추기는 것은 어리석고 국민화합에 도움도 안된다. 역사교육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국정화를 시도하는 것은 선진국 어디에도 없다. 이참에 국사교육을 세계사와 더 긴밀히 연계시키고, 교과서 제도도 더 자율화․민주화․다양화하여 역사교육에 상상력의 나래를 달아주기를 기대한다. 교육부는 다른 나라의 역사교과서 발행제도를 제대로 지실하고 국민에게 알려라. 정부는 무소신·아부파에 귀기울이지 말고 학계의 공론과 국민의 상식에 어울리는 교과서 정책을 펴 나가라. 이게 당신네들이 하늘처럼 떠받들겠다는 국민의 뜻 아닌가. [이 글은 2015년 9월 14일자 중앙일보에 '역사 교과서는 다양한 시각 담아내야'라는 제목으로 일부 편집되어 게재되었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전 국사편찬위원장

이만열 mahnyol@hanmail.net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ad41
ad42
ad40
ad39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