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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 한반도 전문가가 말하는 ‘한반도 통일 이전과 이후’

기사승인 2020.05.28  17: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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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항쟁의 경험을 통해 분단된 조국의 화해와 통일을 추구하지 않고서는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가 완전히 실현되는 평화로운 한반도의 실현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자라갔다.”

세계교회협의회(WCC)가 최근 개최한 광주민중항쟁 40주년 기념식에서 한반도에큐메니칼포럼(EFK) 의장이자 WCC 국제국장인 피터 프루브가 한 말이다. 프루브는 ‘평화통일 이후 한반도의 미래 전망’이라는 제목의 강연문에서 “남한의 군사독재와 압제적인 국가안보 이데올로기의 고통스런 역사는 상당 부분 북한의 위협에 대한 대응의 필요에 기반한 것이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광주항쟁이 단순한 한 도시의 슬픔을 넘어 한국 민주주의와 한반도 통일이라는 폭넓은 관점에서 이해되고 승화되었다는 것이다.
프루브는 광주가 한때 정치에 의해 남한 내 증오와 두려움을 가져오는 ‘적’으로 인식되었지만 지금은 남북한 모두에서 정치에 대한 해방과 순화의 효과를 가져오는 파트너로 인식되고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남북한이 사회적 차원에서 서로 배울 게 많다는 점을 강조했다. 프루브는 “북한이 확실히 남한의 사회 근대화와 국제 연대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게 많은 반면 남한은 가족 해체와 공동체 상실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병폐를 북한의 공동체 가치로부터 다시 배움으로써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터 프루브 WCC 국제국장. WCC 제공

한반도 통일에 대해서도 길게 언급했다. 프루브는 “한국전쟁의 피흘림과 잔인함은 분단된 양측의 민중들에게 증오, 두려움, 그리고 의심이라는 질긴 결과를 남겼다”며 “강대국의 경쟁과 대결은 한반도에서 계속 기능했고 분단을 유지시켜 왔고 두 코리아에 의한 서로 다른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여정은 이념과 갈등에 기반한, 상호 몰이해와 차별에 의한 분단을 완성했다”고 설명했다.

프루브는 그러면서 “한반도의 통일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같은 언어와 같은 전통문화,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영원히 분단된 채로 남아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라며 “75년의 분단 기간은 공유한 역사의 거대함에 비춰볼 때 일시적인 변칙임에 틀림없어 보인다”고도 했다. 남북 통일의 불가피성을 강조한 것이다.

1984년 도잔소 회의와 1986년 글리온 회의가 WCC의 남북한 교회 지도자 초청으로 열린 회의였던 점(1984년 도잔소 회의엔 북한 교회가 불참했다)을 설명하며 “한반도 평화를 위한 WCC 사역의 초점은 변함이 없었다”며 “그것은 바로 전세계의 동역와 지지를 받고 있는 남북한 사람과 사람간의 촉진과 만남이었다”고 말했다.

프루브는 “지난 수십 년간 사람과 사람간 접촉에 관여하면서 우리가 배운 것은 남북한 사람들이 만날 수 있을 때, 그들이 자신들의 공통된 민족성, 공통된 언어 그리고 갈등과 분단 대신 평화를 원한다는 공통된 희망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라며 “그러한 상호 인식은 현대 남북 관계에서 상당 부분 차지했던 적대적 이미지와 의심 그리고 환멸에 대한 강력한 해독제”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통일의 방식에 대해서는 무력이나 흡수 통일은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프루브는 “한반도 분단의 치료가 우리가 바라듯 완전하게 되기 위해서는 강제 병합(흡수통일)이나 한 쪽에 의한 다른 한 쪽의 혼란스런 붕괴가 아닌 전적으로 남북 모두가 평화롭게 함께하는 결과여야 한다는 것”이라며 “군사력이나 정치적 대결 또는 극단적인 경제적인 압박은 한반도와 그 지역을 뛰어넘는 상상할 수 없는 인도적인 결과와 함께 감내할 수 없는 재앙적인 갈등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남북한 당국이 각각 제기해 온 통일 방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1972년 남북공동성명에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통일의 원칙이 제시됐지만 어떤 실천도 따라주지 않았고, 이후 1980년 6차 노동당 대회에서 김일성이 각자의 체제를 유지한 채 느슨한 연방제를 제안했고, 1989년 화해와 협력, 남북 연합, 통일국가 완성이라는 남한의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나왔고, 이후 사망 1년 전에 나온 김일성의 10가지 통일 강령, 김대중 정부의 출범과 함께 등장한 3단계 통일방안 등이 2000년 6.15 공동선언에서 ‘한 국가 두 체제’ 모델로 수렴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프루브는 “6.15 공동선언을 계기로 평화통일에 대한 접근방식이 적어도 예측가능하게 되었지만 악마는 늘 디테일에 있는 법”이라며 “이 비전을 진전시키기 위한 정치, 경제, 사회적 안전문제는 다양한 기회들을 눌러왔다”고 설명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20대가 통일에 대한 지지에서 반대로 바뀌었다는 점도 예로 들었다. 청년층이 통일보다는 취업 문제 등에 더 큰 관심을 갖는다는 국내 현실을 설명하기도 했다. 프루브는 “하지만 이러한 장애물들이 극복되고 강대국들이 한국인의 희생을 대가로 한 정책적 관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엄청난 통일 비용보다 통일 편익이 훨씬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프루브는 분단 비용을 언급하며 “분단 유지와 군사적 교착상태는 광범위하게 다른 추가적인 기회비용을 수반한다”며 남북 국방예산의 비대칭성, 남북한 젊은이들의 강제징집 등을 예로 들었다.

프루브는 “남북의 통일은 8000만의 놀라운 내수시장을 창출하고 북한의 인적 자연자원과 남한의 기술적 능력을 조화시킬 것”이라며 “이를 통해 글로벌 무역과 교통 시스템을 유라시아 경제 블록과 태평양을 연결해주는 허브로 한반도의 위상을 높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피터 프루브는 호주 출신의 법조인으로 국제단체의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다가 2014년부터 WCC 국제국장을 맡고 있다. 북한 인권 문제 등에서 처음엔 보수적 입장을 취했었지만 남북한을 꾸준히 접촉하면서 포괄적인 인식을 갖게 됐다. 한국에도 여러 차례 방문해 통일 관련 강연을 할 만큼 WCC 내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로 손꼽힌다. 

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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