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시민적 책무

기사승인 2018.01.31  16:04:12

공유
default_news_ad2
ad43

- 평통연대 '평화 칼럼'

2017년 한반도는 전(全)세계에서 전쟁의 위험성이 가장 고조된 지역이었다. 북한의 연속적인 핵·미사일 도발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선제타격 가능성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감을 극도로 고조시켰다. 북·미간 일촉즉발의 군사적 긴장상태에서, 한국은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비한 강력한 군사 억제력을 유지하였다. 또한, 한국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최대압박(Maximum Pressure)’ 기조 속에서, 북한과의 대화 및 협상 재개를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한국은 2017년 7월 북한에 군사회담과 이산가족 상봉 재개를 위한 회담을 제안했지만 북한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은 북한에 평창올림픽 참가를 지속적으로 요청하였고, 김정은은 2018년 신년사를 통해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가능성을 타진하였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2018년 평창올림픽 참가가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되기를 원한다고 밝히면서, 2018년 1월 9일 남북은 25개월 만에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고위급회담을 진행하였다. 남북한은 25개월 만에 열리는 남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감을 완화시키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하는 장을 마련할 수 있을까? 또한,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한은 향후 북한의 비핵화에 합의할 수 있을까?

새찬송가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412장)”에서 그리스도인은 평화를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나님의 은혜로, 한 영혼이 누릴 수 있는 평안함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 삼아 누릴 수 있는 영혼의 안식이다. 하지만, 기독교에서 말하는 평화가 우리가 한반도에 구현하고 싶은 평화와 같은 평화인가? 우리가 한반도에 구현하고자 하는 평화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평화와 그 개념이 상이하다. 국제정치에서 평화는 크게 소극적 평화(negative peace)와 적극적 평화(positive peace)로 구분된다. 소극적 평화는 전쟁의 위협이 제거된 상태로 정의되는 반면, 적극적 평화는 단순한 전쟁 위협 제거를 넘어 사회구성원이 자유와 번영을 누릴 권리가 박탈되지 않는 국가 시스템을 만드는 차원으로 확장된다. 국제정치에서 말하는 평화는 개인, 국가, 나아가 국제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작동하여 만들어 내는 산물이다.

우리는 평창올림픽을 계기고 한반도에 적극적 평화가 자리 잡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소극적 평화의 달성 없이 적극적 평화의 구현은 매우 어렵다. 문제는 한반도에 남북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의 소극적 평화를 이루어내는 것도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국가는 늘 생존의 위협을 내재적으로 안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인간이 원죄의 씨앗을 안고 태어나듯이, 국가는 늘 생존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따라서 국가는 생존을 담보하기 위해서 다른 국가들과 동맹관계나 협력관계를 통하여 자신의 생존을 담보하려고 한다. 이러한 연유로 한반도의 소극적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하게 남북한 이외에 다른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고려되어야 한다. 특히, 남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중요하다.

이렇게 복잡한 국제정치 환경 속에서,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우리는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선, 겸허히 하나님의 은혜가 이 땅위에 임하도록 기도를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인이자 동시에 한국의 국민이자 시민이다. 그리스도인으로의 책무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가의 국민이자 시민의 책무는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대신해서 수행하고 있는 정부가 올바르게 정책을 집행하는지를 감시하는 것이다. 정부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때에는 격려를, 정부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때에는 거침없는 비판을 가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교회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논의하는 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시민적 책무를 강조하는 풍토가 아직 미흡하다. 또한 아직 한국교회는 균형 잡힌 시각으로 대북정책이나 통일정책을 바라보는 시각도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여전히 보수정권이나 진보정권 중 한 정권의 대북정책이나 통일정책만을 지지하고 타정권의 정책들에 대해서는 날선 비판을 가하는 경우가 많다. 핵무기 완성을 위해 그 어떠한 협상과 대화도 거부했던 김정은이 2018년 신년사를 통해 대화의 가능성을 타진한 것은 보수정권에서 전통적으로 주장해 온 강력한 경제제재가 서서히 효과를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8년 김정은의 신년사 메시지에 주체적 경제개발이 대단히 강조된 것은 이를 반증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진보정권에서 전통적으로 주장한 북한과의 대화 및 협력의 기조는 북미간 일촉즉발의 군사적 긴장에서 미국의 선제타격을 막는 역할을 하였다. 진보정권은 미국의 선제타격이 한반도의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수많은 시민들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미국의 군사적 방법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을 강력히 반대하였다.

이처럼, 보수정권과 진보정권의 대북정책은 서로 상호보완성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시민적 책무는 균형 잡힌 시각으로 정부의 정책 수행이 올바르게 이루어지고 있는 지를 감시하는 것이다. 앞으로,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해서 남북한이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많다. 이런 때일수록 하나님의 은혜 위에서 그리스도인은 균형 잡힌 시각으로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대리하고 있는 정부가 정치 논리에 치우치지 않고 상호보완적으로 정책을 수행하고 있는 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경석/ 평화통일연대 청년위원,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원

이경석 kyungsuklee@kinu.or.kr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ad41
ad42
ad40
ad39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