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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조선 동포들의 힘겨운 교육권 투쟁 현장을 가다

기사승인 2017.09.20  14:2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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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지방법원이 조선학교 고교무상화 배제(이하 고교무상화 재판) 판결을 내렸던 9월 13일, 필자는 응원 차 현장에 방문했다. 결과는 예상과 달리 조선학교 패소. (관련기사 - ‘재일조선학교 고교무상화 동경판결집회 현장에서’) 동경, 후쿠시마, 오사카, 나고야, 후쿠오카 등 5개 지방법원에서 동일한 재판 신청이 있었는데 동경 판결로 1승 2패가 됐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이 한창인 때라 과연 남은 두 지역의 재판에서 조선학교가 승리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마음이 커졌다.

강당을 가득 메운 1700여 명의 재일조선학교 고교무상화 동경판결집회 참가자들. (김명준 제공)
교육회관을 가득 채운 1700여 고교무상화집회 참가자들. (김명준 제공)

오사카지방법원은 교육권을 중시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차단하는 법리 해석을 내렸다. 그렇지만 그에 앞서 후쿠오카지방원은 한마디로 ‘북한과 밀접한 조선학교 지원은 핵과 미사일 개발에 전용될 수 있다’는 정부 주장을 받아들였다. 동경지방법원도 동일한 해석을 내리고 있는 듯하다. 법원이 있는 그대로의 조선학교 실상을 근거로 했다면 할 수 없는 판결이다. 후쿠시마와 동경에서 조선학교 측은 굴하지 않고 법정 투쟁을 이어가겠다고 한다.

조선학교 고교무상화 배제 재판은 국내에서도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오랜 기간 조선학교와 교류해왔던 사단법인 몽당연필 회원 10여 명이 동경 법원 앞 집회에 참석했다. 조총련 계열의 학교로 알려져 기피 대상이었던 조선학교가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한 것은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학교’가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발표된 이후부터다. 홋카이도 조선학교에서 수년간 함께 생활하며 촬영했던 김명준 감독은 현재 몽당연필 사무총장으로 조선학교와의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조선학교 실상을 알리며 고교무상화 재판에 관한 국내 여론도 주도하고 있다.

조선학교 어머니회 회원들이 발언하고 있다. (김명준 제공)
법원앞 집회 참여자들이 13일 법원의 판결문 발표 후 얼굴을 감싸며 흐느끼고 있다. (김명준 제공)

보편적 인권으로서의 교육권

오사카지방법원은 원고인 졸업생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문부과학성의 조선학교 차별정책이 교육권 침해라고 봤다. 조선학교는 사립학교로서 학생들의 등록금과 동포 사회의 후원금, 그리고 지방자치단체 보조금 등으로 운용되고 있다. 교사들은 우리 민족의 얼과 문화, 언어 교육을 통해 일본 속에서도 동포들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는 사명감으로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받으며 가르치고 있다. 현재로서는 교사들의 헌신 없이는 학교가 유지되기 어렵다.

문부과학성에 따르면 2017년 5월 기준으로 일본 전역 조선학교는 66개교, 학생 수 6185명이다. 이 가운데 고등학교는 11개교이고 학생은 1389명이다. 1970년대 한 때 4만 명을 훌쩍 넘었던 학생 수에 비해 눈에 띠게 줄어들었다. 학생 수 감소는 조선적(해방 이전부터 분류되어 왔던 조선적으로 남아 있는 친북 동포들) 인구수 감소와 직접 관련이 있다. 해방 이후 일본에 남은 동포들의 수는 대략 60만 명. 이중 80% 가까운 40만여 명이 조총련 소속이었다. 지금은 반대로 한국 국적 동포가 45만 이상이고 조선적 동포는 3만 4천여 명이다.

한국 국적이든 조선적이든 일본 내에서는 외국인으로 대우받는다. 현재 조선학교 학생 구성은 대한민국이 52%, 조선적이 46%, 그리고 일본이 1%로, 국적 면에서만 보면 한국 국적 학생들이 더 많다. 요즘 조선학교는 주체사상이나 사회주의 등 이념 교육 대신 역사와 문화, 언어 등을 교육하는 민족학교로서의 정체성이 강하다. 공교육 혜택을 포기하고 사교육비(초등생 1인당 월 30만 원 이상)를 기꺼이 감당하는 동포들은 무엇보다 민족교육을 중시하기 때문에 4~5세대까지도 우리말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 등지의 교포사회와 비교할 때 독특한 현상이다.

2002년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 당시 김정일이 일본인 납치를 인정한 후 일본 사회 내 조총련은 입지가 매우 어려워졌다. 더구나 3대 세습과 핵문제, 그리고 인권문제 등으로 북한이 악명을 높여갈수록 조총련과 조선학교는 더욱 처지가 곤란해지고 있는 형편이다. 히로시마지방법원 판결에서와 같이 일본 정부가 주장하는 바, 조선학교 지원금이 북한의 핵개발에 사용될 수 있다는 주장은 눈 가리고 아옹 하는 격이다. 등록금과 후원금만으로 학교 운영이 어려운 형편에 학생들에 대한 취업후원금을 전용할 수 없음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이슈 때문에 교육받을 기회마저 박탈당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현실적으로 맞다.

한편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2010년, 2014년 정기 심사에서 일본 정부의 조선학교 고교무상화 배제 정책에 대해 교육권 침해 우려를 표한바 있다. 일본 정부는 조선학교들이 정부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조총련과의 관계를 끊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위원회는 최종 의견서에서 일본 정부가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데 아무런 차별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조선학교가 고교무상화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정책을 수정하라고 권고했다. 정세 변화에 따라 인권의 보편성이 침해될 수 없다는 입장은 오랜 국제 사회 불문율이다. 그렇지만 유엔 권고가 정책 변화를 이끌어 내지는 못했다. 많은 사람들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한 이유이다.

지난 9월 13일 도쿄지방법원 고교무상화 재판 결과에 항의하는 시위. (김명준 제공)

재일동포들의 고향 방문

이번 조선학교 고교무상화 법정투쟁을 기화(奇貨)로 우리 사회 안에서 남북화합을 위한 디아스포라 코리안 재일동포 역할에 대해 더욱 진지한 관심이 모아지길 기대한다. 해방 이후 일본에서 자녀들에게 말과 글을 교육하기 위한 ‘국어강습소’로 시작된 조선학교. 장기간 남북 분단의 적대적 대결을 예상치 못하고 일본 땅에서 오롯이 조국 분단의 서러움을 또 다른 차원에서 겪으며 생존을 모색해야 했던 동포들. 90% 이상 고향이 남쪽인 동포들이 어떻게 해서 친북단체 조총련과 관계하게 되었는지 그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일이 필요하다.

해방직후 미국과 소련 군정이 이루어지던 시기, 동포 사회 안에서는 1946년 토지개혁과 각종 민주개혁(친일파 청산 포함)을 마친 북한 정권에 대한 기대가 컸다. 전쟁을 겪고 난 1959년부터는 지상 낙원이라고 선전하는 북한을 향해 약 9만 4천여 동포가 이주했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 이후 조선적(朝鮮籍)을 포기해야만 대한민국 국적 취득이 가능했기에 일본이 북한과 수교하지 않는 상태에서 친북 동포들은 그대로 조선적을 유지했다. 북송된 친인척들 때문이기도 하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조선적 동포들은 고향방문 기회를 갖기도 했다. 남북관계와 북일관계에 따라 즉각적인 영향을 받는 동포들 삶의 단면이다.

고교무상화 집회에서 만난 도쿄제5조선초중급학교 김성란 선생님은 남북 어린이들, 나아가 동아시아 어린이들의 그림 교류를 통해 남북 화합의 길을 모색해온 분이다. 몽당연필 사무총장 김명준 감독을 만나던 차에 간단히 인터뷰할 수 있었다. 김 선생님은 어린이어깨동무 초청으로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차례 서울에서 열렸던 동아시아 어린이 미술전에 참가했었다고 한다. 그 즈음 고(故) 조은령 감독, 김명준 감독과도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이후 평양 능라소학교와 장경소학교에서 조선학교 어린이들의 그림을 가져와 교류 방문 전을 열고 있다고 한다.

도쿄제5조선초중급학교 김성란 선생님(사진 왼쪽)은 평양 능라소학교와 장경소학교에서 조선학교 어린이들의 그림을 가져와 교류 방문 전을 열어 왔다. 지금은 남북관계가 어려워지면서 평양에서는 조선학교 학생들 그림만 전시하고 있다. (김명준 제공)

남북관계가 어려워지면서 평양에서는 조선학교 학생들 그림만 전시하고 있는데 남과 북, 그리고 조선학교 어린이들이 마음껏 교류할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길 고대한다고 했다. ‘경북 고령군 쌍림면 송림동.’ 김 선생님이 기억하고 있는 부모님 고향 주소다. 세 차례 방한했었지만 당시에는 경황이 없어서 미처 고향을 방문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기념사에서 국적을 불문하고 동포들이 고향을 방문할 수 있게 하겠다고 하니 기대가 큰 눈치다. 재일동포들의 고향방문은 정치 문제를 떠나 인도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2~3세대 조선적 동포들에겐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 없다. 이젠 대한민국 정부가 동포들을 따뜻하게 맞이해야 할 때다.

일본 사회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 온 재일동포들. 북으로 간 친인척들과 남쪽 고향 땅을 늘 그리워하며 통일된 조국에서 다 같이 만나 보는 소박한 꿈을 안고 살아 왔다. 조선적을 포기 하지 않은 삶은 고달프다. 일본 밖으로 나갈 때마다 재입국 허가증을 받아야 한다. 친북단체로 알려져 북한에 대한 민심이 사나워질 때마다 대신 돌팔매도 맞아야 한다. 둘 중의 하나를 택하지 않으면 단교하겠다는 정책을 펴 온 대한민국 정부. 이제 민족성을 지키고자 시린 눈물을 흘려 왔던 재일동포들의 고된 삶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때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대로 이번 추석 연휴에는 고향을 방문하는 조선적 동포들이 많았으면 한다.

윤은주 ejwarrio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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