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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에서 보고 싶은 남북의 미래

기사승인 2016.09.20  15:3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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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 먼 나라, 이란에 다녀왔다.

두 번의 비행과 세 번의 기내식을 먹고서야 테헤란에 도착했다. 인천에서 출발할 때는 오후 1시, 테헤란 호텔에 도착하자 새벽 2시, 그 사이에 (-) 5시간 반의 시차가 있었으니 거의 하루가 걸렸다. 여행의 즐거움 중 상당부분은 현지 도착하는 첫날의 설렘인데, 그런 설렘을 느껴 보기도 전에 지쳤다. 몸 고생이 심한 하루였다.

 

   
▲ 테헤란 시내의 전경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일어난 아침부터 버스로 장거리 이동했다. 도시 사이는 사막, 나무는 거의 없고, 메마른 땅에 풀이 듬성듬성 있는 정도였다. 가끔 수확이 끝난 밀밭을 보았다.

40여명의 일행은 두 대의 버스에 나누어 타고 하루에 한 나절씩 버스로 달렸다. 여행지로 정한 도시가 5군데, 도시 사이의 거리는 보통 300km, 먼 곳은 500km나 되었다. 이스파한에서 2박, 테헤란에서 2박한 것을 빼면 9박 10일간 매일 숙소가 바뀌었다. 일정이 너무 빡빡했다.

애초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나라였으니 한 두 곳에 집중해도 되었을 텐데…. 한 곳이라도 더 보여주려는 주최 측의 열정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참가자들의 심정도 비슷했으리라, 언제 또 이란에 올 수 있을까? 한번 온 김에 웬만큼 보고 가자. 이런 심정이었을 게다. 그런데 꼭 그래야 할까 싶다.

한국인들의 여행욕심은 대단하다. 이란인 가이드 아민은 우리의 빡빡한 여행일정, 특히 이동 중 버스 내 강의를 보면서, 이런 열정이 한국을 부유하고 강한 나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아민은 이란도 빨리 한국 같이 강한 나라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이란인으로부터 듣는 ‘한국은 강국’이라는 말이 낯설었다.

이란은 페르시아 제국의 후예다. 우린 제국을 건설해 본 경험도 없는데, 대제국을 건설했던 후손으로부터 따라 배워야 할 나라라는 칭찬을 받았다. 역사의 흥망성쇠라고 쉽게 말해 버릴 수 없었다. 제국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도 흥성하던 나라를 쇠망하게 하는 것도 모두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어떤 정신을 가졌는지, 그 정신이 시대를 이끌 수 있는 것이었는지에 달려 있다.

 

   
▲ 이란의 사막

 

오늘 강국이라고 칭찬받아도 내일이면 또 어찌 될지 모르는 것이 국제정세인데, 과연 우린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 장래에도 대한민국이 강한 나라로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가이드의 칭찬이 고맙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였다. 밖에 나가서야 내 위치가 어디쯤 인지를 알게 된다. 이런 깨달음을 얻자고 여행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생각은 어디서나 언제라도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어떤 생각은 몸을 공간이동 시켜야만 얻을 수 있다.

한 나절을 달려 도착한 곳은 하마단(Hamedan), 이 곳은 테헤란의 남서부 방향으로 300km쯤 떨어진 도시다. 이곳엔 키루스 대왕의 업적을 3가지 말로 쓴 암벽 비석이 있다. 비석이 있는 그 산에는 폭포가 있어 휴양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쐐기문자로 쓰인 3가지 비문은 크기나 길이가 조금씩 달랐다. 새겨진 글의 내용은 하늘의 신 아후라 마즈다로부터 키루스 왕으로 이어진 역사와 왕의 업적이다.

이곳 휴양지에서 만난, 이란 사람들은 정다웠다. 외국인, 특히 한국인을 보기가 쉽지 않았던지 우리에게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 흔쾌히 우리들과 사진을 같이 찍었다. 그들의 영어나 우리의 영어나 서로 수준이 비슷한 지라 짧은 대화는 흥겨웠다. 애인과 같이 놀러 온 청년이 눈인사를 하면서 내게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느냐?”
  “코리아”
  “주몽을 아느냐?”
  “잘 안다. 양금이도 보았느냐?”

악수를 하고 돌아섰다. 우리 드라마 주몽과 대장금이 큰 인기가 있었던 나라다.
한참을 더 걸어가다가 물담배를 피우던 청년 4명을 만났다. 이번엔 내가 말을 걸었다.

  “당신들 담배 피는 모습을 사진 찍어도 될까요?”
  “좋아요. 당신이 우리를 찍은 다음에 우리 휴대폰으로 같이 한 장 찍어요.”

대강 이런 정도의 대화를 수시로 했다. 공원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이란사람들은 가족 중심이었다. 술을 마시지 않는 이 나라 사람들은 홍차와 과일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지나가던 우리 일행을 불러 흔쾌히 음식을 나누어 주었다. 순하고 정다운 사람들이다.

 

   
▲ 이란의 할아버지와 손자

 

경제제재가 풀린 탓인지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다. 한낮의 열기가 식어가는 저녁이 되자 사람들은 음식 바구니를 들고 공원으로 모여들었다.

이란은 핵개발을 시도하다가 경제제재를 당했지만 협상으로 제재를 풀었다. 이런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나면 좋겠다. 협상으로 북한 핵문제 해결이 시작되고, 대북경제제재가 풀리고, 평양 방문이 자유로워지면, 그때는 대동강변에서 산책 나온 북한주민들과 같이 사진을 찍으련다.

그땐 이란에서 보다 좀 더 긴 이야기를 나누겠다. 그동안 각자가 만들어 온 너와 나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장래에 대해 대화하고 싶다. 이란에서 맛보지 못한 맥주도 한잔 곁들일 수 있겠지? 그 날이 멀지 않기를 기원한다.

(남북물류포럼 칼럼 제공)

권은민 변호사(북한학 박사) ukoreanews@gmail.com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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