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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대한민국 수립’

기사승인 2015.10.01  10:4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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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발표된 교육부의 <‘2015 개정 교육과정’ 최종 고시안 중 중학교의 새 ‘역사’ 교과 내용>에서 1948년 8월 15일의 역사적 사실 인식과 관련하여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종래는 이 날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로 정리해 왔는데, 이 고시안에는 ‘대한민국 수립일’로 바꾸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바꾼 데 대한 교육부의 설명은 이렇다. “북한 교과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이라고 적는데 우리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고 쓰는 게 대한민국을 격하시킨다는 의견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 설명은 북한이 1948년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의 해로 보았기 때문에, 같은 해 8월 15일을 ‘대한민국 수립’ 대신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보는 것은 “대한민국을 격하”시킨다고 했다는 것이다.

교육부의 이 같은 조치에 대한 타당성 여부를 살피기 위해서는 먼저 ‘대한민국 수립’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과 ‘대한민국 수립’에서 말하는 ‘수립’은 ‘건국’을 의미한다. 거기에 비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대한민국’을 운용할 정부를 수립(조직)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수립’이라는 같은 용어라도 ‘대한민국 수립’에서는 ‘건국한다’는 것을 말하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서는 ‘조직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수립’일로 보는 것은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되었다는 것이 된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로 보게 되면, ‘대한민국’은 그 전에 이미 건국되었으나, 이때(1948년)에 와서 이미 건국된 대한민국을 운용할 정식 정부를 세웠다는 뜻으로 된다.

위의 문제는 결국 대한민국은 언제 건국되었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헌법의 규정을 살펴보는 것이 순서다. 제헌헌법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현행헌법: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했다고 밝히고 있다. 3.1운동을 통해 독립을 선포했고, 선포한 독립의지로 국가를 세웠는데, 그렇게 건국된 것이 ‘대한민국’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건국된 ‘대한민국’은 건국 후에 국가를 운용하기 위한 정부를 수립(조직)해야 하는데, 일제가 국토를 강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 안에 정부를 세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해외에 ‘정부’를 세워 ‘임시정부’라고 했으며, 무려 해외에서만 27년을 지속했다.

이런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1948년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하고 정식 정부를 세워 내외에 이를 선포했던 것이다. 1948년 8월 15일 당시 중앙청 앞에 걸린 플랭카드(펼침막)에 <대한민국 정부 수립 국민 축하식>이라고 버젓이 내걸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그 해 9월 1일 새 정부에서 간행한 ‘관보’에는 발행일자를 <민국 30년 9월 1일>이라고 했다. 이는 1919년에 건국된 대한민국이 30년이 지난 1948년에 정식정부를 수립하여 '관보 1호'를 간행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당시 그들은 1919년에 세운 ‘대한민국’이 영토와 국민과 주권을 온전히 갖춘 완벽한 ‘국가’였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했을까, 아니다. 그러나 당시 정부수립자들은 ‘대한민국 건국’이 1948년에 이뤄진 것이 아니고 1919년이라고 분명히 못박았다. 이것이 1948년 정부 수립 당시의 지성인들이 합의한 역사인식이었고, 헌법 전문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 1948년 열린 대한민국 정부수립 경축식 ⓒ국가기록원

이 무렵 이승만이 ‘대한민국 건국’을 어느 시기로 보았는가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개원식에서 의장 이승만은 축사에서 “이 국회에서 되는 정부는 기미년에 서울에서 수립된 민국임시정부의 계승이다”고 천명하고, 연호를 ‘대한민국 30년’이라고 했는데 이는 자신이 대통령이 된 후 그 해 9월 1일에 간행한 정부의 관보에서 그렇게 썼다. 그가 ‘대한민국 30년’으로 한 것은 우리나라의 민주정치제도가 남의 조력으로 된 것이 아니요 30년 전에 민국정부를 수립 선포한 데서 이뤄졌다는 것과 기미년 독립선언이 미국의 독립선언보다 더 영광스러운 것을 드러내고자 함이었다고 했다. 이는 연합국의 해방 덕분에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된 것이 아니라 3.1독립투쟁의 결과로 1919년에 이뤄졌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천명한 것이다.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건국을 독립운동의 전통에서 찾으려 했고, 연합국 승리에 의해 이뤄졌다는 타율적 인식을 거부했던 것이다.

다시 교육부 발표로 돌아가보자. 고시안에서 이미 합의 준용되고 있던 <1948년=대한민국 정부수립>의 역사인식을 <1948년=‘대한민국 수립’>으로 바꾼 이유는 북한 정권의 수립과 대등하게 하지 않으면 국격을 격하시킨다는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발표에 따르면 북한이 1948년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 즉 ‘건국’이라 했는데 우리가 '국가의 건국'이 아닌 ‘정부 수립’이라고 한다면 대한민국을 격하시키게 된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본 바와 같이 대한민국은 1919년에 건국되었고 정식 정부가 수립된 것이 1948년이다. 그 1948년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고 하는 것은 그 전에 대한민국이 건국되었음을 전제하기 때문에 격하되는 것으로 인식할 하등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고치려고 한 것은 1948년을 대한민국의 건국으로 보고자 하는 이들, 소위 ‘건국절’ 논자들의 잘못된 역사인식을 비호하기 위한 조치로밖에는 볼 수 없다. 오히려 <1948년=정부수립>으로 분명히 하는 것이 북한정권보다 30년 앞서 전민족의 총의로 건국된 대한민국을 더욱 선양시키게 된다고 할 것이다.

북한의 항일투쟁사에서는 1919년 3.1운동이 차지하는 자리가 거의 없다. 이것은 필자가 평양의 혁명박물관을 관람하면서 느낀 결론이다. 그들은 ‘3.1독립선언’을 통해 ‘독립’을 선언했다는 것도 무시한다. 그 때문에 그 선언에 따라 ‘대한민국’이 건립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며 또 ‘대한민국’을 운용하기 위해 설립된 ‘림시정부’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사실을 우리가 제대로 인지한다면, 북한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수립(건국)’연도에 맞추기 위해 ‘대한민국의 수립’을 1948년으로 하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을 격하시키는 것임에 틀림없다. 또 ‘대한민국의 수립(건국)’ 연도를 북한 정권 수립에 맞추는 것은 거족적인 3.1혁명에 기초해서 이뤄진 ‘대한민국 건국’을 무시하는 태도라고밖에는 볼 수 없다.

   
 

한말 단재 신채호는, 당시 대한제국의 학부가 일본에서 파견된 교육고문관에 휘둘려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정의와 투쟁 같은 내용을 교과서에서 제거하며 그 대신 충량 온순한 신민을 배양하도록 조치하려는 일련의 교육정책을 보면서, ‘나라를 망하게 하는 학부’라고 분연히 질타했다. 최근 국사교과서의 국정화 시도와 <‘2015 개정 교육과정’ 최종 고시안 중 중학교의 새 '역사' 교과 내용>에 나타난 교육부의 ‘대한민국 건국’ 왜곡 조치를 보면서 단재 선생이 외쳤던 ‘나라를 망하게 하는 학부’라는 말이 되살아난다. 서글프다. 이런 교육부에 역사교육을 맡길 수 있을까. 교육부의 맹성을 촉구한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전 국사편찬위원장

이만열 mahnyol@hanmail.net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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