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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의 저주는 풀릴 수 있을 것인가?

기사승인 2015.03.26  11: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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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 제23호

2015년 2월 25일은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2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런데 벌써, 그리고 집권당인 새누리당이 다수당을 유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의 레임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게 나오고 있다. 중간 선거에서 집권당이 의회의 다수석을 상실하고 대통령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되는 미국의 레임덕과도 사뭇 다른 현상이다. 최근에는 새누리당 의원들의 대다수가 지역구에 의정보고서를 발행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을 싣지 않고 있다고 한다(새누리 의원들, 너도나도 朴대통령 사진 '기피'). 취임 초기와는 크게 다른 레임덕의 징후인지 모른다. 어떤 이는 레임덕이 아니라 곧 데드덕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하기도 하였다([이동걸 칼럼] ‘데드덕’). 이 같은 현상이 박근혜 정부만의 현상인가 아니면 한국 정치의 만성적인 질환인가? 무엇이 이 같은 현상을 초래하였는가? 이것이 한국 정치의 만성 질환이라면 이를 어떻게 치료해야 할 것인가?

대통령의 인기도 추락과 조기 레임덕의 악순환은 한국 정치의 고질병 중의 하나이다. 성공적인 민주화 이행과 점진적인 민주 공고화의 진행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고질병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더 악화되는 추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도는 초기 60% 수준에서 지난 2월 드디어 29%로 하락한 바 있다(갤럽 "박대통령 지지율 29%…취임 후 최저"). 그 동안 강고하였던 보수층의 지지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감안한다면 29%의 지지율은 심상치 않은 수치임에 틀림없다. 물론, 대통령 인기도의 급변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김영삼 대통령의 경우 전두환과 노태우 두 군인 출신 대통령을 구속하는 등 고강도 정치개혁을 추진하는 동안에 83%에 가까운 높은 지지율을 보이다가, 아들의 부패사건이 적발되고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를 초래하게 되자 지지율이 4%까지 추락한 바 있다([신율의 정치 읽기]보배 같은 말 한마디가 대권 결정). 아무리 국정 실패가 크다 해도 이같이 급변하는 지지율이 과연 정치적으로 건전하고 성숙된 모습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이 같은 지지율 추락과 조기 레임덕의 악순환은 한국 정치사에서 성공적인 대통령을 찾기 어려운 현실로 이어졌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성숙한 문화는 고사하고, 현직 대통령에 대한 문화도 거의 바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60년 학생혁명에 밀려 하야 다음날 망명길에 올랐고, 박정희 대통령은 1979년 최측근에 의하여 암살당했다. 전두환과 노태우 대통령은 1995년에 투옥되었고, 노무현 대통령은 2009년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에게는 레임덕이 없다고 수차에 걸쳐 공언한 바 있지만 그의 형 및 측근들의 대형 비리와 부패 사건 및 정책 실패로 누구보다도 심각한 레임덕을 겪었다(역대정부 집권 3년차-(상) 이명박 정부] 독단적 국정운영·측근비리로 휘청… 레임덕 본격화). 대통령 개인, 한국 정치, 한국 국민 모두에게 비극적이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정치가 험난하고 거칠다고 하더라도 한국 정치의 이 같은 민낯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착잡한 현실이다.

물론, 지지도의 급변이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고, 지지도의 의미를 너무 과대 평가해서도 안 될 것이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국내 정치에서 지지도 추락을 경험하고 있다. 큰 기대가 큰 실망으로 바뀐 결과일 것이다. 대중의 지지도만을 생각한다면 나치 시대의 독일의 히틀러, 2차 세계대전 시기의 영국의 처칠, 포퓰리즘으로 지칭되는 아르헨티나의 후안 페론과 에바 페론 등이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높은 지지도를 얻은 지도자들이었을 것이다. 2001년 9월 9.11 테러 직후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은 거의 90% 정도로 상승하였고(박승춘 “9·11테러 당시 부시대통령 지지율 올라”),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25%로 추락하였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날 1974년 당시 24%를 기록하였던 닉슨 대통령의 경우를 제외하면, 아마도 이 두 수치는 미국 역사상 최고와 최저의 수치로 기록될 것이다. 높은 지지도가 반드시 좋은 정치와 정책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대중은 그 만큼 감성과 정서에 취약하고 비합리적일 수 있으며 쉽게 변할 수 있고, 심지어 정권에 의하여 쉽게 조종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소한 시민 사회가 성숙되고 민주주의가 공고화된 나라에서는 안정되고 균형 잡힌 지지 구도가 유지되어야 할 것이다. 최소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민주 사회에서는 80% 이상의 열광적인 지지도와 4% 이하의 지지층 실종의 지지도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의 예에서 보듯이, 아무리 실패한 대통령 일지라도 최소한 25% 정도의 지지층은 존재하는 것이 이성적인 모습이 아닐까? 건전한 민주 정치는 원래 그만큼 당파적이고 경쟁적이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한국 정치의 비합리성과 휘발성이 우려스러운 것이다. 과연 이 같은 한국 정치의 저주의 주술은 누가 만들었는가? 그리고 한국 정치를 짓누르고 있는 이 같은 저주의 주술은 풀릴 수 있을 것인가? 사랑의 키스로 한국 사회를 잠에서 깨워 줄 왕자님은 어디에 있는가?

정상적인 국면에서 대중이 이성적일 경우라면, 특정 정부 및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일반적으로 조세와 복지에 대한 유권자 및 조세 납부자의 손익 계산을 통하여 합리적으로 선택된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전쟁 중에 80%대 지지율을 유지하였던 영국의 처칠 행정부도 1945년 7월 전쟁이 끝나갈 무렵의 총선에서 노동당에게 패하고 말았다. 총선 5개월 전 무려 83%의 지지율을 기록하였으나 복지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에 둔감한 모습을 보이자 영국의 유권자들이 전쟁 중의 좋은 지도자가 더 이상 평화시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하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대체로 복지 문제는 세금과 연관되지 않을 때는 대부분이 찬성하고 합의할 수 있는 합의 쟁점(Valence issue)이 된다. 하지만, 복지가 세금과 연결될 때는 합의가 쉽지 않은 갈등 쟁점(position issue)으로 변한다. 한 연구에 의하면, 한국에서 복지-세금 태도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 변수는 정치적 선호(대통령 선거시 지지 후보), 연령, 소득 수준 등이다. 즉, 지지 후보의 복지 정책을 지지하고 연령이 높을수록 복지가 필요하여 복지 확대를 선호하며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복지 확대에 부정적이다. 서구 복지 국가에서 영향을 미치는 이념 성향, 성별, 정치 신뢰도, 교육 수준 등은 한국에서는 의미 없는 변수로 나타났다. 물론 각 유권자들이 스스로 인식하는 이념 성향이나 정치적 신뢰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이 같은 연구 결과를 일반화하기는 여전히 한계가 존재한다. 어쨌든 자유로운 선거 경쟁이 이뤄지는 대의제 민주주의 하에서 그리고 다수결보다는 합의제가 제도화되었을 때 복지-세금에 대한 대중들의 지지율은 보다 합리적으로 결정되고 안정적일 수 있다.

한국에서는 2010년 지방 선거를 기점으로 복지 문제가 중요한 쟁점으로 부상하였고 이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이 대통령 선거나 대통령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변수의 하나가 되었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 여부를 결정하는 데 복지-세금이라는 변수가 등장한 것은 그만큼 한국 정치가 덜 정서적이고 더 합리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바람직한 변화이다. 하지만, 복지 확대에 대한 절박감이 커지고 있으면서도 재정적 압박이 커지면서 복지-세금문제는 더 논쟁적인 쟁점이 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복지-세금 문제와 예산 배분의 문제가 더 이상 애매한 정치적 이상과 명분, 혹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절실한 이익 대립과 정치 투쟁 및 생존 전략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만큼 한국 정치가 세속화되고 비용 편익을 계산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인데, 이는 민주주의 공고화와 합리적 정치 문화 및 투표 행위를 위하여 바람직한 변화라 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실현 가능성도 없고 실제로 지켜지지도 않고 있으면서도 <증세 없는 복지>라는 슬로건을 계속 강변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면,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 추락과 레임덕 증후군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최근 박근혜 정부는 심각한 지지율 하락과 통치 불능의 징후를 보여왔다. 취임 직후부터 시작된 대선 공약의 번복과 신뢰 상실, 권위주의적 리더십 스타일과 소통의 부족, 연이은 인사 참사와 비선 조직에 의한 국정 농단 의혹, 집권당 내부의 친박과 비박간의 노골적인 계파 갈등, 세월호 사건 등에서 보여진 총체적인 무능과 무책임 등이 국민들의 실망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였다. 심지어 전통적인 박근혜 정부 지지층인 보수층과 노년층 그리고 대구경북 지역에서의 민심의 이반이 예사롭지 않다고 분석되고 있다. 현재의 상황은 한국 정치의 저주가 풀리기는커녕 어느 정권에 비하여도 일찍 반복될 불길한 전조를 보이고 있다. 물론 한국정치가 워낙 격동적이고 급변한데다 지지율 자체가 유동적이기 때문에 지지율이 안정화되고 레임덕이 사라지며 한국 정치의 저주가 풀릴 가능성은 얼마든지 남아 있다.

   
▲ 지난 17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대표 회동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

그렇다면, 한국 정치의 저주가 풀릴 가능성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그 저주를 풀기 위한 왕자님의 사랑은 이미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사실 2012년 대통령 선거는 이념 선거도 지역주의 선거도 아니었고 철저히 이익 선거였다. 박근혜 후보자의 ‘모든 노인에게 매월 20 만원 제공’약속이 승패를 갈랐다. 세계에서 자살율 1위를 기록한 한국 노년층에게 월 20만원 공약은 모든 다른 변수들을 압도하였고, 이들의 전폭적인 참여가 투표율을 높였으며 박근혜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이들의 선택은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었고 이들의 행동은 편익-비용 계산에 안일했던 젊은 유권자층을 패배자로 만들었던 것이다. 한국 정치와 투표는 이미 상당히 합리적인 정치 시장으로 변화된 것이다. 남북 문제나 한일 관계, 그리고 지역 감정 등의 사안은 그렇게 중요한 변수가 되지 못하였고 아마 향후에도 이 같은 변수의 영향력은 지속적으로 약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익 선거가 연령간 이익 대립을 넘어 계층간 이익 경쟁으로 구조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불경기가 장기화 구조화되고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사회 통합은 더 해체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문제는 이 같은 한국 정치의 합리적 변화를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제대로 읽어내고 있는가이다. 미녀 자신도 야수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때 마녀의 저주는 풀리는 것 아니겠는가?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직후 20만원 복지 공약을 곧바로 취소 혹은 대폭 수정하였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 철회와 실망이 시작되는 첫 단추였다. 한국은 유권자들이 과거처럼 명분에 매몰되어 공약 취소를 금방 잊어버리는 정서적이고 비합리적인 정치 시장으로부터 상당히 변화되고 있는 것 같다. 이 사건은 보통의 유권자들이 정치인의 반복된 거짓말이나 자신의 이익에 대하여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좋은 학습의 기회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정치 시장은 합리적으로 변화되고 있는데 정치인들이 이 변화를 알지 못하여 저주가 지속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알버트 허쉬만이 지적한 『반동의 수사학』(1991)이 쉽게 효력을 상실하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기존의 세 가지 지배 논리(비판해 봐야 너만 피곤해진다는 역효과 명제, 백날을 해봐야 안 된다는 무용 명제, 복지 확대를 말하는 사람은 모두 좌파라는 위협 명제)를 반복적으로 활용하기에는 한국 사회도 그렇게 만만하지 않은 사회가 된 것이다. 물론 한국의 대중은 저주의 주술에 다시 빠지고 이를 후회하면서 즐길 수도 있고, 한국 정치의 합리화가 더 오랜 시간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기도 급변과 조기 레임덕 반복의 악순환은 대통령, 정치인, 국민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저주의 주술일 뿐이다. 저주의 주술을 풀기 위한 모두의 각성과 지혜, 그리고 이성적 선택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와 정치가 저주의 주술에서 깨어나 성공한 대통령과 존경받는 전직 대통령을 많이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 글은 동아시아재단 홈페이지(www.keaf.org)에도 게재됐습니다.

   
 

류상영. 현재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이고 동아시아재단의 운영이사이면서 <동아시아정책논쟁>의 editor이다. 연세대 대학원에서 정치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1995-2001)을 지낸 바 있으며 일본 게이오대학 방문연구원(1992-1994),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학교 방문교수(2009-2010) 등을 지냈다. 김대중도서관 관장(2004-2009)을 역임하면서 <김대중 구술사>를 구축하는 등 사료 수집과 연구에 힘썼다. 그는 한일 제도비교 분석과 동아시아 네트워크 자본주의 등에 대한 연구를 해오고 있다. 그동안 역사와 이론을 어떻게 이론적으로 깊이있게 결합하고 분석할 것인지에 관심을 가져왔다. 최근에는 박정희와 김대중을 민족주의와 한국정치사적 시각에서 분석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본 게시물의 저작권은 동아시아재단에 있습니다.

류상영 syrhyu@yonsei.ac.kr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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