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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조지 플로이드는 없는가?

기사승인 2020.07.14  14:3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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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 제142호

단돈 20달러 때문에 미국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에서 흑인 남성인 조지 플로이드는 경찰의 과잉진압 과정에서 사망하였다. 그가 ‘숨을 쉴 수 없다’(I can't breathe)고 호소했음에도 불구하고 백인 경찰관은 계속 무릎으로 플로이드의 목을 눌렀다. 이 사건을 계기로 경찰 폭력과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대규모의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연대의 목소리가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LivesMatter) 라는 구호와 함께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퍼져나가고 있다.

백인우월주의를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한국에도 인종차별이 있느냐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인종차별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내국인과 달리, 국가인권위원회가 최근 시행한 <한국사회의 인종차별 실태와 인종차별철폐를 위한 법제화 연구> 설문조사 결과 인종차별의 피해자인 외국인들은 그 응답자 중 68.4%가 ‘한국에 대체로(매우, 조금) 인종차별이 존재’한다고 응답하였다.

바로 최근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도 한국 정부의 인종차별은 민낯을 드러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가장 기초적 방역물품인 공적마스크 구매에 차별을 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관광으로 방문한 단기체류 외국인의 구매 방지’를 위한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주장은 근거가 안 된다. 바이러스가 사람을 가리는 것도 아니니, 관광 온 외국인이라고 해서 마스크를 미착용해도 되는 것도 아니고, 체류 기간은 외국인등록증으로 확인 가능하고 건강보험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외국인들이 한국 사회에서 취약한 계층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더욱 대책이 필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마스크 구매 자격의 유일한 차별이 외국인이었고, 또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내국인 인식은 한국 사회의 인종차별은 없어서 보이지 않는 게 아니라 당연하게 여겨서 인식조차 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 사회의 제도화된 인종차별

미국의 흑인 인종차별은 노예제도에서 파생 강화되었다. 서인도제도 카리브해 사탕수수 농장 일을 시작으로 흑인들은 미국에서 위험하고(Dangerous), 더럽고(Dirty), 모욕적인(Demeaning) 일을 하였다. 흑인들의 고된 노동으로 미국 경제는 돌아갔지만, 백인들은 자신들이 흑인 노예의 의식주를 해결해 주고 있다고 하며, 흑인들의 열등함, 미개함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믿으면서 노예제를 합리화하였다. 이렇게 한 번 형성된 흑인 노예의 이미지는 노예제 폐지 이후에도 대중들에게 남아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대한민국의 외국인 인력 정책은 현대판 노예제와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이 있다. 현재 한국 정부의 외국인 인력 정책의 핵심은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 규정되어 있는 ‘고용허가제도’이다. 2004년 8월 처음 시행된 고용허가제도는 대한민국 정부와 협약을 맺은 16개국 출신 외국인 근로자에게 취업비자(E-9)를 발급해 인력이 부족한 기업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근로자 신분으로 고용할 수 있게 하는 제도이다.

고용허가제는 철저하게 사용자의 이익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다. 외국인은 입국하기도 전에 근로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외국인 노동자는 본 적도 없는 사용자와, 근로계약서에 기재된 사항 외에는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근로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사용자는 자유롭게 노동 계약 해지가 가능하지만, 외국인근로자는 임의로 사업장을 변경하지 못한다. 사업장 변경은 원칙적으로 사용자의 유책사유가 있을 때 3번만 가능하다. 사용자가 폭행을 하거나 임금체불 같은 부당한 처우를 하면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다고 규정은 하였으나, 그 피해 사실 및 사유를 이주노동자가 입증하도록 하고 있어 사실상 사업장 변경이 불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결국 노동자와 사용자간의 사적관계에 국가권력이 개입하여 사실상 강제노동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을 떠밀어 인권침해와 노동착취 상황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사업장 변경을 하지 못한 외국인 노동자들은 불법체류자가 되고, 단속을 피하는 과정에서 사망하기도 하였다. 법무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10년 동안 불법체류 단속 과정에서 총 10명이 숨졌고 77명이 부상을 당했다.

고용허가제가 외국인 노동자가 취업 가능한 직업군을 단순노무업종에 한정하고, 그 대상을 아시아 지역 저개발국가로 한정한 것도 특정지역 출신 외국인에 대한 편견과 계급화를 초래하였다. 2004년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15년간 그리고 이전의 산업연수생제도 시기까지 포함하면 25년은 동남아인을 집단적으로 저숙련 노동자로만 인식하게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러한 제도적 차별 및 그로 인한 인종에 대한 편견 고착화는 외국인 고용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 정착형 이민을 허락한 ‘결혼 이주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난다. 2000년 이후 한국에서 ‘가족의 위기’와 ‘저출산’은 중요한 사회적 의제가 되었는데 그 해결책의 하나로 정부는 공공연히 ‘국제결혼’을 상정하였다. 특히 인구감소로 위기를 겪고 있던 지방자치단체들은 도시의 저소득층이나 농촌에서 혼인의 기회를 갖지 못한 남성들이 국제결혼을 하여 제2세를 생산하도록 경제적 지원까지 하였다. 이렇게 한국사회 가족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 여성들을 한국인의 배우자로 적극 포섭한 정부는 이후 이들의 법적 지위는 매우 취약한 상태로 유지시켰다. 결혼이주여성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 전까지 한국인 국적을 주지 않고, 외국인의 신분으로 체류하게 하였고, 한국인 배우자에게 매우 종속적인 상태에 놓이게 하였다. 체류를 연장하기 위해서는 혼인의 진정성 확인을 이유로 배우자의 신원보증서를 요구하였고, 이혼 소송이라도 하면 취업허가가 금지되었다. 이러한 종속적 관계로 인해 이주 여성들은 가정폭력 속에서도 결혼 유지를 강제받게 되어 많은 논란이 되었고 이후 시정되기는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정부의 결혼 이주 여성 정책은 인구대책으로서의 성격이 강하고, 이주여성들은 고통받고 있다. 지난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내놓은 ‘결혼이주민의 안정적 체류 보장을 위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결혼이주여성 가정폭력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42.1%에 달했으며, 그간 언론에 보도된 이주여성 사망자 수가 21명 이상이다. 한국 남성과의 사이에 자녀 출생 유무, 시부모님 부양 여부에 따라 노골적으로 달라지는 정부 결혼 이주여성 차별적 정책은 시민 의식에도 계속 영향을 미쳤다. 미디어에서 ‘다문화 가정상’은 시부모를 모시면서 자녀를 출산하고, 억척같이 절약하며 가정 경제에 보탬이 되는 동남아시아 출신 여성으로 재현된다. 이는 서구 백인 여성들에게는 기대하지 않을 효부, 희생, 순종 등 한국사회의 가부장적 가치 수용이라는 사회적 압력을 반영한다. 그런데 이러한 압력에도 저항하지 않은 채 한국 사회의 일원이 되고자 최선을 다하는 결혼 이주여성에 대해 주어지는 것은 찬사도 아니다. 이주여성들이 결혼을 하게 된 개별적이고, 다양한 원인은 고려되지 않고 ‘돈 때문에’ 자신을 판 성상품의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하고, ‘다문화’라는 이름으로 ‘취약계층’과 동일시되며 차별의 식별이 되었다.

 

반(反)다문화 담론 그리고 다시 강화되는 인종차별적 이주민 정책

결국 인종 차별적 이민정책은 실패하였다. 그런데 정책의 실패로만 그친 것이 아니다. 이민자들에 대한 편견이 고정관념이 되었고, 이는 반다문화 담론의 빌미를 주었다. 반다문화 담론은 피부색을 이유로 이주민을 차별하지 않는다. 인종주의를 내세워 외국인을 배타시하는 게 아니라 각종 다문화정책이 낳은 경제적 역효과를 비난한다. 이들은 다문화 정책으로 득을 보는 것이 결국 이주민과의 임금경쟁을 부추기는 정치적, 경제적 기득권이라고 한다. 한국의 이주민 정책은 ‘경제적 이득을 얻으려는 기득권’과 이에 ‘세금을 축내고 무임승차하는 이주민’의 합작으로 보고, 상대적 경제적 취약층인 자신들이 손해를 보는 이주민 정책을 반대한다. 그리고 그 해결책으로써 이주민의 추방 또는 이주민의 유입 불가를 외치는 데 집중한다.

이러한 반다문화 담론은 주로 온라인상에서 활발하였는데, 이것이 공공연히 표출된 것이 2018년 예멘 난민 사건이다. 예멘 난민 반대집회에 모인 많은 사람들은 ‘국민이 먼저다’를 외쳤다. 그들은 UN이 최악의 위기 국가로 지명한 예멘 난민들을 ‘가짜 난민’이라고 하였다. 예멘인들이 신고 있던 나이키 신발과 핸드폰을 지적하며, 난민이 아니라 돈을 벌러 온 경제적 이주민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나이키 신발은 이미테이션에 불과하고, 핸드폰은 탈출과정에서 정보 수집을 위해 필수품이었으나 반다문화 주의자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난민의 인권과 인도주의적 배려를 요청하는 시민들은 배부른 감정팔이 한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정부는 반대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난민협약국으로서의 난민 보호 의무를 설득하기도 전에, 엉뚱하게도 ‘가짜 난민’을 가려내는 일에 더욱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였다. 한국의 난민인정률은 OECD 국가 중에서 일본 다음으로 최하위로서 5%를 넘지 못하고 있고(세계 평균 난민인정률은 30%대이다), 1992년 난민법 시행 이후 20년 동안 누적된 난민 인정자 수가 1,000여 명에 불과하다. 즉 가짜 난민이 진짜 난민으로 인정받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이고, 진짜 난민조차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가짜 난민으로 추방당하는 불균형 상태에서 이미 기울어져 있는 난민반대 접시위에 무게추를 더 올린 것이다.

 

이주민 정책 방향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한국의 인구변동과 외국 인력의 수요가 지속적으로 야기되는 구조적 특성을 고려할 때 이주민의 유입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이주민을 생산수단의 한 요소로만 보고, 그들의 한국 사회 통합에 비용을 들이지 않으려는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주민의 이동은 단순히 ‘생산 수단’의 이동이 아니고 ‘사람’의 이동이다.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그 사람의 삶과 가족과 사회적 인간관계 전반이 사회와 유기적으로 서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외국인 인력관리나 출입국 관리 정책 차원에 머물러 있는 현 이주민 정책은 근본적 재고가 필요하다.

이주민을 생산성의 관점에서만 보면, 경제활동 능력이 없는 이주 아동은 한국 사회에서 배제될 존재가 된다. 부모가 미등록 체류자이면 그 아동도 미등록 체류자가 된다. 다양한 이유로 본국에서 출생 신고를 하지 못하는 이주 아동들은 속인주의를 따르는 한국에서 자신의 출생을 등록할 방법이 없다. 2018년 11월 한국행정학회가 펴낸 ‘국내체류 아동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미등록 이주아동의 수는 5200명에서 최대 1만3천여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출생을 등록하지 못한 이주 아동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허락되지 않는다. 학교장 허가가 없이는 학교에 다닐 수 없고, 친구들과 게임을 하고 싶어도 등록번호가 없어 게임 사이트에 가입할 수도 없다. 여행보험 가입이 안 되어 수학여행도 가지 못한다. 아파도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니 병원에 가는 것도 참아야 한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성장하였지만, 한국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현재 한국의 이민 행정 관행에 따르면 헌법상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권리나, UN아동권리협약상 아동의 권리보다도 상위에 있는 것이 출입국관리법 제46조 강제퇴거 규정이다.

인종차별금지 법을 만드는 것은 외국인에 대한 가시적 인종차별을 예방하고 사후 구제하는 수단으로서 찬성한다. 그러나 앞서 본 바와 같이 제도화된 인종차별을 양산하는 이민정책을 계속 운영하면서, 국민들의 인종차별만 제재하면, 국민들 사이에 사회갈등이 유발될 수밖에 없다.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법 제정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이주민의 단속과 체류관리를 최우선으로 삼는 현 이주 행정 관행을 과감히 뜯어고치는 것이 필요하다. 이주민의 체류관리와 동등하게 ‘이주민 지원’도 정부의 주요 이주민 정책 분야가 되어야 한다. 각 지역 출입국외국인청에 이주민에 대한 ‘체류관리’뿐만 아니라 ‘지원’을 전담하는 부서 및 공무원도 배치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 이주민 관련 법제는 대부분 선언에 그치고 실질적 이행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난민법에는 난민의 기초생활을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지만, 실제로 주거수급을 신청해도 주민등록번호가 없다는 이유로 수급신청 자체를 할 수 없다. 이주민의 수요를 듣고 실질적 지원이 가능하도록 이행법규를 구체적으로 손보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출입국관리사무소라는 이름이 외국인을 관리하고 통제한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주고, 수요자 중심의 새로운 출입국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부디 허울 좋은 ‘말뿐인 행정’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우선 이주민들도 행정 서비스 수혜자로서, 최소한 이주민 담당 공무원들로부터 폭언과 모멸감을 받는 일이 없도록 공무원 교육부터 실시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딴저테이후안마이. 그들은 ‘한국의 조지 플로이드’들이다. 외국인 인력에 대한 수요가 있으면서도 입국 허용 외국인 노동자 수를 제한하여 불법체류자를 양산해내는 고용허가제의 문제점은 시정하지 않은 채 출입국관리법상 단속 규정만을 내세운 행정관행이 미얀마인 딴저테이의 죽음을 불렀다. 저출산 문제의 해결수단으로서 운영된 결혼 이주민 정책은 베트남 출신 19살 후안마이가 지하 월세방에서 남편의 구타로 외롭게 죽어가게 했다. 제2의 탄저테이, 후안마이가 나오지 않도록 남아 있는 이주민들의 ‘숨을 쉴 수 없다’는 신음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숨을 쉴 수 있는 한국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진심으로 우리 사회를 돌아보는 것, 그것이 조지 플로이드에 대한 진정한 추모와 연대가 될 것이다.

 

---이 기고문의 견해는 필자의 개인 의견이지 동아시아 재단의 공식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필자 소개

김세진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제2회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였다. 2013년부터 (사)공익법센터 어필에서 상근변호사로 재직중이다. 주로 난민들과 장기구금외국인, 해외에서 한국기업에 의해 인권을 침해당한 외국인들을 옹호하는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한 소송, 연구 및 입법활동을 하고 있다.

김세진 mail@keaf.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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