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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중소기업 리쇼어링: 현실과 방향

기사승인 2019.12.05  16:5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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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 제128호

오프쇼어링으로부터 리쇼어링으로

1990년대 이후 생산비용 절감을 위해 저임금의 개도국으로 공장을 이전했던 선진국 기업들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다시 국내로 돌아오는 사례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해외로 나가는 오프쇼어링으로부터 국내로 유턴하는 리쇼어링으로의 추세전환이다.

리쇼어링의 배경요인은 다양하다. 첫째, 오프쇼어링 대상국이었던 중국이나 개도국 등이 경제발전에 따라 임금이 크게 상승해 저임금 활용의 메리트가 약화되고 국내생산의 비용효율성이 점점 더 높아지게 되었다. 둘째, 로봇, 3D프린팅, 인공지능 등 인력수요를 최소화하는 4차 산업혁명의 기술혁신으로 인건비 부담과 개도국으로의 이전 필요성이 크게 감소되었다. 셋째, 개별화된 고객의 니즈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생산현장과 R&D와 시장의 접근성이 과거에 비해 훨씬 중요해졌다. 넷째, 정부가 일자리 확보를 위해 법인세 인하, 규제혁신, 유턴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를 확대 강화하면서 해외보다 국내에서 사업하는 쪽이 보다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리쇼어링의 움직임이 가장 먼저 두드러지게 나타난 곳은 미국이다. 오바마 정부는 2010년부터 ‘리메이킹 아메리카’라는 구호 아래 법인세 인하와 공장 이전비용 보조 등의 정책으로 기업들의 리쇼어링을 지원했다. 오바마의 뒤를 이은 트럼프 정부도 ‘미국우선주의’의 일환으로 고용창출 의무 등 강제적 정책수단과 더불어 법인세율의 대폭 인하, 과감한 규제완화 등을 통해 리쇼어링 정책을 강화했다. 이러한 정책에 힘입어 포드와 애플, GE, 인텔 등 수많은 기업들이 미국으로 유턴해서 자국 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있는데, 리쇼어링 기업으로 인한 일자리 수가 가장 많았던 2017년에는 미국 제조업 신규고용의 약 55%를 차지하기도 했다.

독일은 제조업 경쟁력 강화 정책 ‘인더스트리 4.0’의 틀 안에서 리쇼어링을 추진하고 있다. 인력에 의존했던 공정들을 첨단 로봇과 소프트웨어 등으로 대체해 생산원가를 절감하고, 보다 쉽게 생산관리를 하는 스마트공장을 통해 기업들이 굳이 해외에 투자할 필요가 없게 만듦으로써 국내 복귀를 유도하는 것이다. 대표적 사례가 아디다스의 ‘스피드 팩토리’다. 값싼 인건비를 찾아 아시아에 공장을 설립했던 독일 아디다스는 ‘스피드 팩토리’라는 스마트공장을 통해 자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스피드 팩토리’는 소요 인력을 줄일 수는 있었지만 대량생산까지에는 이르지 못한 기술적 한계로 2019년 11월 다시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일본은 20년 불황을 벗어나기 위한 ‘아베노믹스’의 일환으로 법인세율을 대폭 낮추고, 수도권 규제를 비롯한 각종 규제를 줄이고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는 등 기업 유치에 총력전을 펼쳤다. 그 결과 고비용·규제 왕국 일본이 기업하기 좋은 환경으로 변하면서 대기업에서 중소기업까지 규모와 업종을 가리지 않는 기업들의 리쇼어링 붐이 일어났다. 이것은 일본의 실업률을 대폭 낮추고 청년들이 직장을 골라가는 일자리 풍년으로 이어졌다.

 

한국의 기업 유턴의 현실과 구조적 취약점들

한국은 어떠한가? 한국은 리쇼어링의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는 미국, 독일, 일본 등과 달리 여전히 오프쇼어링의 흐름이 강하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2018년 우리나라 대·중소기업의 해외 직접투자액은 478억 달러로 2017년보다 9.1% 늘어났다. 이 중 중소기업의 해외 직접투자는 100억 달러였는데, 2017년의 67억 달러보다 무려 31.5%가 늘어났다. 대기업은 과잉 규제 때문에 신사업 투자 기회를 못 찾아서, 중소기업은 대기업을 따라가거나 최저임금 급등과 근로시간 감축 등 급격한 노동시장 환경 변화 때문에 산업 생태계 자체가 한국을 떠나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일자리 유출의 우려가 커지고 기업유턴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기업유턴을 위해서는 한국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제조업 경쟁력 강화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2013년 6월 ‘해외진출 기업의 국내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유턴기업지원법’)이 통과되어 동년 12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유턴기업법’ 시행 후 5년간(2014~2018) 총 52개사가 국내로 유턴하였는데, 주로 중국(46개사)에서 주얼리·섬유·전자·부품조립 등 주로 노동집약업종(28개사)의 중소기업(50개사)이 대부분이고, 실제 조업 중인 기업은 29개사(55.8%)에 불과하여 다수 유턴 기업이 국내 복귀 후 정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 독일, 일본 등과 비교하면 유턴기업 수도 매우 적고 유턴기업의 내용도 부실하다. 그래서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를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유턴기업지원법이 한계기업을 회생시키는 창구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리쇼어링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정책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양적, 질적으로 성과가 부진한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한국처럼 내수시장이 작은 수출중심 경제구조하에서는 해외시장 진출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미국이나 독일, 일본처럼 내수시장을 목표로 유턴하는 기업이 적을 수밖에 없다. 둘째,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에 전속거래가 이루어지는 한국의 독특한 산업구조에서는 대기업이 유턴하지 않으면 전속거래 관계에 있는 중소기업의 유턴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데 한국의 대기업은 수출에 의존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에 국내로 유턴할 유인이 크지 않다. 특히 최근 들어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주52시간제 도입 등 노동시장 유연성이 더욱 제약되고 신산업 활동에 필요한 규제완화가 해외 진출국에 비해 열악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실제로 한국경제연구원이 2018년 해외진출 한국 기업에 국내 유턴 의사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국내 유턴을 고려한다는 기업 비율이 1.3%로 매우 낮은 수준이고, 무역협회의 조사에서는 해외 생산거점이 있는 기업의 대부분이 향후 해외생산 확대(55.5%)나 유지(38.3%)를 계획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이처럼 수출과 대기업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에서는 유턴하는 기업이 대기업이 아닌 경쟁력이 취약한 영세중소기업인 경우가 많다. 이런 기업들은 저임금을 활용하기 위해 해외로 이전한 기업인 경우가 많아 국내로 유턴해도 임금수준이 높은 한국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이런 기업들은 기업성장을 기대하기 어렵고 일자리 창출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유턴지원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경쟁력이 취약한 영세중소기업 중심의 기업유턴을 경쟁력이 있고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는 기업 중심의 유턴으로 바꾸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첫째, 기업의 국내 유턴의 필요성과 대상을 명확히 인식하는 작업부터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수출의존도가 높은 대기업이나 협력 중소기업의 국내 유턴은 국내의 기업환경이 획기적으로 변화되지 않는 한 기대하기 어렵다. 기대한다면 미중전쟁으로 사업환경이 크게 악화된 중국에서 귀환하는 기업 정도일 것이다. 그렇다면 유턴기업의 지원대상과 목적을 경쟁력 있는 대기업의 유턴지원보다는 경쟁력이 약화되어 유턴하는 중소기업 쪽에 초점을 맞추어 이들 유턴기업들이 지속적으로 생존하고 성장하는 것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지원정책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실제로 유턴하는 기업들의 대부분이 경쟁력이 취약해진 중소기업이라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유턴하는 기업들은 임금비용 증가 등으로 경쟁력이 취약해지기는 했어도 글로벌 사업경험과 함께 여전히 투자의지를 갖고 있는 만큼 이런 기업들이 국내유턴을 계기로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회복하도록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

전남 나주시가 지난해 11월 국가혁신클러스터사업 지역에 최종 선정됐다. 사진은 나주혁신도시, 혁신산단 등 4개지구. 나주시 제공

어떤 지원을 하면 유턴기업들이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첫째, 공정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대폭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유턴기업이 임금부담의 증가로 경쟁력을 잃었다면 임금부담 증가 이상의 생산성 향상이 이루어지면 문제해결이 가능하다. 그러한 생산성 향상은 먼저 공정혁신을 통해 이룩할 수 있다. 예컨대 독일의 ‘스피드 팩토리’나 우리나라의 ‘스마트 팩토리’와 같은 혁신을 도입하는 것이다. 스마트 팩토리는 제품의 기획, 설계, 생산, 유통, 판매 등 전 공정을 정보통신기술로 통합하여 최소 비용과 시간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미래형 공장으로 정의되는데, 이러한 혁신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생산성 향상 및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R&D혁신 지원이 필요하다. 저임금만이 경쟁력의 원천인 기업은 한계기업으로 글로벌 경쟁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기업이 생존하고 성장해 가기 위해서는 임금이 아닌 기술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기술경쟁력은 R&D투자가 필수불가결한 만큼 유턴기업의 선정과 지원에서 R&D투자의사와 지원이 중요한 요소로 고려될 필요가 있다.

셋째, 유턴기업의 업종전환도 유연하게 이루어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 기업유턴을 지원하는 목적은 해외에서 투자되는 자원을 국내로 돌려 국내에 일자리를 만드는 데 있다. 가용자원을 투자해 공정혁신과 R&D를 통해 일자리만 만들 수 있다면 업종은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업종에서 경쟁력을 상실한 기업이 사업경험과 투자여력을 살려 국내로 돌아와 사업을 하겠다고 한다면 어느 정도의 업종전환은 유연하게 허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특히 업종의 융복합이 급속하게 일어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넷째, 기업간 협력과 오픈 이노베이션에도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경쟁력이 취약해 유턴하는 중소기업들 중에는 부족한 경영자원을 보완해줄 수 있는 협력자 없이 나홀로 경영을 하는 기업도 적지 않다. 이런 경영관행을 바꾸지 않고 국내로 유턴하면 기업의 생존과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유턴을 계기로 기존의 나홀로 경영의 관행과 결별하고 다른 기업이나 대학, 연구기관 등과 긴밀히 협력하는 오픈 이노베이션의 혁신을 실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유턴기업에 대한 지원도 개별기업에 대한 지원과 함께 기업간 협력 및 산학연 협력을 촉진하는 클러스터형 방식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아울러 이런 클러스터는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 만들어 지역의 균형발전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클러스터의 장점을 제대로만 살릴 수 있다면 유턴기업들이 선호하는 수도권이 아닌 지역으로 유턴해도 기업경쟁력은 충분히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실효성 있는 기업유턴에 필요한 이상의 혁신을 체계적으로 실행할 수 있도록 기업유턴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컨트롤 타워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나 독일, 일본처럼 주로 대기업이 유턴하는 경우에는 대기업 스스로가 경쟁력이 있고 전략 수립 및 실행능력이 있기 때문에 투자환경만 해외진출국보다 낫게 해주면 되지만, 한국처럼 주로 경쟁력이 취약한 중소기업이 유턴하는 경우에는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혁신을 체계적으로 수행하도록 지원하는 컨트롤타워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논의한 기업 유턴 활성화를 위한 혁신지원 방향에 비추어 보면 현재 실시되고 있는 유턴기업 지원법은 적지 않은 문제가 있다. 현재의 유턴기업 지원법은 유턴기업에 대해 법인세·관세 감면, 입지·설비 보조금 지급, 고용보조금 지급, 정책자금 지원, 스마트공장 구축 시 우대 등의 지원을 하도록 되어 있지만, 유턴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필요한 R&D지원, 클러스터화 지원, 컨트롤센터의 설치 등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또 유턴 기업이 복귀 후에도 동일업종을 반드시 영위하도록 규제하여 경영 환경 변화에 따른 유턴 기업의 유연한 대처를 어렵게 하고 있다. 그 결과 유턴 중소기업들은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정착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유턴에 대한 부정적인 평판이 형성되어 추가적인 유턴 확대로 이어지지 못하는 상황에 있다.

일자리 확보를 위해 기업유턴이 중요하고 그것이 중소기업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한국의 현실을 인정한다면, 한계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결과로 나타나는 기존의 지원방식에서 발상을 달리하여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통해 유턴중소기업의 성공사례를 만드는 혁신 내지 제2창업을 지원하는 방식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 기고문의 견해는 필자의 개인 의견이지 동아시아 재단의 공식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저자 소개

현재 중소기업연구원 명예연구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경제학 학사, 일본 히토츠바시(一橋)대학 사회학 석사 및 박사(노사관계 전공)를 취득하였다. 중소기업의 인력정책과 창업정책, 혁신경영 등을 연구하고 있고 「중소기업 인력수급 미스매치 개선정책에 관한 연구」(2013), 「한국형 중견기업 성장모델로서의 오픈 챔피언」(2015), 「중소기업중심 경제구조의 실현방안에 관한 연구」(2016), 「창업국가의 조건」(2017)등의 논문과 『나는 골목의 CEO다』(2013), 『한국의 경제생태계』(2017) 등의 저서가 있다.

백필규 mail@keaf.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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