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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는 윤리 : 북한이탈주민의 탈경계와 윤리의식

기사승인 2019.08.23  15:3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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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탈주민의 사회적 의미는 20년마다 변해왔다. 1975-94년까지는 남한의 체제 우월성을 드러내고 정보를 얻기 위해 그들이 ‘어디서’, ‘왜’ 왔는지 주목했다. 고난의 행군 시기 즈음엔 그 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남한 사회에 ‘어떻게’ 적응시킬지, ‘언제’쯤 동화될 것인지 주목했다. 이제서야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묻고 있다. ‘무엇을’ 경험한 사람들이며, 한반도와 세계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비로소 질문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우택 연세대 외과대학 교수는 22일 오후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한반도평화연구원-미래나눔재단 특별공동포럼에서 이 같이 밝혔다. 북한이탈주민의 탈경계 경험과 그 과정에서 형성한 윤리에 대한 연구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이번 포럼은 미래나눔재단 창립 10주년을 맞아 한반도평화연구원이 수행한 ‘북한이탈주민의 탈경계와 윤리적 특성’에 관한 연구를 중간 보고하는 자리였다. 

22일 오후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한반도평화연구원-미래나눔재단 특별공동포럼이 개최됐다. ‘북한이탈주민의 탈경계와 윤리적 특성’을 주제로 한 이번 포럼에선 최병학 박사(부산교대), 신효숙 박사(남북하나재단), 윤보영 박사(동국대), 박신순 박사(숭실대), 김상덕 박사(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소)가 발제를 맡고, 정우택 연세대 교수, 정지웅 박사(코리아통합연구원), 현인애 이화여대 교수가 토론을 이어갔다. ⓒ유코리아뉴스

윤덕룡 한반도평화연구원 원장은 개회사에서 “가치체계가 다른 사회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은 것을 알면서, 우리 사회는 이를 개인의 적응 문제로만 치부해왔다”며, “북한이탈주민들이 한국사회의 내부 구성원으로 진입하도록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허용준 미래나눔재단 이사장(녹십자홀딩스 대표이사)은 인사말에서 “탈북민이 위험을 무릎 쓰고 넘어야 했던 국경은 윤리와 도덕의 경계이기도 했다”며, “탈북민들에게 이번 연구가 거울이 돼서 스스로의 규범을 비춰볼 수 있고, 대한민국 공동체에 더 깊이 들어오는 계기로 삼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최병학 박사(부산교대)는 ‘북한이탈주민의 남한정착경험 분석과 시민의식 재정립 방안’에 대해 발제하면서, “시민의식에 관한 윤리 문제는 정치, 경제 문제와 분리되지 않기에, 한국 사회에서 정치, 경제적으로 소외된 북한이탈주민의 시민의식을 다룰 땐 ‘모종의 행위규범을 이야기하는 전통적 의미의 윤리학’과 ‘정언명령이 이성적 판단 주체로서 인간에 부여하는 행위의 동기에 역점을 두는 윤리학’을 넘어서야 한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최 박사는 “북한이탈주민을 단지 소수집단으로 보기보다 ‘사회적 약자’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며, 이들이 주체성을 발휘하도록 사회 적응만 아니라 인간적 존재로서의 자아실현에 관심 둬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의 시민 윤리는 법적 주체로 사유, 도덕적 주체로 의지, 인륜적 주체로 판단할 때 가능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신효숙 박사(남북하나재단)는 북한이탈주민들의 단계별 윤리적 경험을 분석한 연구를 통해 “이들이 북한에서는 공식적으로 ‘국가’를 중요시하는 사회주의의 이념과 가치를 신봉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가족’ 단위로 가치와 책임의식이 강화된 삶을 살고, 탈북 과정에선 배금주의의 현실을 맞닥뜨리며 차별과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위협받는 불법체류자로서의 삶을 살았으며, 남한에선 국민이지만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유, 권리, 책임, 의무 행사에선 배제되는 경험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과정에서 북한이탈주민이 외부적 관점이 아닌 자신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를 극복하려는 ‘자기 의식’을 통해 새로운 관점을 형성해간다는 것. 아울러 신 박사는 “북한이탈주민들이 어려움을 극복해온 힘은 크게 스스로에 대한 강한 책임감과 가족애, 종교”라고 분석하면서, “상당수가 정신적 트라우마나 도덕적 손상을 종교적 가치로 이해하고 회복하며, 종교를 통해 자신에게 상처와 고통을 준 사람, 집단, 국가를 용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박신순 박사(숭실대)는 북한이탈여성의 가족 경험 연구를 통해 “국가의 경계는 넘나드는 이주 과정에서 탈북여성은 자신의 가족이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경험을 하면서 복잡하면서 다중적인 정체성은 갖는다”라고 분석했다. “그렇기에 고정되고 안정적이기보단 매우 유동적이고 불안전한 경향을 띤다”는 것. 박 박사는 “북한과 중국에서 가족의 생계를 최대화하기 위해 가졌던 생계윤리와 생사를 넘나드는 중국생활에서 가족도 생존의 수단과 도구가 될 수 밖에 없는 생존윤리가 기존에 가졌던 도덕 원리 위에서 작동한 결과로 이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상덕 박사(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소)는 “한국의 미디어가 북한이탈주민을 한국사회가 가진 이들에 대한 집단기억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소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으로써 대중문화가 북한과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시키고 있다는 것. 김 박사는 “북한이탈주민을 ‘북한 vs 남한’ 식의 이분법 사고가 아닌, 이탈(탈뿌리), 생존(트라우마), 이주(윤리적 혼란과 갈등), 적응(정체성)의 단계를 거쳐온 개인의 서사로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토론자로 나선 전우택 연세대 교수는 “북한이탈주민이 누구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연구하는 것은 그들에게만 아니라 남한사회와 미래 통일한국에도 매우 중요하다”면서 이번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울러 전 교수는 “이데올로기와 지역의 경계를 넘어와 남한 사회가 최종적으로 살만한지 고민하는 북한이탈주민을 통해 한국 사회의 가치 수준이 드러날 것”이라며, 한국사회의 변화와 과제를 짚기도 했다.

정지웅 박사(코리아통합연구원)는 “탈북민을 다문화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아직은 이들을 민족주의 관점에서 더 챙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족주의가 이데올로기서 작동해선 안 되지만, 버려서도 안된다”며,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것은 통일 이후에 할 일”이라고 못 박았다. 

현인애 이화여대 북한학 교수는 “배타적 문화가 충돌할 때 경제적, 정치적 충돌은 증폭된다”라며, “남북한 교류와 평화통일에 앞서 북한이탈주민을 통해 나와 다른 상대방을 용납하고 이해하고 공존의 기술 배워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 교수는 또 “인간은 집단에서 벗어나 누구에게도 통제 받지 않는 상황에선 윤리적 규범에 소홀해지기 마련”이라며, “자신의 경력을 속이거나 하는 행동은 북한이탈주민뿐 아니라 많은 이민자가 보이는 특성”이라고도 지적했다. 그런 만큼 북한이탈주민이 한국사회의 구성원으로 깊이 들어오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미래나눔재단은 2009년 녹십자 故허영섭 회장의 출연으로 설립된 재단으로, 탈북 학생들이 배움에 대한 열정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통일시대의 리더로 성장해갈 수 있도록 장학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정지연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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