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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미 판문점 회동, 그 이후

기사승인 2019.07.08  17:5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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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FES ‘현안진단’

사상 첫 남북미 판문점 회동이 있은 지도 일주일여 지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은 미국 대통령이 됐다. 잠시 만나 인사만 나누고 헤어질 것 같았던 북미 정상간 만남은 1시간 가까운 대화로 이어졌다. 사진 한 장 남길 것 같았던 상봉은 향후 2-3주 내 북미 실무회담 재개라는 성과까지 도출했다. 제3차 북미정상회담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남북미 또는 중국까지 포함한 정상들이 판문점에서 만나는 모습은 이미 지난해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이후 많은 전문가들이 언급해 왔다.

판문점 회동은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으로 시작되었고, 김정은 위원장이 이를 받아들여 하루 만에 극적으로 이뤄졌다. 결과와 의도는 일치하지 않는다. 판문점 회동의 결과가 좋다고 트럼프가 트윗을 던진 이유와 김정은이 판문점 행을 결정한 이유가 같을 수는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판문점으로 출발하기 직전까지 짧은 만남이라고 강조했다. 단순히 대선용 사진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에 자극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북핵문제 성과가 부족해 몸이 달아올랐다기보다는 내부 정치적 목적에 우선해 현상유지를 위한 상황 관리 차원에서 제안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하노이 회담으로 실추된 최고지도자의 존엄 회복 차원에서만 나왔다고 볼 수는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대로 군사분계선에 서서 인사하고 사진 촬영하는 정도의 짧은 만남이었다면 김 위원장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김 위원장은 또 한 번 자신의 약점을 노출하고 내부적으로도 자칫 더 큰 리스크를 안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판문점 회동 전날 밤 늦은 협상을 통해 북미 정상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요구했을 것이라 상상해 본다. 만약 우리 정부가 재빠르게 자유의집에 대화 장소를 마련하지 못했다면 역사적인 판문점 회동은 성사되지 못했을 것이다. 최근 북중, 북러 정상회담이 있었고 호기롭게 새로운 길을 외치고는 있지만 북한이 내심 원하는 지름길은 여전히 북미 대화를 통한 비핵화와 체제안정 보장일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은 연말까지 북미대화 가능성을 시한부로 열어둔 상황에서 하노이 이후 중단된 북미대화의 현상타파를 위해 판문점 만남 제의에 응했을 가능성이 높다. 설령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제안했다고 하더라도 김 위원장은 이를 북미 대화 재개의 마지막 기회로 보고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판문점 회동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하노이 회담에서의 의견차와 불만, 오해를 쏟아냈을 수 있다. 그 다음날 <노동신문>도 “걸림돌이 되는 우려사항을 설명했고 전적으로 이해와 공감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게 트럼프 대통령이 의도했던 2분의 군사분계선 상봉은 김 위원장의 의도대로 53분의 자유의집 대화로 이어졌다. 예상보다 긴 대화를 마치고 나오는 김 위원장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많은 생각이 담긴 얼굴이었다. 북미 모두 내부 정치적 목적이나 상호 대화 의지를 확인하는 차원을 넘어섰다. 대화를 통해 하노이 이후 깨진 북미 실무회담을 복원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협상 의제를 정하는 수준까지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논의 가능한 의제의 가시적 범위를 확인하였기에 향후 2~3주 내 실무회담을 재개할 것이라는 발표가 가능했다. 북미간 53분의 자유의집 대화가 없었다면 기대할 수 없었던 결과였다.

앞으로 재개될 북미 실무회담이 장밋빛만은 아니다. 판문점 회동 직후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북·미 비핵화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의 완전한 동결을 원한다”며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는 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북한이 비핵화할 때까지 대북 제재를 유지하는 대신 인도적 지원이나 연락사무소 개설 등을 언급했다. 미국이 동결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북한과의 협상에서 유연해진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이 이야기한 동결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협상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또 인도적 지원이나 연락사무소 개설이 동결에 따른 상응조치인지도 불명확하다. 상황은 더 복잡해졌다. 미국이 말하는 ‘동시, 병행’이든 북한이 요구하는 ‘단계, 동시’이든 범위를 결정하고 순서를 정하기 더 어려워졌다.

동결은 단순히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를 중단하는 유예와는 차원이 다르다. 실제 동결을 확인하고 감시하기 위한 사찰단(미국과 IAEA 중 누가 중심일지도 중요)이 상주하는 문제와 동결 시설 목록을 신고하는 문제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 특히 미국은 단순히 영변 핵시설의 동결이나 모든 핵 프로그램의 동결이 아니라 WMD의 동결을 요구하고 있다. 협상을 시작하면 플루토늄 재처리, 우라늄 고농축 등 핵물질 생산뿐 아니라 미사일과 화생무기 생산을 중단하고 모든 관련 시설을 폐쇄 봉인해야 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불가능한 요구조건이다. 일단 모든 WMD 생산 시설 가동을 중단시켜 더 이상 양적 증가가 없도록 차단하고 모든 시설을 확인한 상황에서 협상을 시작하겠다는 것이 과연 미국의 변화된 유연한 셈법인지 궁금하다. 일단은 모든 핵 프로그램 동결을 약속하고 우선적으로 확인된 영변 핵시설 폐기가 더 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영변 핵시설 폐기 카드를 다시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영변은 북한 핵시설의 근간”이며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과 우라늄 농축 시설을 포함한 영변의 핵시설 전부가 검증 하에 전면적으로 완전히 폐기된다면, 북한 비핵화는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든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영변 폐기를 다시 꺼낸 것은 결국 「9월 평양 공동선언」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함이다. 하노이에서 북한이 제기한 안을 그대로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영변 폐기를 시작으로 북한과 미국 모두 반걸음씩 양보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이 요구하는 ‘+α’는 없지만 검증을 포함하는 영변 핵시설 폐기를 보다 구체화하고 영변 폐기 시작과 동시에 미국의 상응조치로 싱가포르 정신에 따라 연락사무소 개설 문제나 종전선언(평화선언) 문제와 연결시킬 필요가 있다. 단,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체결 논의를 시작하는 문제는 시진핑 주석이 지난달 방북 기간 중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 실현에 적극적 역할을 하겠다고 한 이상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제재는 영변 폐기가 어느 정도 진전되는 중간 지점에 우리의 개성공단 재개 등 남북 경제협력을 우선 예외적으로 적용 실시하고, 추후 국제사회도 유엔 안보리 제재의 부분적 또는 단계적 완화를 모색하는 방안이 가능할 것이다.

향후 열릴 북미 실무회담 결과에 따라 한반도 비핵·평화의 길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이는 2~3주 이내 열릴 북미 실무회담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 판문점 만남 이후 한반도 정세는 더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오는 10월 1일 중국 건국 70주년과 10월 6일 북중 수교 70주년을 계기로 김 위원장이 방중해 북중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높다. 그 이전 9월 유엔 총회에서 김 위원장이 연설하게 될 수도 있다. 판문점 회동 이후 북미정상회담, 남북정상회담이 유엔 총회, 북중정상회담과 어떤 순서로 진행돼야 하는지 설계할 필요가 있다.

「9월 평양 공동선언」에서 합의한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이번 판문점 회동으로 북미간 대화의 채널이 다시 열렸다고 남북관계까지 정상화됐다거나, 우리의 중재자 역할이 복원됐다는 당위론은 우리의 희망일 뿐이다. 북한의 북미대화 채널이 리용호 외무상을 중심으로 한 외교라인으로 바뀌었다는 점을 냉정히 평가할 필요가 있다. 중재자 역할에 대한 미련과 집요함보다 냉정하고 신중하게 ‘되돌릴 수 없는 남북관계’를 만들 담대함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한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김동엽 donykim@kyungna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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