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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남방 정책: 오해와 진실

기사승인 2019.05.31  00: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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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 제119호

신남방정책 비전과 현실 정책의 괴리

문재인 대통령이 사람, 평화, 상생 번영을 기반으로 아세안과 미래공동체를 추진한다는 신남방정책을 발표한 지 벌써 1년 반이 지났다. 정부는 신남방정책을 담당할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를 구성했고, 기존 아세안대표부를 확대 개편하여 공식적으로 아세안을 4강에 준하는 외교파트너로 격상시켰다. 청와대의 드라이브에 맞춰 정부 각 부처나 출연연구기관에서는 신남방정책을 위한 사업 발굴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경기부진이 계속되고 시간이 흐르자 재계를 포함한 국민들은 정부의 신남방정책의 효과에 대해서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정부도 다소 조급해진 것 같다.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는 ‘사람 중심의 평화와 번영의 공동체’라는 비전을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2020년까지 한국-아세안 상호 방문객 1500만 등 교류 증대를 통한 상호이해 증진, 양자 무역규모를 2000억 달러로 늘려 상생의 경제협력 기반 구축, 평화롭고 안전한 역내 안보환경 구축을 전략 목표로 삼고 있다. 비전은 그럴듯했으나 정책은 몇 개의 정량적 경제협력 목표로 축소되고 말았다. 관광객의 증가, 무역과 투자규모의 확대가 한국과 아세안이 만들어갈 미래의 공동체라고 할 수는 없다. 적어도 문재인 대통령이 신남방정책을 주창했을 때는 경제적 목표 그 이상을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국민들은 기대를 낮추고, 정부의 정책 목표는 비전과 괴리되고 있을까? 신남방정책에 대해 크게 두 개의 오해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 국민이나 정부 일각에서는 지속되는 국내 경기부진 및 아세안에 대한 재계, 언론, 정부의 낮은 이해 수준으로 신남방정책을 대아세안 경제 진출 전략으로 인식한다. 이는 얼마 전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젊은이여 아세안으로 가라’고 말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둘째, 정부를 포함한 우리 국민들은 아세안이 우리가 이끄는 대로 따라올 것이라고 오해한다. 그래서 정부는 공동체의 정의조차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신남방정책의 비전을 ‘미래공동체’라고 밝히고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공동체는 우리 혼자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브루나이 정상회담이 끝난 후 브루나이 역대 왕실 역사와 유품 등이 전시되어 있는 로얄 레갈리아 박물관(Royal Regalia Museum)을 방문했다. 2019. 3. 11 청와대 제공.

한국은 이미 아세안 시장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어

그런데 아세안은 경제적으로 새로 진출할 시장이 아니라 이미 우리의 가장 중요한 협력 파트너 중의 하나이다. 지난해 대아세안 교역규모는 1,598억 달러로 전체의 14.1%이었는데 이는 중국의 23.4%보다는 적지만 미국 11.5%, EU 28국의 10.5%보다는 훨씬 많은 것이다. 또한 한국기업의 대아세안 투자는 2014년 이후 투자건수나 투자금액에서 대중국 투자를 상회하고 있다.

한편 우리는 아세안 경제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하고 있다. 아세안이 인구 6.5억 명의 거대시장이긴 하지만 경제 상황이 아주 밝은 것은 아니다.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와 브루나이를 제외하면 아세안 주요 공업국들은 중진국 함정에 빠져 있고, 미성숙 탈공업화(premature deindustrialization) 현상을 겪고 있다. 아세안 저개발국인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는 아직 UN이 지정한 최빈국(Least Developed Country: LDC)이다. 따라서 우리의 기대만큼 아세안이 새로 엄청난 시장을 제공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아세안에 대한 경제협력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총수출에서 아세안의 비중은 2018년 16.6%로 일본과 중국의 아세안 비중 15.5% 및 12.9%보다 더 높다. 아세안으로부터 수입은 총수입의 11.2%인데 일본과 중국의 아세안 수입 비중은 각각 15.0% 및 12.6%이다. 우리는 중국과 일본에 비해 아세안에 더 많이 수출하고 덜 수입하고 있는 셈이다. 그 결과 우리는 대아세안 교역에서 지속적으로 흑자를 기록하고 있고, 그 규모는 2017~2018년 기간에 연 400억 달러 이상이었다. 일본은 2018년 대아세안 교역에서 단지 22억 달러의 흑자를 거두었을 뿐이다.

아세안이 우리의 의도대로 따라올 것이라는 두 번째의 오해는 우리 사회의 아세안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데서 나온다. 사실 무역과 투자 이외에도 아세안과의 교류는 활발하다. 아세안을 방문하는 한국인 관광객은 일본의 아세안 방문보다 더 많아졌다. K-pop, K-drama로 대표되는 한류에 감동하여 한국을 방문하는 아세안 사람도 급증하고 있다. 또한 아세안의 비숙련 노동자들은 아시아의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한국에서 일하기를 바란다. 이런 사정으로 우리는 알게 모르게 국제사회에서 아세안의 정치적, 외교적 위상이 우리보다 낮을 것이라고 믿는다.

아세안은 1967년 창설된 이래 지난 50년 이상 냉전시대와 경제위기의 시대를 거쳐 왔고 지금 G2 시대에도 굳건히 생존해 있다. 내정불간섭, 합의에 의한 의사결정 방식이라는 아세안방식(ASEAN way)을 기초로 하는 느슨한 협력체임에도 불구하고 아세안은 변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존재감을 키워왔다. 아세안은 아세안지역포럼(ASEAN Regional Forum: ARF), 아세안+3 체제, 동아시아정상회의(EAS), 그리고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참여한다. 이 모든 기구에서 아세안은 중심적 역할을 하면서 중국과 일본을 제치고 아시아의 질서 구축 과정을 주도한다는 아세안 중심성(ASEAN Centrality)을 실현해 왔다. 지금 중국은 BRI로 아세안을 포섭하려 하고 있고 미국은 일본과 손잡고 인도 퍼시픽 전략을 내놓았다. 일본과 중국은 아세안에 경쟁적으로 인프라 건설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과 아세안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

사실 우리는 아세안을 필요로 한다. 우리 국민들이 기대하듯이 아세안은 시장 잠재력이 크다. 중국 의존도를 줄일 수 있는 대체시장 혹은 보완시장으로서 아세안을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아세안은 미중간의 갈등이 줄 충격에 완충장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공업생산액이나 구매력 평가 GDP가 미국의 그것보다 많아진 지금은 패권의 교체기로서 투키디데스 함정(Thucydides's trap)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설사 무역 갈등이 봉합된다고 해도 미-중 사이의 패권 경쟁은 어떤 형태로든 다시 불거질 것이고 이는 양국에 정치적, 경제적으로 크게 의존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치명적이다. 이 점에서 아세안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진전시키는데 훌륭한 친구가 될 수 있다.

미-중간의 갈등은 아세안에게도 고민거리다. 싱가포르의 국립연구소인 ISEAS-Yusof Ishak Institute가 2018년 말에 약 1,000명에 이르는 아세안의 관료, 학계, 언론, 재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시사적이다. 응답을 한 아세안의 엘리트들의 73.3%가 중국이 경제적으로 아세안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평가한 대신 미국의 영향력이 크다고 답한 비율은 7.9%에 불과했다. 정치적, 전략적 차원에서도 중국의 영향력이 가장 크다고 답한 비율은 45.2%로 미국을 답한 30.5%보다 많았다. 또한 응답자의 68.4%가 미국과 중국이 아세안에서 충돌의 길(collision course)로 가고 있다고 답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영향력이 큰 중국을 신뢰한다고 답한 비율은 19.6%에 불과했고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은 아주 낮지만, 일본에 대해서는 65.9%가 신뢰한다고 답했다. 동전의 양면과 같이 중국에 대해 불신한다는 비율은 51.5%, 일본에 대해 불신한다는 비율은 17%에 불과했다. 미국에 대한 인식(perception) 역시 중국에 대한 인식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신뢰할 수 없는 중국의 영향력은 예상 밖으로 커져버렸고, 오랫동안 협력 관계를 유지했던 미국은 자국 이기주의에 빠져 역시 믿을 수 없는 국가가 되었다.

이처럼 아세안의 엘리트들은 신뢰하기 어려운 미국과 중국이 아세안에서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아세안 정상회의를 마치면서 의장국이었던 싱가포르의 이센룽 총리는 “우리가 어느 편도 들지 않는 것이 바람직스럽지만 아세안이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빨리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I think it’s very desirable for us not to have to take sides, but the circumstances may come when ASEAN may have to choose one or the other. I am hoping that it’s not coming soon).”고 말했다. 이는 미-중 사이에 낀 아세안의 곤혹스런 처지를 나타낸다. 아세안은 대외적으로 아세안을 응원할 친구가 필요하다.

경제적으로도 아세안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고소득국가와 최빈국까지 공존하고 있다. 그런 아세안이 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통합과 단결이 이익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경제적 격차는 저소득국의 개방을 더디게 하고, 이 때문에 아세안의 통합속도는 외부의 원심력에 영향을 받고 있다. 캄보디아, 라오스 등 저소득 국가가 중국의 경제적 지원 때문에 아세안 통합의 가장 약한 고리가 되었다. 아세안이 역내 격차 해소에 더욱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현재 미성숙탈공업화 현상 속에 중진국 함정에 빠져 있는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도 고소득국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혁신을 통한 생산성 제고, 기술과 제품에서 경쟁력 있는 자국기업인의 육성 등 새로운 경제모델이 필요하다. 과거 이들은 선진국의 경제정책을 수용하고, 다국적 기업의 자본, 기술, 지식을 이용하여 중진국까지 도약할 수 있었지만 그 모델은 한계에 와 있다. 더욱이 4차 산업 혁명시대에 국민들의 혁신 역량을 키워야 하지만 태국과 필리핀에서는 최근 민주화가 후퇴하고 있다.

 

기술협력을 중심으로 장기적 안목에서 추진해야

그렇다면 우리는 신남방정책을 어떻게 추진해야 할 것인가? 문재인 대통령이 사람, 평화, 상생번영의 신남방정책을 제시했을 때 대통령은 아세안을 더 이상 단순한 시장으로 보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오히려 대통령은 한국과 아세안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가운데 인권과 복지 등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유동적인 국제정세 속에서 한반도 등의 평화를 위해 협력하는, 그리고 상호 이익이 되는 경제협력을 추진하는 대상으로 아세안을 인식했을 것이다.

이 점에서 신남방정책은 중상주의적인 우리만의 번영보다는 사람과 평화를 다시 강조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사람의 협력을 위해서는 아세안에 대한 근거 없는 우리의 우월의식을 불식시키고 아세안의 문화와 사회에 대한 이해를 높이도록 해야 한다. 서로를 이해하는 데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교육, 의료 등 아세안의 저개발국가에 대한 인도적 지원도 필요하다. 또한 급변하는 국제 정치, 경제, 안보 환경에서 평화와 안정을 위해 공동노력을 해야 한다. 중규모 개방국가로서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 한국과 아세안이 국제질서 구축과정에서 공동의 보조를 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시아 무대에서 적극적으로 아세안 중심성을 존중하고 지지할 수 있어야 한다.

 

아세안의 경제적 발전을 지원하여 원래 의미의 상생 번영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의 아세안에 대한 만성적인 무역수지 흑자, 선발 아세안과의 협력 정체라는 한국-아세안 협력구조의 문제는 아세안의 낮은 기술수준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낮은 기술 수준 때문에 아세안은 산업경쟁력 제고가 어렵고,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따라서 경제 협력의 중점을 아세안의 기술 수준 향상에 둘 필요가 있다. 중국과 일본에 비해 우리는 제한된 자원 때문에 아세안의 인프라 건설에 대규모의 지원을 할 수가 없다. 아세안의 후발국 예를 들면 메콩지역 국가들의 인프라 건설을 지원할 필요는 있으나 아세안 중진국에 대한 ODA의 중점을 기술과 지식의 발전 지원으로 전환해야 한다. 다국적 기업의 투자 주도로 성장한 아세안 경제는 자체 R&D 역량이 낮고 기술수준 제고가 어려워지는 문제에 봉착해 있다. 실제로 아세안은 전자, 자동차 등에서 한국이 어떻게 세계적인 기업을 육성할 수 있었는지, 싸이와 방탄소년단으로 대표되는 문화산업을 만들었는지에 관심이 많다. 경제발전 과정에서 기술개발을 위해서 우리가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 문화산업의 기초가 되는 국민의 창의력을 어떻게 함양했는지 등 많은 경험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기술과 지식의 이전은 중국 및 일본과 차별화된 우리의 협력 전략이 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아세안과의 협력에서 조기에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국민들이 신남방정책을 아세안 진출정책으로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정부는 국민의 여망을 이해해야 하지만 좀 더 긴 안목에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신남방정책이 문재인 정권의 정책이기 때문에, 또 국민이 원하기 때문에 단기에 어떤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1970년대 초반 동남아의 극심한 반일 감정에 직면한 일본은 1977년 후쿠다 독트린을 발표했다. 후쿠다 독트린의 요체는 마음과 마음(heart to heart)으로 동남아에 접근하여 동남아의 발전을 지원한다는 것이었는데 오늘까지 그 정신이 살아 있다. 이후 일본은 아세안에 막대한 원조를 지원했고 이를 바탕으로 점진적으로 아세안의 신뢰도를 쌓아왔다. 쌓아진 신뢰 때문에 장기적으로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한국과 아세안이 같이 만족하는 사람 중심의 평화와 번영을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를 어떻게 단기간에 만들겠는가? 문재인의 신남방정책은 “포용적이며 지속가능한 성장기반 구축 지원”을 더 강조하는 더 미래지향적이고 철학적인 “문재인 독트린”이 되어야 하고 정권이 바뀌어도 그 정신을 살려나가야 한다.

 

---이 기고문의 견해는 필자의 개인 의견이지 동아시아 재단의 공식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필자 소개

박번순은 현재 고려대학교 경제통계학부 부교수이자 외교부 정책자문위원으로, 산업연구원의 책임연구원을 거쳐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동남아 경제와 동아시아 경제통합에 대해 연구했다. 주요 연구분야는 동남아경제, 동아시아 경제통합이며 『아시아 경제 힘의 이동』 (2002) 「중국의 부상과 아시아의 대응」 (2006), 『하나의 동아시아』 (2010) 등을 펴냈다.

 

*본 칼럼의 저작권은 동아시아재단에 있습니다.

박번순 pbs21@korea.ac.kr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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