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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혁 목사 “지금이야 말로 한국교회가 북한을 품을 때”

기사승인 2019.05.24  15:5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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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혁 목사(83·강변교회 원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명예회장)는 한국교회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몇 안되는 ‘어른’이다. 거기다 천도교, 불교 등 범종교를 아우르고 있기도 하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의 식량난 때 ‘범종교적인 대북 지원’에 앞장섰던 김 목사를 지난 22일 사무실에서 만나 최근 북한 식량난에 대한 입장을 들어봤다.

김 목사는 우선 북한 식량난의 원인부터 짚고 넘어갔다. “북한의 식량난은 폐쇄적으로 고립적으로 정치 위정자 위주로 살고 있는 나라의 공통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그건 아프리카든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그런 나라는 식량난, 고난을 다 겪고 있다.”

김명혁 목사가 사무실에서 집무를 보고 있다. 김 목사는 지금도 직접 이메일을 보내고 인터넷으로 뉴스를 본다. ⓒ유코리아뉴스

‘북한 돕기=북핵 개발’이라는 한국교회와 보수층의 비판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김 목사는 “최근에 보니까 ‘북한을 도와서는 안 된다’고 하기도 하는데 이건 말도 안되는 것”이라며 “구약의 가르침이나 예수님의 가르침을 보면 주린 자나 목마른 자, 집없는 자나 유리하는 자에게 ‘먹을 것’ ‘입을 것’을 제공하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절대적인 가르침이다. 상황과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요나 선지자에게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는 주역이었던 앗시리아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회개를 선포하라고 했던 점을 언급하며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게 뭐가 잘못이냐’고 요나에게 말씀하신다. 역사에서 가장 악한 나라인데 ‘내가 이들을 아끼는 것이 뭐가 잘못이냐’고 하신다”며 “북한을 돕지 말자는 얘기는 정신 나간 생각”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 목사는 또 “나는 매맞아 죽으면서까지 신앙을 지키고 원수를 품었던 신앙 선배 주기철·손양원 목사를 닮고 싶다”며 “크리스천은 북한이든 남한이든 다 불쌍히 여겨야 한다. 모든 이들에게 긍휼 용서 자비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그러면 감동을 안받을 사람이 없다. 심지어 이단까지도 예외가 없다”면서 “북한이 어렵다고 하는 지금이야 말로 교회가 인도적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목사는 약 20년 전부터 범종단 인사들과 함께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을 만들어 매달 모임을 갖고 있다. 대북 인도적 지원은 물론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는 남북 정상회담과 남북교류에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며 비판 성명을 내기도 했었다. 다음달 5일에는 대북 인도적 지원 방법을 주제로 모임을 갖는다.

이런 그의 활동에 대해 보수 교계에서는 ‘종교 다원주의’ 등 곱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하지만 김 목사는 흔들림이 없었다. “앞으로 이런(대북 인도적 지원) 일을 범교단적으로 범종교적으로 하면 좋겠다. 3.1운동도 범교단적이고 범종교적이엇다. 내가 다른 종교와 이런 일을 하다보면 ‘뭐 저런 게 다 있냐’며 욕을 들을 때도 있다. 그러면 길선주 목사부터 욕을 해야 한다. 길 목사님이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이시니까.(웃음)”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는 “이전 대통령과 비교하면 훨씬 낫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 목사는 “완전한 사람은 하나도 없지만 이만 하면 대북관계, 대미 관계 다 잘하고 있다고 본다. (종교인 모임의) 종교인들은 대개 그런 생각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 목사는 “지금 우리는 일본 중국 모슬렘도 끌어안아야 하지만 우선 북한 우리 동포들을 품어야 한다”며 “신학적인 선입견은 다 없애고 다 죄인이 되어서 그들을 끌어안아야 한다”고 거듭 한국교회가 대북지원에 편견없이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억력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무엇보다 성경 이야기, 북한 이야기를 할 때는 연도나 사람 이름을 또렷하게 기억해 냈다. 그리고 지금도 김 목사는 주일이면 직접 운전을 해서 농촌, 어촌 등 작은 교회들을 찾아다니며 설교 무료 봉사를 하고 있다. 무려 12년째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최근 북한 식량난 소식이 국제기구에 의해 발표되었다. 그동안 ‘북한 핵’에 눈이나 귀가 가려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북한 식량난’은 좀 낯설기도 하고 새롭다. 한국교회나 크리스천은 이런 ‘북한 식량난’ 소식에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북한의 식량난은 폐쇄적으로, 고립적으로, 정치 위정자 위주로 살고 있는 나라의 공통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그건 아프리카든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식량난, 고난을 다 겪고 있다. 그렇지만 ‘북한을 도와서는 안 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것이다. 구약의 가르침이나 예수님의 가르침을 보면 주린 자나 목마른 자, 집 없는 자나 유리하는 자에게 ‘먹을 것’ ‘입을 것’을 제공하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절대적인 가르침이다. 상황과 관련이 없다. 한국교회 일각에서는 반북(反北)적인 정치지도자들이 ‘지금 북핵을 하고 있는데 뭘 돕느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옛날 니느웨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잡아 죽이고 시체를 매달고, 요나서 1장에 보면 ‘죄가 하늘에까지 찼다’고 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게 뭐가 잘못이냐’고 요나에게 말씀하신다. 역사에서 가장 악한 나라인데 ‘내가 이들을 아끼는 것이 뭐가 잘못이냐’고 하신다. ‘북한 정부가 잘 되게 돕느냐?’고 하는데 그것은 정신 나간 소리다. 그럼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이유는 뭔가. 그렇게 되면 더 이스라엘 사람들을 잡아다 죽일 텐데 말이다.

왼쪽 사진이 한경직 목사와 함께한 것이고, 오른쪽이 김 목사가 어릴 적 북한에서 찍었던 가족사진이다. 두루마기 입은 사람이 아버지 김관주 목사로 그는 북한에서 순교했다. ⓒ유코리아뉴스

-성경 말고 우리 역사에서도 그런 사례가 있을까?

우리 신앙의 선배들도 그랬다. 주기철 목사님은 매를 맞아 죽기까지 하셨다. 그때 일본 경찰들이 충격을 받는다. 해방 후에 조선의 진짜 목사는 주기철 목사님이시구나 인정받게 됐다. ‘주영하’라는 공산당 두목이 주기철 목사와 같이 감옥에 갇혔는데 주기철 목사라고 하면 그냥 무릎을 꿇을 정도였다. 손양원 목사님은 일본인들이 이름만 들어도 다 고개를 숙일 정도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이지만 막상 실천하는 게 쉽지는 않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온전하지 않다는, 즉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는 의식에서 시작하면 된다. 신학도 온전한 신학은 하나도 없다. 온전한 정치는 아무것도 없다. 여당도 야당도 마찬가지다. 다 자기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정당을 만들고 싸운다. 크리스천들은 정치인들도 불쌍히 여기고 북한도 남한도 불쌍히 여겨야 한다. 그래서 모든 이들에게 긍휼, 용서, 자비,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그러면 감동 안 받을 사람이 없다. 이단까지도 예외가 없다. 모슬렘 등 내가 그동안 안 찾아간 곳이 없는데, 가서 순수한 사랑을 베풀면 다 감동을 받는다.

 

이와 관련해 김 목사는 30여 년 전 방글라데시에 학교를 지어줘 이슬람과 힌두교인들로부터 칭송받던 일, 자신이 20여년 전부터 중국 옌벤 탈북 고아 145명을 돕고 있는 일 등을 설명했다. 특히 중국에 가면 공산당 지도자들로부터 대접을 받고 온다고 전했다. 이유는 그만큼 어떤 의도도 없이 순수한 사랑을 베풀기 때문이란다. 그러면서 김 목사는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건 사랑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어떻게 하면 북한을 향해 그런 순수한 사랑을 베풀 수 있을까?

한국교회가 앞장서야 하는데 한국교회가 나뉘어져 있다. 과거 조지 부시 대통령이 ‘악의 축’이라고 해서 아프가니스탄과 북한을 때려부셔야 한다고 했는데, 그건 아주 못된 짓이다. 옛날 퓨리탄(청교도)들은 그러질 않았다. 한국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고 말세가 됐다고 본다. 빌리 그레이엄의 딸 앤 그레이엄 로츠는 ‘지금 미국은 복음주의 신앙은 다 포기하고 있다.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됐다’ 이런 얘기를 1-2년 전부터 해오고 있다. 아버지 못지않은 순수한 영성을 지니고 있는 분인데 마음을 움직이는 그런 설교를 몇 번 들은 적이 있다. 한국교회도 참 귀중한 교횐데 의인 의식을 지니면 심판을 받는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셨다. 다 죄인이 되면 하나님의 긍휼을 받는데 지금 의인이 너무 많다. 보수 측이 특히 그렇다.

 

-목사님께서는 원래 보수적인 신앙에다가 성격도 곧으신 걸로 아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포용적이 되셨나?

난 과거엔 그렇지 않았다. 예수님의 가르침도 이사야의 말도 ‘하나님 기뻐하시는 금식은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이다’고 한다. 좀 이상하다. 어떻게 금식이 그럴 수 있는가 생각했다. 그런데 이사야서에 보면 ‘그따위 예배 안 받는다, 고아와 과부 어려운 사람 돕지도 않는 그 따위 제사 안받는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점점 깨달음을 갖게 됐고, 어려운 사람들을 사랑으로 돕는 일을 해온 것 같다.

나는 과거엔 기장(기독교장로회)도 틀렸고 순복음도 틀렸다고 생각하고 말했다. 그러다가 20여년 전 스티브 린튼(유진벨 재단 대표) 박사가 북한에 다녀오면서 나한테 전화를 했다. ‘북한이 어려운데 좀 도와주셔야겠다’고. 난 언제부턴가 듣기를 잘한다. 그래서 그 얘길 듣고 한국교회에 호소를 해서 북한 돕는 일을 했다. 그것 때문에 중국 훈춘에 가서 쌀을 사서 트럭 한 대에 싣고 북에 갖다줬다. 난 기억도 잘 안나는데 박남수 천도교 교령이 만나기만 하면 ‘그때 목사님께서 이렇게 하셨고 저렇게 하셨다’고 하면서 자꾸 얘기를 들려준다.

 

-말씀하신 것처럼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이하 종교인모임)을 활발하게 이끌어오고 계신데, 최근에는 잠잠하신 것 같다.

종교인들과 20년 전부터 북한 돕는 일을 많이 했다. 1690톤 감자를 5개 종단 지도자들이 99대 트럭에 실어서 북에 보낸 적도 있고, 2010년엔 이명박 정부와 대판 싸우면서 개성에 밀가루를 전달해 준 적도 있다. 종교인 모임을 시작할 때 천주교의 김수환 추기경, 불교의 송월주 스님, 개신교의 강원용 목사 등과 함께 대북 인도적 지원 100만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일을 지금 다시 시작하자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교회가 하나가 안됐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하냐는 것이다. 종교인모임은 매달 한 차례식 모임을 갖는다. 6월 5일에도 모임을 갖는데, 대북 인도적 지원 문제를 다루려고 한다. 앞으로도 이런 일을 범교단적으로 범종교적으로 하면 좋겠다. 3.1운동은 범교단적이고 범종교적이었다. 내가 다른 종교와 이런 일을 하면 ‘뭐 저런 게 다 있냐’며 욕을 먹는다. 그러면 길선주 목사부터 욕을 해야 한다. 길 목사님이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이셨으니까.(웃음)

 

-목사를 비롯한 종교인들이 장로였던 이명박 대통령 정부와 싸움을 벌이면서까지 대북 지원을 했다고 하셨다. 과거 기사를 찾아보니까 개신교 목사들이 ‘이명박 대통령을 찾아가 무릎이라도 꿇고 남북정상회담과 인도적 지원을 호소하겠다’고 했는데, 결국 이 대통령은 대북 강경책을 버리지 못했다. 원인이 뭐라고 보나?

난 정치에 대해 잘 모른다. 다만 그때 통일부 국장에게 ‘이건 반통일정부다. 이런 정부는 빨리 없어져야 한다’며 내가 막 야단을 쳤다. 노무현, 박근혜 대통령은 만나봤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만나지 못했다. 노 대통령을 만났는데 박정희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물론 (박정희 대통령이) 비판도 받아야 하지만 잘한 것도 있으니까 너무 그렇게 비판만 하지는 말라’고 조언했다. 그저 소박하게 얘기했는데 나중에 노 대통령이 남미인가 어디를 방문해서 ‘박정희 대통령이 귀한 일도 많이 했다’고 말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 다음엔 국가조찬기도회를 하는데 노 대통령이 참석했다. 대통령이 이런 인사말을 했다. ‘그동안 제가 잘못한 게 많았다. 여러분들이 기도 많이 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김 목사는 노 대통령의 이런 고백에서 힌트를 얻어 한국복음주의협의회에서도 ‘제가 잘못했습니다’를 주제로 월례발표회를 열기로 했다. 그날 바로 전화를 돌려 이중표 목사, 김창인 목사, 강원룡 목사, 조용기 목사 등의 참여를 끌어냈다. 이것이 사회적 주목을 받았던 2005년 4월의 ‘내가 잘못했습니다’를 주제로 한 한복협 월례발표회였다. 김 목사는 감리교 목사는 ‘난 옛날에 회개를 다 했다’고 해서 감리교는 빠진 발표회가 됐다고 뒷 이야기를 들려줬다.

기자에게 <나의 조선 방문기>를 읽어주고 있는 김명혁 목사 ⓒ유코리아뉴스

-이명박 대통령은 못만났고 박근혜 대통령은 만났다고 하셨는데, 어떠셨나?

청와대에서 만났다. 교계 지도자 20명 정도가 참석했다. 그때 환경부장관이 ‘전라도에서 국제마을 대회를 하는데 박 대통령을 초청했는데 안왔다’고 했다. 내가 그랬다. ‘대통령이 가서 격려도 해야지’ 했더니 박 대통령이 ‘다음달에 가겠습니다’ 했다. 그래서 그 다음달엔 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면서 모임을 끝내려고 하기에 내가 나섰다. ‘방지일 원로목사님이 오셨는데 기도도 안 받고 끝내면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박 대통령이 ‘그럼 기도해 주세요’라고 해서 방 목사님이 기도를 하고 마친 일이 있다. 나는 언제 어디서나 그저 ‘막가파‘ 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잘하고 계신 것 같나?

이전 대통령과 비교하면 훨씬 낫다. 완전한 사람은 하나도 없지만 이만 하면 대북관계, 대미 관계, 잘하고 있다고 본다. 종교인들도 대개 그런 생각일 거다. 문 대통령이 대통령 되기 바로 전에도 종교인들이 격려하기 위해 대통령 후보 비서실장을 불러서 ‘대통령 되면 앞으로 이러이렇게 하면 좋겠다’고 건의한 일도 있다.

 

-며칠 전 평화통일연대 ‘평화 칼럼’에서도 ‘나는 본래 반일 반북 반공 반중 반(反)모슬렘 반(反)타종교주의자였다. 그러나 조금씩 나의 생각과 마음이 바뀌어졌다’라고 고백하셨는데, 어떤 계기로 바뀌어지셨나?

역사를 돌이켜보고 주기철, 손양원, 한경직, 존 스토트 목사 이런 여러 분들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내가 어거스틴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어거스틴은 양면성이 있다. 하나가 아니다. 지상만도 아니고 천국만도 아니고, 천국이지만 지상도 있다. 그런 양면을 가지고 박사학위를 썼다. 그때는 학문으로만 했지만 그것이 살아나서 신앙으로 삶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어거스틴만큼 포괄적인 신학자가 없다. 칼빈도 루터도 웨슬리도 어거스틴의 영향을 다 받았다. 어거스틴의 영향을 받은 존 스토트 박사도 정말 포괄적이다. WCC를 비판하면서도 WCC 모임에 언제나 참석한다. 피터 바이어하우스가 그렇다. WCC를 앞장서 비판하지만 WCC 모임에 참석해서 잘 들은 다음 ‘이건 이래서 잘못이고 저건 저래서 잘못이다’ 이렇게 했다. 피터 바이어하우스 같은 선배들을 보면서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되겠다. 모두를 끌어안는 신학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빌리 그레이엄 박사도, 토마스 선교사도 공통점은 분노가 없다는 것이다. 토마스 선교사는 자신을 목 자르는 박춘권을 향해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고 했다. 그래서 박춘근이 완전히 변화되고 교회의 일꾼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토마스 선교사가 없었다면 한국교회가 세워지지 못했을 수 있겠구나 생각한다. 이 밖에도 손양원, 한경직 목사님이 그러셨다. 이런 분들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은 죄인, 환자를 부르러 오셨지 의인이나 건강한 자를 부르러 오신 게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우리는 일본, 중국, 모슬렘도 끌어안아야 하지만 우선 북한 동포들을 끌어안아야 한다. 신학적인 선입견은 다 없애고 우리 모두 죄인이 되어서 끌어안아야 한다. 이런 일은 그냥 되는 것은 아니고 제물을 필요로 한다.

 

-그러고 보니까 예전부터 ‘한국교회에 제물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던 것 같다.

제물이 10명만 있다면 나라가 변할 수 있는데, 난 6명만 있어도 나라가 변화될 것 같다. 역사를 보면 5~6명이다. 데이빗 브레이너드는 인디언들을 위해 기도만 했다. 그로부터 요나단 에드워즈가 감동을 받는 것이다. 대각성운동을 일으킬 때 요나단 에드워즈 등 몇 명이 그저 기도했을 뿐이다. 그것이 대각성운동이 되었다. 장대현교회 회개운동, 각성운동은 길선주 목사님이 산에 올라가서 새벽 4시부터 몇 시간 동안 새벽기도 하다가 일어난 것이다. 한국의 새벽기도는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주기철 목사님은 부산에 있을 때나 마산에 있을 때, 평양에 있을 때에도 맨날 산기도를 하셨다. 그런 제물이 될 수 있는 열 사람만 있으면 좋겠다. 사도들이 열한 사람 가지고 세상을 바꾸지 않나. 수백 명 수천 명이 필요없다. 한경직, 길선주, 손양원 같은 사람 여섯 명만 동시에 있다면 대통령이 제멋대로 못하고 목사도 제멋대로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한국교회가 바뀔 수 있고 한국사회가 새로워질 수 있다.

-가장 존경하는 분은?

한 분을 단정할 순 없다. 신학자 중엔 어거스틴, 풀러신학교에서 나에게 선교학을 1년간 가르치신 랄프 윈터 박사님, 내가 한번도 만나지 못했던 이기풍 주기철 최권능 손양원 목사님, 그리고 한경직 목사님, 이성봉 목사님으로부터 감동을 너무 많이 받았다. 정진경 목사님의 따뜻한 사랑, 옥한흠 이중표 목사님의 친밀함, 방지일 목사님의 따듯한 사랑, 강원용 목사님의 사랑도 너무 많이 받았다. 나는 처음엔 강 목사를 자유주의신학이라고 막 비판했었다. 그런데도 그 분은 나를 계속 격려해 주셨다. 그 분이 돌아가신 다음에 한 분이 내게 ‘강 목사님이 김 목사님을 짝사랑했어요’라고 전해줬다.

 

-1989년 방북했던 문익환 목사님은 어떻게 평가하시나?

개인적으로는 친밀하진 못했지만 잘했다고 생각한다. 반공 상황일 때 친공적으로 나가는 것도 난 괜찮다고 본다. 니느웨를 사랑하신 하나님, 로마를 사랑하신 예수님 아닌가. 사도 바울에게 ‘이제 로마로 가라’고 하셨으니까. 그 말은 사실 당시 상황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것 아니었나. 요나가 니느웨 안가겠다고 대들고 하지 않았나. 문 목사님 같은 분이 평양에 가서 충격을 주는 것도 좋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방북하신 건 언제인가?

2010년이다. 그 전엔 종교인 대표로 평양에 두 번 갔었다. 갈 때마다 대놓고 북한 비판 많이 했다. 단군릉 앞에서는 ‘이렇게 크게 하면 돈이 너무 많이 든다’고 비판하고, 구호 간판을 크게 한 것은 ‘환경훼손이다’고 비판했다. 가는 곳마다 비판했다. 그래서 내 별명이 ‘막가파’다. 그런 나를 보고 같이 갔던 윤남중 목사는 밤에 불안해서 잠을 못잘 정도였다. 하지만 난 새벽까지 잘 잤다. 매일 숙소에서 허락도 없이 빠져나와 사람들을 만나고 학생들 사진을 찍고 그랬다. 황해도에 가서는 내가 비판을 많이 했다. ‘미국놈들이 몇 만명을 때려죽였다’고 하는데 내가 그랬다. ‘그건 국제조사단이 와서 조사를 한 다음에 얘기하라’고 말이다. 그랬더니 당국자가 ‘이렇게 말한 사람은 백만 명 중에 한 사람도 없다’며 ‘가만두지 않겠다’고 하기도 했다. 그런 실랑이를 벌이면서 북한 사람들을 더 가까이 느끼게 되었다. 체제와 사상이 다른 것은 사실이지만 얼마든지 쉽게 가까워질 수 있는 게 북한 사람들이다. 가장 강성인 한 형제(그는 북한 동포들을 이렇게 표현한다)는 ‘이전 사람들과 다르게 솔직하고 순수해서 좋았다’고 했다. 길거리나 학교에서 놀고 있는 북한 어린이들을 사진 찍었다. 어린이들과 얘기도 나누었는데 그들의 자세가 아주 적극적이었다.

김 목사가 북한에서 찍었던 다양한 사진들. 그의 집무실엔 수많은 책과 사진으로 둘러싸여 있다. ⓒ유코리아뉴스
김 목사는 북한 관계자의 만류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호텔을 몰래 빠져나와 학생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었다. 1999년 사진 ⓒ유코리아뉴스

 

-목사님은 북한 출신인데다가 그만큼 애정이 있기에 비판하셨던 것 아닌가?

난 북한이 잘되게 하기 위해 비판했다. 내가 그들을 비판하는 동시에 그들 편에 서서 순수하게 얘기하니까 그들은 귀찮아하면서도 내 말에 동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에게 ‘영몰라 통몰라’라며 별명을 해줄 정도로 친해졌다. 한 주간 서로 부대끼면서 피차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하여튼 자주 만나야 한다. 북한 사람들은 강인한 정신력과 문화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북한 여성들은 참으로 곱고 매력적이다. 이 얘기를 쭉 했더니 스티브 린턴 박사가 ‘이젠 북한에 못가십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3년 후인 2002년에 또 초청을 받았다. 이번엔 노동당 지도자가 나를 보더니 남한에서 나온 책을 보여줬다. 가는 곳마다 비판하고 김일성동상에서 절도 안하고 한 것을 읽을 것이다. 그러더니 ’아니 이렇게 하면 어떻게 하냐“고 따졌다. 내가 그랬다. ‘북조선에 자유가 있다는 걸 알려야 하지 않나. 이렇게 비판을 하고도 남한에 무사히 왔다는 걸 알려야 하지 않나.’ 그랬더니 그 사람이 막 웃었다. 진심이 통하는 순간이었다.

 

-한국교회 소망이 있을까? 있다면 어디에 있을까?

11년 5개월째 작은 교회 찾아다니며 설교하고 있다. 작은 교회가 조금 더 희망이 있다고 본다. 김삼환 목사님이 비판도 받지만 귀한 일을 참 많이 하셨다. 작은 교회를 돕는 일을 내가 오래 전부터 하니까 많이 도와주셨다. 성경 사사기를 보면 70년 이상 공동체가 가는 경우가 없다. 그래서 몽둥이로 7번 정도 치신다. 그러면 1년 후 회개를 하고 다시 70년 있으면 타락한다. 그걸 반복한다. 인간은 유대인이건 한국인이건 미국인이건 100년 동안 제대로 지속될 수 없다. 그래서 몽둥이가 필요하다. 난 그 얘길 20여년 전부터 하고 있다. 70년은 너무 길고 7년도 너무 길고 7개월만 한국교회 모든 교단의 총회장들과 기관의 지도자들을 다 탈레반이 잡아다가 매일 몽둥이로 치면 거기서 교단도 없어지고 야곱처럼 울면서 서로 끌어안을 수 있지 않을까. 그 길밖에 없지 않을까. 심한 몽둥이가 아니어도 조그만 몽둥이라도 필요하다. 그래서 난 천안함 사건 났을 때 ‘아 이건 몽둥이인데..’ 하면서 ‘조금 더 심한 몽둥이가 필요합니다’라고 기도하기도 했었다.(웃음)

 

-회개와 함께 한국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은 뭐라고 보나?

지금 한국교회에 산기도, 저녁예배 다 없어졌다. 주일(안식일)은 영원히 계속된다. 천국에도 안식이 있다. 그러니까 이 땅에 있을 때 안식을 잘해야 한다. 지금 주일을 잘 지키라는 것이다. 목회, 선교, 구제는 다 없어진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모든 족속, 천사들이 다 흰옷 입고 경배한다고 되어 있다. 영원한 안식이다. 그걸 준비해야 하는데 앤 그레이엄 로츠가 말한 대로 미국 복음주의는 지금 신앙을 잃어버리고 있다. 한국교회도 신앙을 잃어버리고 있다. 주기철, 손양원 목사님이 감옥에서 교우들에게 늘 편지쓰면서 ‘주일성수 잘하라. 새벽기도 잊지 마라’고 공히 강조하셨다. 그것만이 소망이 아닐까 생각한다.

손주들과 함께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김명혁 목사. 그의 집무실엔 손주들과 함께한 기상천외(?)한 사진들이 많다. ⓒ유코리아뉴스

-요즘 가장 마음이 가 있는, 가장 절실한 기도제목은?

남남도 물론이지만 남북이 화해와 평화, 하나됨을 이루는 것이다. 그것이 성경의 마지막 결론이니까. 요한계시록의 결론이 그렇지 않나.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의 순교의 핏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하나되는, 화해하는 평화와 통일의 그 날을 속히 주실 수 없습니까, 그게 늘 중얼거리는 것이다. 그걸 위해 나를 제물로 드리게 하소서, 기도한다.

 

-목사님께서 이미 그 제물의 삶을 살고 계신 것 아닌가?

아니다. 아직 그렇게 못하다.

<끝>

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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