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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 다시 한 번 진검승부에 나설 때다

기사승인 2019.03.25  17:5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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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현안 진단’

포스트-하노이의 살얼음판

포스트-하노이 프로세스에 먹구름이 끼고 있다. 합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북한은 협상 재개 의사를 접지 않은 채, 가까스로 희망의 끈을 이어오고 있었다. 먼저 잽을 날린 것은 미국이었다.

지난 21일 미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국(OFAC)이 북한의 제재회피를 도운 혐의로 복수의 중국 해운사를 제재 리스트에 올렸다. 동시에 석탄 불법 환적 혐의로 새로 49척의 선박이 리스트에 추가되었다. 이 중 북한 선박이 33척이다. 독자제재 강화에 해당하는 행동이었다. 제재를 강화할 생각이 없다던 트럼프 대통령의 하노이 기자회견에 위배되어 미국이 먼저 ‘새로운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닌지 의심되었다.

이에 대해 북한이 반응했다. 22일 북한은 “북측 연락사무소는 상부 지시에 따라 철수한다”는 입장을 통보하고 일방적으로 공동연락사무소에서 철수했다. 다행히 북한은 남측 사무소 인원의 잔류는 상관하지 않겠다며 공동연락사무소 자체를 폐쇄하지는 않았다.

북한의 이러한 행동은 이미 3월 15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남조선은 중재자가 아니라 플레이어’라고 말한 기자회견에서 예견되었다. 이에 대해 18일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플레이어지만 중요한 플레이어라 생각한다’고 대응하고, 20일 이낙연 국무총리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기대라고 해석했다. 이낙연 총리는 이제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보이는 것으로 응답할 차례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북한이 다시 최선희 부상의 발언을 부연했다.

북한이 연락사무소에서 철수하겠다고 밝힌 22일, 북한의 대외선전 매체 <메아리>는 한국이 “미국에 대해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할 말은 하는 당사자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며, 당사자의 의미를 설명했다. 미국을 설득하라는 것이다. 같은 날 북한의 또 다른 선전매체 <우리 민족끼리>도 통일부 업무보고를 언급하며 “북남선언 이행을 위한 꼬물만 한 진정성도 의지도 찾아볼 수 없다”고 비난했다.

 

북미협상 국면의 복구는 가능한가?

이처럼 북한은 한국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었지만, 독자제재를 강화한 미국에 대해서는 비난을 자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움직일 공간이 주어졌다. 23일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추가제재 철회’를 지시했다. 이를 두고 미국 행정부 내에서 혼란이 일긴 했지만 비핵화 협상 구도를 유지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는 명확했다.

하노이에서 합의 도출에 실패한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장을 퇴장한 것이 아니고 회담을 외교적으로 끝냈다고 발언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북한을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조만간 평양에 특사를 파견하겠다고 발언해서 협상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북한도 회담 결렬 다음날, 하노이 회담이 대화 계속을 위한 생산적인 회담이었다고 논평하고 북미 정상의 ‘재상봉’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그런 한편 북·미회담의 미국 측 주연은 트럼프에서 볼턴으로 교체되고 있었다. 볼턴은 하노이 회담 이후 연일 미국의 주요 언론에 등장하여 ‘미국의 최대압박 작전이 계속될 것이며, 김정은 위원장에게 진짜 충격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서 언급한 15일 최선희 부상의 기자회견은 이에 대한 대응이었다. 최선희 부상은 하노이에서 미국이 ‘강도 같은 태도’를 보였다고 비난하고 특히 볼턴 보좌관에 대해 “적대감과 불신의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최 부상은, “두 정상의 궁합은 신비할 정도로 훌륭하다”며, 북·미 두 정상의 3차 회담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북한의 속내는 3월 6일, 평양에서 열린 제2차 전국 당 초급선전일꾼대회에 보낸 김정은 위원장의 서한에서 읽을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수령에 대한 신비주의를 경계하고 “인민이 흰쌀밥에 고깃국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고 좋은 집에서 살게 하려는 것은 수령님과 장군님의 평생 염원”이라며,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보다 더 절박한 혁명임무는 없다고 강조했다. 3월 12일에 발표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당선자 명단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포함되지 않았다. 최고지도자의 이름이 빠진 것은 북한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하노이 합의 실패에도 북한식 ‘보통국가화’ 노선은 유지되고 있다. 그 성공을 위해서는 제재 해제가 필수다. 국내 사정이 이럴진대 북한이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이탈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비대칭 협상과 중견국의 역할

핵·미사일을 개발하려는 북한과 이를 무력화하려는 미국 사이의 협상은 전형적인 약소국과 초강대국의 비대칭 협상이다. 북한에게 핵·미사일 개발은 유일한 자위수단이다. 미국에게 비핵화는 국제적 위신을 유지하는 여러 수단 가운데 하나다. 비핵화 협상은 북한의 생존과 미국의 체면을 맞바꾸는 협상이다. 본래 비대칭적인 북·미관계를 대칭구도로 만든 것이 핵·미사일 개발이지만, 핵·미사일을 건 협상에 나선 순간 비대칭구도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중견국 한국의 중재자-당사자 외교가 나설 공간이 있다. 중견국은 중간 규모의 능력을 발휘하는 외교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분쟁해결을 위한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여 촉매, 촉진자, 관리자가 되려는 의도를 갖는다. 북·미 사이의 비대칭구도는 한국이 중견국의 위치 에너지를 바탕으로 북·미협상의 중재, 촉진, 관리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다만 비핵화의 과제가 우리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단순한 중재자가 아니라 당사자이기도 하다. 중재자이자 당사자인 이 이중성이 ‘플레이어’ 논란의 핵심이다. 그래서 우리는 북·미협상의 중재자 역할에 더해 남북협상과 한·미협상의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

한편 북·미협상의 중재자 역할 수행을 어렵게 하는 것은 이른바 ‘트럼프 리스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회이자 위기이다. 기회 요인으로 활용하되, 위기 요인이 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여기에서 이 지역의 또 다른 중견국 일본과의 협력이 중요하다. 일본이 중견국이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동북아 국제질서 행위자 가운데 일본은 미·중·러와 다른 외교행태를 보인다. 일본은 적어도 아직은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일방주의를 채택하지 않고 다자주의 외교를 선호하며, ‘힘’보다는 ‘규범’에 의존하는 외교를 펼치고 있다.

그 이유는 군사력 보유와 전쟁을 금지한 ‘평화헌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베의 몸부림에도 헌법 개정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또한 저출산 고령화와 이에 따른 사회보장비 급증, 재정위기 심화라는 3중의 제약으로 일본이 군사력에 바탕한 강대국 외교를 펼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일본이 미일동맹에 경사하며 우경화하는 것은 이러한 절망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 우선주의로 흐르며 미·일동맹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했다. 일본 외교는 ‘트럼프 리스크’에 대비하여 미·일동맹을 대체할 ‘만일의 사태(contingency)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현안 진단>에서 몇 차례 지적했듯 일본은 러·일관계, 중·일관계에 보험을 들고 있다. 북·일관계도 예외는 아니다.

 

포스트-하노이 프로세스와 일본

하노이 합의 실패 이후 일본을 훼방꾼으로 지목하며 그 책임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베가 납치문제를 내세워 대북 제재 유지와 강화를 주장하며 북·미협상의 속도를 조절하려 했던 것은 사실이다. 일본은 북한의 요구가 지나쳤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을 지지했다. 미국과 완전히 공조하는 태도다. 그러나 하노이 정상회담 전후, 일본도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2월 들어 먼저 북한 쪽에서 신호가 나왔다. 2월 4일, 일본에 조난한 북한 선원의 귀국을 위해 노력해 준 데 대해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가 일본에 감사를 표명했다. 이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며칠 후 일본 쪽에서 이에 호응하는 움직임이 나왔다. 2월 15일 <교도통신>을 통해 다나카 미노루(田中実)라는 일본인이 평양에 거주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다나카는 일본 정부가 인정한 납치자 17명 가운데 한 사람이다. 2014년 스톡홀름 북·일 합의 이후 북한의 정보제공을 묵살했던 일본이 처음으로 이 사실을 보도했다. 17일에는 일본인 납치 피해자 가족 모임이 김정은 위원장 앞으로 ‘새로운 메시지’를 발표했다. 납치피해자를 돌려주기만 하면 북한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북·일 정상회담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이틀 뒤 아베 총리는 납치 피해자 가족과 면담하고 가족 모임의 입장을 확인했다.

북·일 국교정상화는 장기집권에도 이렇다 할 성과가 없는 아베에게 유혹으로 어른거리고 있었다. 헌법개정은 멀어졌다. 러·일 평화조약도 난망한 상태다. 현재까지 거의 유일한 성과로 포장된 아베노믹스도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싱가포르 회담 이후 남북, 북·미, 북·중관계가 급진전하는 가운데 일본이 소외되고 있다는 초조감이 일본에 퍼지고 있다. 일본은 하노이의 북·미합의를 외압으로 삼아 납치문제 해결의 수위를 조율하면서 북·일 정상회담을 준비했다고 볼 수 있다.

하노이 합의 실패로 일본은 스스로 납치자 해결의 수위를 낮출 수 없게 되었다. 북·일 국교정상화도 다시 먼 과제가 되었다. 아베의 계산도 헝클어졌다. 하노이 이후 일본은 북한에 강공으로 나서고 있다. 이에 북한이 호응할 리 없다. 일본의 강공에 대한 대응이 3월 8일 <로동신문> 기사 ‘고약한 섬나라 족속들은 천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였다. 기사를 통해 북한은 미국에 대한 직접 비난을 피하면서, 하노이 회담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을 공식화하는 한편 일본을 격렬하게 비난했다. 북한은 일본이 납치자 문제를 전면에 내세워 북·일 협상의 주도권을 쥐려는 데 반발하며, 협상의 주된 의제가 과거사 해결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북·일 사이에서도 중재가 필요한 상황이다. 더구나 하노이 합의 실패로 북·일 사이가 벌어진 만큼 한국 외교의 공간이 커졌다. 한편 북·일 국교정상화는 우리가 남북관계를 개선한 이후 한반도와 일본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데 필수과정이다. 여기서도 한국은 중재자이며 당사자이다.

일본은 최근 유엔인권이사회의 대북 비난 결의안 제출을 유보했다. 북·일 정상회담의 창을 열어두겠다는 제스처다. 결의안 제출 유보에 대해 일본에서는 비판이 일었다. 그러나 외무성 간부는 ‘비판을 각오하고 리스크를 무릅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고 대응했다. 트럼프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 국내 여론의 리스크를 감수하겠다는 일본 외교의 뒷심이 보인다.

트럼프 리스크라는 위기 요인을 공유하는 일본과 협력하여 북·미간 비대칭협상을 대칭구도로 가져가는 디딤돌로 한·일관계가 있다. 우리 외교가 일본을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할 때다.

 

당사자 외교와 중재자 외교의 배합

하노이 회담에서 합의 실패의 최대 피해자로 한국이 지목된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의 길이 멀어졌다는 점에서는 맞는 말이다.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그렇다. 그러나 중재자의 입장에서는 활약의 공간이 더 커졌다. 그 점에서는 오히려 수혜자다. 넓어진 중재자의 공간에서 당사자 외교를 펼치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한편에서는 ‘설득해 달라’고 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당사자가 돼라’고 한다. 미국도 북한도 서로 자기편에서 자기 대신 싸워달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입장에서 당사자가 되어 양쪽을 설득해야 한다. 우리의 입장은 오직 하나, 평화다. 미국과 북한을 설득할 우리의 무기는 정의다.

의지가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제재가 풀리지 않아도 제도 구축은 가능하다. 가시적 성과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할 일은 많다. 당사자로서 우리가 할 일은 우리가 살아야 할 공간의 재구축이다. 북한과 머리를 맞대고 도면부터 만들어 가자.

북한도 생각을 다시 해야 한다. 우리가 당사자로서 역할을 하려면 우리 외교에 무게가 실려야 한다. 공동연락사무소를 기능부전에 빠뜨려 한국의 위상을 추락시켜서 북한이 얻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제도 구축은 지속성을 생명으로 한다. 겨우 만들어 놓은 제도 창출의 거점을 스스로 망가뜨리는 행위는 김정은 위원장이 “수령님과 장군님의 평생 염원”이라며, 절박한 혁명임무라고 강조한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을 위한 희망의 창을 닫는 행위이다.

우리는 개인적 욕심에 사로잡힌 사람이 주인공이 된 역사를 본 적이 없다. 전쟁사의 흐름에서 보면 인류의 역사는 국익이라는 이름의 욕망과 전략이라는 이름의 계산이 뒤엉킨 역사이지만, 평화사의 흐름에서 보면 그것은 평화를 희구하는 정의의 역사이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하지만, 전쟁의 시간보다는 평화의 시간이 훨씬 길었다는 점에서 그것은 회피된 전쟁의 역사, 즉 평화의 역사이다. 평화의 역사를 일구라는 촛불의 명령으로 탄생한 이 정부는 괜히 싸구려 전략에 기대어 좌고우면하지 말고 부디 평화의 역사가 가리키는 길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우직하게 나가기 바란다. 지금은 진검승부의 칼을 다시 들 때다.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inst1@p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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