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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남북 교류를 생각하며 한국교회를 성찰함

기사승인 2019.03.14  13: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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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통일연대 평화칼럼] 지형은 목사

나는 오늘 발제에서 남북 교류와 연관하여 한국교회를 살피려 합니다. 한국교회 안에 있는 한 사람으로서 현재 한반도에서 진행되고 있는 평화 과정과 연관하여 남북 관계 전반에서 그동안 한국교회가 걸어왔던 자세와 방향을 성찰해봅니다. 이 작업은 앞으로 한국교회가 걸어갈 여정에 방향을 제언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작년 6월 초 교계 신문에 ‘어리둥절할 때’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썼습니다. 독일 통일과 연관하여 내가 겪은 체험이 여기 담겨 있습니다. 칼럼의 처음 부분을 조금 첨가해서 인용합니다.

“이제 30년이 다 되어간다. 1989년 9월에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독일 중부의 루어 지역 보훔대학교(Ruhr Universitaet Bochum)에서 독일어 과정부터 시작했다. 두 달 정도 지났을 무렵 하루는 라디오를 듣는데(당시 아직 텔레비전을 마련하지 못했다) ‘무슨 난리’가 일어난 게 분명했다. 처음에는 상황 파악이 잘 안 됐던 것은 내 독일어 듣기 실력 때문이었다. 애를 써가며 집중해서 듣다보니, 이런,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것이었다! 1989년 11월 9일에 시작된 세기적 사건이다.

전 독일이 기쁨으로 전율했다. 유럽이 흥분했다. 세계가 떠들썩했다. 동서 냉전이 종식되는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보훔 중앙역 길 하나 건넌 마우리티우스가(Mauritius Str.) 21번지 3층에서 벅찬 가슴을 끌어안고 뉴스를 들었다. 밖에서 함성이 들렸다. 밖으로 나가보니 중앙역 쪽에 사람들이 많았다. 온통 감격과 흥분의 물결이었다. 왜 안 그랬겠는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일주일 전까지도 심지어는 독일 정치인들도 이 사실을 예측하지 못했다고 한다. 일 년 뒤 1990년 10월 3일에 동서독은 법률적으로 통합됐다. 독일 통일은 그렇게 어리둥절하게 찾아왔다.”


1995년 7월에 신학박사 학위를 마치고 귀국했으니까, 저는 베를린장벽 붕괴부터 통일을 거쳐 통일 독일이 정착하는 초기 5년을 독일에서 지냈습니다. 독일은 통일 후에 지금까지 여러 모로 그들이 겪은 통일 과정과 통일 이후의 여정을 반추하면서 성찰을 계속해왔습니다. 독일의 성찰이 한반도의 평화 과정과 통일에 중요한 교훈이 될 것입니다.

작년 6월 7일 서울 온누리교회에서 국제 통일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이 세미나에서 독일의 통일 과정에서 베를린 원탁회의를 주도하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베르너 크레첼(Werner Kraetschell) 박사가 ‘독일 통일에서 교회의 역할’이란 제목으로 발제했습니다. 그는 독일의 통일 과정에서 서독 쪽이 저지른 뼈아픈 실수 중 하나를 지적했습니다. 서독의 지도자들과 여론 주도자들이 동독 쪽 사람들의 얘기를 충분히 듣지 않고 그들의 상황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크레첼 박사는 한국이 통일 과정에서 이 점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이러저러하게 애매한 점이 많기는 하지만, 한반도에 평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2018년 평창올림픽 이전까지만 해도 위기 상황이 깊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불어온 이 바람은 어리둥절한 행복이요 낮선 설렘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교회가 어떤 자세를 갖고 어떻게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살펴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기독교의 복음을 토대로 하여 당위성에 관한 질문을 던져야 하고, 그와 더불어 진행해야 하는 일의 가능성도 물어야 합니다. 이런 작업에서 한국교회는 진솔하게 자신을 반성적으로 살펴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전반적으로 복음의 개인적 정체성에 유별나게 집중력이 강합니다. 19세기 미국의 대부흥운동에서 일어난 선교 운동이 한국으로 이어지면서 근본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신앙이 한국교회 신앙의 토대가 된 까닭입니다. 19세기 말에야 시작된 한국교회가 길지 않은 기간에 양적으로 강력하게 성장한 것이 이런 상황과 연관됩니다.

동전의 양면처럼, 복음의 개인적 정체성이 강한 것은 다른 쪽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교회는 복음의 사회적 연관성에 약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사회의 각 영역에 어떻게 실현되는지 그 구체적 행동이 허약합니다. 법조, 교육,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의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다운 윤리 도덕을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는 데 미흡합니다.

복음의 정체성과 연관성을 특별계시와 일반계시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특별계시에는 강하지만 일반계시에는 약합니다. 지금 한반도에 불고 있는 평화의 바람과 여기에 이어져야 할 평화와 통일의 여정과 관련하여 한국교회가 일반계시의 덕목, 곧 복음의 사회적 연관성을 훈련하지 않으면 지도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한국교회가 좀 더 깊이 자신을 성찰하며 현장의 실천에 이어져야 하는 덕목을 일반계시와 연관하여 다음의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인도적 인륜도덕,

둘째는 창조의 생태윤리,

셋째는 법치의 민주주의,

넷째는 상생의 시장경제입니다.

 

이 네 가지는 복음의 특별계시가 강하게 작동될 때 그 열매로서 우리가 사는 땅에서 일어나야 하는 변화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에서 ‘아버지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하소서’라는 내용은 특별계시와 일반계시가 한데 어우러지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스스로를 살피며 이런 질문들을 던져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이 네 가지가 복음의 가치와 연관돼 있는 구조를 분명히 확신하고 있는가?

한국교회의 조직과 운영과 사역에서 이런 가치가 훈련되며 작동되고 있는가?

한국교회의 구조와 사역이 주로 자기 몸집 불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한국교회는 세상에 파송되어, 세상의 온전한 구원을 위해, 세상 안에 있는 교회인가?

 

지금까지의 논의에 덧붙여 한 가지 더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공교회적인 연대(連帶)입니다. 한반도 및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여정에서 한국교회는 더욱 깊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심장으로 끌어안아야 합니다. 구심력의 역할을 하는 개인적이고 내향적인 정체성과 원심력의 역할을 하는 사회적이고 외향적인 연관성을 조화롭게 살아내야 합니다. 이런 여정에서 공교회적인 연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국내의 범 기독교적인 연대와 동아시아 및 세계적인 범 기독교 집단들과 연대해야 합니다. 평화와 통일이라는 의제를 놓고 보수와 진보를 망라한 범 기독교가 뜻을 모아야 합니다. 개신교, 가톨릭, 정교회 등의 모든 기독교 집단이 연대해야 합니다. 여기에 근거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오늘날 세계의 건강한 종교들과 이 사안을 위해 힘을 모으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이들 모두가 가진 사회 문화적이며 정치 경제적인 모든 역량을 결집하여 행동에 이어지게 해야 합니다.

한국교회남북교류협력단은 한국교회의 보수와 진보 그리고 남북 관계와 연관된 교계의 사회단체까지 함께하자는 모임입니다. 지금까지 한국교회의 보수나 진보는 각자의 신앙 가치관에 따라 최선을 다해 남북 교류에 힘써왔습니다. 그러나 현재 남북 관계의 틀 자체가 바뀌고 있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시아와 오늘날 세계의 상황이 한반도와 뗄 수 없이 연결돼 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라는 주제는 이미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습니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큰 폭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보수와 진보가 함께 일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이 필요합니다. 복음의 정체성과 연관성이 바람직하게 어우러지고 작동되도록 통섭(統攝)의 시각과 지평이 절실합니다. 위에서 말한 일반계시의 네 가지 덕목과 범 기독교적인 연대가 한국교회의 남북 교류와 연관하여 기본적인 가치와 자세로 검토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한국의 속담에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는 안 샐까’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듯한 화해와 평화, 그리고 언제 올지 모르지만 이제는 현실적으로 희망도 할 수 있는 통일이 오기 전에 한국교회는 먼저 현재진행형으로 복음적 가치부터 진지하게 훈련해야 합니다. 이런 훈련과 삶의 고백이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선취(先取)하는 행위입니다. 역사에서 가르침을 얻는다면 우리는 독일보다는 어리둥절하지 않게 평화와 통일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점진적이며, 평화적이며, 복음적인 상생의 통일 말입니다.

지형은 (말씀삶공동체 성락성결교회 담임목사, Dr. theol.)

 

 

*이 글은 지난해 11월과 지난 3월 4일 한국교회남북교류협력단 정책토론회와 국제세미나 발제문을 필자께서 다시 정리해 주신 것입니다. -편집자 주

지형은 sungnak2005@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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