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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 원폭, 강제동원 피해를 말한다

기사승인 2018.12.22  07:5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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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현대사기념관·민화협, 국제학술회의 개최

남북이 함께 일제 강제동원 진상규명을 해나가기로 한 가운데 일제 식민지배에 따른 피해 실태를 밝히는 자리가 마련됐다. 21일 오후 1시, 서울 도봉구 덕성여대 대강의동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는 민화협과 근현대사기념관이 주최하고, 민족문제연구소와 태양평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가 주관했다.

21일 오후 1시, 서울 도봉구 덕성여대 대강의동에서 ‘학살, 원폭, 강제동원 피해를 말한다’라는 주제로 국제학술회의가 개쵀됐다. 이번 학술회의는 민화협과 근현대사기념관이 주최하고, 민족문제연구소와 태양평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가 주관했다. 첫 발제자로 나선 김승은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잘못된 서훈 결과, 국립현충원에 독립운동가와 친일파들이 함께 안치된 부조리가 현재도 지속되고 있다”며 “늦었지만 독립유공자 전수조사는 피할 수 없는 숙제”라고 밝혔다. ⓒ유코리아뉴스

이날 북측 민화협은 서면 축사를 통해 “일본은 패망 70년이 훨씬 넘도록 과거 죄악에 대한 사죄와 배상은커녕 오히려 침략 역사를 미화분식(‘낡은 것, 뒤떨어진 것을 그럴듯하게 꾸며 본질을 가린다’는 뜻) 하면서 대조선 적대적 정책과 군국주의 부활 책동 등으로 고조해 나가고 있다”면서, “우리 민족에 있어서 일본의 과거 죄악을 청산하는 것은 일제에 유린당한 치욕을 씻고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며 민족의 자주권을 지키는 소중하고 중대한 문제”라고 밝혔다. 북측 민화협은 또 “이번 국제학술대회는 일본의 과거 죄악을 결산하고 민족의 존엄을 지켜나가려는 우리 겨레의 강력한 기개와 결의를 과시하고 침략과 살육의 역사를 회피하고 있는 일본에 대한 국제사회의 항의와 단죄의 목소리를 높여 나가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의의가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전했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김승은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식민지역사박물관 학예실장)은 “독립유공자는 일제 침략 과정에서 가장 큰 인명 피해의 당사자임에도, 3.1 운동 100주년을 앞둔 지금에 와서야 실질적 조사를 하고 있을 만큼 연구 조사가 부족했다”고 지적하며, “(식민지 범죄시기를) 일본이 침략전쟁을 일으킨 1937년 이후가 아닌 그 이전(평시)으로 확장하고, 일제의 사법권 아래서 사상범으로 처벌받은 조선인들까지 대상에 포함해 일제의 식민지 범죄를 새롭게 범주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49년 한국 정부가 작성한 ‘대일배상요구조서’의 항목에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기 인적 피해 565만 명이라고 제시돼 있을 뿐, 독립운동을 포함한 포괄적 인명 피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러면서 김 연구원은 “일제에 의한 대량 학살의 대표적인 사건으로 꼽는 ‘동학농민운동’, ‘의병전쟁’, ‘3.1운동’, ‘경신참변’과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가운데 동학농민군 희생자 수는 대략 2-5만 명(1894년 봄부터 1895년 초까지), 의병 희생자 수는 10여만 명, 3.1 운동 희생자 수는 7,500여 명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아울러 김 연구원은 “학살과는 다른 양상으로 탄압을 받은 서대문형무소의 정치사상범도 국가기록원, 국사편찬위원회, 국가보훈처가 소장하고 있는 판결문 분석 등을 통해 피해 실태를 조사한 후 (일제에 의한 인명 피해) 수치에 반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강산 연구원(성균관대학교 박사과정)은 일본과 한국에서 진행된 관동대학살 진상규명 활동을 소개하면서, “1923년, (관동대학살 발생 이후) 천도교, 기독교, 사회주의 그룹이 결성한 ‘이재조선동포위문반’은 조사를 통해 조선인들을 죽음으로 이끈 유언비어(‘조선인이 방화했다’,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킨다’ 등)가 사실이 아니란 것과 유언비어의 출처가 일본 당국이라는 점을 밝혀냈으며, 해방 이후 일본의 각 지역에서도 조사·연구·추도가 동시에 이뤄지는 진상규명 활동이 이어졌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 연구원은 “사건의 직간접적 관계자가 사망한 시점에서 더 이상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생산해내긴 어렵다”며, “일본과 한국 양국에서 진상규명을 위한 새로운 방식의 고민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특히 사건 발생 100주년이 채 5년도 남지 않은 지금도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면서, “6,661명이라고 알려진 관동대학살 피살자 수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신문> 특파원이) 식민권력의 방해 가운데 낸 조사 결과였고, 당시 관헌에 의한 은폐(시체의 비밀처리)도 극심했기에 정확한 수치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연구원은 “학살의 주체인 일본 정부가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역사적 사실의 규명은 난망하다”며, “진상 규명을 위해 국가 차원에서 관동대학살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 발표를 요구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차바 준코 씨(한국원폭피해자들을 돕는 시민모임)는 “히로시마, 나가사키에서 원폭 피해를 본 조선인은 7만 명에서 10만 명 가량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준코 씨는 “히로시마시와 나가사키시가 추산한 조선인의 사망자 수는 굉장히 적지만, 당시 조선인들은 일본인과 달리 도망갈 곳이 없었고 병원 치료를 중단, 거부 당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사망률이 일본인보다 당연히 높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준코 씨는 또 “2008년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사는 원폭 피해자를 실태 조사한 결과, 북한에도 1,911명의 피폭자가 있었다는 게 밝혀졌으며, 당시 생존해 있던 382명은 ‘반핵평화를 위한 조선피폭자협회’에 가입했다”고도 밝혔다. 아울러 준코 씨는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있는 원폭자료관에 한국인(조선인) 피폭자 수를 명시한 자료가 하나도 없다는 점”을 안타까워 하며, “한국과 일본, 나아가서는 미국이 협조해 조선인 피폭자 수를 합의해 일본과 한국 원폭자료관이나 한국의 기념 시설에 명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민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2004년부터 2015년까지 활동)가 조사한 국외(일본) 강제노동 피해자 수는 약 120만 명(노동자 72만 명, 군인·군속(군무원) 40만 명, 기타)이며, 전체 동원자 중 남한 주민은 약 78만 명”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 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가 추가 진상규명이 요구되는 사람들, 유골문제, 사할린 문제, 원폭 피해자 문제, BC급 전범 문제, 야스쿠니합사 문제, 시베리아억류자 문제와 추모 공간 정비 등의 후속 조치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끝냈다”면서 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에 대해 반성적 평가를 하기도 했다.

한편 남북 민화협은 지난 11월 3일, 금강산에서 열린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 민화협 연대모임’에서 내년 3.1 운동 100주년이 되는 때, ‘강제징용 피해자 공동토론회’를 개최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정지연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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