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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옷자락 외교’와 서울 남북정상회담

기사승인 2018.11.26  08: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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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현안 진단’

역사의 문을 뛰쳐나가는 신의 옷자락을 붙잡아라

철혈재상으로 알려진 비스마르크는 신성로마제국 아래에서 여러 공국(prince)으로 나뉘어 있던 독일을 1871년에 처음으로 통일시켰다. 당시 비스마르크는 통일의 기회가 왔을 때 이를 놓치지 말고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면서, “역사의 문을 뛰쳐나가는 신의 옷자락을 붙잡아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러한 명구는 1990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서독이 통일될 기회가 왔을 때 다시 한번 발휘되었다. 당시 통일을 둘러싸고 사민당은 국가연합을 거치는 단계적 방식을 내세웠지만, 집권당이었던 헬무트 콜 총리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조기통일을 선택했다. 급속한 통합으로 인해 일부 혼란과 부작용이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까지도 통일을 이루기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 남북관계는 통일의 단계는 아니지만, 통일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결정적인 단계에 와 있다. 우리 분단사에서 모처럼 비핵 평화와 통일기반 구축을 위한 기회의 창(Window of Opportunity)이 열린 것이다. 이번 기회를 살리지 못한다면 신이 역사의 문을 뛰쳐나가버려 어쩌면 평화공존과 통일의 기회를 다시는 맞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돌이켜보면,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평화공존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다. 첫째는 2000년 6월의 첫 남북정상회담이다. 이 회담은 미국의 지지를 받아 10월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과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워싱턴과 평양을 상호 방문해 북·미 관계가 급진전했다. 하지만 11월 미 대통령선거에서 대북 강경파인 부시 후보가 당선되면서 좌절되었다. 2007년 10월의 제2차 남북정상회담도 뒤이은 12월 한국 대통령선거에서 대북 압박책을 앞세운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면서 역시 ‘기회의 창’이 닫혀버리고 말았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이후 잇따른 문 대통령의 순방외교

올해 들어와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었지만, 여전히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하다. 우리 정부는 8월 24일 북·미 고위급회담이 취소되는 등 비핵화 협상이 위기를 맞이하자, 대북특사를 파견하고 뒤이어 평양 정상회담(9.18~20)을 개최하였다. 여기서 발표된 「평양 남북공동선언」을 통해 동창리 미사일 엔진시험장과 발사대, 영변 핵시설 단지에 대한 폐기 의사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직후부터 문재인 대통령은 ‘신의 옷자락’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본격적인 순방외교에 나섰다. 해외순방의 첫 기착지는 유엔총회가 열리는 뉴욕이었다. 9월 24일 뉴욕에서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다섯 번째 만나 평양 정상회담의 성과를 설명하고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의 약속을 받아냈다. 뒤이은 9월 26일 문 대통령은 유엔 총회연설을 통해 유엔 회원국들에게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위한 지속적인 지지와 협력을 부탁하였다.

문 대통령은 귀국한 지 보름 뒤인 10월 13일부터 21일까지 유럽 순방에 나섰다. 먼저 프랑스를 국빈 방문해 마크롱 대통령을 만나 북한의 비핵화가 ‘되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이르면 대북 제재를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ASEM이 열리는 브뤼셀에서도 메이 영국총리, 메르켈 독일총리, 콘체 이탈리아총리, 투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융커 집행위원장을 만나 한반도 비핵화를 촉진하기 위한 유럽국가들의 협력을 요청했다.

그 중간에 문 대통령은 10월 18일 로마교황청을 공식 방문하여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북한 방문을 요청하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북한에서 공식 초청장이 오면 무조건 응답을 줄 것이고, 나는 갈 수 있다”며 화답하였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교황의 평양 방문을 요청할지는 아직 확실치 않지만, 교황이 북한 땅을 밟게 된다면 북한이 국제사회로부터 신뢰를 받게 되는 또 한 번의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문 대통령은 11월 13일부터 18일까지 싱가포르와 파푸아뉴기니에서 잇달아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이를 계기로 한-아세안 정상회의를 갖고 통룬 시슬릿 라오스 총리, 푸틴 러시아 대통령, 펜스 미 부통령과 면담했다. APEC이 열린 파푸아뉴기니에서는 피터 오닐 파푸아뉴기니 총리와 시진핑 중국 주석과 만났다.

그리고 11월 30일~12월 1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릴 예정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도 참석해 트럼프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G20 정상회의 전날 열릴 예정인 11.29 미·중 정상회담의 결과에 따라 한반도 정세도 일정하게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의 순방외교, 어떻게 볼 것인가

문 대통령의 순방외교는 단독 정상회담을 통해 주로 양국 현안이 다루어졌고, ASEAN국가들과의 회의에서는 우리 정부의 신남방정책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 순방외교의 목표는 단연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얻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의 유럽 순방 목표가 대북 제재완화였는데, 서유럽국가들은 우리 정부의 대북 제재완화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아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한다. 이를 가리켜 야당의 한 중진의원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국제사회의 조롱거리가 됐다”고 빈정댔다. 심지어 문 대통령이 북한을 대변한다고 비난하는 사람조차 있었다.

실제로 ASEM 결의안에서는 대북 제재완화의 내용은 담기지 않았고, 오히려 최근 미국도 의식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촉구하였다. 하지만 CVID는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에 나와 있는 공식용어이고, 미국도 대북협상에서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를 쓸 때 빼고는 주로 CVID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대북 제재완화를 위한 국제적인 지지를 얻는 것이 대통령 유럽순방의 한 목표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완화 반대의 목소리를 듣고 온 것도 외교적으로 가치 있는 것이다. 그동안 북한은 중국, 러시아를 통해 제재완화를 우회적으로 요구해 오다 지난 9월 29일 리용호 외무상의 유엔총회 연설을 계기로 이를 공식 제기했다. 남북대화 때도 우리 측에게 5.24조치 해제 등 독자제재의 해제를 압박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문 대통령이 대북 제재완화를 국제사회에 공개리에 호소한 것은 두 가지 효과를 얻은 것으로 평가된다. 첫째는 우리가 제재완화를 위해 최선을 다해 성의를 보여주어 남북 사이의 신뢰를 크게 증진시켰다는 점이다. 둘째는 국제사회의 여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 북한이 전향적인 비핵화 조치 없이는 제재완화가 어렵다는 현실의 벽을 느끼도록 해준 것이다. 이러한 효과는 향후 남북대화나 북·미 비핵화협상에서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줄 것이다.

혹자는 문 대통령의 노력이 남북관계에는 효과가 있더라도 한·미간 대북 공조는 차질을 빚는 것 아니냐고 비판한다. 하지만 이런 지적은 일본의 대북 외교가 보여준 실패 사례를 보면 그렇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일본은 한 치의 틈도 없이 미국과 공조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일본의 대북 지렛대 상실이었다. 미·일이 찰떡공조 상태라면 북한이 미국과만 얘기하면 되지 굳이 일본과 대화할 필요성이 없게 되는 것이다. 이제야 일본도 독자적인 대북 접촉에 나서고 있다.

우리 정부가 당사자로 북한과 협상하거나 중재자로서 북·미 사이에서 가교역할을 담당하려면 우리 나름의 대북 지렛대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정부로서는 큰 틀에서 한·미 공조를 견지하면서도 미국보다 반 발짝씩, 한 발짝씩 앞서 나가고 있고, 이러한 접근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월 4일 대북특사단의 방북을 하루 앞두고 이루어진 문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북한과 미국 양쪽을 대표하는 수석협상가(chief negotiator)가 되어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11월 15일 대북 강경파로 알려진 펜스 미 부통령도 문 대통령에게 “북쪽과 좀 더 긴밀히 소통하고 대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처럼 미국은 북·미 협상보다 남북관계가 급진전되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한국의 역할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2019년을 ‘결실의 해’로 맞이하기 위한 서울 남북정상회담

2019년은 거국적인 3.1운동이 일어나고 대한민국의 뿌리인 상해 임시정부가 건국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는 이러한 뜻깊고 역사적인 해를 맞이해 올해 이루어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노력이 하나둘씩 결실을 맺도록 해야 한다.

지난 4월 1일 우리 측 에술단이 ‘봄이 온다’는 부제를 달고 평양에서 공연했다. 공연이 끝난 뒤 김정은 위원장은 우리 측 출연진과 만나 “이번에 ‘봄이 온다’고 했으니까 여세를 몰아 가을엔 ‘가을이 왔다’를 제목으로 공연을 하자”며 덕담을 건넸다. 김 위원장이 말한 가을은 계절의 의미 외에도 결실이라는 뜻도 담겨 있는 것 같다.

역사적 전환점이 된 2018년 한 해도 한 달여 남은 채 저물어가고 있다. 지난 초가을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려 많은 기대를 갖게 했지만, 여전히 비핵화의 진전이 미흡하고 대북 제재가 유지되는 등 한반도 평화의 ‘가을’은 아직 온전히 오지 않았다.

우리는 2019년을 한반도 평화를 되돌이킬 수 없도록 하는 진정한 결실의 해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해를 넘기지 말고 성사시켜야 할 과제가 있다. 바로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은 남북정상회담 개최라는 의미를 뛰어넘어 2019년 한반도 평화를 위한 확실한 메시지가 될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을 기대한다.

*본 칼럼의 저작권은 평화재단 평화연구원에 있습니다.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inst1@p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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