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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공동선언 20주년과 동북아 신안보질서의 가능성

기사승인 2018.09.12  11: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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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동된 북·미 협상

지난 8월 24일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4차 방북 전격 취소로 암초를 만난 듯 했던 북·미 협상이 2차 특사단 방북으로 다시 동력을 얻었다. 9월 18~20일 평양에서 3차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어 ‘판문점선언’ 이행을 확인하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 및 공동번영을 위한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특히 남북 정상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실천적 방안을 협의한다는 대목이 주목된다. 나아가 이번 방북 특사단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가 끝나는 2020년까지 비핵화를 완료하겠다는 시간표도 제시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국경’을 통해 친서를 전달했다고 밝히고, 이러한 북한의 일련의 행동을 ‘아주 멋지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편 9월 10일부터 15일까지,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한·중·일 3국을 순방할 계획인데, 이번 순방은 북·미 협상 재개 가능성을 타진하는 기회가 될 것 같다. 미 국무부는 비건 특별대표 파견이 북한의 비핵화 달성을 위한 외교노력의 일환이라고 해 싱가포르 합의가 이행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특사단 방북으로 북·미 협상이 다시 가동되고 있는 데 대해 중국과 러시아가 대체로 환영과 기대를 표명하고 있다. 반면 일본의 공식 반응은 여전히 유보적이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6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특사단 방북이 북한의 구체적 행동으로 연결되기를 바란다고 못을 박았다. 일본은 비핵화를 위한 북한의 ‘구체적 행동’ 없이 경제제재를 풀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본 일각에서는 남북정상회담에서 “한국이 북한과 안이한 타협을 하지 않도록 쐐기를 박을 예정”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북·일 비밀협상이 의미하는 것

그러나 일본이 북한을 상대로 압박만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일본은 일본대로 북한을 상대로 비밀리에 협상을 하고 있었다. 북·일 비밀접촉은 7월 15일, 베트남 호치민시 호텔에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실이 <워싱턴 포스트> 기사로 알려진 것이 8월 말이니 1개월 반 동안 비밀이 유지되었다.

북한 측 대표는 김성혜(金聖恵) 조선로동당 통일전선부 전략실장이고 일본 측 대표는 기타무라 시게루(北村滋) 내각정보관인 것으로 보인다. 김성혜는 평창 동계올림픽 때 한국을 방문했으며 김영철 부위원장과 워싱턴을 방문해서, 트럼프 대통령과 기념촬영도 한 바 있다. 최근의 활동 폭으로 보아 김정은 위원장의 측근으로 판단된다. 기타무라 시게루는 폼페이오가 CIA 국장 시절부터 일본 측 파트너였던 사람으로, 지난 5월 폼페이오가 방북했을 때, 북한 지도부에서 ‘아베 수상에 직접 연결되며 신용할 만한 사람’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폼페이오가 소개했다고 전해진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판문점에서의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북·일 국교정상화를 언급했던 것이 북한을 움직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보다 앞서 북·중 정상회담에서도 시진핑 주석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북·일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언급했다는 관측이 있다. 이에 북한 측이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고, 미국이 북·일 사이를 중재했다고도 할 수 있다.

북·일간의 접촉을 처음 보도한 8월 28일자 <워싱턴 포스트>는 트럼프와 아베 사이의 소통 부재와 이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불쾌감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북·일 교섭에 폼페이오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기타무라가 나선 것이 사실이라면, 그리고 그 배경에 미국의 움직임이 있었다면 미·일간에 조율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거기에 한국 정부는 물론 중국도 북·일관계 개선을 바라고 있다면, 북·일 정상회담 개최가 그리 멀지 않았다는 감촉을 얻을 수 있다. 아베가 자민당 총재 3선을 확정하면 본격적인 움직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다시 돌아보는 1998년 한일공동성명의 의의

북·일 국교정상화는 남북의 화해 협력 및 한·일관계 발전과 더불어 동북아 평화를 보증하는 세 기둥이다. 이 세 가지 양자관계는 동북아시아 평화구축의 핵심과제이며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이 사실을 1998년의 한일공동선언을 계기로 시작된 동아시아 화해협력 프로세스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98년에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총리가 채택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은 일본이 과거사에 반성과 사죄를 표명하고 한국이 미래지향의 관계 발전을 확인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과거에서 미래로 시점을 옮기는 데 현재 이룩한 성과를 서로 높이 평가하고 있는 부분이다. 일본은 한국이 이룩한 민주화의 성과를, 한국은 전후 일본의 평화적 발전을 높이 평가했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이 평화헌법 하에서 전수방위와 비핵3원칙을 견지하며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한국과 일본이 서로 민주주의와 평화의 가치를 공유하는 관계임을 확인했다. 공동선언의 후반부에서는 한·일 양국이 군축과 대량살상무기의 비확산에 함께 노력할 것을 확인하고 있어서, 이때의 평화가 비핵평화의 가치임을 알 수 있다.

나아가 공동선언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북한이 개혁과 개방을 지향함과 함께 대화를 통한 건설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했다. 이러한 인식을 기초로, 오부치 총리는 김대중 대통령이 추진하는 한반도 화해 협력에 지지를 표명했다. 또한 일본은 1992년 2월의 남북 합의서에 대해서도 지지를 표명했다. 공동선언과 동시에 채택된 행동계획에는 북한이 핵비확산조약(NPT)의 의무를 이행하고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을 체결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공동의 목표로 제시되어 있었다.

이와 같이 1998년 한일공동선언으로부터 2000년의 남북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 그리고 2002년의 북·일 정상회담과 평양공동선언이 발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2018년에는 4월의 ‘판문점선언’에서 6.15 공동선언이 발전적으로 계승되어 동아시아 평화구축의 프로세스가 재개되는 느낌이다.

지난 5월 한·중·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가 1998년 한일공동선언 20주년이 되는 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취임 이래 스스로 표방한 대일외교의 투 트랙 접근이 이 한일공동선언의 정신에 기초해 있다고 천명했다. 한국 측의 적극적인 움직임에 당초 시큰둥했던 일본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떠밀려 한일공동선언 20주년을 기념한 새로운 공동문서 발표에 호응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러면 올해 안에 문-아베 공동선언이 채택될 가능성도 있다.

동북아시아 비핵지대화 구상의 현실화

당초 아베 총리는 1998년의 한일공동선언에 대해 인색하게 평가했었다고 한다. 그랬던 아베 총리가 올해 들어 한국 정부의 접근에 한발씩 다가오기 시작한 것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이끌린 바 크다. 그런데 그것은 일본 국내에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반핵 평화운동을 해 왔던 단체들이 한반도에서의 움직임을 일제히 환영하고 나왔다. 가장 이른 것으로 3월 15일에 발표된 일본 평화위원회의 성명이 있다. 그 외 4월에서 6월 사이에 일본 반핵법률가협회, 아시아태평양 법률가협회 및 국제 민주법률가협회, 일본 퍼그워시 회의, 일본AALA(Asia, Africa, Latin America) 연대위원회 등 평화운동 단체, 세계종교인 평화회의 일본위원회와 JNCC(일본 기독교 협의회) 등의 종교인 단체, 그리고 원코리아페스티벌과 코리아NGO센터 등 재일코리언 단체 등이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환영하는 성명을 잇달아 발표했다.

이러한 단체들의 성명에 더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동북아 비핵지대화의 출발점으로 삼자는 제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6월 21일, JNCC가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도달점이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비핵화와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을 위한 단서로 수용할 것을 일본 정부에 촉구했다.

가장 주목할 것은 피스 데포(Peace Depot)가 외무성에 전달한 ‘동북아시아 비핵화 평화에 관한 요청서’이다. 4월 16일 피스 데포 공동대표 야마나카 에쓰코(山中悦子), 우메바야시 히로미치(梅林宏道), 유아사 이치로(湯浅一郎) 등 세 명이 전달한 요청서는 5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일본이 북한의 비핵화라는 좁은 시점이 아닌 포괄적인 시점에서 접근할 것. 둘째, 교섭 실패의 책임을 북한에만 묻지 말고, ‘사실에 입각해서 쌍방의 문제’로서 교훈을 찾을 것. 셋째, ‘서약 대 서약,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입각해서 점진적으로 추진할 것. 넷째, 교섭의 원칙과 최종 목표에 대해 조기에 ‘6개국’ 정상간의 합의와 선언을 일본 정부가 주도하여 이끌어 낼 것. 다섯째 이 기회를 일본의 새로운 아시아 외교의 기점으로 삼을 것 등이다. 특히 마지막 요구와 관련해서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개시가 북한과의 전후처리 및 관계정상화를 위한 기회이며, ‘동북아시아 비핵지대’ 설립 등 지속적인 지역의 긴장완화와 평화를 위한 새로운 아시아 외교의 기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강조되었다.

동북아시아 비핵지대화 구상은 1996년 피스 데포의 우메바야시 히로미치가 발표한 이래, 2004년에는 피스 데포가 한국 시민단체들과 함께 ‘모델 동북아시아 비핵무기지대 조약안’을 기초한 바 있다. 2012년부터는 나가사키대학 핵무기철폐연구센터(Nagasaki University, Research Center for Nuclear Weapons Abolition, RECNA)가 구상 실현을 위한 ‘포괄적 프로세스’를 연구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RECNA가 6월 13일에 발표한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의견’도 주목할 만하다. ‘의견’은 ‘외교에 의한 비핵화’의 길을 열었다는 데 대해 북·미 정상회담의 의의가 있다고 평가하고 환영했다. 이에는 ‘동북아시아 비핵지대화’ 조약안이 현실성을 띠게 되었다는 인식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그 내용은 일본의 비핵3원칙을 모델로 남북한과 일본의 3국이 비핵지대화 조약을 체결하고, 이들 역내 비핵 3개국에 대해, 미국 러시아 중국 등의 핵보유 3국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으며 핵무기로 위협하지 않는다는 ‘소극적 안전’을 보증하는 의정서에 서명하는 3+3의 방식으로 동북아시아에 비핵지대를 창설하자는 구상이다.

1998년 한일공동선언에서 발원하는 신안보질서의 상상력

1998년 한일공동선언에서 한국과 일본이 비핵평화의 원칙을 공유하고 있고, 1992년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과 2018년 ‘판문점선언’에서 남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를 천명하고 있으니,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중지를 확인했던 2002년 북·일공동선언의 정신이 확인되면 남북한과 일본을 구성원으로 하는 동북아시아 비핵지대화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지난 8월 9일, 나가사키 평화선언에서 다우에 도미히사(田上富久) 나가사키 시장은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지금 한반도에서는 비핵화와 평화를 향한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남북정상간의 ‘판문점 선언’과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끈기 있는 외교 노력에 의해 불가역적 비핵화가 실현될 것을 피폭지는 커다란 기대를 갖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이 절호의 기회를 살려서, 일본과 한반도 전체를 비핵화 하는 ‘북동아시아 비핵무기지대’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에 대해 아베 총리는 직접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베 총리도 “비핵3원칙을 견지하면서, 끈기 있게 쌍방의 교량이 되도록 노력하여, 국제사회의 대응을 주도해 나갈 결의”를 다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98년 한일공동선언으로 개시된 동북아 평화프로세스가 20년 만에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계기로 재개되었다. 북한의 비핵화와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을 연결하는 고리가 1998년의 한일공동선언에서 확인된 일본의 비핵3원칙을 계승하는 데에서 마련될 수 있다. 1998년 한일공동선언의 기본 정신을 재확인하고, 한국과 일본이 비핵평화의 가치를 공유하여 동북아시아 비핵평화지대 구축의 기초를 마련하는 것, 2018년 남은 기간 한국 외교가 특별히 공들여할 과제이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불가역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하는 동북아 신안보질서의 상상력은 그 성과 위에 마련될 수 있다.

*본 칼럼의 저작권은 평화재단 평화연구원에 있습니다.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inst1@p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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