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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을 새로운 시작으로: '종축 아시아 평화지대'를 만들자

기사승인 2018.06.12  12: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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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평화의 달, 6월에 열리는 북·미 정상회담

이제 곧 역사적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한반도 운명을 크게 바꿔 놓을 이 회담이 6월에 열리게 된 것은 6월의 기운이 만든 역사적 필연인 것처럼 생각된다. 6월에는 6.3 한일회담 반대운동, 6.10 만세운동 및 민주항쟁, 6.15 남북공동선언, 6.23 평화통일외교정책 선언, 6.29 선언 등 우리 역사에 민주주의와 평화의 이정표를 새긴 날들이 유난히 많다. 독재에서 민주주의로의 이행이 전쟁에서 평화로의 이행과 불가분의 과정이라는 것을 6월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여기에 6.12라는 날짜가 한반도에서 68년 동안 이어진 전쟁상태를 종식시키는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날로 기록된다면, 촛불에서 시작된 민주주의 부활과 한반도 평화시대의 도래가 하나로 이어진 과정이었음을 다시 한 번 증명하게 될 것이다.

6월은 민주주의와 평화로만 기억되지 않는다. 우리 현대사를 비틀고 그늘지게 만든 6.25가 있다. 그렇기에 전쟁 종식의 역사는 6.25전쟁에 이르는 역사과정을 거꾸로 더듬어가는 역사가 될 것이다. 그것은 전쟁 당사국 사이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으로 시작될 것이지만, 말 그대로 시작에 불과하다. 6.25전쟁은 연합국의 대일전쟁 승리가 한반도의 분할점령과 분단정권 수립으로 귀착된 데 원인이 있다. 일본의 패배가 확실시되면서 치열해진 연합국 진영 내 줄다리기가 이어진데다, 거기에 대륙을 석권한 혁명 중국과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의 헤게모니 싸움이 얽혔다.

그 사이에 일본은 패전의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치열한 대 연합국 외교를 전개하고 있었다. 한반도 분할점령, 분단정권 수립, 전쟁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한반도 주변국의 이기주의가 곳곳에 비극의 씨앗을 뿌리고 있었다. 이 과정을 역순으로 전개하여 전쟁종식, 평화공존, 통일로 이르게 하려면, 남북의 화해·협력뿐만 아니라 주변국의 이기주의를 어떻게 극복하는가가 관건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2일 오전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위해 악수를 나누고 있다. YTN 화면캡처

남북정상회담 이후 치열해진 주변국들의 외교전

평창 동계올림픽/패럴림픽에서 시작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우리들의 기대가 모아지는 동안, 주변국들의 치열한 외교전이 시작되고 있다.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이후 중국의 개입이 두드러졌다.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에서 시진핑 주석과 두 번째 만남을 가진 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대한 불신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전부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기 직전 라브로프 러시아 외상은 평양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엔 시진핑 주석과의 협력관계에 언급하면서 러시아의 움직임을 견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 러시아를 번갈아 압박하는 구도 속에서 미·북 정상회담을 나흘 앞두고 푸틴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하여 시진핑 주석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과시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뒤처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일본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아베 총리는 1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 열흘 전에 워싱턴을 방문해서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하더니, 북·미 정상회담을 닷새 앞두고 다시 워싱턴을 방문해서 트럼프의 의중을 파악하는 한편 북한과 직접 대화의 운을 띄웠다. 그뿐만이 아니라 일본은 트럼프 리스크에 대비하여 러시아에 공을 들이고 있다. 미국과 관계가 껄끄러운 러시아도 일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샤코프 러시아 대통령 외교담당 보좌관은 일본이 반환을 요구하는 영토 문제에서 일본의 양보를 요구하면서도 러·일 평화조약 체결 가능성을 언급하며 일본에 추파를 던졌다.

아베 총리는 영토 문제에서 기대만큼의 진전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푸틴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지속적인 경제협력 실시를 약속했다. 한편 푸틴 대통령은 올해 9월에 개최될 동방경제포럼에 김정은 위원장을 초청할 뜻을 밝히기도 했는데, 김정은 위원장이 이를 수락한다면 여기에서 푸틴-김정은 정상회담과 동시에 아베-김정은 정상회담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있다.

북·미 정상회담이 상기시키는 동아시아 국제정치의 현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에서 전쟁 종식의 프로세스가 가시화하면서 다양한 조합의 양자 간 정상회담이 줄을 이어 열리고 있고, 또 열릴 예정이다. 양자 간 접촉이 이토록 활발한 이유는, 한반도 정전체제의 종식이, 우리에겐 평화와 통일로 가는 희망의 출발점이지만 주변국들에게는 세력균형의 현상을 변경하여 기존 질서를 동요시키는 불안의 진원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외교의 진정한 도전은 북·미 정상회담 이후부터 시작될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에 따라서는 남·북·미 3자간의 종전선언이 이어지면서 한반도에 환희의 시대가 열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우선 중국의 개입이 본격화할 것이다. 일본도 북·미 정상회담에 온 신경을 쓰며, 회담이 끝나자마자 북한으로 달려갈 준비를 하며 자세를 취하고 있다. 북한과 신뢰관계를 다져 온 러시아는 자신감을 갖고 북·미 정상회담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한반도 주변 세 나라를 거론하고 보니, 그 형상이 꼭 19세기 말을 떠올리게 한다.

한반도가 비극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은 청일전쟁으로 동아시아 책봉질서가 붕괴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것은 러일전쟁의 전후처리를 둘러싼 국제정치의 결과였다. 근대화와 식민지 유제 청산을 둘러싼 이데올로기 대립이 6.25전쟁으로 귀결했다는 의미에서 6.25전쟁의 한 뿌리는 청일전쟁에, 다른 한 뿌리는 러일전쟁에 닿아 있다. 그래서 6.25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세 차례의 동북아시아 전쟁을 총괄해서 극복하는 과정인 것이다. 이러한 경위와 구조를 이해할 때, 북·미 정상회담 이후의 우리 외교가 도전해야 할 역사적 과제를 분명히 인식할 수 있다.

한반도 지정학에서 동아시아 지경학으로

그렇다고 해서 지금 여기에서 19세기 말의 지정학이 부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러 간, 러·일 간은 물론 중·일 간에도 협력을 통한 평화 증진 가능성이 큰 게 현실이다. 무엇보다도 한반도에서 발원한 평화 프로세스가 동아시아에 지정학의 시대를 대신해 지경학의 시대를 열고 있다는 점이 19세기 말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이제는 번영에의 기대가 평화를 견인할 수 있는 시대다. 세계전쟁의 세기였던 20세기의 학문 국제정치학은 지난 세기를 마무리하는 단계에 이르러 21세기를 평화의 세기로 만들기 위한 방안으로 다자주의 협력과 공동체 구축을 고안해냈다.

그런 의미에서 동아시아의 분단선 위에서 평화를 연결하고, 번영을 연결하고, 사람을 연결하여 평화의 공동체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한 문재인 정부의 외교 구상은 세계적, 세기적 의의를 지닌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은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이러한 구상을 실천하기 위한 기반정비에 해당한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그간의 노력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소기의 성과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성과를 미·중 대립의 블랙홀에 갖다 바치지 않기 위해, 우리는 한반도의 남북을 연결하는 노력에 더해 한반도의 밖에서 남북으로 뻗어 있는 러시아와 일본을 잇고, 나아가 아세안까지 도달하여 <종축 아시아 평화지대>를 창출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과거 러시아와 일본은 남북화해를 위한 김대중 대통령의 이니셔티브에 부응하여 한반도 냉전 해체에 호응한 적이 있다. 당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00년 6월의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7월에 러시아 원수로는 처음으로 북한을 공식 방문하여, 북한의 ‘개건(페레스트로이카의 북한식 용어)’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때도 지금도 푸틴에게 북한의 개혁개방은 러시아 극동개발의 마중물로 존재한다. 그로부터 2년 뒤 2002년 9월,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는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대북 압박을 강화하는 가운데도 방북을 결단하여 북·일 평양선언을 통해 국교정상화의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비록 두 지도자의 행동이 깊은 역사의식이나 소명감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 냉정한 국익계산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의 행동은 러시아와 일본의 국익 계산이 한반도 냉전 해체의 방향에서 조화할 수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나 미·중 사이의 대립이 깊어진 현실은 그 가능성을 더 키워주고 있다. 그래서 한반도의 위와 아래에서 러시아와 일본을 견인해 내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관여하게 하는 것은 위험한 상상이 아니라 현실의 계산에 입각해 있다.

평화의 시대는 역사의 필연이다

다시 6월 이야기다. 이번엔 20세기 초의 6월이다. 1903년 6월, 일본은 어전회의를 열고 만한(滿韓)교환론을 대러 교섭방침으로 확정했다. 일본이 만주에서 러시아의 우위를 인정하는 대신 한반도에서 일본의 우위를 확인한다는 것이었다. 이때 지펴진 러·일 갈등의 불씨는 결국 러일전쟁으로 발화했다. 이로부터 시작된 동아시아의 20세기는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 대분할의 시대였다. 동서 냉전의 시대에 한반도의 안과 밖에서 극한 대립을 지속해 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반도에서 일어난 6월의 비극을 극복하는 길은 동아시아의 남과 북을 이어 <종축 아시아 평화지대>를 창출하는 것으로 완성된다. 전쟁의 기억과 평화의 이정표가 뒤섞인 6월에 전쟁의 시대를 매듭짓고 평화의 시대를 여는 역사의 필연을 본다.

*본 칼럼의 저작권은 평화재단 평화연구원에 있습니다.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inst1@p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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