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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판문점체제’의 서막과 남북관계의 CVID

기사승인 2018.05.08  07: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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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현안 진단’

남북정상회담 평가

4월 27일에 개최된 남북정상회담은 우리가 주도하는 남북관계를 통해 북한 비핵화를 포함해 한반도 및 동북아 안보질서의 변화를 모색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북·미간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을 대화국면으로 전환시킨 것도 우리 노력의 결과이다. 일부 회의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운전자론은 동력을 확보했다.

이번 ‘판문점 선언’의 백미는 사실상 ‘완전한 비핵화’라는 한 단어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남북관계의 발전도 북한의 비핵화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북한 최고지도자의 명문화된 비핵화 의지 표명은 모든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는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4.27남북정상회담 이전에 북한은 스스로 아무 조건 없이 풍계리 핵실험장의 폐쇄와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중단을 결정함으로써 비핵화를 선제적으로 행동에 옮겼다.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정상회담에서 핵실험장 폐쇄에 대한 공개검증을 약속하는가 하면, 스스로 평양표준시까지 원래대로 되돌려 우리 시간에 맞추기로 함으로써 자신의 행보에 진정성이 있음을 강조하고자 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월 27일 판문점 선언에 서명한 뒤 포옹을 하고 있다. ⓒ청와대

남북의 정상이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이 없을 것임을 천명하고 상호 일체의 적대행위를 중단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판문점 선언’은 사실상 남북한간의 종전선언에 해당한다. 이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서막을 의미하는 것이다. 금년 내 관련 당사자가 참여한 종전선언이 이루어질 경우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준비작업도 가속화할 것이며, 북한 비핵화가 확실해지는 단계에서는 관련국의 서명도 가능할 것이다. 북·미간의 비핵화협상이 성공적으로 타결될 경우 이번 북·미 정상회담과 연계해 종전선언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판문점 선언’은 대북제재국면을 고려해 남북관계에서는 구체적인 로드맵을 도출하지 않았으나 양 정상간의 확고한 의지를 확인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후속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해 군사회담 및 이산가족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 각 분야의 당국대화에 합의했으며, 특히 개성에 상설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열기로 한 것은 남북 평화공존체제를 기구화하기 위한 시도로 볼 수 있다. 또한 ‘10.4선언’에서 합의된 사업들을 적극 추진해 나가며 우선 동해선/경의선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고 활용하기로 함으로써 남북이 사실상 하나의 경제권을 형성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도 중요하다. 북한 비핵화의 진전과 대북제재국면의 완화와 연계해 향후 남북관계는 빠른 속도로 발전할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4.27남북정상회담은 통일문제에 대한 국민인식을 획기적으로 전환시켰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판문점 선언’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압도적이다. 과거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의미 있는 성과를 도출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 내에서 여러 논란을 야기했던 것과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향후 문재인 정부의 대북‧통일정책 추진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북한의 태도변화 읽기

그동안 북한은 핵문제는 남북관계의 논의대상이 아니며, 하늘이 무너져도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천명해왔다. 그러나 2018년 초부터 북한은 이 같은 입장에 변화를 보이며, 한반도문제 해결과정에서 파격적인 선제행동을 실행해왔다. 자신감과 두려움이 함께 작용한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7년간 4차례(총 6차례)의 핵실험을 단행했으며,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집중적으로 실시했다. 2017년 11월 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을 발사한 직후 김정은 위원장은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당시 화성15형 발사는 정상발사가 아닌 고각발사였으며, 각종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의 집중적인 시험발사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탄두의 대기권 재진입 및 종말유도기술을 입증하지는 못했다. 아직 중장거리 운반수단에는 한계가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북한은 계속적인 핵실험으로 핵폭발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핵탄두를 제조할 수 있는 기술은 확보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북한은 잠재적인 핵능력국가(Nuclear Capable Country)로 볼 소지가 있으며, 김정은 위원장은 이 같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협상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북한 행동변화의 또 다른 배경은 대북제재로 인한 압박의 확산이다. 현 대북제재국면은 사실상 경제봉쇄 수준으로 북한 내 피로감이 누적되고 있다. 북한 수출의 90% 이상이 불가능하고, 석유류의 수입은 절반으로 줄어든 상황이다. 주요 외화수입원인 해외노동자 송출도 결국 중단될 상황에 놓여 있다. 북한의 외화가 고갈될 경우 장마당을 지탱하는 밀가루, 식용유, 설탕 등 수입생필품의 수급이 불가능해지게 된다. 장마당에 의지하는 북한 경제가 구조적인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과거와 달리 시간은 북한편이 아닌 상황으로 가고 있다. 북한 지도부를 겨냥한 미국의 공개적인 군사적 압박의 심화도 부담으로 작용했을 개연성이 있다. 북한의 국력으로는 한‧미의 군사적 압박에 대한 대응 수단 강구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전략적 노선변경이다. 북한은 금년 4월 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7기 3차 전원회의에서 경제·핵병진노선의 결속(끝맺음, 종료의 뜻)을 선언하고 경제우선의 발전전략을 채택했다. 집권 1기라고 할 수 있는 2017년 말까지 김정은 위원장은 권력기반강화와 경제·핵병진노선에 주력했으며, 2018년은 사실상 김정은 위원장 집권 2기가 시작되면서 경제발전을 국정운영의 핵심과제로 선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최근 비핵화를 레버리지로 벌이고 있는 대남‧대미 평화공세는 전술적 차원이 아닌 경제발전을 지향하는 전략적 노선변경에 해당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도보다리를 수행원 없이 산책한 후, 평화의집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청와대

샌프란시스코 체제에서 ‘신 판문점체제’로

“전후 미국의 동북아에 대한 관심의 핵심은 공산화된 중국의 등장이고, 중국 견제를 위해 일본의 가치가 재발견되었으며, 그 뒷마당으로 한국 등이 필요하게 되었다.” 소위 라이샤워 명제이다. 라이샤워는 하버드대 교수 출신으로 1960년대 주일 미 대사를 역임한 인물이다. 라이샤워 명제의 출발은 샌프란시스코 체제이다. 1951년 미국은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을 체결해 패전국 일본을 동맹으로 격상시켰는데, 이는 공산화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출발이며,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동북아 안보질서의 기본적인 틀에 해당한다. 북·중·러와 한·미·일 안보협력체제의 대립이 형성된 원인이기도 하다. 한반도에서 화석처럼 굳어진 정전체제 역시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연장선상에 있다.

4.27남북정상회담은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구조적 변화를 의미하는 서막이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에 대한 체제보장을 포함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요구하며, 결과적으로 동북아 안보질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종착점은 북·미 및 북·일관계의 정상화, 남북관계의 근본적 변화를 수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립과 긴장을 바탕으로 하는 전통적 안보지형도 변화를 피할 수 없다. 한국의 안보개념과 국가전략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의 평화체제를 항구적이고 공고하게 유지시키는 방향에서 수립되어야 할 것이며, 그에 따른 새로운 역할도 찾아져야 할 것이다. 이는 동북아 신 안보질서의 형성 즉, ‘신 판문점체제’의 등을 의미한다.

4.27남북정상회담은 정전체제의 해체를 넘어 동북아 신 안보질서의 형성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도전과 함께 기회의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한반도와 동북아 안보질서의 근본적 재편과정에서 한국의 전략적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고 통일의 로드맵을 구현하는 일이다,

남북관계의 CVID를 모색하자

4.27남북정상회담의 가장 큰 교훈은 미·중 패권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는 동북아에서 남북한간의 협력을 통해 한반도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열강의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동북아에서 남북관계는 우리가 주도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에 해당한다. 신 안보질서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우리의 위상과 역할을 확인하고 보장해 줄 수단은 남북관계의 진전에 달려 있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획기적인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를 마련했으며, 사실상의 경제공동체 형성을 지향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속가능성을 결여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북한이 핵개발 의도를 버리지 않았고 평화와 민족 공동번영의 길에 진정성을 보이지도 않았다.

남북관계에서도 CVID를 관철시켜야 한다. 남북관계의 CVID는 완전하고도(Complete) 검증가능하고(Verifiable) 불가역적인(Irreversible) 관계발전(Development)을 의미한다. ‘판문점 선언’은 이미 채택된 기존의 모든 남북선언과 합의들을 이행해 나갈 구체적 대책들을 마련키로 했다. 이제 남은 것은 빠른 속도로 그리고 완전하게 이 약속들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남북관계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길은 양측 일방이 독단적으로 단절을 시도하거나 원점으로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남북관계를 심화시키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남북경제공동체 형성을 가속화할 필요가 있다. 남북한간의 철도와 도로를 잇고, 경제적인 상호의존도를 심화시킬 경우 일방적인 관계의 파국은 불가능하게 된다. 한·중 및 한·일관계가 입증하고 있는 사실이다.

열강의 패권이 충돌하는 동북아 신 안보질서 시대의 유동성에서 오는 위험을 피하고 우리의 전략적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는 길은 남북한이 공고한 협력구도를 형성하는 길 이외에는 없다.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를 기반으로 지속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남북협력관계를 형성한다면 사실상의 통일상태로 성큼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판문점 선언’에 대한 국민들의 강한 지지도 이러한 간절한 기대 때문일 것이다.

*본 칼럼의 저작권은 평화재단 평화연구원에 있습니다.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inst1@p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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