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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합의 완성이냐 파기냐, 이제 일본의 선택에 달렸다

기사승인 2018.01.22  20:5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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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 피해자 중심주의의 복원

“잘못된 매듭은 풀어야 한다.” 금년 신년사에서 대통령은 2015년 12월 한·일 합의로 탈선의 길로 들어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지난 2년 동안 ‘위안부’ 문제는 ‘정의와 진실’이라는 피해자 중심주의의 원칙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 있었다. 재협상을 공약으로 세우고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7월 31일 태스크포스를 설치하는 것으로 복구 작업을 시작했다. 탈선의 경위와 내용을 먼저 확인하고자 했다.

태스크포스는 5개월 동안의 활동을 담아 12월 27일 결과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일본 정부의 책임인정과 사죄·반성, 그리고 금전적 조치라는 3대 핵심 사항에서 일정한 진전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 ‘소녀상 이전’, ‘국제사회에서의 상호 비난·비판 자제’라는 숙제를 떠안게 되어 피해자 중심주의 해결이라는 원칙이 훼손되었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이러한 내용이 고위급 비밀 교섭에서 확정되어, ‘비공개’ 합의에 포함되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합의가 안고 있는 가장 큰 흠결이다.

보고서는 이 묵과할 수 없는 흠결을 밝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보고서는 정의로운 해결이라는 원칙과 대일외교라는 국제정치의 현실 사이에서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검토 작업에 참가한 위원들은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과 절제의 미덕을 발휘하여 2015년 합의의 내용과 경위를 검토하고, 훼손된 피해자 중심주의의 복원과 대외관계 전반을 고려한 균형 있는 외교를 동시에 주문했다. 보고서를 받고 대통령은 2015년 합의가 정부간 합의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이것이 위안부 문제 해결이 될 수는 없으므로 후속조치를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1월 9일에 나온 외교부의 해법은 피해자 중심주의의 원칙이 위안부 문제 해결의 기초로 다시 서는 기점이 되었다. 외교적 입장을 고려하여 파기하거나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피해자 중심주의를 관철하는 해법으로 10억 엔의 국고 충당안이 제시되었다. 피해자와 지원단체가 주장해 온 것은 합의 무효, 10억 엔 반환, ⌜화해・치유재단⌟의 해체였다. 외교부의 해법은 합의를 건드리지 않고, 두 가지 실질적인 조치를 실행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특히 10억 엔의 국고 충당안은 잘못된 매듭을 풀기 위한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피해자와 지원단체는 합의 파기나 재협상 요구가 없다는 데 불만을 제기하면서도 10억 엔의 국고 충당에서 정부의 의지를 읽었다.

10억 엔의 국고 충당안은 일본의 자발적이고 진정한 사과를 이끌어 내어 피해자 중심주의를 구현하는 지렛대가 될 수 있다. 피해자와 지원단체들이 요구하듯, 이 10억 엔은 순전히 일본에 돌려줄 돈으로 예치해 놓고, 별도의 예산으로 별도의 재단을 만들어 독자적으로 할머니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을 전개해 나간다면 2015년 합의의 바깥에서 피해자 중심주의의 해결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일본이 언젠가 성의 있는 조치를 보인다면, 그때 예치해 놓은 10억 엔을 재원으로 하는 사업을 재개하고, 활동 중단 상태에 있는 ⌜화해・치유재단⌟과 새로 만든 재단을 통합하여, 형식으로 남은 2015년 합의에 내용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이 이 실마리를 잡기를 영영 거부한다면 2015년 합의는 사문화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물론 그 책임은 일본에 있다.

일본정부의 외교합의 파기사례와 이중성

국제규범과 조약은 기대 수렴도의 높고 낮음과 공식성의 높고 낮음에 따라 네 가지 성격으로 구분된다. 규범이나 조약이 없는 상황과 완전히 기능하는 상황이 양쪽 끝에 있고,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상태와 사문화되어 있는 상태가 그 사이에 존재한다. 국제정치 현실에서 규범이나 조약이 만들어졌다가 사문화되는 경우는 적지 않다. 전후 일본의 외교사에서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는 양국간 현안 중에서 일본에 그 책임이 있는 경우도 많다.

1956년의 소·일공동선언에는 소련과 일본이 국교정상화를 이룬 뒤 교섭을 실시하여 평화조약을 체결함과 동시에 영유권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남쿠릴 4개 섬 중 2개 섬을 소련이 일본에 반환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후 일본은 국내 여론에 밀리면서 4개 섬의 동시 반환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소련과 이를 계승한 러시아는 공동선언의 준수를 요구하고 있어 아직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2006년의 오키나와 후텐마 기지 이전에 관한 미·일합의는 2009년 당시 민주당의 하토야마 수상이 이를 백지화하면서 로드맵이 흐트러졌다. 이후 합의는 재조정되었으나 오키나와 주민의 반대로 여전히 그 실시는 불투명한 상태다.

2002년의 북·일평양선언도 일본의 합의 위반으로 사문화된 상태다. 선언의 핵심은 북·일이 국교정상화 교섭을 시작하고, 국교정상화 이후 일본이 경제협력을 실시하며, 북한은 미사일 실험을 동결한다는 것이었다. 그 어느 것도 아직 실현되지 않았고 그 책임은 일차적으로 일본 정부에 있다. 나아가 2002년 가을, 일시 귀국한 납치 일본인 5명을 북·일간 합의에 따라 일단 북한으로 돌려 보내야 한다는 일본 외무성의 신중론을 질책하며, ‘국가의 의지’로서 이들의 영주귀국을 고집하여 실현시킨 사람이 당시 관방부장관이었던 아베 총리다. 아베 총리는 생래적으로 합의의 기본 정신을 가볍게 보고 있지 않은지 모르겠다.

2015년 합의의 기본 정신은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사죄였을 터이다. 그럼에도 일본이 낸 거출금은 배상이 아니라 못 박고, 사죄편지를 보낼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고 하여 피해자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려 온 것이 아베 총리다. 그럼에도 일본 스스로는 합의를 ‘1밀리미터도 옮길 생각이 없다’며 한국 측에게 일방적으로 합의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이라는 말을 논파하려면 2015년 합의를 근거로 그 논리적 폭거를 반박해 줄 필요가 있다. 원균이 남긴 오합지졸을 정예부대로 소생시켜 전세를 역전시킨 이순신의 지혜가 필요하다. 그 지혜는 지형지물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서 나왔으며 담력과 지도력의 근원이 되었다.

진정한 한일관계 정립을 위한 위안부 합의의 ’완성’

먼저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의 시점에 주목해 보자. 1965년 청구권 협정과 비교하면 그 뜻이 명확해진다. 1965년 협정에서는 청구권 문제가 협정 체결로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임을 확인한다[解決されたこととなることを確認する]”고 적혀 있다. 그런데 2015년 합의에서는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다[解決されることを確認する]”고 돼 있다. 이는 2015년 합의가 프로세스에 대한 합의였음을 의미한다. 즉 2015년 합의는 일본 정부가 스스로 표명한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 미래 언젠가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 것이다.

여기에서 일본 정부가 실시할 조치란, “모든 전(前) 위안부 분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조치”이며, 구체적으로는 “일본 정부 예산으로 자금을 일괄 거출”하고, “일·한 양국 정부가 협력하여 모든 전 위안부 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행하기로 한” 것이다. 따라서 합의에 따르더라도 10억 엔의 전달 만으로는 일본이 약속을 이행했다고 할 수 없다.

나아가 ‘해결될’의 주어가 ‘이 문제’라는 점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기시다 외상이 제1항에서 언급한 ‘위안부 문제’이며, 이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이다. 따라서 ‘이 문제’에는 ‘소녀상’ 문제와 국제사회에서 비난·비판을 자제하는 문제가 포함되지 않으며, 합의문의 형식에서 따져 볼 때 이 두 문제는 2015년 합의에서 해결되어야 할 ‘이 문제’의 밖에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이 10억 엔 거출로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합의 위반이다. 거꾸로 총리가 직접 사죄하고 10억 엔이 실질적 배상에 해당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야말로 일본이 합의에 기반해 이행해야 할 의무인 것이다. 그것이 피해자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첫 걸음이자, 합의 완성의 길이기 때문이다.

한편, 아베 총리 자신이 ‘불가역적으로 종결된 샌프란시스코 체제 하 전범 처리’에 대해 이를 수정하려는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보여왔다는 사실에서도 아베 총리의 이중 잣대를 확인할 수 있다. ‘기림비(위안부상)’ 이전 요구에 대해서는 과거 일본 측이 문화재반환을 약속해 놓고도, 이들 문화재 대부분이 민간보유라고 해서 그 반환을 오래 지체했던 사실을 상기시키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정부에 명예회복의 기회를 제공하는 추가적인 후속조치

이제 몇 가지 추가적인 후속조치가 나와야 한다. 여가부가 중심이 되어 추가 후속조치를 조속히 발표할 필요가 있다. 피해자와 지원단체가 요구하는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국내조치들이다. ⌜화해・치유재단⌟ 활동의 중단을 선언하고 정의기억재단을 모태로 새로운 기구를 설립할 필요가 있다. 가령 ‘기억과 치유 재단’이나 ‘위안부 기림 사업위원회’의 이름으로 만들면 좋을 것이다. 새로운 기구를 중심으로 위령, 추모 사업을 개시해야 한다. 남산 기슭 옛 통감 관저에 조성된 기억의 터를 확충하는 안을 제안해 본다. 이에 더해 진상규명 및 교육기관으로 ‘세계 여성 인권과 평화 연구센터’를 건립하고 국제기구화 하여, 전시성 폭력 문제와 관련한 국제적 문제제기와 연대활동의 장을 국내에 마련하는 일을 고민해 주기 바란다. 기억의 터 근처에 치유의 터를 조성하고, 이 자리에 의료기관으로 ‘성폭력 여성 치유 센터’를 건립하여 인권회복을 위해 노력할 필요도 있다.

여가부의 후속조치가 발표되면, 청와대-외교부-여가부-지원단체의 4자 협의기구를 만들어 인식을 공유하고, 역할을 분담할 필요가 있다. 검토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정부 내 소통의 부족은 2015년 합의 실패의 원인이었다. 대통령은 이상의 내용을 피해자 할머니분들에게 다시 설명하고, 정부의 의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번엔 대통령이 직접 나눔의 집과 정대협 쉼터를 방문하는 형식이 좋겠다.

아울러, 대통령이 대일외교에서 직접 투트랙 원칙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최근 남북관계 진전 상황에 대해 직접 설명하거나, 기타 한·일간 현안 해결을 위한 외교 노력을 실질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또한 최근의 미세먼지 소동에서 확인되듯 비전통적 안보문제는 초미의 해결과제이고, 일본은 이 문제 해결에서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원자력관리를 위한 한·일 협의의 틀을 짜고 방사선 모니터링을 위한 한·일시민위원회 등 동북아 안전공동체를 구축하는 일, 평창에서 도쿄로 평화의 성화를 봉송하고 청소년 교류를 확대하는 일 등이 한·일 협력의 아젠다가 될 수 있다. 조기에 일본을 방문하여 셔틀외교를 복원하는 것은 남북화해 국면에서 일본의 협조를 이끌어 내기 위해 거쳐야 할 관문이다. 그 동안 최악의 한·일관계로 고통 받아 온 재일교포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행보도 필요하다.

위안부 합의 검토결과 보고서 발표에 이어 새해 우리 정부가 내 놓은 후속조치로 한·일간 공수 교대가 일어났다. 한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한 정의로운 해법으로 명예롭게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일본에 제공했다. 2015년 합의는 정의실현의 출구가 막힌 합의였다. 이에 반대하여 피해자와 지원단체들은 입구에서의 정의를 요구해 왔다. 외교부가 발표한 우리 정부의 후속조치는 그 뜻을 받아들여 출구에서의 정의를 실현하려는 노력이다. 일본이 이를 받아 명예 회복의 마지막 기회를 살리길 기대한다. 우리가 일본의 양식 있는 시민들을 지지세력으로 삼아 성공할 수 있는 전략을 구상한다면 그리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는 않을 것이다.

*본 칼럼의 저작권은 평화재단 평화연구원에 있습니다.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inst1@p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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