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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봉이 김선달, 켈올란

기사승인 2017.12.14  00: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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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명구의 ‘유라시아횡단 평화마라톤’ (39)

아침에 코줄루에서 출발할 때는 맑은 날씨였지만 일기예보로는 오후에 비가 내리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렇게 맑은 날씨에 어떻게 비가 오나 싶을 정도였는데, 오후가 되니 비바람이 몰아치고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기온도 뚝 떨어진다. 뒤에서 몰려오는 비구름을 피해서 달아나는 형국이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목적지인 글루찌를 13km 남겨놓고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비를 맞으며 유모차를 밀며 유라시아를 달리는 내 모습이 죽장에 삿갓 쓰고 삼천리를 유랑하는 김삿갓의 모습과 겹쳐진다.

파도의 웅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비 내리는 흑해의 해안 길을 달리면서 김민기의 ‘친구’를 흥얼거린다.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요. / 그 깊은 바다 속에 고요히 잠기면 /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 눈앞에 떠오는 친구의 모습 /흩날리는 꽃잎위에 어른거리오. / 저 멀리 들리는 친구의 음성 / 달리는 기차바퀴가 대답하려나.”

홀로 길 위에 나선지 100일이 어제로 지났다. 친구들도 보고 싶고 가족도 그리워진다. 노래 가사가 다 끝나기 전에 책갈피 속에 꽂아둔 은행잎 같은 첫사랑도 스쳐지나간다. 추억들은 내 발걸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스치고 지나간다. 뒤돌아보면 먼 길을 왔지만 앞으로 갈 길은 더 멀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백은 완전 숫자이다. 아기도 100일이 지나야 비로소 잔치를 벌이고 사람들에게 인사를 시키며 가족으로 인정한다. 기도도 100일은 해야 정성이 하늘을 감읍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이제 100일이 지났으므로 대책 없이 나선 길 같았던 나의 여정도 안정된 궤도에 올라섰다고 말할 수 있다. 어느덧 터키에서도 깊숙이 들어와 있다. 터키를 사랑하는 마음도 더 깊어지고, 터키를 더 알고 싶은 갈증은 더해간다.

이제 평화의 시대에 국경의 의미가 나날이 퇴색되어 서로의 문화와 삶을 이해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커진다. 한 민족의 문화에서 민담이 갖는 중요성은 대단히 크다. 민담 속에는 한 민족이 겪어 온 삶의 다양한 체험과, 사상, 신앙, 문화, 가치관이 모두 녹아 있어, 이를 통하여 그들을 잘 이해하고 더 사랑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터키 민족의 배경과 터키 민담의 특징, 즉 중앙아시아지역에서 중동지역으로 먼 거리를 이동해온 튀르크 족이 유목생활을 통하여 축적한 경험을 민담을 통하여 엿보고자 한다. 민담이야 말로 영화나 TV가 없던 시절에 지금의 영화나 드라마보다도 더 영향력이 컸을 것이니까.

그런 시절에도 슈퍼스타는 있어서 우리나라에 봉이 김선달이 있었다면 터키에는 켈올란이라는 슈퍼스타가 있었다. 그는 재치와 꾀를 겸비한 교묘한 행동으로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을 속이고 골탕을 먹여서 억눌리고 탄압받는 사람들의 탄성을 지르게 하는 슈퍼스타이다. 경직된 사회일수록 이런 이들이 가져다주는 해학과 유머는 생활에 활력을 제공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켈올란은 터키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이다.

어느 날 공주가 정원에서 바람을 쐬는데 아름다운 비둘기가 날아오더니 황금가위를 물고 갔다. 다음에는 황금바늘을, 그 다음에는 진주 통을 물고 날아가 버렸다. 그런데 이 공주는 비둘기에게 반해 연정을 품게 되었다. 비둘기를 찾기 위하여 크고 화려한 목욕탕을 지어서 온 국민이 무료로 목욕을 하게하고 그 값으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게 한다. 켈올란이 우물에서 만난 닭을 쫒아가다 어느 산자락에 이르게 되자 비둘기 두 마리가 각각 남녀로 변하여 희롱하다 다시 비둘기가 되어 날아가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켈올란은 이 이야기를 공주에게 해 주었고 공주는 그 대가로 목욕탕 운영권을 켈올란에게 주었다. 공주는 비둘기 왕자를 찾아서 왕자는 마법이 풀리고 둘은 행복하게 잘 살았고, 켈올란도 목욕탕을 잘 운영하여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다.

터키 사람들은 신체적인 특징을 따서 별명처럼 이름을 불렀다고 한다. 켈올란은 대머리라는 뜻이고 쾨제는 턱수염이 없다는 뜻이다. 성과 이름을 함께 사용하는 법을 만든 사람은 터키의 초대 대통령인 무스타파 케말이다. 터키 사람들은 아버지라는 뜻의 ‘아타’와 터키 사람이라는 뜻의 ‘튀르크’를 합해서 대통령을 아타튀르크라고 부른다. 터키에서 발행되는 모든 돈에는 아타튀르크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그야말로 그는 터키의 국부이며 그의 인생은 곧 터키의 현대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오스만 제국은 한때의 영광도, 유럽 쪽의 영토 대부분을 잃은 데다 이집트와 아라비아, 쿠르드 등 여러 민족들이 분리 독립 운동에 시달리는 죽어가는 거인에 불과했다. 이때 케말 파샤가 이끄는 청년 튀르크당이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그는 패기만만한 혁명가에서, 제국의 수호자로, 그리고 새로운 나라와 체제의 건설자로 변해갔다. 터키는 그를 건국의 아버지라 부른다.

1920년대 케말 파샤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터키의 서구화 내지 유럽화를 전면적으로 추진했다. 이슬람 국가, 아시아 국가라는 한계를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쳤다. 터키는 지리적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 3대륙에 맞닿아 있기 때문에 늘 어느 길을 선택할지 고민하였다. 터키는 이때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이 되고 싶었다. 그리하여 터키는 철저히 변화를 시도했다. 정치제도, 사상관념, 생활방식 등 모든 면에서 철저히 변했다. 여성들이 외출할 때 쓰는 히잡도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바꾸었고, 심지어 아람문자마저도 없애고 서양의 문자를 쓰게 하였다. 그러나 터키는 끝내 서구가 되지 못했고 이제 비로소 아시아의 정체성에서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것 같다.

죽장에 삿갓 쓴 김삿갓만 괴이한 모습이 아니라 운동모에 타이즈를 입고 유모차를 밀며 달리는 이방인 나그네의 모습도 이들에게는 괴이한 모습이어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모양이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동공이 크게 벌어지고 친근감을 표시하려 손을 흔들어준다. 말만 통하면 내가 지나온 이야기를 해학과 유머는 섞지 못해도 약간의 뻥을 섞어서 이들에게 해주고 싶다. 그러나 나도 봉이 김선달이나 캘올란에 버금가는 스타가 될 것 같다. 유목인들에게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차 한 잔 대접하는 것은 오랜 전통이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차 대접을 받는다.

세르비아부터 불가리아, 터키까지 떠돌이 개들의 천국이다. 개들은 꼬리를 흔드는 대신 으르렁거리며 달려들기 일쑤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다행히 큰일 안 치루고 잘 넘어와서 나도 약간 경계심을 잃어버렸는데 드디어 사단이 나고 말았다. 여긴 아예 차 다니는 찻길 한가운데 누워서 쉬는 놈들도 많다. 이놈도 그랬다. 내가 다가가자 귀찮은 듯이 일어나서 내 뒤로 가는 척 하며 으르렁거릴 때는 바로 한발자국 뒤였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달래려고 “그래 알았어!”하며 달래려는 순간 벌써 놈의 늑대 같은 거대한 이빨은 나의 타이즈 바지를 물었다. 0.1초 사이에 본 놈의 이빨은 그야말로 공포였다. 그런 이빨로 악의적으로 물었다면 살점이 뚝 떨어져나갈 것 같았다. 다행히 놈이 그런 의도는 없었는지 바지만 찢어진 것 같았고 통증은 없었다.

아무 일 없겠지 하는 안도감 뒤에도 혹시 하는 마음에 길거리에서 하의를 내리고 보니 약간의 붉은 상처가 나있었다. 그 순간 바로 앞에 찻집에 아주머니가 나와서 보고는 집으로 들어가서는 소독약과 밴드를 가지고 나와서 치료를 해준단다. 이슬람 여자 앞에서 하의를 내려야할지 어쩔지 몰라서 우물쭈물하고 있으니 하의를 내려야 치료를 할 테니 하의를 내리란다. 그리하여 외간남자와의 접촉을 금기시하는 이슬람 여자 앞에서 하의를 내리는 사고까지 치루고 말았다.

일단 응급조치를 하고 병원이 어디냐고 물으니 자기도 같이 가서 도와주겠단다. 병원에 오고 나니 같이 오기를 천만다행이었다. 언어소통도 안되는데다 현지인의 친절한 안내가 있어서 일사천리로 주사를 맞고 끝났지만 그러지 않았으면 하루 종일 여기저기 옮겨 다니다가 끝났을 수도 있었겠다. 외국인에게도 병원비 청구서가 없이 그냥 가라고 하는 걸 보니 터키의 의료시스템이 선진국 수준인 것 같다.

강명구 myongkukang@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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