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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세르비아인과 인종말살의 기억

기사승인 2017.11.02  21:2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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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명구의 ‘유라시아횡단 평화마라톤’ (25) - 집 잃은 개와 15km 동행

▲ 2017년10월 29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강명구)

세르비아에 대해 흥미를 가진 사람은 드물다. 당연히 세르비아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도 드물다. 나라고 다르지 않다. 유라시아대륙횡단 루트를 짜다가 루마니아로 통과하려니 루마니아에는 높은 산악지역이 많아서 할 수 없이 세르비아를 통과하게 되었다. 내가 테니스를 즐겨했으므로 ‘노박 조코비치’가 세르비아 출신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이 다였다.

세르비아는 유럽에 있으면서 유럽연합에서 받아주지 않는 나라다. 아마도 유고슬라비아 내전을 일으키고, 보스니아 독립을 막기 위해 자행한 인종말살 행위를 저지른 나라기 때문일 거다. 차라리 산악지형인 루마니아를 통과하는 것이 마음이 편할 지도 모를 거라는 생각을 무수히 했다. 그러나 나그네 발길 앞에는 돌부리만 놓여있는 것이 아니라 느닷없는 조우의 기쁨도 있다.

어렵사리 국경을 넘으니 무대가 확 바뀐 것 같았다. 1막이 끝나고 2막이 시작되었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에 들어온 것 같아 긴장도 되었다. 집들은 오래되어 무너져 내려도 손볼 여력이 없는 것 같았고, 쓰레기더미는 여기저기 쌓여있었다. 떠돌아다니는 집 잃은 개들의 충혈된 눈동자는 언제 공격할지 모를 공포를 느끼게 했다. 사람살기도 벅차니 개까지 챙길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내전이 할퀴고 간 상처는 여기저기 남아있다. 쓰레기더미를 뒤지는 것은 집 잃은 개와 고양이뿐이 아니었다.

아침에 ‘센타’라는 마을을 벗어날 무렵 누렁이 한 마리와 멀리서 눈이 마주친다. 집개들은 막 짖으며 사람에게 달려드는데 들개들은 경계를 하고 슬그머니 도망친다. 들개 같은 이 녀석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멀찌감치 떨어져 계속 나를 쫒아온다. 나는 슬그머니 셀카봉을 집어 들었다. 이럴 때 셀카봉은 호신용으로 그만이다. 저만치 쫒아오는 녀석의 눈은 첫눈에 보기에도 아주 불안했으나 선한 눈동자였다. 전혀 공격을 할 그런 눈동자가 아니었다.

세르비아 거리를 달리면서 만난 집 잃은 강아지들. (강명구)

그러나 나는 녀석이 쫒아오지 못하도록 몇 번 소리를 질렀다. 소리를 지르면 꼬리를 내리며 멈칫거리고 섰다가, 돌아서 가면 다시 저만치서 쫒아온다. 나를 주인으로 섬기기로 결심이라도 한 것처럼… 나와 함께 평화마라톤을 완주할 기세로 끈질기게 쫓아온다. 그러다 세퍼트처럼 큰놈이 이 녀석을 공격하자 내 쪽으로 달려오고 큰 녀석은 나를 보더니 발길을 돌려 사라져갔다. 이때부터 녀석은 내 바로 옆에서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면서 쫒아온다. 나를 쫒아오면서 처음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의 불안정한 눈동자가 많이 안정되어 있는 게 보인다.

나도 역시 동행자가 생겨 한결 마음이 안정되었지만, 이런 갓길도 없는 국도를 천방지축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녀석과 함께 가는 일은 우선 운전자들에게 너무 방해가 되었다. 현실적으로 잠잘 때도 그렇고, 국경을 넘을 때도 문제가 될 것 같아 여러 번 쫒으려고 소리를 지르며 실랑이를 했지만 녀석은 15km나 쫒아왔다. 그러다 식당이 나와서 이른 점심을 먹으려 들어갔다 나오니 녀석이 안 보인다.

세르비아 개만 사람 보는 눈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세르비아인들도 나를 대하는 것이 미치도록 친절하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웃음을 날려주고 악수를 청하고 사진촬영을 요청하고, 지나가는 차들은 경적을 울려 환영해준다. 지나가던 한 할머니는 저만치 차를 세우고 기다리더니 초코렛바 두 개를 주며 안전하게 여행을 마치라고 응원도 해준다. 식당에서는 “on the house(가게 주인이 손님에게 무료로 대접하는 것)”라고 그냥 가라고 하면서 물병과 콜라병을 덤으로 싸서 주기도 한다. 호텔에서는 대단한 일을 한다며 10유로만 내라고 한다.

▲ 세르비아 거리를 달리면서 만난 친절한 사람들 (강명구)

그날 그 호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데 두 남녀가 찾아오더니 남자는 베체이 방송 카메라맨이고 여자는 기자라고 소개를 하면서 인터뷰 좀 할 수 없냐고 해서 깜짝 놀랐다. “내가 누군 줄 알고 인터뷰를 하자고 하냐?”고 물으니 기자들은 동물적 감각으로 안다고 농담을 하면서 내일아침 출발하기 전에 인터뷰를 하고 출발하는 장면을 촬영하고 싶다고 한다.

인터뷰는 잘 됐다. 나는 유라시아대륙 횡단 평화마라톤을 하는 이유와 특히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사는 세르비아 국민들이 우리나라에서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지키는 노력에 지지해 줄 것을 호소한다고 강조하였다. 방송의 효과는 그 다음날 바로 입증되었다. 길을 달리는데 자동차 경적소리가 음악처럼 자주 들려오고, 사람들이 흔들어주는 손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겠다.

2017년10월 27일 아침. 세르비아 베체이에서 <TV Becej>인터뷰. (강명구)

이런 땅,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전쟁이 벌어지고, 인종말살이 자행되었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위정자들은 전쟁터에서 사람들이 목숨보다도 더 소중히 여기는 광적인 애국의 열기를 교묘하게 이용한다. 힘차게 군가를 부르면서 하나가 되는 경험은 민중들에게 짜릿한 모험심과 영웅심을 유발시킨다. 적폐청산 할 게 많은 나라일수록 전쟁은 모든 적폐를 한꺼번에 해결해줄 것 같은 야릇한 유혹을 한다. 공동의 적과 치열하게 싸우는 동안 하찮은 논쟁으로 분열되었던 사람들은 ‘우리는 하나’라는 일체감을 갖는다. 이는 마약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 대가는 처절하다. 몇 십 년이 지나도 치유가 어렵고 오히려 상처가 곪아 터지고 덧나는 경우가 많다. 경제적으로 가장 부유하던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유럽연방에 포함되기를 희망하며 제일 먼저 독립을 선언한다. 1991년 6월 25일 세르비아계 장교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던 유고연방군이 슬로베니아를 침공하며 유고내전이 시작되었다. 이어 크로아티아로 침공하고 서로 간에 공방전이 벌어진다. 1992년 4월 6일에는 보스니아 시민들의 집회에 무차별 총기난사를 벌이는 사건까지 벌어진다. 총 3년 8개월간의 내전 끝에 휴전을 하지만, 3년 8개월의 전쟁은 30년이 다 되어도 아직 치유되지 않고 있다.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본 한 성당. (강명구)

발칸은 중세시대에 유럽과 아시아의 문화적 완충지대를 이루고 있었다. 1389년 오스만의 침략으로부터 1878년 러시아, 오스만 전쟁까지 500년간, 발칸은 유럽의 나머지 지역에서 유리된 채 유럽문화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었다. 오스만은 슬라브인에게 이슬람교 개종을 강요했다. 오스만의 지배로 발칸은 암흑기로 접어들게 되었고, 근 100년 간 이 지역에서는 크고 작은 전쟁이 일어났다.

발칸반도는 지리적으로 유럽이었지만 오랫동안 유럽이 아니었다. 발칸은 세계사의 주역이었던 서유럽과 이슬람 세력 사이에서 억눌리고 왜곡된 역사를 보냈다. 30년 종교전쟁, 1, 2차 세계대전, 그리고 사회주의 독재를 견디자마자, 다시 내전에 휘말려 잃어버린 20년을 보냈다. 이제야 방향을 잡아가고 있지만 아직도 전쟁의 상처가 남아있는 모습이 여기저기 보인다.

2017년10월 29일 세르비아 Stara Pazova에서 베오그라드까지 달리면서 만난 폐허가 된 아파트. (강명구)

강명구 myongkukang@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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