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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되는 전쟁의 가능성, 어떻게 막을 것인가?

기사승인 2017.10.31  08:4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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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 제84호

커지는 인식 차이

필자는 서울에 살고 있는 미국인으로서 지난 1년간 한국인과 미국인이 북한 핵을 위협적으로 인식하는 차이가 점점 벌어지는 것을 경계심을 갖고 지켜보았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주로 일, 가족, 사랑, 학교와 같은 일상 생활에 대해 걱정한다. 반면 태평양 건너의 미국인들은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 도시에 핵 공격을 한다든지 비록 안 좋은 전쟁이지만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지금 전쟁을 할 필요가 있다든지 하는, 마치 종말이 오는 듯한 시나리오를 걱정하게 되었다. CIA 출신의 브루킹스연구소의 한국 담당 연구원 Jung H. Pak과 같은 일부 전문가들은 한반도에서 무력 분쟁이 일어날 확률은 여전히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터프츠(Tufts)대학 플레처(Fletcher) 대학원 학장인 스타브리디스(Stavridis) 제독은 50대 50의 확률로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브레넌(John Brennan) 전 CIA 국장은 최소 20퍼센트의 확률로 한반도에서 무력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노련한 관찰자들은 지금이 마치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기 전인 2002년 말과 2003년 초 분위기와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뉴요커> 특파원 에반 오스노스(Evan Osnos)는 워싱턴의 무수한 전문가 및 관료들과 이야기하고 이 상황을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하여 평양을 여행하였고, 그 결과를 “북한과 핵전쟁을 하는 위험”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하였다. 그는 2002년 당시 이라크와 유사한 분위기를 짚어내며 “이라크에서 우리는 우리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적과 전쟁을 치르는 비용에 대하여 배웠다. 아시아로 섣부르게 발을 들여 놓기 전에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여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에 평양을 방문한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Nicholas Kristof)는 "북한을 떠나며 2002년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에서 떠나올 때와 비슷한, 불길한 예감을 가졌다. 전쟁은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예방될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썼다. <뉴욕 타임스>에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보도하고 현재 언론매체 <뉴요커>에서 일하고 있는 덱스터 필킨스(Dexter Filkins)는 이라크전쟁 전에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 확률보다 지금 미국이 북한과 전쟁을 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보았다. 그는 NPR과의 인터뷰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굉장히, 굉장히 높다”고 했다. 이라크 전쟁은 많은 국가들이 반대했지만 지금은 전 세계가 일치된 견해를 보인다는 것이다. 미국에 널리 퍼진 견해를 얘기하며 “(북한은) 좀 정상이 아니고 예측 불가능한 정권이다. 전 세계가 북한이 ICBM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데에 일치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하였다(Tensions Rise Between Tillerson And Trump As The Threat Of War In N. Korea Looms).

한국인들은 이러한 두려움을 극적 효과나 위험, 갈등 등에서 기대어 살고 있는 언론인들이 과장한 것으로 치부하여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 의회 의원도 우려하고 있다. 테네시 출신의 공화당 밥 코커(Bob Corker) 상원 의원은 “때때로 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대한 외교 문제에 관하여 언급할 때 그가 마치 리얼리티 쇼에 나온 것같이 느낀다.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말들로 인하여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며 트럼프 (Trump) 대통령의 언사가 불안하다고 언급하였다. 코네티컷 출신의 크리스 머피(Chris Murphy) 상원 의원은 트위터를 통해서 코커 의원의 발언에 북한을 특정하여 덧붙였다. 머피 의원은 “6/ 많은 사람들이 백악관 안팎에서 진지한 전쟁 논의가 속삭여진다고 듣고 있다. “폭풍 전 고요”라는 발언에 소름이 돋았다. 7/ 세계 제3차대전의 가능성을 언급하는 코커 의원의 발언이 지금 나온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닐 것이다. 8/ 너무 늦기 전에 지금 공화당과 민주당이 의회의 표결 없이는 북한에 대한 선제 공격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트윗 하였다. 매사추세츠의 에드 마키(Ed Markey)를 비롯한 열 명 남짓한 민주당 상원의원들은 백악관에 “우리는 대통령이 북한에 대하여 선동적인 수사를 쓰는 것이 미국과 세계를 수 백, 수천 명의 사상자가 날 수 있는 재래식 전쟁 또는 심지어 수천 명의 미국인을 포함하여 수백 만의 사상자가 날 수 있는 핵전쟁으로 끌고 간다는 강한 우려를 갖고 있다”는 편지를 보내기도 하였다. 중도 씽크탱크인 미국 외교협회의 리처드 하스(Richard Haass) 협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떤 기준으로도 끔찍할 제2차 한국전쟁을 일으키는 데에는 매우 가까이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하였다.

이처럼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북핵 위협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주로 미국 뉴스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핵 위협에 대한 두려움과 “군사적 선택지”가 자주 회자되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에서 공화당을 지지한다고 밝힌 사람들의 반이 북한에 대하여 무력 공격을 지지한다고 답하였다. 기자들의 불길한 예감과 상원의원들의 걱정은 지난 1년간 극적으로 변한 여론 환경을 보여준다.

트럼프 팩터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 어떻게 미국 대중이 인식하는 북핵 위협이 이렇게 급격하게 바뀌었을까? 어떻게 실행 가능한 정책 옵션들이 한반도에서 전면적인 전쟁을 포함할 정도로 급진적으로 변하였을까?

북한 측면을 생각한다면 해답은 간단하다. 그들의 능력이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김정은 위원장은 괌까지 닿을 수 있는 중거리탄도미사일과 어쩌면 미국 본토까지 닿을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 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초토화시킨 원자폭탄보다 수십 배는 더 강력한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하였다. 북한은 본인들의 핵 “억지” 능력을 극적으로 키우며 미국인들의 두려움을 증폭시켰다.

미국 측면을 본다면, 처음에는 그 답이 트럼프 대통령으로 보일 수 있다. 미국 대통령으로서 역사상 가장 정치적 경험이 없는 사람 중 한 명이 임기 시작부터 해결해야 할 과제로 북한의 “성공”을 떠안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것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한 순간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이 되었다. 그가 메시지를 내보내는 방식, 또는 어쩌면 정책을 만드는 방식 자체는 적개심과 위험을 부추기고 북한에게 “화염불과 분노”를 겪게 한다든지 나라를 “완전히 파괴”하겠다는 등 극단적인 “해결책”을 마치 정상인 양 보이게 한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언급을 피해왔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있다. “엉망 진창”인 북한의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트럼프주의(Trumpism) 외교정책의 핵심이 되었다. 마치 오바마 캐어 폐지, 세제 개혁, 또는 사회기반시설 투자와 같은 수준의 위상을 차지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중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6천억 불의 통상관계가 아닌 북핵문제를 꼽을 정도이다. 북한은 외교정책에 있어서 트럼프 대통령의 신뢰성을 확인할 수 있는 가늠자이고 대통령이자 최고 군통수권자로서 본인의 정체성 그 자체일 수도 있다.

많은 한국인들은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요소가 북한과 관련된 위협에서 큰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하여 일종의 안도감을 느끼는 듯하다. 그들은 트럼프 대통령을 연기자 또는 과장되게 많은 것을 말하려 하는, 시끄럽고 분노에 찬 쇼맨 정도로 생각한다. 따라서 본인이 말하는 위협을 실제로 시행하지는 못할 위인이라고 본다. 이렇게 트럼프에 대해 크게 괘념치 않는 것에는 문화적인 영향이 있을 수도 있다. 한국인들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힘을 판단하고 “허풍쟁이”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물론, 많은 미국인들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하여 이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한국인은 개개인이 아닌 전체가 문화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가볍게 여길 수 있고 그럼으로 인해서 그가 말하는 위협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하여 과소평가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과하게 극적인 인물인 것은 사실이다. 그의 경력을 되돌아보면, 그는 투자자이자 연예 기획자였고 사업가이자 그 자신이 하나의 브랜드였다. 그가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곳은 TV방송이었으며, 그의 가장 냉혹한 비판자라 할지언정 그가 정치 무대에서도 굉장한 재능을 보였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미국 정치를 자신의 이미지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그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과 같은 배우는 아니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배우로서의 기량과 한계를 정치인으로서 보여줬다. 그는 캘리포니아 주지사라는 배역과 미국 대통령이라는 배역을 맡고 싶어했다. 그 배역에 맞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고전적인 의미의 배우가 아니다. 그는 리얼리티 방송 연예인이다. 학습도, 준비도, 어떠한 배역을 잘 연기한다는 점도 찾기 힘들다. 리얼리티 방송 스타는 그저 자신이면 된다. 그리고 그가 하는 것은 그대로 “사실(real)”이다. 그는 그저 카메라가 촬영하고 수백만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본인 실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뿐, 특정 배역을 맡은 배우가 연기하는 것과 다르다.

그럼, 볼만한 방송이 되도록 리얼리티 방송 대통령이 하는 것은 무엇인가? 대통령 권한의 궁극적인 드라마는 무엇인가? 무엇이 한 시즌, 또는 임기를 좋거나 나쁘게, 그리고 비극적이거나 성공적으로 만드는가? 전쟁, 그 이상의 드라마는 없다. “좋은”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쁜” 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 위원장은 완벽한 악당이다. 정상이 아니고, 예측할 수 없으며, 미국적인 것과는 정반대이다. 북한은 트럼프 정부에게 완벽한 표적이다. 우리와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사는 듯한, 현실과는 동떨어진 사람들이다. 일반적인 미국인들이 아는 북한 사람의 모습이란 그저 제복을 입고 단체로 우스꽝스럽게 김일성광장을 행진하는 것뿐이다. 어떤 전쟁에서나 적을 죽이는 것을 조금이라도 견딜 수 있게 만들기 위하여 적은 인간적이지 않게 그려진다. 북한의 경우 일부러 다르게 그릴 필요도 없다. 미국 대통령이 UN총회에서 한 국가와 그 국민을 “완전히 파괴”하겠다고 했을 때를 생각해보라. 그저 그 나라에서 태어났을 뿐인 2천 5백만의 남성, 여성, 그리고 아이들을 위하여 누가 도움을 주려 하였던가? 누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집단 학살을 한다고 비난하였는가?

전쟁 옹호론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아닌 더 큰 위험에 대하여 생각하여야 한다. 한반도를 위험에 빠트리는 것은 김정은 위원장의 실험이나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뿐만이 아니다. 북한 핵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한국인과 미국인이 인식하는 차이가 벌어지는 것은 트럼프 팩터뿐만이 아닌 다른 요소들이 작용한 결과이다.

미국 내에서 전쟁 옹호론이 대두되고 있다. 진보와 보수, 민주당과 공화당을 넘나들며 충분한 수의 미국인들이 이를 설득력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실질적인 위험이다. 전쟁을 하자는 이 논리는 두려움에 그 근간을 둔다.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 본토를 위협할 핵무기를 실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가졌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는 얼마나 많은 핵탄두를 개발할 것인가? 그는 얼마나 많은 미사일을 만들 것인가? 만약 김정은 위원장이 백 개의 핵탄두가 장착된, 지하나 잠수함에서 빠르게 발사 가능한 장거리 미사일을 갖는다면, 그는 과연 그것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그저 발사하겠다는 위협만으로 그는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그는 왜 그토록 효과적인 억지력을 가지려고 하는가? 과연 그것은 방어를 위한 것인가? 그저 생존을 위한 것인가? 또는 그가 다른 무엇인가, 어둡고 두려운 무엇인가를 노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트럼프 행정부의 고위 참모가 <뉴요커>의 에반 오스노스에게 물어본 것처럼 “그들은 한반도의 현재 상황을 유지시키려고 이 무기들을 개발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꾸려고 하는 것인가?” 트럼프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인 맥마스터(McMaster) 중장은 “이 상황은 과거 우리가 소련과 처해 있던 상황과 다르다. 북한은 미국이 남한을 버리고, 어쩌면 두 번째 한국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여건을 만들도록 미국을 협박하는 것이 자신들의 의도라고 말과 행동으로 보여왔다”고 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막을 수 없고 억지할 수 없어서 소련이 가장 강성할 때보다 더 위험하고 불길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려움을 근저에 두고 “실행 가능한” 군사 옵션이 있다는 의견을 점차 미국 대중에게 주입하고 있다. 상원 의원들은 “백악관 안팎에서의 속삭임”을 듣는다. 미중앙정보국(CIA) 국장은 북한정권과 북한의 역량을 “분리” 하는 것에 대하여 말한 바 있다. 국방장관은 한국을 “심각한” 위험에 빠지지 않게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는 설명하지 않은 채 군사 옵션에 대해 모호하게 언급하였다. 그 동안 대통령은 합동참모들에게 더 나은 여러 계획을 더 빨리 달라고 요구한다. 그래서 “혹시 필요하다면” 대응할 수 있는 옵션이 있게 말이다.

이러한 전쟁 옹호론은 과거의 일들을 근거로 펼쳐진다. 트럼프 정부는 대중에게 미국이 25년동안 북한과 대화를 하였고 “수십 억” 달러를 주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우리를 기만하고, 우리의 돈을 가져가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에 사용하였을 뿐이었다며, 대화나 협상은 의미가 없고 “힘을 아껴야” 한다고 국무장관에게 말한 바 있다. 그는 다른 모든 것은 “유화 정책”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을 책망하기도 하였다.

미국 대중은 이제 중국이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니 제재가 작동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있고, 중국이 참여한다 하더라도 제재가 효과적일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외교는 계속될 것이며, 아직 “우선순위”는 외교이다. 하지만 이는 “첫 폭탄이 떨어지기 전”까지 만이다. 그때서야 김정은 위원장은 자신이 들었던 “한 가지”가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이고, 트럼프 대통령, 트럼프 정부, 미군, 미 의회, 미국 사회는 선택권이 없을 것이다. 다른 모든 옵션들은 이미 시도해 보았을 것이고, 실패했을 것이기 때문에 한 가지 선택만이 남아 있을 것이다. 선택이 아니라 이는 불가피한 것이다. 변론은 이미 되었을 것이고, 배심원은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없이 그들의 의견이었던 것처럼 평결을 받아들일 것이다.

예방가능한 전쟁을 막는 법

닉 크리스토프(Nick Kristof )는 “전쟁은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예방될지는 확실하지 않다”며 걱정하였다. 우리의 도전 과제는 예방 가능한 전쟁을 막는 것이다.

제1선의 저항은 미국 시민들, 미디어 내 감시 단체와 의회 내 대표들이 하는 것이다. “군사 옵션”이 문제의 유일한 논리적 “해법”이라고 생각되는 근원은 북한 위협에 대한 과장된 두려움과 김정은 위원장의 “정상이 아니고 예상 불가능한” 본성이다. 두려움의 해독제는 지식이다. 미국 기자들은 2002년-2003년 이라크 침공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기자로서 실패하였다. 오스노스와 크리스토프를 포함한 일부 기자들은 당시와 지금의 유사성을 알아차리고 북한과의 전쟁에 대한 옹호론에 구멍을 내고 있다. 그들이 북한을 방문한 것은 우연이 아니며, 엄격하게 통제된 환경일지라도 표출되는 북한에 사는 사람들의 인간성에 정면으로 부딪혔던 것이다. 필자 또한 통제된 상태이지만 네 번 방문하였는데, 엄격하게 연출된 상황에서조차 인간의 즉흥성이 느껴졌기에 이를 증언할 수 있다. 미국 언론의 가장 긴급한 소명은 북한에 대한 무지와 이를 바탕에 둔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다.

미 의회에도 무거운 책임이 주어졌다. 작년 한국 촛불집회에서의 국회가 맡았던 역할처럼, 미 하원과 상원은 지금 혹은 1년 사이에 결정적인 순간을 맞이할 수도 있다. 전후 미국 정치를 장악한 ‘제왕적 대통령제’로부터 의회가 미국 민주주의 초석의 자리를 되찾는 소명을 받은 것이다. 전쟁을 선언할 수 있는 권한은 백안관이 아닌 의회가 갖고 있다. 이미 처참한 베트남 전쟁을 악화시키도록 존슨 정권에 권한을 준 통킹만 결의안(Tonkin Resolution)과 부시 정권에게 이라크에 침공할 자유 재량권을 준 대이라크전쟁법안(Authorization of Use of Military Force against Iraq)은 의회가 더 늦기 전에 나서야 하며 비극과 실패뿐 일 행위를 막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미국 대중이 언론으로부터 더 나은 정보를 얻고 그들의 의원들이 더 나은 리더십을 발휘하여 전쟁을 선택지에서 없애는 데에 노력하는 동안, 제3국과 국제사회는 이들을 지지하면 된다. 백악관의 신용을 답례로 단순히 트럼프 정부의 “평화적 압력 작전”에 따르는 것은 갈등에 기름을 붓는 꼴이다. 러시아와 유럽연합의 여러 국가는 중재자 역할을 하며 긍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과 북한이 갈등으로부터 서서히 멀어져 점차 타협 및 진전으로 다가갈 수 있는 예비 회담의 기회를 만들고 있다. 더 노력하여야 한다. 특히 중국은 북한과 특별한 관계를 갖고 있지만, 아직 발전적인 지렛대 역할은 못하고 있다.

유엔(UN)도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단순히 처벌이 곧 해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하며 북한이 미사일이나 핵 실험을 하면 제재안을 통과시키는 역할에만 머물러서는 안된다. 유엔은 위험을 감소시키고 미국과 북한 사이에 이해를 도모하는 건설적인 중재를 하는 데에 더 창의적이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세계 경제의 중심에 있는 한반도에서 핵보유국 사이의 전쟁은 세계 복지와 번영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다. 북한의 고립은 해법이 아니라 문제의 일부이다. 유엔은 북한을 다른 국가들과 통합시켜야 하는 책임이 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국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가자. 한국인들은 태평양 건너의 동맹국과의 위협 인식 격차를 줄이기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국은 미국의 전쟁 옹호론을 철회하도록 돕고, 미국의 외교를 더 건설적인 방향으로 돌려놓을 수 있을까?

정확히 1년 전, 세계는 한국 국민이 용인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하는지, 그 저력을 목격하였다. 수 개월 동안 매주 토요일마다 백만여 명의 한국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정의를 요구하며 대통령 하야와 탄핵을 재촉했다. 확실히 제2의 한국전쟁의 가능성은 부패한 대통령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이러한 데에는 매우 복잡하고, 충분한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만은 재고되어야 한다. 단지 트럼프 대통령이 발끈하는 것뿐이고, 미국은 한국에서 전쟁을 시작하지 않을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 말이다.

지난 겨울 내 촛불을 들고 환희의 분개를 했던 한국인들은 두려움에 굴복하지 말되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한국전쟁 휴전 이후 한국은 길지만 불안정한 평화로 가는 조그만 기로에 진입하였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는 “침묵을 깨야 하는 때”라는 유명한 연설에서 베트남 전쟁을 경고하였다. “삶과 역사의 난제를 대하는 지금, 자칫 때를 놓쳐버릴 수 있다. 꾸물거린다면 시간을 도둑맞아 버릴 것이다. 인생은 종종 우리가 기회를 잃어버리고 벌거벗어 낙담한 채 서있게 만든다. 때는 항상 넘쳐 오른 채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썰물처럼 흘러서 빠져 나가버린다. 우리는 시간이 멈추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아무리 애원해도 시간은 단호하게 제 갈 길을 간다. 수많은 긁혀진 유골들과 여러 문명이 뒤섞인 잔재 위에는 한심한 한마디, ‘너무 늦어버렸다’고 쓰여 있다.”

또 다른 처참한 전쟁에서 얻을 것이 없는 미국인은 모든 옵션을 테이블 위에 놓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한국인은 기다리지 말고 너무 늦기 전에 이를 막아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을 기회로 삼아 트럼프 대통령으로 하여금 “군사 옵션”의 상상할 수도 없는 비용을 알게 해야 하고, 미국-북한간 고위급 대화를 시작으로 대화와 협상 및 합의로 이어질 외교적 해결 방안을 굳건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게 하여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진솔한 대화를 통하여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상호적인 반응을 유도할 수 있는 절충안을 찾아보아야 한다. 이를 통하여 세 나라는 핵무기를 보유한 채 적대하는 것이나 갈등이 고조되는 위험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합동군사훈련의 축소 및 중단, 한반도 내 전략적 자산의 배치 방지, 북한 인민군과의 군간 소통 채널 설립, 군축 협상 및 평화 체제 설계에 대한 예비회담 개최 등을 “유화 정책”이라고 부르며 폐기해서는 안된다. 반대로 두 동맹국은 북한에 대해 어떻게 주도적 외교인 “평화 공세”를 펼칠지 집중적으로 토론해야 한다. 지난 1년 동안은 김정은 위원장이 자극하고 트럼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은 그 자극에 수세적으로 반응하는 양상이 반복되어 왔다. 이제, 한국과 미국 지도자들이 북한 문제를 다루는 데 진정한 리더십을 보여줄 때가 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일정이 비록 짧지만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며 진지한 외교의 시작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기고문의 견해는 필자의 개인 의견이지 동아시아 재단의 공식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필자 소개

존 델러리는 연세대학교 국제대학과 국제학대학원 소속 부교수이다. 현대중국 역사학자이며, 오빌 셸과 「돈과 힘」(2013)을 출판하였으며, 이는 중국어, 일본어 및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또한 그는 북한을 네 번 방문하였고, Foreign Affairs, 38 North, 그리고 그가 편집자로 있는 Global Asia 등에 정기적으로 기고하는 등 한반도 이슈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현재 미중관계 및 북한 국가위원회 위원, 아시아소사이어티, 태평양세기연구소, 및 중국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국제전략문제연구소 연구원을 겸임 중이다. 예일대학교에서 역사학 전공으로 학사와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1950년대 미중관계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

*본 게시물의 저작권은 동아시아재단에 있습니다.

존 델러리 jdelury@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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