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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문제 다시 실패의 길을 걸을 것인가

기사승인 2017.09.27  10:5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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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원서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 원장

 

상황이 심상치 않다. 미국과 한국에서 트럼프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돌파구를 기대했던 북핵문제가 갈수록 꼬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9월 19일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로켓맨’이라 조롱하고 북한의 ‘완전 파괴’를 언급한 데 대해, 21일 김 위원장이 ‘사상 최고의 대응 조치’를 고려하겠다는 자신 명의의 성명으로 응수하는 상황이 현주소를 말해준다.

북한은 23일 리용호 외무상이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전체 미국땅이 우리 로켓의 방문을 더더욱 피할 수 없게 만드는 만회할 수 없는 과오를 저질렀다”고 주장하며 트럼프 대통령을 ‘정신이상자’, ‘거짓말의 왕초’, ‘불망나니’, ‘투전꾼’ 등으로 원색적 비난을 쏟아냈다. 양측 모두 가히 험악한 말폭탄의 진수를 보여준 셈이다. 미국은 리 외상의 연설 몇 시간 전 한밤에 북한 동해상의 국제공역에 전략폭격기 B1-B 랜서를 출격시켜 무력시위를 했다. 양측은 왜 이토록 첨예하게 대치하며 상황을 갈수록 악화시키고 있는 것일까?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한국정부는 “지금은 압박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며 북한의 행위를 개탄만하며 대북압박 정책에 동조하는 것만이 능사일까? 끊임없는 물음과 회의가 평화적 해결을 열망하는 국민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물론 미국의 대북 압박과 국제사회의 강도 높은 제재는 북한 김정은 정권이 자초한 결과이다. 하지만 한번쯤 북한은 왜 이러한 위험천만한 도발을 계속하고 있는 것인지, 무슨 이유로 북핵문제는 이토록 풀기 어려운 난제로 변했는지 성찰하면서, 현실적 해법을 냉철히 강구해볼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북핵문제가 지금처럼 크게 악화된 것은 미·북 간 그리고 남북 간 신뢰의 붕괴에서 비롯된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국제사회, 특히 미국은 북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두 차례의 결정적 기회를 놓쳤다.

첫 번째는 클린턴 정부에서 조지 W. 부시 정부 초기에 이르는 시기이다. 1994년 제네바 합의를 통해 1차 북핵위기를 수습하고 북한의 비핵화를 추진했던 클린턴 정부는 IAEA의 사찰로 평양의 핵 프로그램 동결을 지속시킬 수 있었으며 임기 말에 이르러 북미수교를 논의할 정도로 양국관계를 개선했다. 1999년에는 베를린합의를 통해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유예를 약속받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 출범한 부시 정부는 과거 클린턴 정부에서 약속했던 정책을 뒤집는 이른바 ‘ABC 정책’으로 전환한다. 「미‧북 제네바 합의」는 기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며 믿을 수 없는 상대인 북한에 이용당하는 것이라는 네오콘의 주장이 반영된 결과이다.

그리하여 부시 정부는 제네바합의에서 북한에 제공키로 한 경수로 건설 약속을 번복한다. 경수로에서도 얼마든지 무기급 플루토늄 추출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양측 간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어 미국이 2002년 10월 북한에 대해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HEU) 개발 의혹을 제기하자 북한은 이에 반발, 상황은 이른바 2차 북핵위기로 치닫는다. 만일 당시 미국이 종래 클린턴 정부에서 약속했던 바를 존중하면서 「제네바 합의」의 틀을 내세워 금창리 사건처럼 북한의 해명과 시정을 요구했더라면 북핵문제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었을 것이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두 번째 기회는 2005년 9‧19 합의 이후부터 2007년 2‧13 합의와 10‧3 합의 그리고 김정일의 뇌졸중 발생과 사망에 이르는 약 4~5년의 시기이다. 1기 행정부에서 사사건건 북한과의 대화를 방해하던 네오콘 세력이 후퇴하자 부시 2기 행정부는 라이스 국무장관과 크리스토퍼 힐 6자회담 수석대표 등 대화파를 내세워 일련의 합의를 도출하고 2008년 6월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하는 등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가시적 성과를 거둔다. 그러나 합의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인내와 시간이 필요했다. 동시에 미국과 한국의 적극적인 협력과 일관된 대북정책이 뒷받침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한국에서의 이명박 정부의 등장과 미국 부시정부의 임기 만료로 합의 추진 동력이 소실되고 북핵문제는 다시 표류하고 만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에서의 급변사태를 기대하며 대화와 협력의 창을 닫았다. 오바마 정부 역시 동맹국인 한국의 입장을 존중(?)하면서 이른바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으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방치하기 시작한다. 최악의 상황을 막아주던 남북관계마저 파탄에 이르면서 북한은 이후 빠른 속도로 누구의 간섭도 없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속력을 내게 된다. 만일 당시 후계체제 안정을 원했던 김정일 위원장의 요구를 적절히 수용하면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관리와 합의 이행에 심혈을 기울였더라면 북핵문제는 결코 지금처럼 악화되지 않았을 것이며 어쩌면 이미 해결국면으로 접어들었을 지도 모른다.

제3차 북핵위기이자 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볼 수 있는 현 상황에서 국제사회가 취해야 할 선택지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1~2차 북핵 위기 때만 하더라도 북한은 핵을 개발하려는 단계였으나 지금은 핵탄두와 투발수단 그리고 6차에 걸친 핵실험을 통해 사실상 핵 보유 국가에 다가섰다. 북핵 포기는 이제 지난한 과제가 된 것이다.

대북제재와 압박만으로 북한 핵문제를 풀 수 있을까? 필자는 지나칠 정도로 군사옵션을 강조하는 미국 주도의 북핵 해법은 북한으로 하여금 핵개발 의지와 필요성을 더욱 부채질 하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고 생각한다. 국제사회가 기왕의 유엔결의를 준수하도록 요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6자회담 의장국이자 북한에 실질적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의 제안을 큰 틀에서 수용하는 대화의 해법이 병행되어야 한다.

하버드 대학의 대니 로드릭 교수의 다음과 같은 글이 눈길을 끈다. “교환행위에 참여하는 두 편 사이에 충분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계약을 맺는 양쪽은 미래의 약속을 지킬 수 있어야 하며 이를 확실히 이행해야 한다. 이를 어기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야말로 거래의 가장 큰 방해물이다.”

결국 북핵문제는 북미 간, 남북 간 신뢰의 회복이 관건이다.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운전자석에 앉으려면 무엇보다 신뢰에 기반한 남북관계 복원이 급선무이다. 민족제일주의를 부르짖는 북한 역시 이제 문재인 정부의 대화 요청에 응하여야 한다. 먼 훗날 우리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남북 지도자들의 각성과 협력을 촉구해마지 않는다.

* 이 칼럼은 (사)남북물류포럼에서 제공했습니다. (남북물류포럼 홈페이지 바로가기)

유코리아뉴스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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