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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외교·통일정책이 실패하지 않으려면?

기사승인 2017.06.17  08: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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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현안진단’

다행증에서 벗어나 현실을 확인하자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한 달이 지났다. 많은 사람들이 광주 민주화항쟁 37주년 기념식에서 정치의 변화를 실감했고, 6월 항쟁 30주년 기념식에서 시대의 변화를 확인했다. 야당의 반대로 지루한 검증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다수 국민들은 대통령의 인사를 대체로 환영하고 있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80%에 이르러 많은 사람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신뢰와 기대를 보이고 있다. 탄핵과 대선 국면을 긴장 속에서 보낸 뒤, 정권 교체의 다행증(多幸症, euphoria, 지나친 행복감)이 한국사회를 사로잡고 있다.

그러나 사실 국내외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특히 남북관계는 변화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취임 한 달 동안 쏘아댄 미사일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난 정권에서 벌어진 외교 참사를 수습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상황을 고려하면 섣불리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지 못하는 문재인 정부의 고민을 이해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하는 한편, 민간단체의 인도적 지원 신청을 승인하며 대북관계에서 대화의 통로를 열고 접촉을 재개하여 남북관계를 선제적으로 개선해 보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북한은 이에 호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화를 거부하는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우리가 5.24 조치 하에서나마 가능한 남북교류를 모색하는 동안, 북한은 5차례 미사일을 발사했다. 

그러면서 북측은 5.24 조치의 철회와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가동 재개를 요구하고 있으며, 한식당 종업원 12명의 조기 송환, 탈북자 김현희 송환 등을 관계 개선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다. 북한은 우리 측이 제안한 말라리아 공동방역 관련 단체의 방북도 거부했고, 인도적 지원과 사회문화교류 단체의 방북도 거부했다. 열릴 듯 보였던 민간교류의 문이 다시 닫혔다. 6.15 공동선언을 기념하는 행사는 올해도 공동개최 대신 남북이 각각 따로 개최하게 되었다. 

희망적 사고를 버리고 과감히 난제에 도전하자

여러 가지 난제들이 꼬여있다 보니 상황이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전개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희망적 사고는 적절한 시기에 마땅히 해야 할 노력을 게을리 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지난 정권이 북한의 조기 붕괴에 올인 했다가 실패했던 것처럼, 이번 정권은 미국과 일본의 태도 변화를 기다리다가 실패할 수 있다. 

희망적 사고에 근거가 없지 않다. 때마침 미국에서는 러시아 추문을 둘러싼 의문이 커지면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가능성이 흘러나오고 있으며, 일본에서도 모리토모학원 문제를 가까스로 넘긴 아베 총리가 가케학원 문제로 발목을 잡혀 구설이 커지고 있다. 한국 외교에게 껄끄러운 상대인 트럼프와 아베가 물러나면 한국 외교가 운신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다는 희망을 가져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설령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고, 아베 총리가 정권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더라도 미국과 일본이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나라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 뒤엔 부통령 펜스가, 아베 총리 뒤엔 외무상 기시가 기다리고 있어서, 두 나라의 대외정책 기조가 크게 변할 가능성이 적다. 그렇다면,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를 상대로 한 진검승부를 피하지 말아야 한다. 그 시기도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우리는 다행증과 희망적 사고에 빠져 실패했던 일본 민주당의 정권 운영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일본 민주당은 2009년 처음으로 선거를 통해 자민당 정권을 끌어내리고 여야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이때 일본은 변화에 대한 희망에 차 있었다.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대표는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 장소를 오키나와현 외부로 이전하겠다고 하여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확보했다. 

그러나 이는 이전의 자민당 시기에 미·일 양국이 양해한 내용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미국은 즉각 이에 반발하기 시작했고, 하토야마 내각이 출범하자마자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외무성과 방위성 관료들도 파업에 가까운 태도로 하토야마 총리의 방침에 저항했다. 위키리크스 폭로에 따르면, 심지어 당시 일본 방위성 정책국장이 미국 고위 관료에게 “미국이 먼저 유연한 자세를 보일 필요가 없다”고 조언까지 했다고 한다. 

미국과 조율되지 않은 하토야마 총리의 일방적 행동은 미국의 반발을 불렀고, 일본 국내의 미·일 동맹주의자들이 이에 가세하면서 하토야마 내각의 정책추진이 동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결국 후텐마 미군기지의 문제는 높은 기대와 지지 속에 출발했던 민주당 정부를 ‘실패의 전형’이 되어 회복 불가능의 지경에 놓이게 했고, 아베에게 장기집권의 길을 열어 주는 원인이 되었다.

지난 13일 한미연합사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조급증과 강박증을 경계하자

우리 현대사의 실패에서도 돌아볼 교훈이 있다. 한반도 분단은 외세의 개입에 의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미・소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처음부터 분단을 의도했던 것은 아니다. 당시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처리를 둘러싸고 유럽에서 미국과 소련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기는 했지만, 이것이 곧바로 냉전의 개시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아시아에서도 소련의 스탈린은 얄타협정에 입각해서 미국과 협조하는 것을 기본 노선으로 삼고 있었다. 

세계사의 교과서들은 1945년 연말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3국 외상회담을 미・소간의 협조주의가 확인된 회의로 기록하고 있다. 한반도와 관련해서는 미・소가 구성하는 틀에서 임시 민주정부를 구성하고 5년의 신탁통치를 거쳐 독립시킨다는 내용이었다. 우리 민족의 의사에 따라서 3국 외상회담이 통일된 한반도 국가를 건설하는 기점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미・소간의 협조가 확인된 바로 그 회의가 한반도에서는 분단의 기원이 되었다. 미・소의 타협과 협조보다는 갈등과 대립에 방점을 둔 국내 정치세력들이 회담 결과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찬탁/반탁이라는 양자택일의 정치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의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성취 가능한 목표를 확인하고 조급증을 버려야 한다.

남북이 각기 정부를 수립한 때로부터 70년이 되어가는 현재, 미・중 양강 구도가 국제정치의 기조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 외교가 처한 어려움은 여기에 있다. 중국이 부상하여 초강대국 미국과 경합하면서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분명히 동아시아 지정학 변동의 큰 요인이다.

그러나 양강 구도는 세계사의 흐름을 좌우하는 몇 가지 요인 중 하나이지 유일한 요인은 아니다. 미・중 양강의 국제정치는 유독 한국에서 크게 그려진다. 인도의 부상이나 아세안공동체의 출범 또한 국제정치의 변화를 이끄는 중요 요인이며, 최근에는 유럽연합의 복귀라는 현상도 두드러진다. 동북아시아에 한정해서 보아도 일본과 러시아의 움직임은 결코 미・중 양강 구도에 포섭되지 않는 궤적을 그리고 있다. 

미・중 양강 구도의 출현은 중요한 변수임에 틀림없으나 거기에 매몰될 필요는 없다. 한국 외교가 가지는 운신의 폭은 생각보다 넓다. 고래들은 아직 싸울 생각이 없는데, 등 터질 걱정에 사로잡혀 스스로 기회를 닫아버리는 꼴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북한도 조급함을 버려야 한다. 남북화해노선이 폐기된 지난 9년 동안의 간극은 북한의 대남 이해 내용에도 간극을 불러왔다. 현재 북한의 대남 라인에는 2016년 김양건 사망 이후 통일전선부장을 맡은 김영철 정도가 이전의 남북화해 국면을 경험한 사람으로 남아 있을 뿐, 대부분이 낙마 또는 숙청당한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은 문재인 정부의 출범이 가지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에 특사를 보내지 않은 것도 북한으로서는 서운하거나 불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서훈 전 국정원 차장을 국정원장에 임명한 데 들어있는 메시지를 읽기 바란다. 마침 통일부 장관과 차관도 남북화해를 주도했던 인사가 임명되어 대북정책 라인에 남북정상회담의 주역들이 포진했다. 여기에도 새 정부의 의지가 담겨 있다.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주도할 준비를 하자

다시 주변국으로 눈을 돌려 보자. 우리는 19세기 지정학의 재현이라는 강박증에 사로잡힌 나머지 주변국 모두가 한반도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피해망상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미국도 중국도 일본도 사회 양극화와 인구문제 등 구조적인 한계 속에서 경제재건과 복지를 위한 재정확보 등 국내에서 할 일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스트롱맨, 또는 마초 리더의 시대라고 하여 자국우선주의에 분주한 강대국들 사이의 지정학으로만 동아시아를 바라보는 것은 허구이다. 스트롱맨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경제적 양극화 속에서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들의 불만을 응집시켜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는 강경한 대외정책으로 국내 정치의 위기를 돌파해보려는 유약한 지도자들이다. 

그런 한계 속에서 이들 스트롱맨들은 한반도에서 선제적 행동을 취하는 데 어려움이 있음을 인식하고 있으며, 섣불리 건드리지 못해서 예의주시하며 탐색하고 있는 단계에 있다. 이는 우리가 이 지역에서 미래 전망을 그릴 여지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한반도 문제를 주도해서 동아시아 평화구축의 길을 제시할 때, 미국이나 중국, 일본의 지도자는 진정으로 ‘자국우선주의’에 입각해 자국의 문제를 해결하고 극복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럼으로써 새롭게 동북아 지역에 안정적인 국제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높다. 그러나 높은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뀔 수 있다. 우리 문제를 풀 수 있는 대내외 환경이 그리 녹록하지 않기 때문이다. 빨리 다행증에서 벗어나서 신속히 유효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렇다고 강박증에 사로잡혀 너무 조급하게 서두르는 나머지 스스로 외통수에 빠지지도 말아야 한다. 

우선은 엉킨 실타래를 푸는 데 차분하게 주력하기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왜 꼬이게 되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지난 정권에서 외교·안보·통일 정책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일들에 대해 꼼꼼하게 검토하는 것이 우선 할 일이다. 당분간 부담이 되는 이슈를 새로 만들지 말고 우선은 참사 직전에 있는 외교를 정상화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6월 말의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아직 외교부 장관도 임명되지 않았고, 미국도 동북아 정책을 담당할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나 주한 미대사 자리가 비어 있는 상황이다. 무너지고 망가진 외교의 기본을 바로 잡는 일에 당분간 힘을 쏟아야 한다.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inst1@p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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